แชร์

제4화

ผู้เขียน: 임서아
오지은이 웃는 얼굴로 일어서며 맞이했다.

"방금 아연이 만나서 같이 밥 먹자고 불렀어. 현우야, 괜찮지?"

주현우는 무표정하게 허아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네가 기분 좋으면 괜찮아."

주현우는 오지은 옆에 앉았다.

오지은이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방금 아연이랑 얘기 나누고 있었는데 아연이가 너희 두 사람 이혼할 예정이라더라. 그래서 두 사람 이혼하면 아연이에게 좋은 남자 하나 소개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몇 년을 그냥 낭비하게 할 수는 없잖아."

분명 허아연과 부부 사이인데 주현우는 자연스럽게 오지은 옆에 앉아 있었다.

무덤덤한 눈길로 허아연을 볼 때마다 주현우는 장애물을 넘기듯 무시했다.

허아연은 굳이 따질 마음도, 따질 자격도 없었다.

그저 어색할 뿐이었다.

방금 오지은이 회사에 왔을 때 이미 주현우와 약속이 있다는 걸 짐작했어야 했다.

종업원이 주현우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주현우가 주문하자 오지은이 옆에서 귀띔했다.

"현우야, 내가 좋아하는 것만 시키지 말고 아연이가 좋아하는 것도 시켜."

주현우는 메뉴판을 들고 허아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불필요한 존재로 느끼는 듯했다.

허아연 자신도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몰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주현우가 메뉴판을 건네는 순간 허아연이 방금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허아연이 급하게 전화를 받자 김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중원 그룹 장도원 대표님이 오셨어요. 제2 프로젝트에 현우 대표님 사인이 필요해서 아직 착공이 어렵다고 합니다."

"알았어요. 금방 돌아갈게요."

김민희의 전화를 받고 난 허아연이 오지은에게 말했다.

"지은 언니,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들어갈게요. 두 분 천천히 드세요."

허아연은 두 사람이 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가방과 휴대폰을 챙겨 바로 자리를 떴다.

식당 밖으로 나온 허아연은 한결 홀가분해졌다. 하늘도 평소보다 훨씬 더 높아진 기분이었다.

……

식당 안, 오지은은 고개를 돌린 채 주현우에게 물었다.

"정말 이혼할 거야?"

주현우는 코웃음을 쳤다.

"허아연 말을 그대로 믿어?"

주현우보다 권력과 세력을 더 중요시하는 허아연이었다.

이혼하고 싶지 않은 건 둘째 치고 정말 이혼한다 해도 치밀하게 계산기를 두드릴 여자였다.

재산 분할만으로 한참을 싸울 것이다.

"아연이도 꽤 진지해 보이던데? 아니면 혹시 네가 이혼하기 싫은 거야?"

주현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그리고 이내 화제를 돌렸다.

"몸은 좀 어때?"

"아주 좋아. 언니가 나를 돌봐주고 아껴주나 봐."

……

허아연 사무실.

협력사 대표와 이야기를 마친 허아연은 배웅하기 위해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장도원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주현우 대표님한테 사인을 받아서 절대 착공 일정이 지연되지 않게 할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허아연 대표님."

"별말씀을요. 다 업무를 위한 거죠."

"주현우 대표님께서 이렇게 내조의 여왕을 만난 걸 보니 정말 부럽습니다."

허아연이 웃으며 배웅했다.

협력사를 보낸 뒤, 김민희가 점심 식사를 가져오며 물었다.

"대표님, 오늘 검사 결과는 어떠셨어요?"

허아연은 도시락 뚜껑을 열고 웃으며 말했다.

"다 정상이에요. 문제없어요."

"대표님, 그래도 조심하세요. 지금은 그래도 젊어서 버티는 거지만 결국 다 건강 소모하는 거예요."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오래 바쁠 일도, 오래 자신을 소모할 일도 없을 것이다.

조심한다고 말한 것도 잠시일 뿐, 허아연은 밥을 먹자마자 또다시 일에 몰두했다.

저녁에는 또 야근을 이어갔다.

야근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차피 돌아가도 독수공방일 텐데 차라리 바쁜 게 나았다.

한편, 그 시각 주현우도 오늘 밤 접대 자리가 있었다.

