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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작가: 임서아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보며 말했다.

"주현우 씨, 이 서류는 사인할 수 없어요."

주식 양도 계약서였다. 게다가 경주 그룹 10% 지분이었다. 사인할 수 없었다.

책임이 너무 컸다.

허아연의 진지함에 주현우가 나른하게 말했다.

"회사 일인데 처리하는데 안 도와줄 거야?"

허아연은 오히려 엄숙하게 말했다.

"주현우 씨, 내가 여기 사인하면 이 서류가 효력이 생겨요. 경주 그룹 지분 10% 가 내 명의가 된다고요. 내가 돈에 눈이 멀어서 정말 꿀꺽할까 봐 두렵지도 않아요?"

주현우는 웃음이 터져 나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꿀꺽할 수 있어야 꿀꺽하지. 걱정 마, 형식상 절차야."

주현우의 자신감에 허아연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한참 주현우를 쳐다보던 허아연이 물었다.

"주현우 씨, 주가 폭락할 때 이혼하려는 거예요?"

말하며 허아연은 다시 손에 든 계약서를 보았다.

"이 계약서가 나한테 주는 이혼 위자료예요?"

허아연의 상상력에 주현우는 바로 하하 웃음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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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쓰던 사무실은 유건희가 사람을 시켜 다시 비워두게 했다.스타라이트 테크에 돌아올 때마다 허아연은 유독 마음이 편하고 소속감이 느껴졌다.저녁에 스타라이트 테크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나서 허아연은 호텔로 돌아왔다.마침 밖에서 돌아오던 안서준과 로비에서 마주쳤다.나란히 걸어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허아연이 말했다."유 대표님이 내일 저녁에 경주 그룹이랑 삼자 협력 얘기하기로 했대요."안서준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주현우도 오겠네."그 말에 허아연은 웃으며 답했다."걱정 마요. 주현우 씨한테 확실히 얘기했어요. 이제 다른 생각은 안 할 거예요."안서준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지."안서준은 겉으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속으로는 여러 감정이 꿈틀거렸다.권씨 가문은 권승준과 허아연 관계를 반대했고, 허아연 본인도 더는 주현우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으니……안서준은 그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떠올리다 결국 누구도 허아연과 이어지지 못했다는 생각에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권씨 가문이 사람 보는 눈이 없다면 그건 그들 손해였다.안서준은 허아연을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동승 그룹이 교진시에 지사를 세우면 계속 호텔에 머무는 것도 불편할 텐데 마음에 드는 동네가 있으면 먼저 집부터 사자."안서준이 집 얘기를 하자 허아연이 말했다."서준 씨 마음에 드는 집으로 사요. 나는 원래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도 돼요. 민경이가 계속 집 봐주고 있었어요."안서준은 말을 잃었다.허아연이 교진시 사람이고 이곳에 자기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조금 서운해진 안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럼 내가 알아서 볼게."같이 살지도 못하는데 집을 사면 뭐한단 말인가. 그 뒤 두 사람은 내일 삼자 협력 건에 대해 좀 더 얘기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권승준과의 관계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벌써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생각에 허아연은 헛웃음이 났다.사실 권유성이 일찌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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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오전, 주민경이 허아연을 찾아왔다.요즘 허아연은 주민경을 만날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즐거웠다.오전에 두 사람은 묘원에 들러 허민수와 허아연의 부모를 찾아뵈었다.이제는 묘원에 갈 때도 몰래 다니거나 누군가를 피할 필요 없이 당당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점심에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다가 주민경이 문득 고개를 들고 물었다."권 어르신이 찾아왔었다며? 너랑 권승준 씨 일 반대하셨어?"허아연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웃었다."정말 비밀이 없네. 너까지 다 알고 있다니."허아연이 딱히 부인하지 않자 주민경은 찻잔을 받아 들고 눈을 흘기며 말했다."반대하면 반대하는 거지 뭐. 나도 네가 그 집안에 들어가는 거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골치 아픈 일이 이렇게 많으면 나중에 진짜 결혼이라도 하고 나서는 어떻겠어?""권 어르신도 참 유난이야, 젊은 사람들 연애하는데 그 연세에 끼어들어서 호감만 잃고 말이야."예전에는 주민경도 권씨 가문을 꽤 어려워했고, 교진시 전체를 통틀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도 권씨 가문과 권승준뿐이었다.하지만 이번 일로 권유성이 생각보다 속이 좁다고 느꼈다.허아연은 씩씩거리는 주민경을 달랬다."어르신이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가,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면 돼."함께할 수 없다면 인연이 닿지 않은 것이니 억지로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주민경이 말했다."그럼 권승준 씨 이제 그만 만나, 내가 더 좋은 사람 소개해줄게. 아연이 너 이렇게 훌륭한 데다 지금은 안씨 가문 둘째딸이잖아. 어떤 남자를 못 만나겠어?"주민경이 계속 마음에 담아두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사는 데 남자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연애를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야. 내 일 잘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디저트를 먹던 주민경이 말했다."그래, 그럼 네 인생의 주인공답게 일이나 제대로 해. 남자들이 감히 넘보지도 못하게."주민경의 위로에 허아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현실에 그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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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허아연은 마음을 다잡고 전화를 받은 뒤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님."전화를 건 사람은 서인경이었다. 허아연이 조금 전 난처한 기색을 보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전화기 너머의 서인경은 허아연의 인사를 듣더니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물었다."아연아, 승준이한테 들었는데 이번 토요일에 밥 먹으러 못 온다던데 무슨 일이야?"서인경의 목소리는 무척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서인경의 물음에 허아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정하게 답했다."어머님, 며칠 전에 어르신이 저를 찾아오셨어요."방금 생각에 잠겼던 건 권유성이 찾아온 일을 서인경에게 말할지 말지 고민했기 때문이었다.잠시 생각한 끝에 허아연은 결국 말하기로 했다.아무렇게나 다른 핑계를 대봐도 서인경이 나중에 다시 연락해 이유를 물을 게 뻔했다.그럴 바에야 차라리 지금 확실히 얘기하는 편이 나았다.허아연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서인경이 진지하게 타일렀다."아연아, 할아버지 나이가 드셔서 판단이 흐려지신 거야. 할아버지 말씀은 신경 쓰지 말고 승준이 말 들어. 그리고 승준이 일은 할아버지가 이래라저래라 하실 일이 아니야."허아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서인경이 다시 말했다."너희 둘 일은 너희가 직접 정하면 돼, 다른 사람 말 들을 필요 없어."서인경의 말에 허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네, 알겠어요, 어머님."대답을 들은 서인경이 곧바로 다시 물었다."그럼 토요일엔 원래대로 밥 먹으러 오는 거지?"서인경이 여전히 토요일 약속을 마음에 두고 있자 허아연은 핑계를 댔다."어머님, 정말 죄송해요. 승준 씨한테 얘기하고 나서 방금 오빠와 토요일에 근처 도시에 같이 가기로 약속했거든요.""밥 먹으러 가는 건 다음에 다시 약속을 잡으면 안 될까요?"권유성이 방금 자신을 찾아왔는데 또 권씨 가문에 밥 먹으러 가는 건 스스로를 너무 낮추는 것이고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다.게다가 권유성은 애초에 허아연과 권승준이 함께하는 걸 원치 않았다.그래서 아예 핑계를 대고 이 일을 미뤄버린 것이었다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463화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출발했고 권승준이 업무 얘기를 묻자 허아연은 하나하나 차분히 답했다.두 사람은 이번에 다른 레스토랑을 찾았다. 직원이 요리를 다 서빙하고 문을 닫자 권승준은 여전히 예전처럼 다정하게 허아연에게 국을 떠주고 음식을 챙겨주었다.허아연이 다정하게 말했다."고마워요."두 사람이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반쯤 했을 때 허아연이 문득 고개를 들어 권승준을 보며 말했다."승준 씨, 토요일에 본가에서 식사하기로 한 거 조금 미뤄도 될까요?"허아연이 갑자기 약속을 미루자 권승준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서로 시선이 마주쳤을 때 허아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권승준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할아버지가 찾아갔고 그래서 허아연이 한발 물러서기 시작한 듯했다.허아연을 보는 권승준의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물론 그 화는 허아연이 아니라 권유성을 향한 것이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이나 할아버지가 그의 일에 나서거나 간섭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번만큼은 권유성이 직접 허아연을 찾아간 것이다.권승준은 차분하게 허아연을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미루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아직 내가 준비가 덜 된 거니까 잘 정리할게요."허아연이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권승준은 먼저 태도를 밝히며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고, 잘 정리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권승준이 입장을 밝히자 허아연도 더는 그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승준 씨도 많이 드세요."지금 허아연은 다정하게 대하면서도 분명 어딘가 거리를 두고 있었다.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식사를 마치고 함께 강가를 산책한 뒤 허아연을 호텔에 데려다준 권승준은 곧장 차를 몰고 권유성의 집으로 향했다.차를 대문 앞에 세우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마침 서재에서 나오던 권유성과 마주쳤다. "할아버지, 아연 씨 찾아가셨죠."권승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권유성도 부인하지 않았다. "만나서 내 걱정을 얘기했지."권유성의 말을 들은 권승준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462화

