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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두 번째 대관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1 12:13:50

「꽃달 1일, 왕과 왕비는 백성이 모은 소금 앞에서 혼례를 맺고 구리 관을 쓴다. 두 사람의 서약은 광장에 모인 이들이 듣는다.」

마티아스는 문턱에 얹힌 로잘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을 조금 옮기자 잉크 자국 위로 엄지가 닿았다.

“고칠 곳이 있었군요.”

“예. 내일도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듣겠습니다.”

마티아스는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로잘린이 문을 닫을 때까지 문 앞에 서 있었다.

혼례 옷은 의자 위에 펼쳐져 있었다. 로잘린은 펜을 다시 들지 않고 등불을 낮췄다.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천을 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도 곧 그쳤다.

«▼»

아침에 게르다가 가져온 것은 수프와 작은 접시였다.

“옷부터 입으면 못 드십니다.”

접시에는 꿀빵이 놓여 있었다. 표면의 소금이 아침 볕을 받아 희게 보였다. 로잘린이 의자를 당기자 페트라가 수프 그릇을 가까이 밀어 주었다.

“광장에 나눌 빵은 옮겼어요. 이건 마님 몫이고요.”

“먼저 먹어도 돼?”

“마님이 드실 것을 먼저 빼 뒀어요.”

페트라가 빵을 갈랐다. 로잘린은 수프를 먹은 뒤 빵 조각으로 접시의 꿀을 훑었다. 게르다는 빈 그릇을 확인하고서야 혼례 옷을 들었다.

옷에는 금실도 보석도 없었다. 밝은 천의 소매 끝에 작은 바느질이 이어져 있었다. 로잘린이 팔을 넣자 페트라가 등 뒤를 여몄다.

게르다는 어깨의 접힌 곳을 펴고 소매를 내려 주었다.

“손을 뻗어 보세요.”

로잘린은 책상 쪽으로 팔을 뻗었다. 소매 끝이 손등을 덮지 않았다.

“펜을 잡아도 되겠어요.”

“오늘도 잡으실 겁니까?”

“날짜는 적어야죠.”

게르다는 대답 대신 마지막 매듭을 고쳐 묶었다. 페트라가 머리를 빗어 하나로 모았다. 평소보다 천천히 빗살이 내려왔다.

문밖에서 소냐가 물었다.

“들어가도 돼요? 준비 다 됐어요? 관도 여기 있어요?”

“들어와.”

소냐는 문을 열자마자 말을 멈췄다. 로잘린의 옷을 보고, 머리를 보고, 다시 옷을 보았다.

“언니가 계단을 내려오면 제가 먼저 광장에 알려도 돼요?”

“뭐라고?”

“우리 왕비가 나온다고요.”

게르다가 문을 넓게 열었다.

“알리지 않아도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잘린은 책상 위의 장부를 보았다. 가죽 장부 곁에 오늘 쓸 새 장부가 놓여 있었다. 깃펜은 씻어 말려 두었고, 잉크병 뚜껑은 닫혀 있었다.

페트라가 손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털어 주었다.

“다녀와서 쓰세요. 제가 그대로 둘게요.”

로잘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섰다.

«▼»

궁 문 앞에 마티아스가 서 있었다.

항구에서 입던 겉옷 대신 단정한 옷을 입었지만, 오른 손바닥의 굳은살은 그대로였다. 내민 손 위에 로잘린이 손을 얹었다.

“항구에는 안 가셨나요?”

“오늘은 안 갔습니다.”

“배가 몇 척인지 모르시겠네요.”

“모릅니다. 내일 알아보겠습니다.”

로잘린이 웃자 마티아스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길을 비워 두고 있었다. 소금 산을 받친 천은 가장자리가 가지런히 접혀 있었다. 볕이 닿은 곳은 밝고, 사람들이 선 쪽은 조금 어두웠다.

린드는 염전 일꾼들 곁에 서 있었다. 사스는 토렌 사절과 함께 자리를 잡았고, 스벤은 바닷바람이 오는 쪽에 서서 수염을 손으로 눌렀다. 힐데가 로잘린에게 고개를 숙였다.

올덴 사절은 왕실 인장이 찍힌 축하 문서를 가슴 앞에 들고 있었다. 로잘린은 인사를 받고 걸음을 옮겼다. 문서를 받느라 잡은 손을 놓을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페트라가 곁에서 받아 들었다.

소금 산 앞의 낮은 탁자에는 구리 관이 놓여 있었다.