한창 식사 자리에서 얘기 중이던 주현우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유서희의 전화였다.

주현우는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현우야, 지금 몇 시야? 왜 아직도 안 돌아와? 제발 며칠만 일찍 집에 오면 안 돼? 좋은 남편 좀 해봐, 응?"

주현우는 반쯤 남은 담배를 쓰레기통에 비벼 끄고 나른하게 물었다.

"엄마, 아레아 베이 가셨어요?"

"그래. 한동안 여기서 지낼 생각이야. 그러니 빨리 돌아와. 아연이도 지금 야근 중이니까 데리고 같이 와."

반쯤 남은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주현우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주현우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리고 휴대폰에서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았지만 허아연의 전화번호가 없었다.

저장하지 않은 것이다.

전화번호가 기억나지도 않았다.

어차피 레스토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회사를 지나야 했기에 주현우는 굳이 전화하지 않고 바로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허아연은 여전히 사무실에서 야근 중이었다.

9시가 넘은 시간은 허아연에게 야간 업무 시작에 불과했다.

허아연은 오늘 다른 업무는 하지 않고 인수인계 자료를 정리 중이었다.

곧 이혼할 테니 더 이상 회사에서 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허아연의 손을 거친 업무가 적지 않았기에 미리 정리해야 했다.

이때쯤이면 회사 직원들은 대부분 이미 퇴근한 뒤였다. 몇몇 사무실만 불이 켜져 있었다.

건물 전체가 조용한 편이었다.

허아연은 조용한 사무실이 익숙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허아연이 부드럽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고개를 든 허아연은 주현우를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인사했다.

"현우 씨도 아직 퇴근 안 했어요?"

말을 마친 허아연은 급히 일어나 책상 위에 올려둔 서류를 들고 책상 밖으로 나오며 주현우에게 말했다.

"중원 그룹과 협력하는 프로젝트가 곧 착공인데 아직 계약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어요. 오후에 두 번이나 현우 씨 사무실에 갔는데 자리에 없더라고요. 지금 사인해 줄 수 있어요?"

주현우는 허아연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제야 계약서를 받아 훑어보았다.

언제부턴가 허아연은 주현우에게 오직 일 얘기만 할 뿐 다른 대화는 없었다.

계약서에는 문제가 없었다. 주현우는 허아연 책상 위에 있던 사인펜을 집어 계약서의 서명란에 멋들어진 사인을 했다.

주현우가 사인한 계약서를 받아 확인한 뒤, 허아연은 또 업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지금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이거 하나예요. 나중에 오원빈 씨한테 인수인계할게요. 다른 업무 자료들도 정리가 되면 현우 씨랑 이사회에 사직서 제출할 거예요."

"참, 비밀 유지 계약서 초안도 작성했어요. 퇴사하면 앞으로 관련 업계에 종사하지 않을 거고 경주 그룹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비밀로 할 거예요. 그리고 더 준비해야 할 게 있는지 생각해 봐요. 있으면 요즘 같이 준비할게요."

허아연은 금융 전공도, 관리학 전공도 아니었다. 자동화 전공의 산업용 로봇학을 전공했고 스마트 통제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교진대에 입학하던 해, 허아연은 16살에 거의 만점의 수석 성적으로 합격했고 교수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제자였다.

중학생 때부터 스스로 로봇을 모델링했던 허아연은 수많은 대회에 참가해 상도 많이 탔고 심지어 특허까지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교진대와 다른 두 개의 대학으로부터 대학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게다가 해외 여러 명문대도 데려가고 싶다며 러브콜을 보냈었다. 하지만 허아연은 주현우를 위해 모든 걸 포기했다.

허아연은 이혼하면 다시 원래 전공으로 돌아가 다시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도 로봇이나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게 더 좋았다.

허아연은 바쁘고 매일 가면을 쓰고 웃는 얼굴로 상대해야 하는 부대표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현우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허아연은 더 이상 주현우의 아내가 아니라 그저 일개 직원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허아연을 보던 주현우는 왠지 문득 알 수 없는 착각이 들었다.

허아연은 더 이상 예전의 허아연이 아니었다.

