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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옆집은 새로 이사를 왔는지 낯선 사람이었다. 상대는 유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기에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흔쾌히 보조배터리를 빌려주었다.

전원을 연결하자 도어락 전원이 켜졌고 유시아는 비밀번호 4자리 0416을 눌렀다.

예전에 유시아가 직접 설정했던 비밀번호였다. 아는 점쟁이가 잡아준 결혼식 날짜였고 그녀도 이 숫자들을 행운의 숫자로 여기고 항상 마음속에 새겼다.

문이 빠르게 열렸고 유시아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지가 날리며 부패한 냄새가 나는 것이 마치 천년도 더 된 폐가에 들어온 것 같았다.

집안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천장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붉은 장미와 바람 빠진 풍선들이 매달려 있었고, 커피 테이블 위에는 과일과 케이크가 완전히 썩어 벌레가 들끓었다. 바닥에는 사탕 포장지와 과일 껍질이 널려 있었다. 침실의 침대에는 그녀가 결혼했을 때 장만한 시트가 여전히 깔려 있었다.

3년 전 4월 16일, 그녀가 3년 동안 좋아한 임재욱이 드디어 장미꽃을 손에 든 채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아야, 나랑 결혼해 줘.”

“나랑 함께 가자. 평생 죽을 때까지 널 사랑할게.”

프러포즈하는 임재욱은 달콤하고 멋있었다. 그녀를 속여 구름 위로 둥둥 떠다니게 하고서는 지옥으로 끌어 내렸다.

그날은 유시아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또 가장 슬픈 하루였다.

임재욱은 단 한 순간도 그녀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과거의 모든 달콤함과 사랑은 단지 그녀를 속이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했다.

유시아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흰 침대 시트를 보고 입가에 슬픈 미소를 지었다. 손을 뻗어 침대 시트를 끌어당겨 구겨 부엌 쓰레기통에 던졌다.

심하게 몰려오는 피곤함에 유시아는 더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지 않고 침대에 누워 빠르게 잠에 들었다.

자기 집이니 조금 더럽고 지저분해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누군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임재욱은 약간의 결벽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집은 더럽고 지저분했으며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는 환기를 시키려고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 그렇지 않으면 썩은 냄새 때문에 질식할 것 같았다.

주방 창문을 열 때 임재욱은 무의식적으로 쓰레기통을 바라보았고 귀신에 홀린 듯 쓰레기통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을 뻗어 하얀 시트를 꺼낸 그는 동시에 그때 두 사람이 찍은 사진과 그가 준 작은 선물들이 버려져 있는 걸 발견했다.

아마도 그를 사랑했기에 그녀는 쉽게 만족했다. 그는 선물을 고를 때 한 번도 직접 고르지 않고 비서에게 시켜서 사 오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행복해했다.

예전에 그녀는 이 선물들을 보물처럼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 선물들을 보는 것이 행복해요.”

때때로 임재욱은 그녀가 귀엽게 느껴졌다.

만약 그녀가 유병철의 딸이 아니었다면 그는...

임재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물건들을 다시 쓰레기통에 던져 마음속의 잡념들을 억지로 차단했다.

이 세상에 만약은 없었다.

그는 설령 신서현이 다치거나 불구가 되어도 다시 살아 돌아오길 바랐다. 그랬다면 유시아와도 엮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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