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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좁혀진 거리

작가: 데이지
last update 게시일: 2026-05-29 15:42:15

문을 닫는 소리가 카페 안에 잠시 남았다.

손님이 나간 뒤의 소리였다.

그 소리는 언제나 비슷했고, 그래서 특별하지 않았다.

특별하지 않은 소리들이 쌓일수록, 하루는 빨리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수는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이미 깨끗한 테이블이었지만, 한 번 더 닦았다.

손을 움직이고 있으면 생각이 덜 생겼다.

생각이 줄어들면, 결정도 늦춰진다.

진상은 계산대 아래를 정리하다가 시계를 봤다.

시간을 확인하는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이미 몇 번이나 본 시계였다.

“오늘은.”

그가 말을 꺼냈다.

어제와 비슷한 시작이었다.

그러나 어제와는 조금 달랐다.

“조금 일찍 끝내도 되겠죠.”

질문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확인이었다.

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마친다는 건, 그 다음이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카페 안의 불을 하나씩 끄자, 공간이 조금 좁아진 느낌이 들었다.

밝을 때는 넓어 보이던 곳이, 어둠 속에서는 금세 사람을 가까이 불러왔다.

이수는 마지막으로 커피 머신을 확인하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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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26. 입 밖에 낸 말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여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이수는 가위를 들고 있었다.머리카락 위에서 멈춘 가위는 아직 닫히지도, 열리지도 않은 상태였다.결정은 늘 그렇게 애매한 지점에서 멈춘다.이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답을 하지 않는 대신, 가위를 내려놓고 빗을 들었다.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선택이었다.여자는 그 침묵이 거절이 아니라는 걸 이상하게도 바로 알아차린 얼굴이었다.“오늘은… 머리 안 해도 돼요.”여자가 말했다.“그냥… 여기 잠깐 앉아 있다가 가고 싶어서요.”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의자를 가리키지도, 계산대를 보지도 않았다.이곳에서는 머리가 이유가 되고, 이유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그걸 모르는 사람은 이 문을 넘지 않는다.여자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대신 거울 앞에 서서 자기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벽 쪽에 놓인 작은 소파에 몸을 기대듯 앉았다.머리를 맡기러 온 사람의 자세가 아니었다.집에 돌아가기 전, 잠깐 숨을 고르러 온 사람의 자세였다.“어제는요.”여자가 낮게 말을 꺼냈다.“집에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어요.”이수는 수건을 개다 말고, 손을 멈췄다.문이 닫히는 소리는 늘 같지만, 어떤 날에는 유난히 크게 들린다.그건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그래서,”여자가 말을 이었다.“신발도 안 벗고 그냥 서 있었어요. 그 사람이 뭐라고 할 때까지.”이수는 천천히 수건을 접어 제자리에 놓았다.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현관, 켜진 불, 벗지 않은 신발,그리고 말이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뭐라고 했나요.”“아무 말도 안 했어요.”여자는 짧게 웃었다.“그게 더 이상하더라고요. 예전 같았으면, 왜 이렇게 늦었냐고, 어디 갔었냐고…뭐라도 했을 텐데.”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대개는 이미 알고 있다고 믿을 때 나온다.이수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지금은 여자가 스스로 그 지점에 닿아야 했다.“그래서 그냥 방으로 들어

  • 불륜해드립니다.   25. 익숙해지는 속도

    장미 미용실의 오후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수는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횟수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비슷했는데, 공간 안에 남아 있는 공기의 밀도가 달랐다. 사람 하나가 다녀간 뒤에는 늘 그런 잔향이 남는다. 말이 많지 않았을수록, 그 잔향은 더 오래 머문다.이수는 빗을 정리하다가 잠시 손을 멈췄다.어제의 여자가 떠올랐다. 집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고 말하던 얼굴,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오래 남았다. 사람은 보통 집 밖에서만 연기를 한다. 집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건, 이미 집 안에서도 연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문이 열렸다.이번엔 종이 울렸다. 어제보다 조금 더 힘이 들어간 소리였다. 이수는 고개를 들지 않고도 알았다. 같은 사람이었다. 발걸음이 기억보다 반 박자쯤 빨라져 있었다. 익숙해지는 속도는 늘 발에서 먼저 드러난다.여자는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자연스럽게 의자 쪽으로 걸어왔다.어제처럼 망설이지 않았다. 이수는 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느꼈다. 사람은 두 번째 방문부터는 공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오늘은… 예약 안 했는데 괜찮죠.”여자의 말투에는 사과가 없었다. 허락을 구하는 형식이었지만, 이미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그 말의 무게를 바꾸고 있었다. 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앉으세요.”의자를 당겨주지는 않았다. 대신 말만 던졌다. 여자는 스스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고, 그 소리가 어제보다 조금 컸다. 자기 자리를 만든 사람의 소리였다.“머리는… 어제랑 비슷하게요.”여자가 거울을 보며 말했다.“너무 바뀌진 않았으면 좋겠어요.”이수는 빗을 들며 여자의 머리를 살폈다.어제보다 묶은 자국이 덜했다. 집에서 머리를 풀고 있었던 흔적. 이런 건 설명하지 않아도 드러난다.“집에서 머리 잘 풀고 계시네요.”이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여자는 잠시 멈칫하다가, 작게 웃었다.“네. 어제는… 그냥 그렇게 있었어요.”그 ‘그냥