더 이상 열정적이지도, 밝지도 않고 더 이상 주현우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주현우는 허아연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가 아레아 베이에 가셨대. 일단 돌아가서 얘기하자."

뭔가 할 말이 남았던 허아연이지만 주현우의 말에 '네'라고 답하고 함께 들고 있던 서류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정리 좀 하고 바로 돌아갈게요."

컴퓨터를 끄고 서류를 서랍에 넣은 뒤에도 주현우가 먼저 가지 않았다는 걸 발견한 허아연은 약간 놀란 듯했다.

주현우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잠시 주현우를 바라보던 허아연은 주현우가 돌아서서 떠나자 그제야 휴대폰과 가방을 챙겨 따라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주현우는 습관적으로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있었다.

허아연은 옆에 서서 엘리베이터 문만 빤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실루엣이 흐릿한 엘리베이터 문에 비쳤다.

남보다 더 어색한 사이 같았다.

1층에 도착하자 검은색 마이바흐가 회사 정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마이바흐 앞으로 걸어간 두 사람.

허아연은 자연스레 뒷좌석 문을 열고 주현우는 운전석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 타는 이유는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주현우 할머니가 허아연을 데리고 본가에 와서 밥 먹으라고 하던 날, 허아연이 차에 타려고 조수석 문을 열려는데 주현우가 문을 잠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날 가는 내내 허아연은 난처함에 어쩔 줄 몰랐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주현우의 차에 타지 않았다.

오늘 밤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차가 출발하자 허아연은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말없이 뉴스만 보았다.

주현우를 쳐다보지도, 주현우와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전에는 그래도 열정적으로 주현우에게 일상생활을 공유했었다.

무슨 일이든 제일 먼저 주현우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주현우가 일부러 전화받지 않고,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고, 심지어 무시한다는 걸 알고 난 뒤로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주현우도 허아연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집에 도착했다.

마당에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서자 유서희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그제야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아연아, 왔어? 너 먹으라고 국 끓여놨으니까 얼른 와서 따뜻할 때 먹어."

"네, 어머니."

유서희는 허아연만 따듯하게 맞이할 뿐 주현우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다.

주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다이닝룸에 들어가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

도우미들이 음식을 차렸다.

유서희는 허아연 옆에 앉았다.

"아연아, 나 여가서 며칠 지낼 생각인데 괜찮지?"

허아연은 젓가락을 든 채 급히 고개를 돌려 유서희를 보며 말했다.

"당연히 괜찮죠, 어머니. 지내고 싶으신 만큼 편하게 있으세요."

허아연이 흔쾌히 동의하자 유서희는 바로 환하게 웃었다.

잔뜩 어두워진 표정의 주현우를 본 유서희가 말했다.

"현우야, 나 그렇게 볼 거 없어. 네가 원하지 않아도 소용없거든."

유서희가 또다시 당부했다.

"앞으로 퇴근하면 바로 집에 돌아와서 저녁 먹어. 하루가 멀다 하게 집 비우지 말고."

며칠 지낼 거라고 했지만 사실 유서희는 주현우 감시하러 온 것이었다.

유서희는 이미 허아연이 임신할 때까지 아레아 베이에 머물 작정이었다.

오지은 하나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믿지 않았다.

주현우가 무심하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돈 안 벌어도 돼요? 엄마 돈 안 쓸 거예요?"

"누가 한밤중에 밖에서 돈을 벌어? 핑계 대지 말고 얌전히 집에 돌아와."

주현우는 기세등등하게 몰아붙이는 유서희와 말싸움할 생각이 없었다.

저 문만 나서면 누가 감히 간섭할 수 있을까?

허아연은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바라보았다.

이혼하지 않으면 주현우가 점점 더 힘들지도 몰랐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아래층에서 유서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유서희가 두 사람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하며 직접 방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서야 돌아갔다.

방문이 닫히자 주현우는 정장 재킷을 벗어 소파 위에 툭 던지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하얀 피부 위로 푸른 핏줄이 손등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때, 갑자기 주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주현우는 바로 받지 않고 라이터를 들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야 휴대폰을 들고 통유리 앞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주현우는 뿌연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엄마가 와서 오늘은 안 갈게."

"응, 너도 빨리 들어가서 쉬어."