두란에서 온 구리를 얇게 펴서 만든 관이었다. 높이 솟은 장식도, 가운데 박힌 돌도 없었다. 가장자리만 둥글게 다듬어져 있었다.

힐데가 탁자 옆에서 말했다.

“머리에 닿는 곳은 여러 번 살폈습니다. 거친 곳은 없을 거예요.”

로잘린이 관 안쪽을 손끝으로 만졌다. 구리는 아침 공기처럼 서늘했다.

“직접 보셨어요?”

“예. 광산에서 나간 구리가 어디에 쓰이는지는 보고 싶어서요.”

베크가 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금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이대로 좋아요.”

로잘린은 관을 천 위에 돌려놓았다.

“두란에서 구리가 오고, 우리 손으로 다듬었잖아요.”

힐데가 관의 방향을 조금 바로잡았다. 베크는 말을 더 보태지 않고 선언문을 펼쳤다.

바람이 종이 아래쪽을 들었다. 로잘린이 비어 있는 손으로 모서리를 눌렀다. 베크가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읽기 시작했다.

“꽃달 1일, 멜리네 광장에서 왕과 왕비의 혼례를 맺습니다.”

광장의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궁 안에서 소금을 나누던 날에는 작은 그릇과 서류만 있었다. 오늘은 소금 산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로잘린은 잡고 있던 손을 조금 고쳐 쥐었다.

게르다가 깨끗한 그릇을 가져왔다. 광장에 모인 소금에서 한 줌을 덜어 놓은 그릇이었다.

로잘린과 마티아스는 함께 손을 뻗었다. 맞잡았던 손을 놓고, 각자 소금을 조금 집었다. 손끝에 붙은 알갱이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티아스가 손을 내밀었다.

로잘린은 그 손바닥에 소금의 반을 놓았다. 마티아스도 같은 만큼 나누어 주었다. 서로에게 받은 소금을 입에 대자 짠맛이 혀끝에 닿았다.

로잘린은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 마티아스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짜네요.”

작게 말하자 마티아스가 답했다.

“소금이니까요.”

가까이에 선 소냐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로잘린은 남은 소금을 그릇에 돌려놓았다. 손끝에 묻은 것은 그대로 두었다.

베크가 선언문을 내려놓았다.

이제 마티아스가 말할 차례였다.

«▼»

마티아스는 광장을 향해 섰다. 로잘린의 손을 다시 잡고, 사람들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처음부터…….”

말이 멈췄다.

로잘린은 손을 당기지 않았다. 어젯밤 문 앞에서 닿았던 엄지가 다시 잉크 자국을 가볍게 눌렀다.

마티아스가 말을 고쳤다.

“처음엔 조약과 장부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광장 뒤쪽에서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 로잘린은 고개를 들어 마티아스를 보았다.

“처음에는 이 혼인이 두 나라가 맺은 조약을 지키는 길이었다. 그리고 라우덴에는 장부를 함께 볼 사람이 필요했다.”

마티아스는 꾸며 둔 종이를 꺼내지 않았다.

“그 일을 맡긴 사람에게 오늘도 묻고 싶다.”

몸을 돌려 로잘린과 마주 섰다.

“앞으로도 제 곁에 계시겠습니까?”

로잘린은 잠깐 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소금이 남은 손끝과 밧줄 굳은살이 닿아 있었다.

“예.”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들리도록 또렷하게 답했다.

“장부도 함께 볼게요. 고칠 곳이 있으면 말씀드리고요.”

“부탁드립니다.”

“전하께서도 제게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베크가 관을 들었다. 마티아스가 받아 로잘린의 머리 위에 올렸다. 구리가 머리카락을 가볍게 눌렀다.

마티아스는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는지 살피고 손을 뗐다. 로잘린이 고개를 조금 움직여도 관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로잘린이 탁자에 남은 관을 들었다. 마티아스가 머리를 낮췄다. 로잘린은 검은 머리 위에 관을 얹고 손끝으로 가장자리를 바로잡았다.

고개를 든 마티아스가 물었다.

“불편하지 않습니까?”

“예. 전하도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소냐가 먼저 손뼉을 쳤다. 광장에 소리가 이어졌다. 페트라는 받아 든 문서를 옆구리에 끼우고 두 손을 마주쳤다.

로잘린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페트라도 눈을 맞추고 더 크게 손뼉을 쳤다.

베크가 금고 기록을 내밀었다.

