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을 묶는 방법이 틀렸어. 그렇게 묶어도 꽉 조이지 못하고 풀어질 거야. 이쪽에 넣고 잡아당기면...”성유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묶고 있었다. 그런데 박한빈이 옆에서 계속 쫑알대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시끄러워요! 그 입 좀 다물면 안 돼요?”박한빈은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알겠어.”장난기 섞인 어조로 대답하고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이 웃는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한빈 씨, 왜 그렇게 웃는 거예요?”“아무것도 아니야. 다 묶었어?”박한빈은 말하면서 손목을 움직였다. 그러자 성유리가 겨우 묶은 끈이 허무하게 풀렸다.그는 움찔하더니 성유리의 눈치를 살폈다.화가 난 그녀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끈을 그에게 던졌다.“안 놀래요.”성유리가 안방에서 나가려고 하자 박한빈은 그녀를 붙잡아서 침대에 눕혔다.한 손으로 두 사람의 손목을 끈으로 묶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자, 이러면 되잖아.”아무리 움직여도 끈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성유리는 박한빈의 손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하얗고 긴 손가락에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박한빈은 큰손으로 성유리의 손을 꼭 잡았다.성유리는 심장이 점점 빨리 뛰었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조금 전의 일을 생각해 보니 어쩐지 화가 나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조금 전에 누구랑 전화한 거예요?”“해청시에 있는 직원이 보고할 것이 있다면서 전화한 거야.”박한빈은 성유리를 지그시 쳐다보면서 계속 이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했다. 만족스러운 듯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박한빈은 차분하게 말했다.“내일 가봐야 할 것 같아.”“해청시에 가는 건가요?”“맞아.”성유리는 걱정되어서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설윤지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설윤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박한빈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아마 해청시를 떠난 것 같아. 그 사이에 회사 내부
끈을 풀려고 안간힘썼지만 움직일수록 더 꽉 묶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성유리는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몇 시간이 지났지만 박한빈은 안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박한빈은 서재에서 업무를 보는 것 같았다. 만약 회사에 갔다면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성유리는 기다리다가 지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손목을 묶은 끈이 점점 팽팽해지면서 빨간 자국을 남겼다.끈의 재질은 부드러웠지만 손목을 꽉 조이고 있었다.성유리는 손목에 통증이 느껴져서 미간을 찌푸렸다. 박한빈이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몇 시간 동안 물도 마시지 못하고 묶여 있으니 짜증이 났다.조금 있다가 박한빈이 돌아오면 몇 배로 돌려줄 것이다.가사도우미를 부르려던 성유리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꾹 참았다.옷 단추가 여러 개 풀리고 손목이 묶여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한편, 박한빈은 서재에서 업무를 처리했다. 선진 그룹에 갑자기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회사 내부에서 주주와 고위 인사들이 설윤지를 내쫓으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그들은 회사 대표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히고 싶어서 계획을 짜고 있었다.만약 노수호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이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노수호는 백지환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모든 것을 잃은 백지환은 이성을 잃고 칼로 그를 찔렀다.노수호는 백지환이 자극을 받고 물러날 줄 알았지만 눈이 뒤집힌 채 겁 없이 달려들었다.회사 내부에 관한 일을 처리하기도 전에 노수호는 목숨을 잃었다. 그 뒤로 선진 그룹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회사 분위기가 미묘했다.박한빈은 설윤지가 알아서 잘 처리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그는 설윤지를 과대평가했던 것이다. 설윤지는 어디에 갔는지 찾을 수 없었고 해청시에 있는 설윤지 비서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이 상황을 통제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박한빈은 다른 회사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그동안 쌓아왔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질지도
안방에 들어간 후, 박한빈은 성유리를 침대에 던졌다. 너무 세게 던진 바람에 성유리는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한빈 씨!”화가 난 성유리는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박한빈은 그녀를 덮치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아까 나한테 참 잘했다고 했지?”박한빈이 그 말을 꺼낼 줄 몰랐던 성유리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성유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칭찬 말고 다른 걸 받고 싶어.”성유리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한빈은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을 잡고 말했다.“내 마음대로 해도 돼?”그는 성유리한테 애원하는 것 같았지만 허락받기도 전에 단추를 풀고 있었다.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알아듣게 말해요. 뭘 원하는 거예요?”박한빈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성유리는 그의 반응을 보고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박한빈은 성유리의 손을 꽉 잡고는 입을 열었다.“당신도 아주 좋아할 거야.”“좋아하지 않으면 어쩔 거예요?”“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왜 성급하게 굴어?”박한빈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잘했다고 칭찬해 주면 되는 줄 알았어?”“그러면 뭘 원하는지 자세하게 말해봐요.”“곧 알게 될 테니 기다려줘.”박한빈은 서랍에 숨긴 검은색 끈을 꺼내면서 미소를 지었다. 성유리는 매일 안방에서 잤지만 서랍 안에 이런 물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박한빈한테 물었다.“언제 이런 걸 샀어요?”“얼마 안 되었어. 지난주에 사서 서랍에 넣었어.”“지난주...”성유리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뭐라고 말하려 했다. 박한빈은 그녀의 손목을 올리고는 끈으로 천천히 묶기 시작했다.그는 혹여나 성유리가 다칠까 봐 조심스럽게 묶었다. 성유리는 심장이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다.“한빈 씨...”“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파.”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몰라 했다.“너무한 거 아니에요?”