"그래, 알았어."

"응."

주현우의 말투는 아주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허아연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투였다.

주현우는 뒤에 허아연이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테이블 앞으로 걸어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담배를 눌러 껐다.

방안에는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허아연은 방에 있는 게 어색했지만 또 나가면 유서희에게 들킬까 걱정되었다.

유서희는 유미 이모처럼 속이기 쉽지 않았다.

주현우는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할 일을 했다.

이도 저도 못하고 있던 허아연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주현우에게 말을 걸었다.

"뉴스에서 봤는데 이제는 이혼할 때 호적 등본이 필요 없대요. 우리 먼저 가서 서류 접수하고 부모님한테는 나중에 말씀드려요."

정책은 며칠 전에 금방 발표되었다.

뉴스를 본 순간, 허아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건 허아연과 주현우만 동의하면 더 이상 집안 어른들의 허락이 필요 없이 이혼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에 주현우는 고개를 들어 허아연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급하게 이혼하려는 걸 보니 혹시 밖에 남자라도 생겼어?"
อ่านหนังสือเล่มนี้ต่อได้ฟรี
สแกนรหัสเพื่อดาวน์โหลดแอป

บทล่าสุด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30화

    주씨 가문은 오랜 명문가였고 허민수도 원래 주건영의 기사일 뿐이었다. 비록 뒤늦게 스스로 다른 일도 하면서 허아연에게 남겨줄 것들을 모았지만 결국 출신부터가 다른 두 사람이었다. 때문에 지금 주현우에게 이혼을 권하면서도 절대 주현우가 잘못했다거나, 허아연이 억울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라고 전부 본인 책임으로 돌렸다. 이 지경이 된 이상 누가 맞고 틀렸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서로 힘들게 하지 않고, 상처 주지 않고 각자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허민수가 이혼을 권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허민수의 자책이 오히려 주현우를 더 난처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허아연과의 결혼 생활에서 본분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주현우였다. 아무리 억지로 떠밀려 한 결혼이라고 해도 남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허민수를 바라보던 주현우는 허민수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저랑 아연이 일은 저희 둘이 정리할게요. 몸도 안 좋으신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허아연에게는 차갑게 굴지 몰라도 어른한테 그러는 건 큰 불효였다. 이 정도 교양은 있는 주현우였다. 방금 허민수가 한 말이 놀랍기는 했지만 주현우도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았다. 어쨌든 주현우 본인의 일이니까. 주현우가 웃으며 답하자 허민수는 다시 장기를 두며 말했다. "그래. 내 마음은 전했으니 앞으로 너무 부담 가질 거 없다." 허민수는 은근 돌려서 딱 잘라 말했다. '어차피 더 이상 손녀 사위도 아니고 나도 아연이를 설득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 아연이가 너를 대하는 태도가 곧 내 태도야. 그러니 알아서 해." 주현우는 말없이 웃으며 계속 장기를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아연이 허민수의 물건을 들고 들어왔다. 주현우가 아직도 병실에 있는 것을 본 허아연이 말했다. "아직 안 갔어요? 이제 그만 가서 쉬어요. 여긴 내가 있으면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9화

    웬일일지 차갑게 외면하는 허아연은 주현우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었다. 주현우를 볼 수만 있으면, 주현우가 아레아 베이에 돌아가기만 해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곤 했다. 복도에 한참 앉아 있던 주현우는 다시 병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병실 문을 한참 바라보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앞에 도착해 안을 들여다보니 허아연은 여전히 침대 옆에 앉아 지키고 있었다. 주현우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아까 그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 허민수는 입원하여 경과를 지켜보았다. 허아연도 일을 잠시 내려놓고 병원에 머물며 허민수를 돌봤다. 주현우도 며칠 동안 자주 찾아왔다. 허민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바둑도 두며 즐겁게 했다. 다만 허아연은 여전히 지나치게 깍듯했다. 허민수를 챙기듯 안부를 물었지만 지나치게 공손하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예전 같지 않았다. 그날 오후, 허아연과 허민수 둘이 병실에 있을 때였다. 허민수가 침대에 반쯤 기대어 앉아 허아연을 보며 물었다. "아연아, 며칠 동안 현우를 잘 챙기지도 않고 지나치게 깍듯하게 대하던데 무슨 일 있어?" 허아연은 껍질 깎은 사과를 잘라서 건네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할아버지. 다른 생각하지 마세요. 저 현우 씨한테 항상 예의 지켜왔어요." 허민수는 믿지 않았다. "네 행동을 보고도 내가 모를 줄 알아?" 허아연은 난감하게 웃으며 허민수 손에 사과를 쥐여주었다.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곧 이혼할 텐데 너무 가까이 지내서 뭐 해요?" 허민수는 허아연이 건넨 사과를 침대 협탁 위 그릇에 고스란히 내려놓고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허민수의 시선에 괜히 뜨끔해진 허아연은 눈을 피하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만 물어요. 제 일을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허민수가 속상해할까 봐 너무 많은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허민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허아연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연아, 네 부모도 떠나고 가족은 나 하나밖에 없잖아. 할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8화