로잘린이 읽기로 한 종이였다. 모서리에는 확인한 표시가 남아 있었다. 로잘린은 종이를 받아 들고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오늘 금고에 남은 돈을 읽어 드릴게요.”

앞쪽에서 린드가 자세를 바로 했다. 항구에서 온 사람들도 고개를 들었다.

“2만 세르예요.”

베크는 이미 아는 숫자를 듣고도 입술을 눌렀다.

“곡물 값과 운반비, 궁에서 쓴 돈을 낸 뒤에 남은 금액이에요. 오늘 나눌 빵과 혼례에 쓴 비용도 기록했어요.”

로잘린은 기록의 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해요.”

종이를 조금 들어 확인한 표시를 보였다.

“다만 무엇을 적었는지 함께 보셔야 해요. 장부방에서 보여 드릴게요. 잘못 적힌 곳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스도 두 손을 모은 채 종이를 보고 있었다.

베크가 기록을 받아 탁자 위에 놓았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빈 소금 그릇으로 끝을 눌렀다.

마티아스는 로잘린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작은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로잘린.”

“예.”

마티아스가 뺨 곁에 손을 대고 잠깐 기다렸다. 로잘린이 얼굴을 들었다.

입술이 짧게 닿았다. 소금 맛이 조금 남아 있었다.

손뼉 소리가 다시 커졌다. 얼굴을 뗀 뒤에도 마티아스의 손은 뺨 곁에 머물렀다. 로잘린은 그 손목에 손끝을 얹었다가 함께 내렸다.

«▼»

탁자를 치우기 전에 피노가 다가왔다.

저울을 놓을 자리를 찾던 피노가 관을 올려다보았다. 로잘린과 눈이 마주치자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셈 선생님, 관도 재 봐도 돼요?”

베크가 입을 열려는데 마티아스가 먼저 손을 들었다. 머리 위의 관을 벗어 피노에게 내밀었다.

“제 것을 재면 됩니다.”

피노는 두 손으로 받았다. 생각보다 쉽게 들렸는지 팔을 조금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여기 놓아 주세요.”

피노가 저울 접시를 가리켰다. 마티아스는 사람들 앞에서 몸을 굽혀 관을 접시에 올렸다.

구리가 접시에 닿으며 작은 소리가 났다. 피노는 추를 옮기고 눈높이를 낮췄다. 관 한쪽이 접시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지도 살폈다.

소냐가 가까이 와서 물었다.

“얼마나 돼? 소금보다 무거워? 다 됐어?”

“기다려요. 아직 움직여요.”

소냐가 입을 다물었다. 피노는 저울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추를 살폈다.

“1.2킬로그램이에요.”

그리고 관을 다시 들어 보았다.

“가벼워요.”

가까이에 선 사람이 웃었다. 뒤에서 무슨 말이냐고 묻는 소리가 나자 린드가 대신 전했다.

“왕의 관이 가볍답니다!”

웃음이 광장 뒤로 퍼졌다. 마티아스도 웃으며 관을 돌려받았다.

“머리에 쓰는 것이니까요.”

이번에는 스벤까지 수염을 들썩였다.

피노는 관을 다시 쓴 마티아스를 보고 저울 접시를 비웠다. 로잘린이 탁자에 남아 있던 천을 건네자 접시를 닦아 두었다.

“소금은 안 재기로 했지만 관은 재도 되네요.”

“관을 쓴 사람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피노는 고개를 끄덕이고 저울을 옆으로 옮겼다.

페트라가 빵 바구니를 가져왔다. 게르다가 빈 탁자에 천을 깔았다. 앞에 있던 사람들이 뒤로 빵을 건넸다. 린드는 일꾼들 몫을 한꺼번에 가져가지 않고 곁에 서서 바구니를 받쳐 주었다.

사스는 빵을 먹다가 손등에 묻은 꿀을 보았다. 힐데가 천을 내밀었다. 사스가 감사 인사를 하자 힐데는 자신도 빵을 하나 집었다.

스벤은 소금이 붙은 쪽부터 먹었다.

로잘린이 곁을 지나자 스카르어로 짧게 말했다.

“이 빵은 배에서도 먹기 좋겠습니다.”

“오늘 것은 광장에서 드세요.”

스벤이 남은 빵을 입에 넣고 빈 손을 펴 보였다.

소냐가 로잘린에게 빵을 내밀었다. 로잘린은 마티아스와 반으로 나눴다. 꿀이 손가락에 묻자 마티아스가 손수건을 꺼냈다.

깨끗한 면을 찾아 펼쳐 주었다.

