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며칠 사이, 미용실 앞 골목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이면 빵집 문이 먼저 열렸고,
점심 무렵이면 맞은편 카페가 조금 붐볐다. 저녁이 되면 근처 학원에서 나온 학생들이 삼삼오오 지나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늘 그렇던 동네였다.
그러나 이수는 요즘 들어
며칠 사이, 미용실 앞 골목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아침이면 빵집 문이 먼저 열렸고, 점심 무렵이면맞은편 카페가 조금 붐볐다. 저녁이 되면 근처 학원에서 나온 학생들이 삼삼오오 지나갔다.겉으로 보기에는 늘 그렇던 동네였다.그러나 이수는 요즘 들어 아주 작은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누군가의 시선이 잠깐 더 오래 머문다거나,카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미용실 간판을 한 번쯤 더바라본다거나 하는 종류의 변화였다.그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자신이 예민해진 탓인지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몸은 분명히 그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기사 하나로 세상이 바뀌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대부분의 뉴스는 잠깐 올라왔다가 다른 이야기 속에 묻히고,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이수 역시 그런 종류의 기사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이틀이 지나자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처음에는 단순히 기사 조회 수가 늘어나는 정도였다.댓글도 몇 개 더 달렸고,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작은 블로그 글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사건을 정리해 올린 글이커뮤니티 몇 군데에 퍼졌고,그 글 아래에는 온갖 추측이 이어졌다.아직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병원 이름도 정확히 언급되지 않았다.그러나 사건의 구조는 이
다음 날 아침, 미용실 문을 여는 순간 이수는 아주 미묘한 변화를 느꼈다. 평소와 같은 골목이었고, 평소와 같은 시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맞은편 카페의 문도 늘 그렇듯 열려 있었다. 그런데도 공기가 조금 달랐다.이수는 문 위의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가위를 정리하고, 수건을 접어 올려놓고, 드라이기를 한 번 켜봤다가 다시 껐다. 손에 익은 동작들이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기사 봤어?”카운터 뒤에서 하빈이 말했다.이수는 고개를 들었다.“뭐 올라왔어?”하빈은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어제 봤던 기자가 쓴 기사였다.제목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말기 환자 산소호흡기 제거… 보호자 판단 논란』이름은 없었다. 병원 이름도 없었다. 그러나 문장 속에는 사건의 윤곽이 충분히 드러나 있었다.이수는 화면을 천천히 읽었다.기사는 조심스럽게 구성되어 있었다. 직접적인 단정은 없었지만, 읽는 사람이 의심을 품기에는 충분한 방식이었다. ‘의혹’, ‘논란’, ‘확인 중’ 같은 단어들이 반복되었다.“생각보다 빨리 나왔네.”이수가 말했다.“응.”하빈이 답했다.“근데 아직 선은 넘지 않았어.”그 말이 맞았다. 기자는 아직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이수는 알고 있었다.이건 시작일 뿐이라는 걸 그때 미용실 문이 열렸다.단골 손님이었다. 동네에서 오래 살던 중년 여자였다.“어머, 이수 씨.”그녀는 평소처럼 인사를 했다.“오늘도 바쁘겠네.”이수는 웃으며 의자를 빼 주었다.“아직은 한가해요.”머리를 자르는 동안 손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동네 이야기, 날씨 이야기, TV 드라마 이야기. 평소와 다르지 않은 대화였다.그런데 머리를 거의 다 말릴 즈음, 손님이 문득 말했다.“요즘 뉴스 보니까.”이수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병원 사건 많더라.”손님은 별생각 없이 말을 이어갔다.“환자 가족들이 기계 빼는 거… 그거 참 어
변호사 사무실은 도심의 오래된 빌딩 안에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복도 끝까지 이어진형광등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저녁 시간이었지만 사무실 몇 군데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고,복도는 낮보다 조용한 대신 묘하게 긴장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하빈이 먼저 문을 열었다.“안녕하세요.”안쪽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변호사가 고개를 들었다.예전에 한 번 상담을 했던 사람이었다.나이는 마흔 중반쯤 되어 보였고, 말투는 차분했지만눈빛은 빠르게 상황을 읽는 사람의 것이었다.“오랜만입니다.”그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이수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
기자가 떠난 다음 날 아침,미용실 안은 평소보다 조금 더 조용했다.예약된 손님이 없는 시간대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공기 속에 묘한 긴장이 남아 있었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지만,누군가가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감각이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이수는 카운터 앞에 서서 잠시 명함을 바라보고 있었다.어제 기자가 남기고 간 종이였다.작은 글씨로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매체 이름.단순한 연락처일 뿐인데도 그 종이가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연락할 생각이야?”하빈이 물었다.
