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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6화

Author: 임공
“진아.”

지하는 갑자기 몸을 숙여 그녀의 귀 옆에 입술을 가까이 댔다.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단단히 눌러 말하듯 속삭였다.

“잘 들어. 무조건 의사 말 잘 듣고, 끝까지 버텨서 꼭 나와야 해. 반드시 멀쩡하게 나와야 해.”

“안 그러면... 나, 혼자 늙어 죽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한테 나 자신을 줘 버릴 거라고. 네가 그걸 두고 볼 수 있겠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진아의 눈물은 한순간에 쏟아져 내렸다.

목이 메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절대 안 돼! 나 꼭 잘 나올 거야! 다른 사람이랑 잘해보겠다고? 그런 생각은 아예 접어! 당신은 내 거야!”

“말이나 못 하면.”

지하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기다릴게.”

간호사의 재촉이 들려왔다.

꼭 맞잡고 있던 두 사람의 손은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진아는 천천히, 조금씩 수술실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지하는 그 모습을 눈도 떼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실 문이 닫히려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진아! 아까 한 말, 다 거짓말이야! 너 꼭 잘 나와야 해! 안 그러면... 나 이 평생 제대로 못 살아! 네가 나 혼자 이렇게 남겨둘 리 없잖아, 그렇지?”

진아는 세게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어떡하지... 내 삶과 죽음은, 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로 정해지는 게 아닌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늘이시여, 만약 기도가 닿을 수 있다면... 제발 부탁이에요.’

‘살아서, 다시 저 사람을 보게 해 주세요!’

...

수술실 앞에서 지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하루 종일을 지켰다.

점심 무렵, 임병지와 채숙희는 여러 번의 권유 끝에 잠깐 식사를 하러 갔지만, 지하는 끝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유건이 다가와 말했다.

“야, 수술이 그렇게 빨리 끝날 리가 없어. 빨라야 오후에나 나올 텐데, 잠깐 나갔다가 와도 괜찮아.”

“괜찮아.”

지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안 먹어.”

“지하야...”

유건이 다시 말하려는 순간, 시연이 유건의 팔을 잡았다.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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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15화

    항암 치료가 끝난 뒤, 진아는 정밀 검사받았다.결과가 나왔고, 담당 의사는 효과가 꽤 좋다고 말했다. 그 말을 전하며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수술 날짜를 정했다.주말이었다.원래 주말에는 수술실을 잡지 않는 게 원칙이었지만, 진아를 위해 하루를 따로 비워 특별히 배정했다.수술 전날, 지하와 진아는 서로 마주 앉아 면도기를 들고 상대의 머리를 밀어주고 있었다.진아는 지하의 반질반질해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미 푸르스름한 머리카락이 짧게 올라와 있었다.“진짜 빨리 자란다.”사실, 진아의 머리는 더 밀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지하와 달랐으니까. 몸 전체가 서서히 쇠약해지고 있다는 걸... 진아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나는 아주 짧게 자르잖아.”지하가 말했다.진아의 기분이 가라앉은 걸 알아차린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그 말 못 들어봤어? 머리는 자를수록 더 빨리 자란다고.”“그래?”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반신반의했다.“응.”지하가 웃으며 말했다.“여자들은 보통 머리를 길게 기르니까 잘 모르지.”그는 진아의 손을 잡았다.“내 수염만 봐도 그래. 매일 깎으니까 오전에 밀어도 저녁이면 다시 올라와. 다음 날 아침에 안 깎으면 밖에 못 나갈 정도야.”진아는 고개를 갸웃했다.“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하가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지하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 주는데, 어떻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기분 좋아해야 해. 더, 더 좋아져야 해.’그날 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웠다.진아는 그의 품에 기대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이... 우리가 같이 자는 마지막 밤일까?”수술이 끝나면, 어떤 상황이 되든 지하는 더 이상 진아 곁에 누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말도 안 되는 소리.”지하는 얼굴을 굳히고 낮게 말했다.“수술하고 회복하는 동안만 잠깐 그런 거야. 네가 좋아지면 다시 나랑 자야지. 우리 평생 같이 누울 시간 많은데.”“그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14화