  • 불륜해드립니다.   24. 없는 연습

    장미 미용실 문이 열릴 때,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종이 울리기 전에 공기가 먼저 움직였고, 그 미세한 변화로 이수는 누가 들어왔는지보다 어떤 결의 사람이 들어왔는지를 알아챘다. 급하지 않고, 눈을 두리번거리지도 않는 발걸음. 이곳을 처음 찾았지만, 처음인 척하지 않는 태도였다.여자는 문을 닫고도 한 박자쯤 더 서 있었다.문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로, 안쪽을 훑는 대신 바닥을 먼저 보았다. 그 짧은 멈춤은 망설임이 아니라 정리에 가까웠다. 마음속 문장을 한 번 접어 넣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습관.“머리… 조금만 다듬을 수 있을까요.”여자는 그렇게 말했고, 말의 끝을 올리지 않았다. 부탁이라기보다 확인이었다. 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가리켰다.그녀의 손짓은 앉으라는 신호는, 시작을 허락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의자에 앉은 여자는 거울을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시선은 자꾸 옆으로 비켜났고, 그 비켜난 자리마다 생각이 스쳤다 사라졌다. 이수는 가위를 들지 않고 빗부터 들었다. 머리를 자르기 전의 빗질은, 말을 꺼내기 전의 호흡과 닮아 있다.“처음 오셨어요?”이수의 질문은 가볍게 던져졌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근처에… 살게 돼서요.”‘살게 됐다’는 말에는 과거가 없다. 의도적으로 지운 표현이다. 이수는 그 선택을 기록하듯 받아두었다.“원하시는 스타일은요.”“많이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여자는 잠시 말을 고르다 덧붙였다.“그냥… 집에 있는 것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요.”이수의 손이 잠깐 멈췄다. 아주 짧게, 그러나 분명하게.집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말은 보통 집 밖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이수는 빗을 다시 움직이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편한 쪽이 좋으세요.”“네.”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짧은 대답일수록 사람의 바닥이 드러난다. 이수는 여자의 머리결을 살폈다. 관리가 지나치지 않았고, 방치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되, 그 시선에 매달리지는 않는 상태.

  • 불륜해드립니다.   23. 남겨두는 연습

    장미 미용실의 오후는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해가 기울어 들어오는 각도가 달라졌고, 거울에 비치는 빛도 오전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이수는 그 미묘한 변화를 좋아했다. 사람의 마음이 말을 고르기 가장 좋은 시간은 대개 이렇게 빛이 한 발짝 물러난 뒤였다.의자에 앉은 여자는 거울 속 자기 얼굴을 오래 보지 않았다.눈길이 자꾸 옆으로 흐르다가, 이수의 손끝으로 갔다. 가위가 아니라 빗을 쥔 손,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손의 각도. 그 손은 급하지 않았고, 급하지 않은 손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여자는 그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어제는요.”여자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이수는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말이 시작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집에 가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평소 같았으면, 괜히 웃으면서 물어봤을 거예요. 오늘 뭐 했냐고, 피곤하지 않냐고. 근데 그냥…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어요.”이수는 빗을 천천히 내려놓고, 여자의 머리를 한 번 더 훑었다. 말이 이어질 수 있는 속도를 만들어주는 동작이었다. 여자는 잠시 숨을 골랐다. 말은 내뱉는 것보다, 계속 꺼내는 쪽이 더 어렵다.“문을 닫고 나니까요.”여자가 낮게 말했다.“이상하게 무섭기도 했고, 동시에… 조금 편했어요. 제가 뭔가를 안 해도 되는 사람 같아서.”이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감각은 이수가 가장 자주 듣는 종류의 고백이었다. ‘안 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감각. 그건 자유의 시작이기도 하고, 관계의 균열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그 사람은요?”이수가 물었다. 질문은 짧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상대가 아니라 상황을 묻는 질문.여자는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가, 다시 폈다.“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제가 방으로 들어간 걸 보고도, 그냥 TV를 켜더라고요. 그게… 평소랑 똑같아서 더 이상했어요. 제가 조용해졌는데도, 집은 그대로였거든요.”그 말은 불평이 아니었다. 관찰에 가까웠다.관찰은 감정보다 한

