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도진의 서늘한 일갈이 트레이닝 룸의 벽을 날카롭게 때렸다.
세라는 도진의 살기 어린 눈빛에 압도당해 뒷걸음질을 쳤다.
“도, 도진 쌤…… 전 그냥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리려고 한 건데, 왜 그렇게 정색을 하세요?”
세라는 억지 눈웃음을 지으며 도진의 탄탄한 팔에 손을 얹으려 했다.
하지만 도진은 닿기도 전에 세라의 손목을 서늘하게 피해 버렸다.
“루미너스 VVIP 전담 룸은 담당 트레이너와 예약 회원 외에는 센터 대표조차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최고 등급 보안 구역입니다. 센터 규정 잊었습니까?”
도진은 지체 없이 벽면에 설치된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 네, VVIP 인포데스크입니다.
“차도진입니다. 3번 룸에 타 파트 프리랜서 강사가 무단 침입해 회원 레슨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데스크 매니저 즉시 올려보내서 강사 퇴실 조치 및 계약 위반 징계 절차 밟으십시오.”
- 아, 넷! 죄송합니다, 팀장님!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인터폰 너머로 당황한 총괄 매니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
세라의 얼굴이 수치심과 공포로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센터 내 최고 에이스이자 전 국가대표 출신 VVIP 총괄 팀장인 차도진의 말 한마디면, 프리랜서 강사에 불과한 자신의 계약은 당장 내일이라도 파기될 수 있었다.
“……두 분, 정말 너무하시네요.”
세라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소율과 도진을 번갈아 쏘아보고는 하이힐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달칵.
문이 닫히고, 트레이닝 룸 안에는 다시 깊고 차분한 정적이 찾아왔다.
도진은 천천히 소율을 돌아보며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불미스러운 일로 레슨에 방해를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사모님. 센터 차원에서 확실하게 재발 방지 및 징계 처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러나 소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엷지만 단단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니에요.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선생님.”
“……예?”
“고마워요. 혼자 있으면 괜히 내가 잘못했나 싶었을 거예요. 방금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했네요.”
소율의 눈동자는 더 이상 불안에 떨던 상처 입은 피해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자신의 두 발로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 싸우겠다는 결의가 그 안에서 푸른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도진은 그런 소율을 말없이 응시했다.
늘 차갑게 굳어 있던 도진의 입가에 아주 옅고 따스한 호선이 스쳐 지나갔다.
“수업 이어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조금 더 쉬셔도 됩니다.”
도진은 바벨과 덤벨이 정갈하게 정렬된 프리웨이트 존으로 소율을 안내했다.
“오늘은 하체 중심축 확립과 둔근, 코어 밸런스를 잡습니다. 스쿼트와 루마니안 데드리프트 동작입니다.”
소율이 바벨 앞에 섰다.
도진이 소율의 등 뒤로 다가와 골반 양옆과 요추 3번 위치에 커다란 손바닥을 얹었다.
그의 묵직하고 뜨거운 체온이 소율의 척추 라인을 따라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발바닥 삼각점을 지면에 단단히 뿌리박으세요. 복압을 채우고, 흉추 펴고, 늑골 닫고…… 천천히 고관절을 뒤로 접으며 내려갑니다.”
도진의 묵직한 가슴팍이 소율의 등 뒤에 밀착될 듯 가까워졌다.
그의 깊고 고요한 호흡과 서늘한 숲 향기가 소율의 온 신경을 전율케 했다.
“흣…….”
둔근과 대퇴이두근이 팽팽하게 늘어나며 묵직한 자극이 차올랐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미세요. 올라오실 때 숨 내쉬고요. 무거우면 바로 말씀하세요.”
도진의 단단한 손길이 소율의 골반 중심을 흔들림 없이 받쳐주었다.
지면을 강하게 밀어내며 일어서자, 온몸의 코어가 하나로 조여지며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내가…… 온전히 내 힘으로 일어서고 있어.’
남편의 인정 따위가 없어도, 소율은 제 힘으로 온전히 서 있었다.
***
1시간의 고강도 레슨을 마친 뒤, 소율은 샤워를 마치고 루미너스 로비로 걸어 나왔다.