“오늘은 잉크가 덜 묻었습니다.”

로잘린은 손을 닦고 손수건을 돌려주었다.

“아직 장부를 안 썼으니까요.”

«▼»

궁으로 돌아왔을 때 방 안에는 아침에 펼쳐 둔 장부가 그대로 있었다.

로잘린은 거울 앞에서 관을 벗었다. 페트라가 받으려 하자 직접 책상 한쪽에 놓았다. 구리 가장자리에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닦을까요?”

“나중에 해도 돼.”

페트라는 혼례 옷의 매듭을 풀어 주었다. 옷자락에 붙은 소금이 바닥에 조금 떨어졌다. 게르다는 털어 낼 천을 가져오며 로잘린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오늘은 수선할 곳이 없겠습니다.”

“잘 만들어 주셨으니까요.”

게르다는 옷을 받아 소매부터 접었다. 페트라는 관 아래에 천을 깔아 주고 게르다와 함께 나갔다.

평소 옷으로 갈아입은 로잘린은 책상 앞에 앉았다.

새 장부의 첫 장을 펼쳤다. 깃펜 끝에 잉크를 묻히고, 남은 방울을 병 안쪽에 덜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마티아스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머리에는 이제 관이 없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마티아스는 책상 곁으로 와서 빈 종이를 보았다. 로잘린은 첫 줄에 날짜를 적었다. 그 뒤로 펜을 조금씩 옮겼다.

「꽃달 1일. 왕비. 두 번째. 남는 것: 전부.」

펜을 들자 잉크가 아직 젖어 있었다.

마티아스는 글씨에 손이 닿지 않게 장부 가장자리를 잡았다.

“고칠 곳 있습니까?”

로잘린은 쓴 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없어요.”

마티아스가 의자를 가까이 가져왔다. 로잘린은 펜을 씻어 받침에 놓고 손을 폈다.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새 잉크가 조금 묻어 있었다.

마티아스가 그 손을 잡았다.

로잘린은 책상 위 구리 관을 보았다. 그 곁에는 아버지의 가죽 장부와 자, 깃펜이 있었다. 새 장부의 첫 줄이 마를 때까지 두 사람은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

«▼»

밤에는 광장의 빵 바구니가 모두 비었다.

로잘린은 마티아스와 창가에 섰다. 광장에 남은 소금 산은 낮보다 낮고 넓게 보였다. 천 가장자리를 정리하던 하인이 마지막 등불을 들고 궁으로 돌아왔다.

멀리 항구에서 밧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티아스가 로잘린의 어깨에 겉옷을 걸쳐 주었다. 로잘린은 옷깃을 여미고 창 앞에 조금 더 머물렀다.

바다 쪽의 어둠 속에서 등대 불이 한 번, 길게 켜졌다. 두 번이 아니었다.

로잘린은 세지 않고 보았다.

(40화 끝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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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자리를 원한 적 없다. 이 말을 먼저 적어도 되는지 오래 망설였습니다.」로잘린은 두 손으로 받은 문서를 책상 위에 펼쳤다. 다리에서 묶어 온 끈을 풀자 올덴 왕실 인장이 창으로 들어온 빛을 받았다.바람달 20일이었다. 문서 끝에는 아직 다리 위에서 접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로잘린은 그 자국을 손끝으로 눌렀다. 종이가 쉽게 펴지지 않아 두꺼운 장부를 올려 두었다.페트라가 빈 문서함을 가져왔다.“어디에 둘까요, 마님?”“조약 사본 옆에.”“폐위 문서도 거기 있는데요.”“함께 두면 돼. 무엇을 바로잡았는지 알 수 있게.”페트라는 함 안의 종이를 옮겨 자리를 만들었다. 재무대신의 인장이 찍힌 문서 옆에 왕실 인장이 찍힌 문서가 놓였다. 로잘린은 두 문서의 모서리를 맞추고 뚜껑을 닫았다.책상 아래 서랍은 조금 열려 있었다. 문서함을 꺼낼 때 안쪽에 둔 편지가 걸린 탓이었다.로잘린은 서랍을 당겼다.올덴 책봉 서한 아래로 얇은 봉투가 나왔다. 봉한 자리는 뜯기지 않았고, 겉면에는 로잘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페트라가 봉투를 보고 손을 멈췄다.“그 편지도 옮겨 둘까요?”“아니. 오늘 읽을게.”로잘린은 봉투를 책상 위에 놓았다. 페트라는 창가로 가 커튼을 조금 더 걷었다. 바닷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창은 닫아 둔 채였다.편지칼이 봉투의 윗부분을 갈랐다.안에 든 종이는 얇았다. 펼치자 접힌 곳을 따라 글씨가 조금 번져 있었다. 첫 줄 아래에는 잉크를 긁어 지운 자국이 있었다.「당신 자리를 원한 적 없다. 이 말을 먼저 적어도 되는지 오래 망설였습니다.」로잘린은 편지를 내려놓지 않았다.마들렌의 글씨는 책봉 서한의 글씨와 달랐다. 줄 끝으로 갈수록 글자가 작아졌고, 종이 아래에 남겨 둔 여백은 거의 없었다.「아버지는 왕의 곁에 있는 일이 우리 집안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따랐습니다. 왕께서 손을 내미셨을 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자리를 원하지 않았다는 말로 그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압니다.」