    허아연은 의자를 뒤로 밀치며 벌떡 일어나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주현우가 지금 온 건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얘기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현우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담담한 눈빛으로 허아연을 바라봤다.조금 전 전서진이 전화와서 허아연 할아버지가 오후에 집에서 쓰러져서 지금 병원에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 말을 들은 주현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아서 모르는 일이었다. 바로 집에 연락해 보니 웬걸,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심지어 병문안까지 다녀간 뒤였다. 주현우만 몰랐고 심지어 전서진이 말해서 알게 된 것이었다. 주현우의 굳은 표정을 본 허아연은 허민수를 한 번 쳐다보고 서둘러 설명했다. "할아버지 지금은 괜찮아요. 오후에 바로 깨어나셨고 검사도 다 마쳤어요. 지금은 그냥 주무시는 중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가서 일 봐요." 주현우가 허민수 걱정을 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예의상 한 말이었다. 아마 누군가 이 일을 알려서 오지은과 함께 할 시간을 방해받은 게 화가 나서 저런 표정일 것이다. 차라리 빨리 오지은 보러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깨어나서 저렇게 내키지 않아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더 불편할 수도 있었다. 병실에 들어선 주현우는 허아연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한밤중에 무슨 볼일 보러 가라는 거야?" 주현우의 무심한 말에 허아연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보기만 할 뿐 까발리지는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앉아요." 허아연은 말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허아연이 불러서 온 것도 아니고 괜히 말다툼할 필요도 없었다. 화난 표정이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날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허아연의 시큰둥한 태도에 주현우는 자신이 늦게 온 걸 원망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허아연이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주현우는 허아연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휴대폰도 보지 않고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7화

    가끔 전화가 오면 주진우는 밖에 나가 통화를 했다. 허아연은 병상 앞에서 허민수의 손을 꼭 잡은 채 문밖에서 통화 중인 주진우를 바라보았다. 주진우에게 고마운 마음이 너무 컸다. 그날 밤. 주민경과 유서희도 오고 주석진까지 다 찾아왔다. 허씨 가문에는 식구도 적고 허아연도 친구가 많지 않았기에 주씨 가문 사람들 말고는 병문안 오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 다 도착했는데도 주현우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9시가 넘어서도 계속 머물러있는 주진우에게 허아연이 말했다. "진우 오빠, 여긴 제가 있을 테니 돌아가서 쉬어요." 허아연의 말에 주진우는 허민수도 잠이 든 걸 확인하고 말했다. "알았어. 그럼 먼저 갈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네." 허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한 허아연이 함께 내려가려 하자 주진우가 말리며 말했다. "여기까지만 배웅하고 돌아가. 어르신 큰 문제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도 좀 쉬어." "네." 허아연은 여전히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주진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허아연은 병실로 돌아갔다. 병실은 아주 조용했다. 조금 전 정아 이모도 쉬라고 돌려보낸 뒤였다. 허아연은 병상 옆에 앉아 깊이 잠든 허민수의 손을 꼭 잡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절대 무슨 일 생기면 안 돼요." 부모님도 떠나고 이제 남은 가족은 할아버지 한 사람뿐이었다. 허아연은 할아버지가 옆에 몇 년이라도 더 있어 주기를 바랐다. 침대 끝에 앉아 있던 허아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중원 그룹 장도원의 전화였다. 허민수가 깰까 걱정된 허아연은 밖으로 나갔다. "장도원 대표님." 전화를 받자마자 허아연은 바로 프로답고 똑 부러진 허아연 부대표님으로 변신했다. 마치 집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통화 소리가 병실 안 환자들을 방해할까 걱정된 허아연은 전화를 받으며 복도 끝에 있는 박을 베란다로 걸어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6화