한층 가벼워진 몸과 우아하게 정렬된 자세.
지나가던 회원들과 직원들이 소율의 달라진 분위기에 저절로 시선을 빼앗겼다.
주차장으로 향하던 소율의 가방 안에서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인은 남편 최민우였다.
소율은 심호흡을 한 뒤 담담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어, 소율아. 오늘 저녁에 시간 비워둬.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민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만했다.
- 우리 브랜드 최대 투자사인 대명인베스트 박 대표님 부부랑 호텔 한정식집에서 저녁 약속 잡았거든. 당신도 오랜만에 얼굴 비춰야 하니까 튀지 않는 옷으로 단정하게 입고 7시까지 나와.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얌전히 앉아만 있어.
자신을 '쇼윈도 인형'으로 세워두려는 남편의 뻔뻔한 요구.
하지만 박 대표의 아내인 강 이사장은 국내 디자인계의 최고 권위자이자, 5년 전 소율의 초기 브랜딩 작업을 극찬했던 인물이었다.
남편은 알지 못하는 소율만의 무기.
소율의 붉은 입술이 서늘하게 호선을 그렸다.
“그래, 알았어. 늦지 않게 갈게.”
소율은 전화를 끊고 차에 올랐다.
소율은 차 문을 닫고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강 이사장은 자신의 작업을 기억할까. 남편은 식사 내내 자기 공을 늘어놓을 테고, 소율에게는 웃고 있으라는 눈짓을 보낼 것이다.
그 눈짓을 받으면 늘 하던 대로 입을 다물게 될까 봐, 아직은 겁이 났다.
소율은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초기 로고 작업의 이름을 적었다. 누가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일. 자신이 직접 한 일부터 잊지 않기로 했다.
저녁 7시. 이번에는 민우의 아내라는 소개 뒤에 숨지 않을 생각이었다.
1년 뒤, 가을의 초입.청담동의 아틀리에 한소율과 루미너스 웰니스 타워에는 올해 글로벌 웰니스·오트쿠튀르 대상 수상을 알리는 표지가 걸려 있었다.기업 가치 1조 원을 평가받은 뒤, 브랜드는 120개 주요 도시의 거점으로 판매와 운영을 넓혔다. 소율의 책상에는 여전히 확인할 원단과 서류가 함께 놓였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마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오후 4시, 8층 집무실.소율은 유럽 3호점 착공에 관한 결재를 마치고 펜을 내려놓았다. 버건디 블라우스의 소매를 정리하며 의자에서 일어나려던 때 문이 열렸다.“엄마!”여섯 살이 된 하린이가 노란 원복 차림으로 들어왔다. 소율은 몸을 낮추고 두 팔을 벌렸다. 아이가 안겨오자 웃으며 등을 토닥였다.“유치원에서 뭐 했어?”하린이는 소율에게 안긴 채,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율은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눈높이를 맞췄다. 뒤에서 들어온 도진이 가방을 내려놓았다.그는 소율의 책상 위를 한 번 보고 물었다.“오늘 일은 끝나셨습니까?”“네. 방금 마지막 결재했어요.”“그럼 아래층 예약한 시간에 내려가시죠. 하린이는 지은 씨하고 뮤지컬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아이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잠시 뒤 지은이 찾아와 하린이의 손을 잡았다.“엄마, 아빠. 운동하고 저녁에 만나!”하린이가 손을 흔들었다. 소율도 손을 흔들고 지은에게 부탁한다는 눈인사를 했다. 문이 닫힌 뒤에도 아이가 복도에서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잠깐 들렸다.***7층 프라이빗 트레이닝 룸.소율은 검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창 너머의