  • 버려진 왕비는 적국의 왕에게 시집갑니다   37화. 두 둑이 같이 젖는다

    「삼국 협정 서문. 두 둑이 같이 젖는다. 두 나라는 서로의 백성이 먹고 살아갈 길을 함께 지킨다.」로잘린은 접어 둔 헨리크의 서한을 협정문 아래에 넣었다.바람달 15일의 강바람이 종이 모서리를 들었다. 마티아스가 탁자 끝을 눌러 주었다.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등에 찬 바람이 닿았다.“그 편지도 가져왔습니까?”“부탁받은 답을 해야 하니까요.”탁자는 하론 강 돌다리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올덴 쪽에서 오는 수레가 잠시 멈췄고, 라우덴 쪽에서는 소금 자루를 내리는 소리가 났다. 빈 수레가 지나갈 길은 가운데에 남겨 두었다.로잘린은 다리 난간의 돌을 보았다. 처음 이곳을 건넜을 때 손끝으로 더듬었던 글이 그대로 있었다.이번에는 그 글을 읽을 사람들이 돌 앞에 함께 섰다.헨리크가 외투의 여밈을 고치며 다가왔다. 흰 수염 끝이 바람에 흔들렸다. 뒤따라온 서기는 문서함을 탁자 옆에 내려놓았다.“보내 준 초안을 읽었소.”“고칠 곳이 있었나요?”“세입이 줄어드는 줄부터 다시 보았소. 통행세까지 없애면 당장은 받는 돈이 줄겠더군.”헨리크가 협정문 위에 손을 얹었다.“대신 떠났던 상인이 돌아와야 그 다음 장부가 채워지겠지.”“돌아올 이유를 오늘 적으려 해요.”“그 이유를 서로 다르게 읽지 않도록 해 주시오.”로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스는 토렌 쪽 문서를 펼쳐 놓고 있었다. 힐데는 구리 값이 적힌 장을 확인했고, 스벤은 소금과 대구의 약정이 붙은 끝장을 잡았다. 베크가 각 문서의 순서를 맞추어 탁자에 놓았다.헨리크가 난간 쪽으로 눈을 돌렸다.“저 글의 뜻도 오늘 듣게 되는 것이오?”“예.”로잘린은 협정문을 잠시 내려놓았다.«▼»돌에 새긴 글은 가운데가 조금 닳아 있었다. 로잘린은 홈에 낀 먼지를 손수건 끝으로 걷어 냈다.헨리크가 곁에 서고 마티아스가 바람이 오는 쪽을 막았다. 힐데와 사스도 돌 앞까지 다가왔다.“리타어입니다.”로잘린이 글을 따라 손을 옮겼다.“두 둑이 같이 젖는다.”스벤이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강물이 양쪽

