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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소금 산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1 12:13:43

「왕비의 혼례를 앞두고 백성은 소금 한 줌씩을 광장에 모은다. 가져온 이의 이름과 소금의 양은 묻지 않는다.」

복도 끝 서재 문이 열려 있었다.

베크는 금고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열쇠를, 다른 손에는 금고 장부를 들고 있었다. 로잘린이 문턱에 서자 베크가 고개를 돌렸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왕비 전하, 돈이 생겼습니다.”

한 번 더 말하는 목소리는 처음보다 낮았다.

로잘린은 안으로 들어가 장부를 받았다. 마지막 줄에 2만 세르가 적혀 있었다. 베크의 글씨였다. 숫자 옆에 확인한 표시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베크의 손이었고 하나는 마티아스의 손이었다.

“세어 보셨어요?”

“세 번 셌습니다.”

“세 번 다 맞았고요?”

“예.”

베크는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

“돈이 없다고 말한 날을 셀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전하께서는 알겠다고만 하셨지요.”

마티아스가 문 옆에 서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셈은 왕비가 했습니다.”

“제가 적었습니다.”

로잘린은 장부를 베크에게 돌려주었다.

“그럼 둘이 맞춘 거네요. 적은 사람이 없으면 셈도 없어요.”

베크는 장부를 받아 금고 위에 놓고, 열쇠를 돌려 문을 잠갔다. 손이 조금 느렸다. 다 잠근 뒤에야 지팡이를 찾아 들었다.

“내일부터는 이 숫자로 시작하겠습니다.”

“예. 내일 아침에 다시 봐요.”

로잘린은 서재를 나오면서 마티아스를 보았다. 마티아스는 베크가 금고 열쇠를 품에 넣는 것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닫아 주었다.

«▼»

씨앗달 25일 아침, 로잘린은 금고 기록을 덮고 창가로 갔다. 그날부터 아침마다 확인한 장부 끝에는 오늘도 2만 세르가 적혀 있었다. 확인을 마친 기록은 서재로 돌려보내면 되었다.

그런데 창밖에서 천을 터는 소리가 들렸다.

광장 가운데에 넓은 천이 깔려 있었다. 게르다가 모서리를 잡고, 궁 하인들이 접힌 곳을 펴고 있었다. 천을 다 펼치기도 전에 한 사람이 작은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로잘린은 창을 열었다.

소금이 그릇에서 쏟아졌다. 흰 알갱이가 천 위에 작은 무더기를 만들었다. 그릇을 비운 사람은 바닥을 손바닥으로 훑은 뒤 손에 남은 것까지 털어 놓았다.

“벌써 시작했네요.”

페트라가 창가로 왔다.

“씨앗달 25일부터 받는다고 했어요. 혼례 날 아침까지 모은대요.”

“어디에서 받는다는 공지는 못 봤는데.”

“광장에 천을 펴면 안다고 하더군요.”

다음 사람은 앞치마 끝을 모아 들고 있었다. 게르다가 앞치마를 함께 기울여 주었다. 소금이 먼저 놓인 무더기 곁에 떨어졌다.

로잘린은 창틀에서 손을 뗐다.

“내려가 봐야겠어.”

“외투는 안 입으셔도 되겠어요. 볕이 좋아요.”

페트라는 의자에 놓인 얇은 겉옷을 가져왔다. 로잘린이 팔을 넣자 어깨를 한 번 펴 주었다. 혼례 옷은 아직 게르다의 방에 있었다. 평소 옷의 소매에는 어제 장부를 보다가 묻힌 잉크가 조금 남아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그릇을 비우는 소리가 들렸다.

«▼»

광장에 나오자 바다 냄새보다 먼저 마른 소금 냄새가 났다.

게르다가 천 한쪽을 밟아 바람에 들리지 않게 하고 있었다. 로잘린이 다가가자 하인이 돌을 가져와 모서리에 놓았다.

“왕비 전하, 이쪽으로 서세요. 소금이 옷에 붙습니다.”

“붙어도 괜찮아요.”