  • 불륜해드립니다.   22. 무너지지 않게

    장미 미용실의 오후는 늘 조금 늦게 시작되는 것 같았다.간판은 걸려 있는데도 손님이 없으면, 공간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얼굴로 서 있고, 이수는 그런 얼굴을 억지로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머리카락보다 마음이 먼저 들어오는 곳이었고, 마음은 소리를 내지 않으니까.이수는 수건을 개켜 올려두며 어제의 대화를 되짚었다.질문을 가르쳐달라는 말, 그것이 사실은 누군가에게 손을 잡아달라는 방식으로 변장한 요청이라는 걸 이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손을 내밀어 끌어올리는 순간, 상대는 자기 다리로 서는 법을 잊는다. 이수는 늘 그 지점을 경계했다. 다정함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다정함이 사람을 더 오래 그 자리에 묶어둘 때가 있어서.문이 열리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종이 울리기 전에 먼저 공기가 달라졌고, 이수는 그 변화로 누가 들어오는지 알아차렸다. 발걸음이 소란스럽지 않아서, 공간을 헤집지 않아서, 그러나 분명히 존재를 남기려고 해서. 어제와 비슷한 결의 움직임이었다.여자는 이번엔 의자에 앉지 않은 채로 서 있었다.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까지 끝낸 다음에야 말을 꺼냈다.“어제… 말씀하신 거요.”그녀는 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손끝이 자꾸 어딘가를 찾는 모양새였는데, 그건 보통 안정이 아니라 ‘계기’를 찾는 습관이었다.“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생각해봤어요.”이수는 대답 대신, 조용히 수건을 내려놓고 카운터에 기대 섰다.여자가 의자에 앉지 않은 것을 보고도 “앉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늘의 시작은 ‘편해지는’ 방향이 아니라 ‘정확해지는’ 방향이어야 했다.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바닥이 아니라 거울을 보았다.거울은 늘 잔인하게 정직했다. 남의 얼굴은 부드럽게 보이는데, 자기 얼굴은 늘 부족한 곳부터 먼저 드러나니까.“제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괜찮아’였어요.”말 끝이 조금 마르고, 혀끝이 아주 잠깐 떨렸다.“그리고 그 말 뒤에 붙는 게 있더라고요. ‘내가 이해

  • 불륜해드립니다.   21. 질문

    장미 미용실은 오전 내내 조용했다.머리를 자르러 오는 손님도 없었고, 예약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이수는 그 조용함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사람이 말을 하기 전에는 공간이 먼저 숨을 고른다.가위를 닦고, 빗을 정리하고, 수건을 개켜 올려두었다.손이 익숙하게 움직이는 동안 이수는 어제의 얼굴을 떠올렸다.거울을 정면으로 보지 않던 눈, 말을 고르다 멈추던 입술.그건 준비가 덜 된 사람의 태도였다.하지만 도망칠 준비를 한 사람의 태도는 아니었다.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문이 열렸다.이번에는 노크가 없었다.그 대신 문을 여는 손이 조심스러웠다.문을 세게 열지 않는 사람은 대개 자기 이야기를 세게 하지 않는다.여자가 들어왔다. 어제의 그 여자였다.같은 옷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결을 고른 차림이었다.튀지 않되, 사라지지도 않는 선택.“머리 말고요.”여자가 말했다.의자에 앉지 않은 채였다.“오늘은 잠깐만… 괜찮을까요.”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의자를 가리키지 않았다.앉는 건 여전히 상대의 몫이었다.여자는 한 발짝 다가왔다가 다시 멈췄다.그 거리에서 말을 꺼내는 쪽을 택했다.“어제 집에 가서요.”여자가 말했다.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해 있었다.“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로요.”이수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대개 가장 많은 일이 있었을 때 나온다.“그래서 더… 이상했어요.”여자가 말을 이었다.“제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이수는 천천히 카운터에 기대 섰다.대화를 길게 가져갈 때의 자세였다.“그 생각이.”이수가 말했다.“정리됐나요.”여자는 잠시 침을 삼켰다.“아니요.”솔직한 대답이었다.솔직함은 항상 좋은 신호는 아니지만,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태라는 뜻은 된다.“그래도,”여자가 말했다.“어제보다 제가 덜 혼란스러운 건 알겠어요.”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혼란이 줄어들었다는 건 기준이 생겼다는 뜻이다.기준이 없으면 혼란은 줄지 않는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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