  • 버려진 왕비는 적국의 왕에게 시집갑니다   36화. 귀족회의

    「올덴 귀족회의 결의문. 라이너의 왕위를 거두고 헨리크 공을 왕으로 세운다. 앞서 나라의 이름으로 맺은 조약은 새 왕이 이어 지킨다.」로잘린이 펜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작은 잉크 자국이 남았다.사스는 빈 서명란에서 손을 거두지 않았다. 마티아스가 다리에서 가져온 회담 문서를 펼쳐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귀족회의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릅니다.”“왕이 바뀌어도 이 약속이 남습니까?”“그것부터 글로 확인하겠습니다.”로잘린은 초안 위에 깨끗한 종이를 덮었다.“서명할 사람을 짐작해서 적지는 않을 거예요. 답이 오면 완성한 초안을 보내겠습니다.”사스는 그제야 펜을 놓았다.«▼»바람달 1일, 덮어 두었던 초안 위로 올덴 왕실 인장이 찍힌 서한이 놓였다.게르다가 가져온 쟁반에는 서한과 얇은 문서 묶음이 함께 있었다. 끈 끝에 길에서 묻은 마른 흙이 붙어 있었다.로잘린은 끈을 풀기 전에 인장부터 확인했다. 왕실 문양이었다. 추수달에 받았던 폐위 문서의 인장과는 달랐다.“회의실로 가져갈까요?”게르다가 물었다.“여기서 먼저 볼게요.”게르다는 문 옆에서 기다렸다. 로잘린이 봉인을 열자 접힌 종이 사이에서 결의문이 나왔다. 아래쪽에는 귀족회의의 확인을 마쳤다는 글과 서명이 이어져 있었다.왕위를 거둔다는 문장에 라이너의 이름이 있었다.로잘린은 종이 가장자리를 잡은 손을 조금 옮겼다. 파렌 성에서 왕의 이름을 적을 때는 늘 빈칸이 모자랐다. 라이너가 원한 수식어를 넣고 나면 세금과 곡물에 관한 문장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곤 했다.이 문서의 이름 앞에는 긴 말이 붙지 않았다.“왕비 전하?”“재상께 알려 주세요. 올덴에서 답이 왔어요.”“전하께도요?”“예.”게르다는 더 묻지 않고 문을 닫았다.로잘린은 다음 장을 넘겼다. 포셰의 재산 가운데 관세소 장부와 대조해 확인한 몫을 국고로 돌린다는 결정이 있었다. 아직 확인을 마치지 않은 재산은 따로 적어 두었다.해마다 2만 피른이 빠져나간 줄을 찾는 데 쓰였던 아버지의 글씨가 떠올랐다. 이제 올덴의 서

  • 버려진 왕비는 적국의 왕에게 시집갑니다   35화. 협정문 초안

    「삼국 협정 초안 1조. 올덴의 밀 1자루와 라우덴의 소금 3자루를 서로의 장부에 올려 직접 교환한다.」마티아스가 세워 주었던 외투 깃에는 접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로잘린은 회의실 문 옆에 외투를 걸고 깃을 폈다. 안주머니에서 가죽 덮개를 꺼내자 다리에서 받아 온 문서가 함께 나왔다. 바람달 15일에 다시 만나겠다는 글 아래로 두 왕의 서명이 나란히 있었다.오늘 탁자에 놓을 것은 그 약속이 아니라, 약속한 날 읽을 초안이었다.얼음달 10일 아침의 회의실에는 젖은 장화 냄새가 났다. 린드는 문 가까이에 앉았고, 스벤은 창에서 먼 자리를 골랐다. 산악 외투를 벗은 힐데는 구리 거래 장부를 펼쳤다.다시 멜리네에 온 사스는 탁자 가장자리의 잉크 자국부터 살폈다.“이번에는 저울이 없군요.”“운반 장부를 가져오셨으니까요.”로잘린이 초안을 나누어 주었다.“무게를 다시 확인할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사스가 좋은 외투의 소매를 걷었다. 장부를 내려놓는 손은 전보다 조심스러웠다.베크는 초안을 읽다가 곧 고개를 들었다.“관세를 양쪽 모두 3퍼센트로 낮추는 겁니까?”“예. 수출하는 나라와 수입하는 나라가 각각 3퍼센트를 받습니다.”“하론 강 통행세도 없애고요?”“그 조항은 그 아래에 있어요.”베크가 종이를 조금 내렸다.“전하, 돈이 없습니다.”마티아스는 로잘린 옆에 앉아 있었다. 베크가 내민 조항을 읽은 뒤 종이를 다시 탁자 가운데로 놓았다.“빠질 돈부터 적으십시오.”베크는 빈 종이를 당겼다. 로잘린이 그 옆에 항구 세입 장부를 폈다.“들어올 돈도 그 종이에 적어 주세요.”“배가 더 들어온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지난 장부를 가져왔어요. 토렌 배가 한 달에 6척 들어왔을 때와 11척 들어왔을 때예요.”베크는 장부의 표시된 줄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배가 늘어도 관세를 낮추면 남는 돈이 줄 수 있습니다.”“맞아요. 배마다 싣는 물건도 다르고요. 그래서 척수만 곱하지 않았습니다.”로잘린은 밀과 소금이 적힌 줄만 골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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