“혼례 옷에는 붙이지 마시고요. 밑단을 다시 털어야 하니까요.”

게르다는 작은 바구니를 든 아이에게 몸을 낮췄다.

아이는 바구니를 기울이다가 멈췄다. 안에 든 소금은 바닥을 겨우 덮을 만큼이었다. 앞서 놓인 소금과 번갈아 보더니 바구니를 다시 세웠다.

로잘린은 아이 앞에 손을 내밀었다.

“함께 놓을까요?”

아이가 바구니 손잡이를 조금 옮겨 잡았다. 로잘린이 다른 쪽을 받치자 그제야 기울였다. 소금이 천 위로 떨어졌다.

“이것밖에 없어서요.”

“고마워요. 남은 것도 긁어 줄래요?”

아이는 손끝으로 바구니 틈을 훑었다. 로잘린이 천 가까이 바구니를 내려 주었다. 마지막 알갱이가 떨어지자 아이가 빈 바닥을 확인했다.

게르다가 바구니를 돌려주었다.

“가져온 건 다 놓았구나.”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곁에 서 있던 어른에게 달려갔다. 로잘린은 손바닥에 묻은 소금을 천 위에 털었다.

“이름을 적는 곳은 없나요?”

“없습니다.”

게르다가 말했다.

“궁에 낸 소금과는 다르니까요. 누구에게 돌려줄지 셀 필요도 없고요.”

광장 입구에서는 염전 일꾼들이 오고 있었다. 장화에 마른 소금이 붙어 있었다. 린드는 큰 자루를 메지 않고 손에 작은 그릇을 들었다.

“길드에서도 각자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린드가 그릇을 비웠다.

“제가 한꺼번에 내면 일꾼들 몫까지 제 이름이 붙을 것 같아서요.”

“애초에 이름은 안 붙인대요.”

“그래도 입은 붙어 있지 않습니까. 제가 다 냈다고 말할 수도 있죠.”

로잘린이 웃자 린드도 소리 없이 웃었다. 빈 그릇은 장화에 닿지 않도록 들었다.

그때 광장 뒤쪽에서 저울 접시가 부딪쳤다.

피노가 궁 저울을 두 팔로 안고 걸어왔다. 접시가 무릎에 닿을 때마다 맑은 소리가 났다. 베크는 뒤에서 저울의 긴 부분이 사람에게 걸리지 않도록 길을 비켜 주고 있었다.

“셈 선생님, 어디에 놓아요?”

“무엇을 재려고?”

“소금 산이요.”

아직 산이라 부르기에는 낮았다. 하지만 피노는 천 위에 놓인 소금을 살핀 뒤 저울을 내려놓을 자리를 찾았다.

베크가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쳤다.

“다 모으면 3톤쯤이다.”

피노가 고개를 들었다.

“그건 셈이 아니라 짐작이에요.”

“그렇다. 모이기 전에는 짐작할 수밖에 없지.”

“그럼 제가 재면 돼요.”

베크는 저울과 소금 무더기를 차례로 보았다.

“그 저울로?”

피노는 접시를 손으로 들어 보았다.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소금과 광장에 모일 소금을 견주려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로잘린이 저울 옆에 앉았다.

“오늘은 재지 않고 두는 게 좋겠어.”

“궁 저울은 정확한데요.”

“알아. 하지만 이건 양을 묻지 않기로 했대. 적게 가져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편하게 놓을 수 있게.”

피노는 천 가까이에 놓인 작은 무더기를 보았다.

“다 섞이면 누구 소금인지 모르겠네요.”

“그래.”

피노가 저울 접시를 반듯하게 놓았다.

“그럼 저울은 빵 옆에 둘래요. 빵 나누는 건 셈을 해야 하니까요.”

게르다가 궁 쪽을 가리켰다.

“그 일은 페트라에게 물어보렴. 지금 반죽을 나누고 있을 거다.”

피노는 저울을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베크가 한쪽을 받아 주었다.

«▼»

부엌에서는 페트라가 밀가루 묻은 손으로 종이를 짚고 있었다.

