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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무대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7 09:06:53

행사장은 익숙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인사를 나누고, 자기 이름이 불리는 순간에만 조금 더 크게 고개를 들었다.

태성에게 이런 자리는 늘 비슷했다.

통제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공간.

자신이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

그래서 처음엔 그 여자를 보았을 때도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서이수.

미용실에서 몇 번 마주쳤던 여자.

서윤의 곁에 조용히 서 있던 얼굴.

말수가 적고, 눈을 오래 마주치지 않던 사람.

자기 집 안에서, 자기 이름이 나오지 않아야 할 순간마다

이상하게 끼어 있던 존재.

그 여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

태성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건 인정이기 때문이다.

대신 시선만 아주 짧게, 그러나 정확하게 주었다.

초대받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어색하지 않았고, 과하게 튀지도 않았다.

이 자리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 그 점이 가장 불쾌했다.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표정은 흐트러지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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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66. 안도라는 도피

    준혁의 집은 정리되어 있었다. 늘 그랬다.가구의 위치도, 조명의 밝기도, 저녁 시간의 리듬도 크게 달라진 적이 없었다.그는 그 안정감을 사랑이라고 불렀다.혹은 책임이라고.현관에 들어서자 불은 켜져 있었고, 부엌에서는 미세한 기름 냄새가 났다.아내는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준혁을 보자마자 시계를 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하는 대신 표정을 먼저 살폈다.“오늘도 늦었네.”그 말은 책망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준혁은 외투를 벗어 걸며 고개를 끄덕였다.“일이 좀.”그 말은 습관처럼 나왔다.생각하지 않아도 입이 먼저 기억하는 문장이었다.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묻지 않는다는 건 이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포기라는 뜻이기도 했다.식탁 위에는 이미 식어 있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데우면 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그 사이의 공백이 오늘따라 길게 느껴졌다.“요즘,”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집에 잘 안 있는 것 같아서.”준혁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았다.“그렇진 않아.”말은 빠르게 나왔지만, 시선은 식탁을 보지 않았다.“그래?”아내는 그를 보며 물었다.“그럼 내가 예민한 건가.”그 문장은 질문이 아니었다.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준혁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그런 건 아니고.”그는 설명하려다 말았다.설명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하는 말인데,지금은 무엇을 설득해야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아내는 그 침묵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됐어.”그녀는 말했다.“피곤하면 그럴 수 있지.”그 말은 문을 닫는 소리처럼 들렸다.준혁은 자신이 그 문을 닫아버린 건지,아니면 닫히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던 건지 분간하지 못했다.그날 밤, 그는 잠들지 못했다.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았지만, 머릿속에는 낮의 공간들이 차례로 떠올랐다.회사, 차 안, 그리고 장미 미용실.그 공간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아무도 그에게 왜냐고 묻지 않는다는 것.그 사실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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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61. 공백

    장미 미용실은 문을 닫아두고 있었다.휴무를 알리는 종이는 유리문 안쪽에 붙어 있었고,그 종이는 바람이 스치면 아주 조금 흔들렸다.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공간은 소리가 적은 대신, 생각이 크게 울렸다.이수는 의자에 앉아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가위를 쥐지 않는 손,머리를 만지지 않는 손.오늘은 그 손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는 날이었다.만들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사람은 그제야 자기가 무엇에 기대서 버텨왔는지를 보게 된다.하빈은 창가에 서서 전화 한 통을 마쳤다.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말을 해야 할 때와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정확할 때를 구분하는 사람의 자세였다.“끝났다는 말.”이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난 아직 잘 모르겠어.”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동의라기보다는 이해였다.“사건은 끝났지.”그가 말했다.“근데 여파는 늘 늦게 와.”이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여파. 사건보다 조용하지만, 사건보다 오래 남는 것.이번 건은 그 여파가 어디까지 번질지 아직 가늠하기 어려웠다.“서윤 씨는?”“정리 중이야.”하빈의 대답은 짧았다.정리라는 단어 안에는 많은 시간이 들어 있었다.감정을 접고, 생활을 재배치하고, 사람을 다시 규정하는 시간.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과정에 자기가 더 끼어들 이유는 없다고 느꼈다.이번 에피소드에서 자기 역할은 이미 끝났으니까.잠시 침묵이 흘렀다.그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불편하지 않은 침묵은 다음 일을 생각하게 만든다.“다음은.”이수가 말했다.“조금 다를 것 같아.”하빈은 이수를 바라봤다.그 말의 방향이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 있다는 걸 그는 바로 알아차렸다.“난이도.”“아니.”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위험.”그 단어가 미용실 안에 남았다.이번 에피소드의 남자들은 모두 선을 넘는 방식이 느리고 조용했다.다음은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이수의 감각을 건드리고 있었다.“그럼.”하빈이 말했다.“이번엔 설계부터 다시 짜

  • 불륜해드립니다.   11. 좁혀진 거리

    문을 닫는 소리가 카페 안에 잠시 남았다.손님이 나간 뒤의 소리였다.그 소리는 언제나 비슷했고, 그래서 특별하지 않았다.특별하지 않은 소리들이 쌓일수록, 하루는 빨리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다.이수는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이미 깨끗한 테이블이었지만, 한 번 더 닦았다.손을 움직이고 있으면 생각이 덜 생겼다.생각이 줄어들면, 결정도 늦춰진다.진상은 계산대 아래를 정리하다가 시계를 봤다.시간을 확인하는 동작이 자연스러웠다.이미 몇 번이나 본 시계였다.“오늘은.”그가 말을 꺼냈다.어제와 비슷한 시작이었다.그러나 어

  • 불륜해드립니다.   10. 탐색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익숙한 냄새가 먼저 닿았다.커피가 아니라, 커피가 오래 머문 자리의 냄새였다.하루 이틀 사이에 바뀔 수 없는 공기였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끈을 묶는 손길이 잠시 느려졌다가 다시 속도를 찾았는데, 매듭을 완전히 당긴 뒤에도 손이 한 번 더 머물렀다.단단히 묶어두는 습관은, 이미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진상은 카운터 뒤에서 잔을 닦고 있었다.닦을 필요가 없는 잔이었다.투명했고, 얼룩도 없었다.그럼에도 그는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문질렀다.“오늘은 조

  • 불륜해드립니다.   9. 거리

    잔의 수위는 더 이상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마시지 않아도, 시간은 잔을 비워 갔다.술집 안의 시간은 사람의 선택과 상관없이 흘렀다.진상은 물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그는 그 반을 오래 바라봤다.채우지 않은 선택과, 비우지 않은 선택 사이에서 사람은 자주 멈춘다.“이상하죠.”그가 말했다.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충동은 아니었다.“뭐가요.”이수는 잔을 내려놓은 채로 물었다.목소리는 낮았고, 끝이 흐리지 않았다.“이런 날은…”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말을 삼킨다기보다, 말을 고르는 얼굴이

  • 불륜해드립니다.   8. 느려진 생각

    잔의 수위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수는 잔을 다시 내려놓았다.테이블에 닿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 공간에서는 충분히 또렷했다.진상은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마시지도, 내려놓지도 않은 채로. 손가락이 유리 표면을 따라 미끄러졌다.의미 없는 동작처럼 보였지만, 의미 없는 동작은 대개 마음을 숨길 때 나온다.“원래…”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이번엔 서두가 길었다.“이렇게 늦게까지 밖에 있는 거, 잘 안 해요.”설명 같았고, 변명 같았고, 고백 같았다.이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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