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서영애가 다시 미소를 걸쳤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한 박자가 늦었다."…누구니, 그게.""고모의 해외 자산에서 서류를 만들던 사람이에요. 업계에서는 백 선생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모르는 이름이구나.""이번에 제 앞으로 날아온 그 유령 회사 서류도, 그 사람 작품이에요."서지안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그런데 그 사람은 실수를 하지 않기로 유명해요. 이름과 날짜는 부탁한 쪽이 적어 준 대로 넣을 뿐이니까요. 그러니 그 날짜를 적어 준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이에요."서영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조금 길었다."주문한 사람은 이렇게 시켰을 거예요. 저 여자가 죽은 사람으로 있던 십오 년, 그 기간에 유령 회사를 굴린 것처럼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설립일이 그 십오 년의 첫해로 들어갔어요."서지안이, 처음으로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강윤서… 제 나이는 알았겠죠. 그런데 기간만 시켜 놓고, 나온 물건은 들여다보지 않은 거예요. 이기는 게 급했으니까요."서영애의 눈꺼풀이 한 번 깜빡였다."강윤서 씨는, 그 문을 혼자 열 수 없었어요."서지안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개해 준 사람이 필요했죠."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서영애가 아주 낮게 웃음을 흘렸다. 웃음이라기보다 콧소리에 가까운 것이었다."그 애가 여기까지 찾아왔더구나."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HW 딸이라고.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니? 부회장님을 존경한다고 했어."서영애의 입가가 비틀렸다."우습지. 나를 존경한다는 게 아니야. 나를 쓰고 싶다는 거지. 그런 건 얼굴만 봐도 알아. 그런데, 나는 그 애를 안 쫓아냈어. 왜인지 아니?""…쓸 만해서요.""그래. 아주 쓸 만했지."서영애가 자기 손목의 수갑을 내려다보았다."나는 여기 있고, 손발이 다 묶였어. 그런데 그 애는 밖에 있고, 회사가 있고, 아버지 눈만 피할 줄 알면 뭐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 애가 나한테 온 게 아니야. 내가 그 애를 부린 거야."서지안은 숨을
저녁에는 케이크를 잘랐다. 초는 여덟 개였다. 서아가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세어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작년보다 하나 많아.""그렇지. 이제 여덟 살이야."불을 껐다. 촛불 여덟 개가 세 사람의 얼굴을 노랗게 물들였다. 서아가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빌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씩씩하게 답했다."셋이 같이 촛불 끄는 거였는데, 벌써 됐어."서지안의 눈이, 다시 뜨거워졌다. 오늘 하루가 이 아이에게 얼마나 오래 남을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몇 년 뒤 서아가 여덟 살을 떠올릴 때, 엄마 회사가 흔들렸던 해가 아니라 자전거를 배운 해로 기억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아이가 잠든 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했다. 강도현이 씻고, 서지안이 닦았다. 접시를 건네받다가 손끝이 몇 번 닿았다. 이제는 둘 다 멈추지 않았다."…오늘, 고마워요."서지안이 낮게 말했다."내가 고마워."강도현이 접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답했다."솔직히 말하면. 오늘 '아빠' 그 말 들었을 때, 십오 년이 한 번에 다 보상받은 것 같았어."서지안이, 그를 올려다보았다."…선배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요? 그늘에서만 봐서 몰랐어요.""나도 몰랐어. 너희 둘 만나고 알았어."거실 소파에 앉았을 때, 서지안이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며칠째 마음에 걸려 있던 것이었다."선배. 결혼식은요.""응.""저는… 두 번째예요."말해 놓고, 그녀는 잠깐 시선을 내렸다."그것도 세상이 다 아는 두 번째요. 크게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서아가 학교에서 무슨 말을 들을지 자꾸 생각이 나요. 그런데 선배는 처음이시고, TK 쪽에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요.""지안아."강도현이, 그녀의 말을 조용히 잘랐다."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크게 하고 싶으면 크게 하고, 아무도 안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 지금은 하기 싫으면 미뤄도 돼.""…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더 어려워요.""나는 십오 년을 기다렸어. 그 십오 년