「꿀빵 400개.」

글 아래에는 반죽을 나눈 표시가 줄지어 있었다. 반죽을 옮긴 하인이 표시를 하나 더 긋고 종이를 페트라 쪽으로 밀었다.

“400개를 다 올덴식으로?”

로잘린이 묻자 페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만들 거예요. 광장에서 들고 먹기 좋게요.”

“반죽은 충분해?”

“예. 린드가 꿀을 보내 줬어요. 밀가루는 궁에서 쓰는 것으로 받았고요.”

페트라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으려다 멈췄다. 게르다가 깨끗한 천을 건넸다.

“얼굴에 반죽을 붙이지 말아요. 빵부터 구워야죠.”

“여기선 이렇게 하죠. 말보다 손이 먼저 와요.”

페트라가 천을 받아 이마를 닦았다. 게르다는 대답 대신 먼저 구워 낸 빵을 살폈다.

빵 표면에 꿀이 얇게 발려 있었다. 게르다는 손끝으로 소금을 집어 조금씩 뿌렸다.

페트라가 그 손을 따라 보았다.

“올덴에선 꿀빵에 소금을 이렇게 얹지 않아요.”

“안에 넣었습니까?”

“조금 넣기는 하죠.”

“겉에도 조금 있으면 더 먹기 좋습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

게르다가 빵을 갈랐다. 뜨거운 속이 드러나자 페트라가 서둘러 접시를 받쳤다.

로잘린은 식힌 조각을 받아 먹었다. 꿀이 먼저 닿고, 씹을 때 소금 알갱이가 작게 부서졌다.

“이대로 해 주세요.”

페트라도 조각을 먹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소금 그릇을 게르다 가까이 밀었다.

“너무 많이만 뿌리지 마세요.”

“그건 제가 압니다.”

피노는 저울을 빈 탁자에 올려놓았다. 반죽을 담던 하인이 탁자 위 밀가루를 털어 주었다.

“재고 싶으면 이쪽을 도와줘.”

피노가 손을 씻으러 갔다. 베크는 부엌 문밖에서 기다렸다. 부엌까지 들어오면 일을 방해한다는 듯 지팡이를 문 옆에 세워 두었다.

로잘린이 빵 한 조각을 내밀었다.

“재상도 드세요.”

베크는 빵을 받아 들고 부엌 안을 보았다.

“이것도 혼례 비용에 넣어야겠군요.”

“예. 기록은 남겨 주세요.”

“광장 소금은요?”

“받은 양을 적지 않는다고 했어요.”

베크가 빵을 한 입 먹었다.

“그럼 들어온 것 가운데 장부에 없는 것이 생기는군요.”

“재상의 금고에 넣을 건 아니잖아요.”

“그렇습니다.”

베크는 남은 빵을 내려다보다가 작게 웃었다.

«▼»

궁 앞에 돌아왔을 때 소냐가 계단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언니! 편지 왔어요. 읽으셨어요? 오라버니는 어디 있어요? 저 먼저 읽어 드려도 돼요?”

소냐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단을 내려왔다. 편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 아래쪽이 구겨져 있었다.

로잘린은 소냐가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어머니 편지야?”

“예. 두란에서 오는 마차에 자리를 마련해 달래요.”

소냐가 종이를 펴 보였다.

「이제 긴 길을 와도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서두르지는 않으마. 먼저 바람이 잦은 날을 골라 돌아가겠다.」

로잘린은 글을 읽고 소냐에게 돌려주었다.

소냐는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좋아졌대요. 지난번에는 돌아온다는 말을 안 쓰셨는데, 이번에는 쓰셨어요.”

“방은 그대로 있어?”

“예. 게르다가 늘 치워 뒀어요. 제가 놓고 온 두란어 책도 있고요.”

“그럼 먼저 편지를 써 두자. 기다리고 있다고.”

소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로잘린 소매를 붙잡았다.

“언니도 거기서 같이 밥 먹을 거죠?”

“초대해 주시면.”

“제가 할게요. 어머니께도 쓸 거예요.”