기자가 떠난 뒤에도 미용실 안의 공기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문 위의 종이 소리가 완전히 멎은 뒤에도, 방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의 온도가 조금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이수는 명함을 손에 들고 있었다.작은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방향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기자의 이름, 매체 이름, 그리고 휴대폰 번호. 단순한 연락처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무게가 느껴졌다.“예상보다 빨리 왔네.”그녀가 낮게 말했다.하빈은 카운터 뒤에서 노트북을 닫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기사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움직여.”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리고 누군가는 그 움직임을 이용하지.”이수는 명함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민준이겠지.”“거의 확실해.”하빈은 명함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인터넷 매체라고 해도 완전히 가벼운 곳은 아니었다. 작은 기사 하나로 끝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사건의 방향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종류였다.“근데.”이수가 말했다.“저 기자… 이미 알고 온 것 같지 않았어?”하빈은 잠시 생각했다.“응.”“확인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이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확신을 얻으러 온 사람.”그 말이 더 정확했다.기자는 질문을 던질 때 이미 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맞습니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맞는 것 같습니다’에 가까운 뉘앙스였다.하빈은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그럼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겠네.”“뭘.”“저 기자.”이수는 고개를 들었다.“기자?”“응.”하빈은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했다.몇 초 뒤 기사 목록이 화면에 나타났다.대부분 사회면 기사였다. 병원 관련 사건, 의료 분쟁, 보호자 판단 논란 같은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다.“패턴이 있네.”하빈이 말했다.“어떤.”“의료 사건만 계속 파는 기자야.”이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그러면.”“민준이 딱 던져주기 좋은 사람이야.”그 말은 의미가 분명했다.민준이 직접 이야기를 퍼뜨리지 않아도 된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익숙한 냄새가 먼저 닿았다.커피가 아니라, 커피가 오래 머문 자리의 냄새였다.하루 이틀 사이에 바뀔 수 없는 공기였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끈을 묶는 손길이 잠시 느려졌다가 다시 속도를 찾았는데, 매듭을 완전히 당긴 뒤에도 손이 한 번 더 머물렀다.단단히 묶어두는 습관은, 이미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진상은 카운터 뒤에서 잔을 닦고 있었다.닦을 필요가 없는 잔이었다.투명했고, 얼룩도 없었다.그럼에도 그는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문질렀다.“오늘은 조
잔의 수위는 더 이상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마시지 않아도, 시간은 잔을 비워 갔다.술집 안의 시간은 사람의 선택과 상관없이 흘렀다.진상은 물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그는 그 반을 오래 바라봤다.채우지 않은 선택과, 비우지 않은 선택 사이에서 사람은 자주 멈춘다.“이상하죠.”그가 말했다.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충동은 아니었다.“뭐가요.”이수는 잔을 내려놓은 채로 물었다.목소리는 낮았고, 끝이 흐리지 않았다.“이런 날은…”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말을 삼킨다기보다, 말을 고르는 얼굴이
남자들은 너무 완벽한 것 앞에서 경계한다.완벽은 함정의 냄새가 난다.대신 ‘조금 과한 듯한 자연스러움’이 필요했다.그래야 자기 욕망을 자기 탓으로 돌릴 수 있다.이수는 파운데이션을 얇게 올렸다.눈매를 길게 뺐다.립은 선명하지만 젖지 않게. 향수는 거의 쓰지 않았다.향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나중에 문제가 된다.옷은 고민하지 않았다.고민이 길어지면 마음이 늦어진다.이수는 얇은 니트와 코트를 걸쳤다.너무 화려하지 않은 색.하지만 얼굴은 눈에 띄게.거울 앞에서 한 번 더 확인했다.표정은 비워두었다.웃는 얼굴
비는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급하지도, 망설이지도 않는 속도였다.우산을 쓴 사람보다 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어차피 젖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얼굴들 같았다.구급차가 교차로를 가르며 지나갔다.사이렌 소리는 빗소리에 섞여 둔해졌고,사람들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어떤 소음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오후였다.이수는 미용실 안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정확히 말하면, 들었다기보다는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진동을 느꼈다.장미 미용실.간판의 ‘장미’는 오래전에 색이 바랬다.붉었던 글자는 연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