"그날 일정은 다 비워 주세요."서지안이 그렇게 말했을 때, 비서실장은 잠깐 자기 귀를 의심했다."…회장님. 그날은 감정 기관 담당자와 화상 회의가 잡혀 있고, 홍보실 대응 회의도…""다 미뤄 주세요. 하루 늦어도 무너지지 않는 일들이에요."서지안이, 담담하게 답했다."그날은 서아 생일이에요. 저 사람들 때문에 제 딸 생일을 건너뛰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제가 지는 거니까요."비서실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그는 회장님의 일정표에서 처음으로 '개인 일정'이라는 네 글자를 적어 넣었다.생일 아침, 서지안은 새벽에 일어나 미역국을 끓였다.손은 아직 다 기억하고 있었다. 결혼해서 십 년,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시어머니 한약을 달이고 남편 회사 사람들 밥상까지 차렸던 세월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자기 몫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그 세월이 아주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적어도 딸 생일상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차릴 수 있었다.한 가지만 씁쓸했다. 이 국 끓이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어머니가 아니라 시어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그녀가 열다섯일 때 세상을 떠났다. 딸에게 부엌일을 가르칠 시간이 없었다.회장이 된 뒤로는 아침을 도우미 아주머니가 차렸고, 서지안은 서류를 보며 선 채로 먹었다. 그러니 오늘 이 냄새는 오랜만에 이 집에 도는 냄새였다.일찍 도착한 강도현이 팔을 걷고 옆에 섰다."뭐 도와줄까.""…선배가 요리를 할 줄 아세요?""할 줄은 몰라. 그래도 시키는 건 해."서지안이 웃으며 파를 내밀었다. 잠시 뒤 도마 위에는, 어른 손가락만큼 굵게 썰린 파가 줄줄이 놓여 있었다. 재계에서 가장 무섭다는 사람이, 파 하나를 앞에 두고 진지하게 눈썹을 모으고 있었다."…선배. 이건 파를 썬 게 아니라 토막을 낸 거예요.""기준을 안 알려 줬잖아."좁은 부엌에서 두 사람의 팔이 몇 번이나 부딪혔다. 그때마다 아무 일도 아닌 척 자리를 조금씩 옮겼는데, 그게 더 우스워서 결국 둘 다 웃음이 터졌다."
면회실의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서이든은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다 마침내,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이름 하나를 말했다."백우진.""…백우진.""그 세계에서는 다들 백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홍콩과 싱가포르를 오가며, 서류를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회사 등기, 송금 기록, 이사회 의사록. 필요하다고 하면 없던 것도 만들어 냅니다."서이든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을 팔아 넘기는 자리인데도, 미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그 사람 서류는 값이 아주 비쌉니다. 그런데도 찾는 사람이 많은 건, 실수가 없기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서이든이, 잠시 말을 골랐다."회장님이 이해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 서류를 만드는 일은, 없는 종이를 그리는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의 실제 서식을 구해서, 그 나라의 그 시절 규칙에 맞게 채워 넣는 일입니다. 도장 하나, 줄 간격 하나까지요. 그래서 값이 비싸고, 그래서 잡기가 어렵습니다.""…그렇게 만든 서류는, 진짜와 구별이 안 되나요.""종이만 놓고 보면, 구별이 안 됩니다."서이든이, 짧게 답했다."그 나라 등기소의 실제 기록과 맞춰 보면 드러납니다. 없는 회사는 등기부에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남의 나라 등기소에 공식으로 조회를 넣는 데는 며칠이 걸립니다. 저들이 노리는 건 그 며칠입니다. 그 사이에 세상은 이미 결론을 내려 버리니까요."서지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버텨야 하는 며칠이 있다는 뜻이었다."그런데 이번엔, 실수를 했어요."서지안이 말했다."설립일도, 서명도 틀렸어요."서이든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서식은 어땠습니까.""완벽했어요.