광장 쪽에서 마티아스가 걸어왔다. 항구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겉옷 끝에 바닷바람이 남아 있었다.

소냐가 편지를 내밀었다. 마티아스는 걸음을 멈추고 펼친 종이를 읽었다. 끝까지 읽은 뒤 접힌 곳을 펴서 소냐에게 돌려주었다.

“어머니 방에 불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직 도착하는 날도 안 정했는데요.”

“정해지면 곧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소냐는 편지를 품에 넣고 궁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다가 돌아서더니 로잘린에게 다시 손을 흔들었다.

마티아스가 곁에 섰다.

“손에 소금이 묻었습니다.”

로잘린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구니를 받쳤던 손가락 사이에 흰 가루가 남아 있었다.

“광장에서 함께 놓았어요.”

마티아스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로잘린이 받으려 하자 한쪽 끝을 잡은 채 손가락 사이를 닦아 주었다. 잉크 자국이 있는 곳에서는 손을 멈췄다.

“이건 닦이지 않겠습니다.”

“소금만 닦으면 돼요.”

손수건에 소금 가루가 묻었다. 마티아스는 털지 않고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

사절들은 그날부터 차례로 도착했다.

힐데는 광산 일을 적은 문서와 함께 혼례에 가져온 구리를 궁에 맡겼다. 로잘린이 맞으러 나가자 가장 높은 두란어로 인사했다.

로잘린도 그 층의 말로 답했다. 힐데는 공식 인사를 마친 뒤 어깨에서 산악 외투를 벗었다.

“여기는 벌써 봄 냄새가 납니다.”

“소냐가 기다리고 있어요. 어머니 편지를 받았거든요.”

“길을 무리 없이 오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힐데가 궁 계단을 올랐다. 소냐는 문 안에서 기다리다가 힐데를 보자 곧 달려왔다.

스벤은 항구에서 말린 대구를 내려놓고 궁으로 왔다. 사스는 토렌 사절들이 묵을 방을 확인한 뒤 광장에 잠깐 섰다. 소금 무더기를 보더니 손에 든 작은 주머니를 기울였다.

“이것은 값을 매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그럼 토렌 사람도 놓아도 되겠군요.”

“이름을 묻지 않는다고 했으니까요.”

사스는 주머니 안쪽까지 털어 놓았다. 로잘린은 천 가장자리를 조금 펴서 흘러나온 소금을 안으로 옮겼다.

올덴 사절은 헨리크를 대신해 온 문서를 건넸다. 왕실 인장 아래에는 혼례를 축하한다는 글과 협정대로 첫 교환을 준비하고 있다는 짧은 보고가 있었다.

로잘린은 문서를 받아 서신함에 넣도록 했다.

이제 올덴에서 온 종이를 받는 손이 망설이지 않았다. 답해야 할 문서는 책상으로 가고, 축하를 전하는 사람은 광장으로 안내하면 되었다.

날이 지날수록 천 가운데가 높아졌다. 게르다는 가장자리에 천을 더 이어 놓았다. 백성들은 궁 안에 들어오지 않고도 소금을 놓고 갈 수 있었다.

로잘린은 일을 마친 뒤 그 곁을 걸었다. 염전 일꾼, 항구에서 온 사람, 아이 손을 잡은 어른이 한 천 앞에서 허리를 굽혔다.

소금을 놓고 몸을 일으킨 사람이 로잘린에게 말했다.

“우리 왕비 혼례라는데 그냥 갈 수는 없죠.”

로잘린은 대답하려다 손에 든 문서를 다른 팔로 옮겼다. 그리고 내민 손을 잡았다.

씨앗달 10일에 생일을 지나 스물일곱이 되었다. 페트라는 아침에 꿀을 바른 빵을 가져왔고, 소냐는 장부방에 꽃을 놓았다. 오늘도 그 꽃을 담았던 작은 그릇이 책상에 있었다.

‘나이는 하나 늘었고.’

로잘린은 잡았던 손을 놓았다.