    진아가 도움을 청하듯 지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야?”지하는 이미 그녀를 놓고 일어서 있었지만, 여전히 손은 잡은 상태였다. 그는 다가온 사람을 향해 가볍게 웃었다.“설아.”그제야 진아도 고개를 들어 보았다. 온 사람은 바로 오설아였다.설아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지하, 진아 씨.”지하는 고개를 숙여 진아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오설아야. 기억나? 우리 친구.”“...”진아는 눈을 크게 뜬 채 오설아를 향해 웃었다.“미안해요. 제가 아파서 예전 일은 기억이 잘 안 나요.”“괜찮아요.”설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대답했지만, 솔직히 조금 놀란 기색은 감추지 못했다.“지하 씨, 앉으시라고 해.”진아가 말했다.“응.”지하는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오설아에게 권했다.“설아, 앉아.”“아니야.”설아는 고개를 저으며 가져온 과일 바구니와 꽃을 내려놓았다.“진아 씨가 아프다고 들어서 잠깐 얼굴만 보러 왔어. 그럼... 난 이만 갈게.”“그래.”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와줘서 고마워.”“별말씀을.”설아는 예의상 웃으며 눈앞의 다정한 남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그녀 역시 인생의 굴곡을 충분히 겪어본 사람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온 만큼, 모를 리가 없었다.남녀 사이의 감정이란 참으로 미묘하다.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설아는 느낄 수 있었다. 지하와 진아는 이혼 전보다도 오히려 더 가까워져 있었다.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느슨함과 안정감이 있었다.지하와 진아는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이해했고, 단단히 손을 맞잡고 있었다.모든 연인이 이 경지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어떤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이런 반쪽을 만나지 못한다.그 순간, 설아는 마침내 마음이 풀렸다.“지하, 진아 씨. 나 갈게.”“응.”지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지하 씨, 배웅 좀 해줘.”진아가 손을 놓으며 그를 가볍게 밀었다.“빨리 다녀와!”“어.”재촉받아 지하는 설아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13화

    “그런데...”‘지금은 이미 이혼한 사이잖아... 더 이상 진아의 남편이 아닌데...’채숙희는 다급해진 나머지, 그 말을 거의 내뱉을 뻔했다.“‘그런데’ 라니요?”지하가 말하기도 전에 오히려 진아가 먼저 급해졌다. 그녀는 어머니의 말을 끊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채숙희를 올려다봤다.“지하 씨가 한 말 중에 뭐가 틀렸는데요?”진아는 지하의 손을 꼭 붙잡았다.“지하 씨도 입지 말라잖아요. 엄마도 나 억지로 시키지 마세요! 어차피 나랑 같이 있는 사람은 지하 씨잖아요.”채숙희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딸의 모습을 보니, 정말 지하만 있으면 세상 든든한 모양이었다.“장모님.”지하도 말을 보탰다.“그냥 제 뜻대로 두세요. 저는 힘도 있고, 충분히 돌볼 수 있습니다.”무엇보다도 그는 진아가 억지로 하는 게 싫었다. “알았다.”채숙희는 체념한 듯하면서도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둘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괜히 나쁜 사람 되겠네.”채숙희가 나가고 나서, 지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진아와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댔다.“당신... 나 귀찮아?”진아는 입술을 내밀며 물었다. 목소리에 힘이 조금 부족했다.“여보.”지하는 일부러 점잖게 말했다.“그런 말은 좀 부적절하지.”“왜?”진아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깜박였다.“어디가?”“귀찮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그런데 일어나지도 않은 ‘혐의’를 나한테 뒤집어씌우면 곤란하지.”지하는 괜히 토라진 척했다.“내 마음 상하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너한테 잘해주지 않았어?”“아, 화내지 마.”진아는 고개를 들고 지하의 턱에 살짝 입을 맞췄다.“혹시 당신이 말하기 민망할까 봐 그랬던 거야. 사실은...”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자신이 조금 고집을 부렸다는 걸.진아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이렇게까지 아픈 상황에서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이 중요한 걸까?아니면 가족이 느낄 부담이 더 중요한 걸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12화