강윤서가 칼을 뽑은 것은, 두 사람이 방파제에서 해 뜨는 것을 보고 있던 바로 그 새벽이었다.이번에는 국내 언론이 아니었다. 홍콩의 한 경제 매체가, 아직 서울이 잠들어 있는 시각에 기사 하나를 올렸다. 제목은 건조했지만, 내용은 조금도 건조하지 않았다.'JL그룹 서지안 회장, 사망 처리 기간 중 조세회피처 법인 설립 의혹.'기사에는 서류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 십오 년 전 어느 섬나라에 세워진 법인의 등기 문서. 그 법인을 거쳐 오간 송금 기록. 그리고 설립자 서명란에 적힌, 한 사람의 이름.서여울.기사의 논리는 교묘했다. 서지안 회장은 이미 위장 사망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그 십오 년 동안, 그녀는 어떤 신분으로 무엇을 했는가.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유령 법인을 세워 자금을 굴렸고, 그 돈이 훗날 JL 상속의 밑돈이 된 것은 아닌가. 기사는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서류를 나란히 놓고, 독자가 알아서 결론에 이르도록 길을 깔아 두었다.파장은, 지난번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밀회설 때와는 성질이 달랐다. 그때는 안개였고, 이번에는 종이였다. 사람들은 감정에는 감동으로 응답하지만, 서류에는 의심으로 응답한다. 오전 장이 열리자마자 JL 주가가 곤두박질쳤고, 금융 당국이 사실관계 확인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더 나쁜 것은, 불이 JL 담장을 넘었다는 사실이었다. 며칠 전 세상이 세기의 결혼이라 부르며 축복했던 그 발표가, 이제는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TK 주가도 함께 흘러내렸다.'세기의 결혼, 세기의 리스크로.' 어느 매체는 그런 제목을 달았다.서지안은 그 기사를,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처음 읽었다. 반지를 낀 손으로 화면을 끝까지 내리는 동안, 옆자리의 온기가 아직 손등에 남아 있었다. 이틀의 휴가가 준 것을 빼앗기지는 않을 거라고, 그녀는 그때 생각했다.그날 오후, JL 회의실의 공기는 무거웠다."…회장님. 서류의 출처를 추적하고 있습니다만, 여러 나라를 거쳐 세탁된 자료라 원본을 잡는 데 시간
이상하게도, 며칠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강윤서 쪽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서지안을 긴장시켰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의 침묵이란, 대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 팽팽한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뜻밖에도 강도현이었다."지안아. 이틀만, 나한테 줘."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꺼낸 말에, 서지안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이틀이요?""여행 가자. 멀리 안 가. 차로 세 시간."서지안이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난처하게 웃었다."선배. 지금 상황 아시잖아요. 강윤서 씨가 뭘 준비하는지도 모르는데, 제가 자리를 비우면…""폭풍은 어차피 와."강도현이, 그녀의 말을 조용히 잘랐다."네가 책상에 붙어 앉아 있어도 오고, 바다에 가 있어도 와. 오는 걸 못 막는다면, 오기 전에 이틀 정도는 숨좀 돌려보자. 나는 십오 년을 기다렸어, 지안아. 너랑 나의 사이를 세상에 다 알린 다음에도 회의실에서만 얼굴 보는 건, 좀 억울하잖아."서지안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억울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이 남자는 십오 년을 그늘에서만 지켜 왔고, 지켜 온 값을 한 번도 청구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요구한 것이, 겨우 이틀이었다.그날 저녁, 서지안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등을 밀어 준 사람은 딸이었다. 마침 서아는 다음 주에 이 박 삼 일 학교 수련회를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엄마도 놀러 가!"일곱 살짜리가, 아주 신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나도 수련회 가는데 엄마만 회사 가면 불쌍하잖아. 아저씨랑 사이좋게 지내야 돼. 싸우면 안 돼.""…엄마가 언제 싸웠어.""그리고 엄마."서아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나 이제 아저씨한테 뭐라고 불러야 돼?"서지안의 말문이, 잠깐 막혔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아이가 그것을 먼저 궁금해했다는 사실이, 가슴 어딘가를 조용히 데웠다."…천천히 생각해도 돼. 서아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