처음 이 궁에 들어왔을 때 가져온 장부와 자, 깃펜은 지금도 방에 있었다. 없어진 물건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 돌려 달라고 청할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로잘린은 궁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곳에 왔다. 방을 정하고, 장부를 펼치고, 함께 일할 사람을 만났다. 내일도 아침에 일어나면 이 계단을 내려올 터였다.

«▼»

혼례 전날 밤, 광장의 소금 산은 천 가장자리까지 넓어져 있었다.

로잘린은 창을 닫고 혼례 옷을 의자에 펼쳤다. 게르다는 소매 끝을 손등 위로 내려오지 않게 만들었다. 팔을 뻗어 보지 않아도 여유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페트라가 마지막 빵을 덮어 두고 돌아왔다.

“400개 다 됐어요. 아침에는 옮기기만 하면 돼요.”

“손 좀 쉬어.”

“마님도 펜 내려놓으세요.”

로잘린은 서신에 이름을 적고 펜을 씻었다. 페트라는 잉크병 뚜껑이 닫힌 것을 확인한 뒤 나갔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마티아스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로잘린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마티아스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턱 곁에 손을 댔다.

“옷은 준비됐습니까?”

“예. 전하 옷도 게르다가 가져다줬나요?”

“받았습니다. 항구에 입고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지키셔야겠어요.”

마티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도 돌아가지 않았다.

로잘린은 문고리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더 하실 말씀이 있어요?”

“내일 거짓말 하나를 할 겁니다.”

“…뭐라고요?”

“처음부터 당신을 왕비로 맞고 싶었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건 반은 거짓이었으니까.”

로잘린은 마티아스가 문턱에 올려 둔 손에 손끝을 얹었다.

“하지 마요. 반은 참이었다고 해요.”

(3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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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자리를 원한 적 없다. 이 말을 먼저 적어도 되는지 오래 망설였습니다.」로잘린은 두 손으로 받은 문서를 책상 위에 펼쳤다. 다리에서 묶어 온 끈을 풀자 올덴 왕실 인장이 창으로 들어온 빛을 받았다.바람달 20일이었다. 문서 끝에는 아직 다리 위에서 접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로잘린은 그 자국을 손끝으로 눌렀다. 종이가 쉽게 펴지지 않아 두꺼운 장부를 올려 두었다.페트라가 빈 문서함을 가져왔다.“어디에 둘까요, 마님?”“조약 사본 옆에.”“폐위 문서도 거기 있는데요.”“함께 두면 돼. 무엇을 바로잡았는지 알 수 있게.”페트라는 함 안의 종이를 옮겨 자리를 만들었다. 재무대신의 인장이 찍힌 문서 옆에 왕실 인장이 찍힌 문서가 놓였다. 로잘린은 두 문서의 모서리를 맞추고 뚜껑을 닫았다.책상 아래 서랍은 조금 열려 있었다. 문서함을 꺼낼 때 안쪽에 둔 편지가 걸린 탓이었다.로잘린은 서랍을 당겼다.올덴 책봉 서한 아래로 얇은 봉투가 나왔다. 봉한 자리는 뜯기지 않았고, 겉면에는 로잘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페트라가 봉투를 보고 손을 멈췄다.“그 편지도 옮겨 둘까요?”“아니. 오늘 읽을게.”로잘린은 봉투를 책상 위에 놓았다. 페트라는 창가로 가 커튼을 조금 더 걷었다. 바닷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창은 닫아 둔 채였다.편지칼이 봉투의 윗부분을 갈랐다.안에 든 종이는 얇았다. 펼치자 접힌 곳을 따라 글씨가 조금 번져 있었다. 첫 줄 아래에는 잉크를 긁어 지운 자국이 있었다.「당신 자리를 원한 적 없다. 이 말을 먼저 적어도 되는지 오래 망설였습니다.」로잘린은 편지를 내려놓지 않았다.마들렌의 글씨는 책봉 서한의 글씨와 달랐다. 줄 끝으로 갈수록 글자가 작아졌고, 종이 아래에 남겨 둔 여백은 거의 없었다.「아버지는 왕의 곁에 있는 일이 우리 집안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따랐습니다. 왕께서 손을 내미셨을 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자리를 원하지 않았다는 말로 그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압니다.」

