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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5 10:35:23

도진의 서늘한 일갈이 트레이닝 룸의 벽을 날카롭게 때렸다.

세라는 도진의 살기 어린 눈빛에 압도당해 뒷걸음질을 쳤다.

“도, 도진 쌤…… 전 그냥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리려고 한 건데, 왜 그렇게 정색을 하세요?”

세라는 억지 눈웃음을 지으며 도진의 탄탄한 팔에 손을 얹으려 했다.

하지만 도진은 닿기도 전에 세라의 손목을 서늘하게 피해 버렸다.

“루미너스 VVIP 전담 룸은 담당 트레이너와 예약 회원 외에는 센터 대표조차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최고 등급 보안 구역입니다. 센터 규정 잊었습니까?”

도진은 지체 없이 벽면에 설치된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 네, VVIP 인포데스크입니다.

“차도진입니다. 3번 룸에 타 파트 프리랜서 강사가 무단 침입해 회원 레슨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데스크 매니저 즉시 올려보내서 강사 퇴실 조치 및 계약 위반 징계 절차 밟으십시오.”

- 아, 넷! 죄송합니다, 팀장님!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인터폰 너머로 당황한 총괄 매니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

세라의 얼굴이 수치심과 공포로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센터 내 최고 에이스이자 전 국가대표 출신 VVIP 총괄 팀장인 차도진의 말 한마디면, 프리랜서 강사에 불과한 자신의 계약은 당장 내일이라도 파기될 수 있었다.

“……두 분, 정말 너무하시네요.”

세라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소율과 도진을 번갈아 쏘아보고는 하이힐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달칵.

문이 닫히고, 트레이닝 룸 안에는 다시 깊고 차분한 정적이 찾아왔다.

도진은 천천히 소율을 돌아보며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불미스러운 일로 레슨에 방해를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사모님. 센터 차원에서 확실하게 재발 방지 및 징계 처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러나 소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엷지만 단단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니에요.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선생님.”

“……예?”

“고마워요. 혼자 있으면 괜히 내가 잘못했나 싶었을 거예요. 방금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했네요.”

소율의 눈동자는 더 이상 불안에 떨던 상처 입은 피해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자신의 두 발로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 싸우겠다는 결의가 그 안에서 푸른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도진은 그런 소율을 말없이 응시했다.

늘 차갑게 굳어 있던 도진의 입가에 아주 옅고 따스한 호선이 스쳐 지나갔다.

“수업 이어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조금 더 쉬셔도 됩니다.”

도진은 바벨과 덤벨이 정갈하게 정렬된 프리웨이트 존으로 소율을 안내했다.

“오늘은 하체 중심축 확립과 둔근, 코어 밸런스를 잡습니다. 스쿼트와 루마니안 데드리프트 동작입니다.”

소율이 바벨 앞에 섰다.

도진이 소율의 등 뒤로 다가와 골반 양옆과 요추 3번 위치에 커다란 손바닥을 얹었다.

그의 묵직하고 뜨거운 체온이 소율의 척추 라인을 따라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발바닥 삼각점을 지면에 단단히 뿌리박으세요. 복압을 채우고, 흉추 펴고, 늑골 닫고…… 천천히 고관절을 뒤로 접으며 내려갑니다.”

도진의 묵직한 가슴팍이 소율의 등 뒤에 밀착될 듯 가까워졌다.

그의 깊고 고요한 호흡과 서늘한 숲 향기가 소율의 온 신경을 전율케 했다.

“흣…….”

둔근과 대퇴이두근이 팽팽하게 늘어나며 묵직한 자극이 차올랐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미세요. 올라오실 때 숨 내쉬고요. 무거우면 바로 말씀하세요.”

도진의 단단한 손길이 소율의 골반 중심을 흔들림 없이 받쳐주었다.

지면을 강하게 밀어내며 일어서자, 온몸의 코어가 하나로 조여지며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내가…… 온전히 내 힘으로 일어서고 있어.’

남편의 인정 따위가 없어도, 소율은 제 힘으로 온전히 서 있었다.

***

1시간의 고강도 레슨을 마친 뒤, 소율은 샤워를 마치고 루미너스 로비로 걸어 나왔다.

한층 가벼워진 몸과 우아하게 정렬된 자세.

지나가던 회원들과 직원들이 소율의 달라진 분위기에 저절로 시선을 빼앗겼다.

주차장으로 향하던 소율의 가방 안에서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인은 남편 최민우였다.

소율은 심호흡을 한 뒤 담담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어, 소율아. 오늘 저녁에 시간 비워둬.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민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만했다.

- 우리 브랜드 최대 투자사인 대명인베스트 박 대표님 부부랑 호텔 한정식집에서 저녁 약속 잡았거든. 당신도 오랜만에 얼굴 비춰야 하니까 튀지 않는 옷으로 단정하게 입고 7시까지 나와.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얌전히 앉아만 있어.

자신을 '쇼윈도 인형'으로 세워두려는 남편의 뻔뻔한 요구.

하지만 박 대표의 아내인 강 이사장은 국내 디자인계의 최고 권위자이자, 5년 전 소율의 초기 브랜딩 작업을 극찬했던 인물이었다.

남편은 알지 못하는 소율만의 무기.

소율의 붉은 입술이 서늘하게 호선을 그렸다.

“그래, 알았어. 늦지 않게 갈게.”

소율은 전화를 끊고 차에 올랐다.

소율은 차 문을 닫고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강 이사장은 자신의 작업을 기억할까. 남편은 식사 내내 자기 공을 늘어놓을 테고, 소율에게는 웃고 있으라는 눈짓을 보낼 것이다.

그 눈짓을 받으면 늘 하던 대로 입을 다물게 될까 봐, 아직은 겁이 났다.

소율은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초기 로고 작업의 이름을 적었다. 누가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일. 자신이 직접 한 일부터 잊지 않기로 했다.

저녁 7시. 이번에는 민우의 아내라는 소개 뒤에 숨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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