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지율은 예전에 주용화와 헤어진 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이제는 심지어 친구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앉아 불꽃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마치 예전에 있었던 모든 원망과 갈등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그때 옆에 있던 주용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오늘 손형원 씨를 만났어요?”하지율은 주용화를 바라봤다.조명과 어둠이 교차하는 빛 속에서 주용화의 잘생긴 얼굴은 선명해졌다가 다시 어둠에 묻히기를 반복했다.하지율은 낮에 손형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하지율은 주용화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알았어요?”그러자 주용화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던데요. 몰랐어요?”어제 연정미와의 경기에서 이긴 뒤로 하지율은 줄곧 실시간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오늘은 하지율이 거의 확인하지 않았을 뿐이었다.하지율이 휴대전화를 꺼내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던 순간, 주용화가 다시 말했다.“사진은 꽤 예쁘게 나왔더군요. 지금 인터넷에서는 하지율 씨와 손형원 씨를 응원하는 사람이 50퍼센트 정도고 30퍼센트는 정기석 씨... 나머지 20퍼센트는 전남편 고지후 씨와 재결합하라고 하더군요.”하지율이 뉴스를 열어 보니 정말 손형원과 자신의 이야기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 있었다.마침 최근 연예계에도 딱히 화제가 될 만한 큰 소식이 없었다.거기에 어제 하지율이 레이싱에서 우승한 열기까지 남아 있으니 오랜만에 재미있는 가십을 발견한 네티즌들은 기다렸다는 듯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주용화가 말한 커플 지지율도 실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하지율은 동시에 손형원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진도 확인했다.각도와 장면을 보니 아까 자신과 부딪쳤던 그 젊은 여자가 찍은 듯했다.하지율은 곧바로 나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인터넷에 올라온 저와 관련된 기사는 전부 내려요.]그러자 나현우는 금세 답장을 보내왔다.[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문자를 보내
연정미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따라가 조사에 협조했다....하지율은 밥도 먹기 전에 이런 구경거리를 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그렇다고 가식적으로 나서서 말릴 생각도 없었고 물론 연정미를 도와줄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다만 연정미가 옷을 갈아입으러 가고 주용화가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걸 듣자 하지율은 연정미 쪽을 한 번 더 바라봤다.‘화야 씨가 연정미의 신뢰를 얻으려고 서아람을 직접 상대하려는 걸까?’서아람은 연정미를 때린 뒤 오래 머물지 않고 곧 자리를 떠났다.주용화도 서아람을 붙잡지 않았다.‘설마 뒤에서 조용히 손을 쓰려는 건가?’주용화라면 당연히 그럴 법했다.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자를 직접 건드리는 건 주용화의 방식이 아니었으니까.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주용화가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하지율은 말없이 주용화를 바라봤다.‘비서나 부하에게 일을 맡기려는 건가?’그런데 곧 주용화의 목소리가 들렸다.“안녕하세요. 신고하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폭행 사건이 발생했습니다.”주용화는 주소를 알려 준 뒤 전화를 끊었다.고개를 들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하지율과 눈이 마주쳤다.주용화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왜요?”하지율이 조용히 물었다.“연정미의 일을 해결해 주신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러자 주용화가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네? 지금 해결하고 있잖습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맞지 않나요?”“제가 대신 신고해 줬습니다.”하지율은 할 말을 잃었다.연정미가 원했던 해결하는 방법은 분명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주용화는 이런 작은 소동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태연하게 말했다.“일단 식사부터 하죠.”하지율도 애초에 연정미와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그러니 연정미가 돌아오기 전에 먼저 먹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하지만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연정미는 돌아오지 않았다.하지율이 결국 물었다.“연정미 씨는요?”주용화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보안요원들조차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주용화가 나서자 그제야 보안요원들이 황급히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레스토랑 매니저도 빠르게 달려와 상황을 수습했다.연정미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뺨은 퉁퉁 부어 있었다.온몸이 엉망인 데다가 수치심과 분노까지 겹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주용화는 처참한 몰골의 연정미를 한번 바라본 뒤 느긋하게 말했다.“연정미 씨, 우선 가서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이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그 말은 마치 연정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듯했다.연정미는 주용화의 말을 듣자 치밀어 오르던 분노가 절반 이상 가라앉았다.예전에는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면 굳이 입을 열기도 전에 주변의 구혼자들이 앞다퉈 나서서 해결해 줬다.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곁에서 사라지고 있었다.심수현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지나치게 이성적이었다.손형원처럼 결과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나서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단보현은 아직 해외에서 치료 중이었다.단성훈은 능력이 부족해 그런 명문 가문들과 맞설 수준이 되지 못했다.어느 순간부터인가 연정미의 곁에는 자신을 위해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은 셈이었다.그렇게 억울해도 참고 넘기는 날들이 이미 오래 이어졌다.그런데 하필 가장 필요할 때 주용화가 나타났다.연정미는 주용화가 어떤 수단을 쓰는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임채아가 들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용화의 첫사랑인 척했던 이유도 이제 이해됐다.손형서가 죽어도 주용화만을 원했던 이유도, 하지율이 차라리 혼자 지낼지언정 다른 남자를 찾지 않았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주용화는 확실히 쓸모가 너무 많았다.혼자서 손형원, 단보현, 심수현 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전부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만약 주용화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지금까지 곁에 두었던 구혼자들이나 자신을 떠받들던 남자들은 포기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연정미는 서아람을 차갑게 노려봤다.서아람이 자신에게