  • 버려진 왕비는 적국의 왕에게 시집갑니다   37화. 두 둑이 같이 젖는다

    「삼국 협정 서문. 두 둑이 같이 젖는다. 두 나라는 서로의 백성이 먹고 살아갈 길을 함께 지킨다.」로잘린은 접어 둔 헨리크의 서한을 협정문 아래에 넣었다.바람달 15일의 강바람이 종이 모서리를 들었다. 마티아스가 탁자 끝을 눌러 주었다.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등에 찬 바람이 닿았다.“그 편지도 가져왔습니까?”“부탁받은 답을 해야 하니까요.”탁자는 하론 강 돌다리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올덴 쪽에서 오는 수레가 잠시 멈췄고, 라우덴 쪽에서는 소금 자루를 내리는 소리가 났다. 빈 수레가 지나갈 길은 가운데에 남겨 두었다.로잘린은 다리 난간의 돌을 보았다. 처음 이곳을 건넜을 때 손끝으로 더듬었던 글이 그대로 있었다.이번에는 그 글을 읽을 사람들이 돌 앞에 함께 섰다.헨리크가 외투의 여밈을 고치며 다가왔다. 흰 수염 끝이 바람에 흔들렸다. 뒤따라온 서기는 문서함을 탁자 옆에 내려놓았다.“보내 준 초안을 읽었소.”“고칠 곳이 있었나요?”“세입이 줄어드는 줄부터 다시 보았소. 통행세까지 없애면 당장은 받는 돈이 줄겠더군.”헨리크가 협정문 위에 손을 얹었다.“대신 떠났던 상인이 돌아와야 그 다음 장부가 채워지겠지.”“돌아올 이유를 오늘 적으려 해요.”“그 이유를 서로 다르게 읽지 않도록 해 주시오.”로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스는 토렌 쪽 문서를 펼쳐 놓고 있었다. 힐데는 구리 값이 적힌 장을 확인했고, 스벤은 소금과 대구의 약정이 붙은 끝장을 잡았다. 베크가 각 문서의 순서를 맞추어 탁자에 놓았다.헨리크가 난간 쪽으로 눈을 돌렸다.“저 글의 뜻도 오늘 듣게 되는 것이오?”“예.”로잘린은 협정문을 잠시 내려놓았다.«▼»돌에 새긴 글은 가운데가 조금 닳아 있었다. 로잘린은 홈에 낀 먼지를 손수건 끝으로 걷어 냈다.헨리크가 곁에 서고 마티아스가 바람이 오는 쪽을 막았다. 힐데와 사스도 돌 앞까지 다가왔다.“리타어입니다.”로잘린이 글을 따라 손을 옮겼다.“두 둑이 같이 젖는다.”스벤이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강물이 양쪽