청담동 루미너스 타워 8층 그랜드 볼룸.아시아 메디컬 웰니스·하이엔드 패션 대상 시상식과 기념 갈라가 열렸다. 현장에는 바이어와 업계 관계자 등 400여 명이 참석했고, 100여 개국 매체에 관련 자료가 전달됐다.소율은 버건디 백리스 드레스를 입고 무대 옆에 섰다. 도진이 턱시도 소매를 정리하며 곁으로 왔다. 그녀는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의 이름이 호명됐다.단상으로 걸어가며 소율은 객석의 직원들을 봤다. 익숙한 얼굴들이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녀는 마이크 앞에서 준비한 종이를 펼쳤다.“감사합니다. 현장에서 매일 사람을 만나고, 옷과 프로그램을 고치고, 다시 확인하는 분들과 함께 받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그녀는 팀의 이름을 차례로 말했다. 원단과 패턴을 다듬는 사람, 매장에서 손님을 맞는 사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일이 짧은 인사 속에 들어갔다.“제가 처음 일로 돌아왔을 때, 혼자서는 다 할 수 없다는 말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도움을 구하고 다른 의견을 듣는 것이 일을 더 낫게 만든다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소율은 곁의 도진을 봤다.“앞으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일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그녀가 인사를 마치자 박수가 났다. 협회 위원장이 최우수 브랜드 대상 트로피를 건넸다. 소율은 두 손으로 받고 도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트로피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녀가 손을 조금 바꾸어 잡자 도진이 아래를 받쳐주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단상에서 내려오며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들어보니 무겁네요.”“저도 조금 놀랐습니다.”직원들이 다가와 축하했다. 소율은 트로피를 함께 들어보자며 내밀었다
제주 가족 서약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째.소율은 커피 냄새를 따라 침실 밖으로 나왔다. 한남동 집의 거실에는 아침 볕이 들어와 있었다. 주방에서 도진이 토스트를 접시에 옮겼다.“일어났어요?”그가 평소보다 편한 말투로 물었다. 소율은 식탁 앞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보카도와 스크램블에그, 자몽 주스가 놓여 있었다.“하린이는요?”“가방 챙긴다고 들어갔습니다. 인형도 데려가겠다고 해서 얘기 중이고요.”소율은 아이 방 쪽을 보고 웃었다. 도진이 가까이 와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얼굴을 들자 입술에도 짧게 닿았다.“아침부터요?”“인사입니다.”“인사가 길어지겠는데요.”소율이 웃으며 그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하린이가 가방을 멘 채 나왔다.“엄마, 아빠! 다 챙겼어!”가방 지퍼 사이로 인형 귀가 나와 있었다. 도진이 무릎을 굽혀 아이를 봤다. 하린이는 그 시선을 눈치채고 가방을 뒤로 돌렸다.“인형은 집에서 기다리기로 하지 않았어?”“작은 것만.”소율은 아이 곁에 앉아 오늘 유치원에 가져가도 되는 날인지 물었다. 하린이는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인형은 소파에서 기다리기로 했다.도진은 가방을 식탁 옆에 세워주었다. 하린이는 인형이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오늘 끝나고 아빠가 데리러 와?”“응. 약속한 시간에 갈게.”“아이스크림도?”도진이 소율을 봤다. 그녀는 아이에게 밥을 다
제주 서귀포 해안의 풀빌라.소율은 전복죽 냄새에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바다가 보였고, 거실에서는 하린이가 소라 껍데기를 테이블에 놓는 소리가 났다.주방의 도진이 그녀를 보고 웃었다.“일어나셨습니까?”“하린이도 일어났네요.”“조금 전에요. 여기서 소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아이가 껍데기를 귀에 대고 소율에게도 들어보라고 했다. 소율은 옆에 앉아 귀를 가까이했다. 하린이는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도진이 식탁에 전복죽과 빵, 한라봉 주스를 놓았다. 소율은 뜨거운 죽을 한 숟갈 떠 입으로 불었다. 하린이는 빵을 잘라 죽에 넣어도 되는지 물었다.“조금만 넣어봐. 마음에 안 들면 더 안 넣으면 되니까.”소율이 말하자 아이는 작은 조각부터 넣었다. 도진은 자기 그릇에도 조금 넣어 맛을 봤다. 하린이가 그 표정을 살피고 웃었다.***오전 10시, 풀빌라 앞 해변.하린이가 소라 껍데기를 들고 도진에게 달려왔다.“아빠, 여기서도 소리 나!”도진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어제 들은 호칭이 오늘도 이어졌다. 그는 아이 앞에 몸을 낮추고 껍데기를 받아 귀에 댔다.“하린이도 들어볼까?”아이와 번갈아 들어본 뒤 도진이 목말을 태워주었다. 하린이는 높아진 자리에서 바다를 보고 소리쳤다.“엄마! 바다가 더 커졌어!”소율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도진은 젖은 모래가 시작되는 곳 앞에서 멈췄다. 아이를 내려놓고 세 사람은 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모래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도진이 젖은 모래를 모아 올리고 소율이 옆면을 다졌다. 하린이는 조개껍데