주용화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아름답고 뛰어난 여자에게 구혼자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이죠. 하지율 씨에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는 것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하지율 씨라...’하지율은 아무렇지 않은 척 주용화를 한번 바라봤다.그래도 연정미 앞에서는 자신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주용화가 정말 제멋대로 굴기 시작하면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잠시 뒤, 직원이 주문한 음식들을 하나씩 가져왔다.음식이 막 전부 나온 순간, 몸에 딱 붙는 섹시한 차림의 젊은 여자가 험악한 기세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다.여자는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정확히 세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찾아냈다.그러더니 곧장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왔다.가장 먼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건 하지율이었다.하지율의 눈빛이 살짝 깊어졌다.연정미는 여전히 주용화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느라 이쪽으로 다가오는 여자를 눈치채지 못했다.여자는 순식간에 세 사람 앞까지 다가왔다.여자는 연정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을 번쩍 들어 연정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짝!”“이 천박한 년아!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여자가 밖에서 남자들이나 꼬시고 다녀?”여자는 이를 악물고 연정미를 노려봤고 예쁜 얼굴은 분노로 차갑게 굳어 있었다.“맨날 남자들이랑 오빠니 동생이니 하면서 친구인 척은 왜 하는 거야? 왜 남의 남자한테 절친인 척을 하는데? 나도 여자인데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아?”“친구인 척하면서 남자 꼬시는 여우 같은 년아!”여자는 그렇게 욕을 퍼붓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테이블 위에 있던 물잔을 집어 연정미의 얼굴에 그대로 끼얹었다.“휘재는 평소에도 약혼녀인 나보다 너한테 더 잘해줬어! 이번에도 널 도와주겠다고 아끼던 차까지 폐차됐고 친구들도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갔잖아.”“그중 몇 명은 아예 휘재랑 절교까지 했는데 넌 혼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쏙 빠지려고 하는 거지? 내가 그렇게 널 가
결국 연정미는 그 모든 걸 하지율에게 중간에서 빼앗긴 셈이었다.어젯밤에 있었던 레이싱도 어쩌면 하지율이 일부러 짜 놓은 판일지도 몰랐다.그 트랙 역시 몰래 수없이 연습해 봤을 가능성이 있었다.일부러 다른 선수들에게 포위당하게 만든 뒤 자신이 약자인 것처럼 보이게 해서 주용화가 보다 못해 나서도록 유도한 것일 수도 있었다.‘진작 알았더라면 나도 적당히 약한 모습을 보여 줄 걸 그랬어...’연정미도 바보가 아니었다.주용화가 하지율에게 흥미를 보인다는 걸 어떻게 눈치채지 못했겠는가.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다급하게 주용화를 따로 불러내 상황을 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얼마 전에 누군가 카페에서 하지율과 손형원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찍었다.사실 이런 사진은 지난 3년 동안 수없이 봐 왔다.손형원이 운영하는 고양이 카페의 존재도 진작 알고 있었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연정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주용화에게 하지율의 ‘진짜 모습’을 보여 줘서 흥미를 잃게 만들고 나아가 완전히 싫어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그래서 연정미는 단서현과 짜고 방금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심지어 하지율과 손형원의 일을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올렸다.어젯밤 하지율의 레이싱 관련 화제도 아직 식지 않은 상태라 지금 이 뉴스가 올라와도 전혀 뜬금없어 보이지 않았다.주용화가 역시나 관심을 보이자 연정미는 눈빛을 가라앉히고 휴대전화를 건넸다.“딱히 대단한 뉴스는 아니에요. 언론에서 괜히 억측하는 걸 수도 있고요.”주용화는 휴대전화를 받아 단서현이 보낸 사진을 한 장씩 넘겨봤다.연정미는 줄곧 주용화의 표정을 살폈다.하지만 주용화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눈썹조차 찌푸리지 않은 채, 마치 모르는 사람의 뉴스를 보는 것처럼 담담했다.잠시 후 주용화는 휴대전화를 다시 연정미에게 돌려줬다.연정미는 주용화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의견조차 한마디도 하지 않자 막 질문하려 했다.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화야 씨, 연정미 씨,
주용화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연정미 씨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요.”연정미는 속으로 생각했다.예전의 주용화는 자신에게 이러지 않았다.‘이게 정말 첫사랑의 힘이라는 건가?’연정미는 주용화의 맞은편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용화 씨, 뭐 먹고 싶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그러자 주용화가 대답했다.“일 얘기부터 하죠. 식사는 그다음에 하고요.”너무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연정미는 순간 주용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뻔했다.연정미는 몇 초간 조용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좋아요. 그러면 일 얘기부터 해요.”연정미는 고개를 들어 주용화를 바라봤다.무언가 묻고 싶으면서도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용화 씨, 어제 지율이가 뭐라고 했어요?”주용화는 낮고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별말은 없었어요. 제가 찾던 사람이 임채아라고 하더군요.”연정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지만 속으로는 차갑게 웃었다.하지율은 결국 자신이라고 인정하지 못했다.역시 연정미의 예상이 맞았다.연정미의 계획이 제대로 성공한 셈이었다.만약 하지율이 주용화를 찾아간 첫날부터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인정했다면 연정미에게도 어느 정도 위협이 됐을 것이다.그런데 하지율은 오히려 그 사람이 임채아라고 말했다.그렇다면 나중에 와서 하지율이 사실은 자신이었다고 말을 바꿔도 주용화가 믿어 줄 리가 없었다.연정미는 오늘 이곳에 오기 전부터 마음을 정해 둔 상태였다.만약 주용화가 자신을 의심한다면 최악의 경우 같이 망하면 그만이었다.주용화가 최면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부 폭로해 다시 병이 도지도록 만들 생각도 있었다.어차피 주용화를 이용해 자신을 돕게 만드는 것도 아예 망가뜨리는 것도 연정미에게는 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였다.주용화를 속여서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었다.그게 안 된다면 복수라도 하면 됐다.연정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임채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요.”그러다가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