  • 버려진 왕비는 적국의 왕에게 시집갑니다   36화. 귀족회의

    「올덴 귀족회의 결의문. 라이너의 왕위를 거두고 헨리크 공을 왕으로 세운다. 앞서 나라의 이름으로 맺은 조약은 새 왕이 이어 지킨다.」로잘린이 펜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작은 잉크 자국이 남았다.사스는 빈 서명란에서 손을 거두지 않았다. 마티아스가 다리에서 가져온 회담 문서를 펼쳐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귀족회의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릅니다.”“왕이 바뀌어도 이 약속이 남습니까?”“그것부터 글로 확인하겠습니다.”로잘린은 초안 위에 깨끗한 종이를 덮었다.“서명할 사람을 짐작해서 적지는 않을 거예요. 답이 오면 완성한 초안을 보내겠습니다.”사스는 그제야 펜을 놓았다.«▼»바람달 1일, 덮어 두었던 초안 위로 올덴 왕실 인장이 찍힌 서한이 놓였다.게르다가 가져온 쟁반에는 서한과 얇은 문서 묶음이 함께 있었다. 끈 끝에 길에서 묻은 마른 흙이 붙어 있었다.로잘린은 끈을 풀기 전에 인장부터 확인했다. 왕실 문양이었다. 추수달에 받았던 폐위 문서의 인장과는 달랐다.“회의실로 가져갈까요?”게르다가 물었다.“여기서 먼저 볼게요.”게르다는 문 옆에서 기다렸다. 로잘린이 봉인을 열자 접힌 종이 사이에서 결의문이 나왔다. 아래쪽에는 귀족회의의 확인을 마쳤다는 글과 서명이 이어져 있었다.왕위를 거둔다는 문장에 라이너의 이름이 있었다.로잘린은 종이 가장자리를 잡은 손을 조금 옮겼다. 파렌 성에서 왕의 이름을 적을 때는 늘 빈칸이 모자랐다. 라이너가 원한 수식어를 넣고 나면 세금과 곡물에 관한 문장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곤 했다.이 문서의 이름 앞에는 긴 말이 붙지 않았다.“왕비 전하?”“재상께 알려 주세요. 올덴에서 답이 왔어요.”“전하께도요?”“예.”게르다는 더 묻지 않고 문을 닫았다.로잘린은 다음 장을 넘겼다. 포셰의 재산 가운데 관세소 장부와 대조해 확인한 몫을 국고로 돌린다는 결정이 있었다. 아직 확인을 마치지 않은 재산은 따로 적어 두었다.해마다 2만 피른이 빠져나간 줄을 찾는 데 쓰였던 아버지의 글씨가 떠올랐다. 이제 올덴의 서

  • 버려진 왕비는 적국의 왕에게 시집갑니다   35화. 협정문 초안

    「삼국 협정 초안 1조. 올덴의 밀 1자루와 라우덴의 소금 3자루를 서로의 장부에 올려 직접 교환한다.」마티아스가 세워 주었던 외투 깃에는 접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로잘린은 회의실 문 옆에 외투를 걸고 깃을 폈다. 안주머니에서 가죽 덮개를 꺼내자 다리에서 받아 온 문서가 함께 나왔다. 바람달 15일에 다시 만나겠다는 글 아래로 두 왕의 서명이 나란히 있었다.오늘 탁자에 놓을 것은 그 약속이 아니라, 약속한 날 읽을 초안이었다.얼음달 10일 아침의 회의실에는 젖은 장화 냄새가 났다. 린드는 문 가까이에 앉았고, 스벤은 창에서 먼 자리를 골랐다. 산악 외투를 벗은 힐데는 구리 거래 장부를 펼쳤다.다시 멜리네에 온 사스는 탁자 가장자리의 잉크 자국부터 살폈다.“이번에는 저울이 없군요.”“운반 장부를 가져오셨으니까요.”로잘린이 초안을 나누어 주었다.“무게를 다시 확인할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사스가 좋은 외투의 소매를 걷었다. 장부를 내려놓는 손은 전보다 조심스러웠다.베크는 초안을 읽다가 곧 고개를 들었다.“관세를 양쪽 모두 3퍼센트로 낮추는 겁니까?”“예. 수출하는 나라와 수입하는 나라가 각각 3퍼센트를 받습니다.”“하론 강 통행세도 없애고요?”“그 조항은 그 아래에 있어요.”베크가 종이를 조금 내렸다.“전하, 돈이 없습니다.”마티아스는 로잘린 옆에 앉아 있었다. 베크가 내민 조항을 읽은 뒤 종이를 다시 탁자 가운데로 놓았다.“빠질 돈부터 적으십시오.”베크는 빈 종이를 당겼다. 로잘린이 그 옆에 항구 세입 장부를 폈다.“들어올 돈도 그 종이에 적어 주세요.”“배가 더 들어온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지난 장부를 가져왔어요. 토렌 배가 한 달에 6척 들어왔을 때와 11척 들어왔을 때예요.”베크는 장부의 표시된 줄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배가 늘어도 관세를 낮추면 남는 돈이 줄 수 있습니다.”“맞아요. 배마다 싣는 물건도 다르고요. 그래서 척수만 곱하지 않았습니다.”로잘린은 밀과 소금이 적힌 줄만 골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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