    허아연은 주현우를 등진 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잠시 침묵하던 허아연이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그냥 한 말이라는 거 알아요." 분명 욕먹은 것도, 난처해진 것도 다 허아연인데 되려 주현우를 위로해야 했다. 답을 들은 주현우는 허아연의 귀마개를 다시 꽂아주었다. 이어지는 며칠 동안은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주현우가 매일 집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둘 사이 대화는 여전히 많지 않았다. ……그날 오후,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허아연에게 정아 이모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연 씨, 어르신께서 입원하셨어요. 방금 검사 다 마쳤으니까 퇴근하면 보러 오세요." 전화를 받던 허아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할아버지가 입원했는데 왜 일찍 알리지 않았어요?"요즘 허아연은 할아버지와 관련된 일에만 이토록 큰 반응을 보였다. "어르신께서 일하는데 방해된다고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허아연은 말문이 막혔다.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할아버지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 정아 이모의 말을 더 들을 새도 없이 전화를 끊고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허민수는 이미 여러 가지 검사를 다 마친 상태였다. 컨디션도 괜찮아 보였다. 허아연은 병상 옆에 앉아 허민수의 손을 꼭 잡고 일부러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이렇게 큰일을 저한테 숨겼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나 평생 후회하면서 살게 하려고 그랬어요?" 허민수는 허아연의 손등을 토닥이며 껄껄 웃었다. "그냥 사소한 심혈관 질병이야. 나이 들면 다 있는 거야. 너한테 알려도 결국은 의사가 치료해야 하는 거잖아." 허아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쓰러졌는데도 사소한 문제예요? 다시는 이러지 마요.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려요." 허아연의 걱정에 허민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알았어. 앞으로는 뭐든 제일 먼저 너한테 알릴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정아 이모는 옆에서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5화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본가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허아연은 전혀 기운이 없었다. 힘없이 시트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머리를 받침대에 기댄 채 초점 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눈에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너무 힘들어. 마음이 너무 힘들어.' 이따금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확인하던 주현우는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허아연을 보며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조금 전에는 정말 그냥 튀어나온 말이었다. 운전석에서 주현우의 휴대폰이 몇 번이나 울리고 통화를 몇 통이나 했지만 허아연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차가 집 마당에 도착해 주현우가 차 문을 열어주었을 때에야 허아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아연은 급히 짐을 챙겨 내리며 깍듯하게 말했다. "고마워요."인사를 하고 다시 나긋나긋하게 이어 말했다. "또 일 봐야 하죠? 먼저 들어갈게요." 주현우가 답하기도 전에 허아연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현우는 손잡이를 잡은 채 허아연이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운전석으로 돌아가 바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위층 침실로 돌아온 허아연은 주현우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문을 닫았다. 방문에 기댄 허아연은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는 허아연의 머릿속에는 온통 주현우가 한 말이었다. 말실수인 건 허아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현우의 속심말이기도 했다. 허아연의 기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쉽게 튀어나올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허아연의 기분을 신경 썼다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감정 변화 하나 없는 눈빛으로 아주 오랫동안 마당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하고 괴로웠다. 또 한참 마당을 지켜보던 허아연은 그제야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직접 운전해서 할아버지를 뵈러 본가로 돌아갔다. ……저녁 10시, 본가에서 돌아온 허아연이 침실에 들어오자 주현우가 머리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허아연은

บทอื่นๆ
สำรวจและอ่านนวนิยายดีๆ ได้ฟรี
เข้าถึงนวนิยายดีๆ จำนวนมากได้ฟรีบนแอป GoodNovel ดาวน์โหลดหนังสือที่คุณชอบและอ่านได้ทุกที่ทุกเวลา
อ่านหนังสือฟรีบนแอป
สแกนรหัสเพื่ออ่านบนแอป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