    “장모님, 진아 왜 그래요?”지하는 시선을 진아에게로 옮기는 순간, 단번에 알아차렸다.“진아!”그는 두세 걸음에 달려와 진아를 끌어안았다.“장모님, 제가 진아 돌볼게요. 죄송한데, 깨끗한 옷 좀 가져다주실래요?”“아, 그래!”채숙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나갔다.지하는 진아를 안아 욕실로 들어갔다.“무슨 일이야?”진아는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진아...”지하는 목이 꽉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씻자.”“아침부터 씻어?”그때 진아는 지하의 눈가가 붉게 젖어 있는 걸 보았다.‘울어?’‘무슨 일이길래, 이 사람이 울 정도로?’곧 진아는 알게 되었다.몸 어딘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숙였을 때, 바지가 이미 젖어 있었다.“나...?”진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멍하니 지하를 올려다봤다.“나 왜 이래?”‘설마... 나 바지에...?’“진아.”지하는 눈이 찢어질 듯 아파져 왔다. 그녀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항암 치료 후유증이야.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씻으면 돼.”“응...?”진아의 눈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씻으면 된다고...?”“그래.”지하가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채숙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가져온 옷을 의자 위에 올려두고, 두 사람을 한 번 바라본 뒤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문을 닫고 나갔다.“자.”지하는 진아를 다시 안아 샤워 부스로 들어갔고, 곧바로 샤워기를 틀었다.따뜻한 물이 쏟아지자, 진아는 눈을 꼭 감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흑... 흑...”“진아.”지하는 가슴이 찢어질 듯 그녀를 끌어안았다.“울지 마. 울지 말자.”“나... 몰랐어...”진아는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정말 몰랐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알아. 나도 알아.”“흑...”진아는 얼굴을 들었다.“내 몸인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611화

    아침 일찍, 담당의가 회진을 왔다.“상태는 꽤 괜찮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좋아요.”“이번 치료 과정이 끝나면 한 번 검사를 해봅시다. 결과를 보고 괜찮으면, 그때 수술 여부를 결정해도 될 것 같고요.”“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사가 나간 뒤, 진아가 치료받으러 간 사이를 틈타 지하는 따로 의사에게 불려 사무실로 들어갔다.“앞으로 사모님께서 몇 가지 증상을 겪으실 수도 있어서요. 미리 대표님께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실 수 있도록요...”지하는 순간 몸이 굳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말씀해 주세요.”...며칠째 이어지는 항암 치료. 그 사이 채숙희는 지하 대신 이틀 정도 병원에 와서 돌보겠다고 했지만, 지하는 매번 거절했다.채숙희는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진아를 돌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자네도 사람이잖아. 쇠로 만든 것도 아니고, 진아를 위해서라도 몸 챙겨야지.” “장모님, 저도 알아요.”지하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아직 괜찮아요, 장모님... 그냥 제가 진아 곁에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 그래요. 이 정도는 허락해 주세요. 정말 힘들어지면, 그땐 제가 먼저 말씀드릴게요.”그 말에 채숙희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예전에는 지하에게 분명 불만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잠시 후, 채숙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겠다. 대신 힘들면 꼭 말해. 그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야.”환자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네, 걱정하지 마세요.”이미 딸과는 이혼한 사이였지만, 지하는 여전히 ‘장모님’이라고 불렀고, 채숙희도 더는 그 호칭을 바로잡지 않았다.다음 날 이른 아침, 채숙희는 딸과 전 사위를 위해 음식을 챙겨 병원에 왔다.“장모님.”지하는 안쪽 병실에서 나와,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채숙희는 바로 알아듣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진아 아직 안 깼니?”“네.”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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