제주의 작은 프라이빗 비치.흰 꽃으로 장식한 아치 뒤로 파도가 밀려왔다. 서울에서 부부의 서약을 한 두 사람은 이번에는 하린이와 함께 가족의 약속을 남기기 위해 섰다.지은과 강태욱, 가까운 팀원 등 십여 명이 자리를 지켰다. 화려한 조명 대신 해 질 무렵의 빛이 모래 위로 길게 놓였다. 첼로 소리가 바람에 섞였다.하린이는 분홍 화관을 쓰고 꽃바구니를 들었다. 꽃잎을 한 줌 집었다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조금 내려놓았다. 지은이 눈을 맞추며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말했다.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치 쪽을 봤다.“엄마, 아빠! 나 준비됐어!”도진이 그대로 멈췄다. 하린이는 자기가 어떤 말을 했는지 곱씹지도 않고 바구니를 높이 들었다. 소율은 도진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그가 아이를 보고 웃었다.“응. 기다리고 있어.”하린이는 꽃잎을 뿌리며 걸었다. 바람에 몇 장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자 아이가 잡으려 했다. 지은이 그대로 두어도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하린이는 다시 앞을 보고 천천히 걸었다.소율은 흰 실크 드레스의 자락을 들고 도진과 나란히 걸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잡은 손이 평소보다 조금 떨려 소율이 웃으며 물었다.“왜 이렇게 긴장했어요?”“방금 하린이가 부른 말 때문에요.”소율의 눈가도 뜨거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더 꼭 잡았다.아치 아래에서 세 사람이 나란히 섰다. 도진은 준비한 종이를 펴고 먼저 읽었다.“나는 하린이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듣겠습니다. 같이 놀기로 한 약속을 잊지 않겠습니다. 약속을 바꿔야 할 때는 먼저 설명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겠습니다.”하린이가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도진은 소율을 보고 말을
토요일 오전, 한남동 펜트하우스의 다이닝 룸.식탁 위에 제주 항공 일정과 리조트 평면도, 짧은 서약서가 놓였다. 소율과 도진은 하린이를 가운데 앉히고 바닷가 사진을 함께 봤다.서울에서 많은 사람 앞에 서약했던 두 사람은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 조용한 약속을 남기기로 했다. 하린이는 사진 속 모래를 가리켰다.“여기서 꽃 뿌려?”“네가 하고 싶으면.”소율이 답했다. 도진은 아이가 들고 온 꽃바구니를 받아 바닥에 내려주었다. 하린이는 빈 바구니에서 꽃잎을 꺼내는 시늉을 하며 거실을 걸었다.“엄마, 봐봐. 이제 안 쏟아.”소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아이가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이번에는 하린이도 하고 싶은 말 해보자.”“무슨 말?”“엄마랑 삼촌한테 바라는 거.”하린이가 진지하게 생각했다. 소율은 종이를 앞으로 당겨 아이의 말을 적을 준비를 했다. 아이는 한참 후에 쉬는 날 같이 놀아달라고 말했다.도진은 그것부터 적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율은 작은 글씨로 받아썼다. 길고 근사한 서약보다 아이가 금방 기억할 수 있는 말들이 먼저 적혔다.***오후 2시, 청담동 아틀리에 피팅 룸.소율은 제주에서 입을 드레스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전부터 그려둔 스케치를 바탕으로 직접 마무리한 흰 실크 드레스였다. 앞선은 간결했고, 등은 깊게 파여 있었다.도진은 블랙 턱시도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커튼이 열리자 그가 다가왔다. 소율은 치맛자락을 조금 들어 걸어 보였다.“서울에서 입은 것보다 가볍죠?”“걷기도 편하십니까?”&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