    흘러가는 대로 두자는 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은 힐끗 보고는 웃기만 할 뿐 더는 말이 없었다.그 뒤로 두 사람은 난간에 기대어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이어갔고 주현우도 더는 감정에 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11시가 넘자 허아연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주현우를 보며 말했다."이제 그만 얘기하고 들어가야겠어요."그 말에 주현우도 급히 몸을 일으키며 부드럽게 말했다."데려다줄게.""괜찮아요, 운전해서 왔어요." 말을 마친 두 사람은 함께 도로 쪽으로 걸어갔다. 모두 차를 길가 주차 구역에 세워둔 상태였다.오늘 밤 권유성이 찾아와 바람과는 약간 어긋난 말을 했지만 허아연은 대체로 차분하게 대응했고 오히려 내려놓은 것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주현우를 마주해도 예전만큼 날이 서지 않았다.검은색 마이바흐 안에서 주현우는 두 손을 핸들에 올린 채 허아연의 흰색 차가 먼저 떠나는 걸 지켜본 뒤에야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핸들을 잡은 주현우는 조금 전 허아연의 쓸쓸한 표정을 떠올리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허아연과 권승준의 관계가 계속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딱히 기쁘지는 않았다.허아연의 불행을 도저히 고소해할 수가 없었다.……같은 시각, 허아연의 차 안.핸들을 잡은 허아연의 손은 무척 희고 가늘었다.창문을 내리자 시원한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 들어왔다. 차 안에 음악을 틀고 잠시 권유성도, 권승준도, 주현우도 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에 도착한 허아연은 차를 세우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런데 스위트룸 문 앞에 막 도착했을 때 옆방에서 안서준이 나왔다.허아연이 돌아온 걸 본 안서준이 인사를 건넸다."왔어?"허아연이 웃으며 답했다."네."그때, 안서준이 대뜸 물었다."오늘 밤 권 어르신이 너 찾아갔었어?"안서준의 물음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이제 난 사생활도 없나 보네요. 내가 돌아오기도 전에 벌써 다들 알고 있잖아요."허아연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자 안서준이 말했다."들어와서 얘기해.""네." 허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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