성유리는 박한빈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왜 그래요?”“고맙다고 말하면 다야?”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한빈 씨는 하늘의 아빠잖아요. 아빠로서 아내와 딸이 화해하게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박한빈은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성유리는 그를 지그시 쳐다보면서 물었다.“한빈 씨, 내 말이 틀렸어요?”“당신 말이 맞아.”그는 이를 악물면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성유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박한빈의 손등을 토닥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아까 말했다시피 당신은 정말 좋은 아빠예요. 당신 덕분에 화해하게 되어서 기뻐요. 그리고 죽도 맛있게 끓였고요.”성유리는 말하면서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박한빈은 그녀의 손을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유리는 그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는 손을 거두었다. 박한빈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아서 그런지 차가워 보였다.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앉아 있었다. 성유리는 피식 웃더니 그가 요리한 음식을 집어서 그릇에 놓아주었다.“얼른 먹어요.”박한빈은 고개를 숙이고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을지 말지 고민했다. 입에 넣고 씹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박한빈은 음식을 집어서 그녀의 그릇에 놓아주었다. 성유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음식을 먹었지만 곧바로 표정이 변했다.그녀는 입에 넣었던 음식을 뱉고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조미료를 잘못 넣었더니 이렇게 되었어.”박한빈은 계속 씹고 있던 음식을 뱉으면서 말했다. 성유리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이걸 먹이려고 지금까지 연기한 거예요?”박한빈은 성유리한테 장난을 치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다. 성유리는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나도 이제야 알았어.”성유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부드럽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음식에 일부러 다른 조미료를 넣었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당신이 한 음식이라면 맛없어도 다 먹을 수 있어요.”그녀의 말에 박한빈은
성유리는 위층 복도에서 성하늘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를 본 성하늘이 멈칫하더니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숙였다.성유리는 허리를 숙이고 지그시 쳐다봤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성하늘은 성유리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그러고는 재빨리 성유리를 껴안고 흐느껴 울었다.“엄마, 정말 죄송해요.”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성하늘은 서럽게 울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성유리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하늘아, 엄마가 미안해. 네가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나서 판단해야 했는데 엄마가 너무 성급했어. 엄마도 잘못했어.”성유리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성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 서럽게 울었다.그 모습을 본 성유리도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성하늘은 민망했는지 눈물을 닦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성유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배고프지 않아? 아빠는 주방에서 죽을 끓이고 있어. 같이 내려가서 먹을래?”성하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러면...”“이만 방에 들어가서 쉴래요.”“그래. 하늘의 곁에 있어 줄까?”그 말에 성하늘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성유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방에 가서 쉬고 있어.”성하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돌아가더니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달려와서 성유리를 꼭 껴안았다.그녀는 있는 힘껏 성유리를 안고는 고개를 숙인 채 재빨리 방으로 돌아갔다.성유리는 사랑스러운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이때 박한빈이 아래층에서 성유리를 불렀다. 성유리는 고개를 돌리고 그를 지그시 쳐다보았다.“다 되었으니 얼른 내려와.”“저는 이미 저녁을 먹었어요.”성유리와 박한빈은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박한빈은 조금 전에 씻은 야채를 죽 안에 썰어 넣지 않고 간단한 요리를 했다.성유리는 저녁 식사 때 입맛이 없어서 많이 먹지 못했다. 성하
“남현호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거지?”박한빈은 성유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우리 하늘은 가진 것이 아주 많지만 남현호는 먹고 살기도 힘들잖아. 하늘이 남현호를 이해해 주지 못하고 포용해 주지 못했어. 그래서 저도 모르게 화가 난 거야?”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아이를 동정할 수도 있지만 하늘의 입장을 생각해 보지 못했어.”박한빈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당신이 남현호를 동정하든 관심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하늘한테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누군가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온전히 하늘의 몫이야.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하늘에게 주입하면서 똑같이 행동하라고 하면 안 되지. 하늘이 아는 남현호와 당신이 알고 있는 남현호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잖아.”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뭐가 다른데요?”박한빈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건 나도 잘 몰라. 남현호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어. 비록 열 몇 살밖에 안 된 아이지만 거짓말할 줄 알고 연기할 줄도 알아. 하늘은 남현호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실망했겠지. 그래서 당신이 남현호를 관심하는 걸 싫어하는 거야.”성유리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문뜩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그녀는 성유정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성유정은 성유리한테만 난폭하게 굴었고 다른 사람 앞에서 온순한 척 연기했다.성유리는 성유정의 두 얼굴을 알고 난 후에 집안 어른한테 얘기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성유리는 국자를 내려놓고는 박한빈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가 갑자기 돌아서는 바람에 박한빈은 깜짝 놀랐다.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박한빈은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물었다.“왜 그래?”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유리야, 혹시 내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한 거야?”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그런 게 아니에요.”성유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한빈은 걱정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