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남편 회사의 영업팀 에이스로 불리는 여직원은 대형 계약을 따내느라 며칠째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내가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새우 세 마리를 까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곧장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님, 이혼합의서 준비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 이혼하려고요.” 며칠 밤을 새워 가며 계약에 매달렸던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고생한 아린 씨한테 새우 세 마리 좀 까준 게 그렇게 잘못이야? 그것 때문에 이혼하겠다고?”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View More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지난번 계약 자리에서 만났던 협력사 대표 이도훈과 함께 들어왔다.“김아린 씨가 누구죠?”그 말을 듣자,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아린에게 향했다.“이 사람이요!”경찰은 김아린의 신원을 확인한 뒤 곧장 다가갔다.“김아린 씨, 회사 자금 횡령 혐의로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경찰이 김아린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자 김아린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김아린이 다급해졌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힌 채 고영훈을 향해 소리쳤다.“영훈 씨, 나 좀 살려 줘요! 우리 아준이 생각해야죠. 아직 어린데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요! 제발 나 좀 도와줘요!”하지만 고영훈에게는 김아린을 신경 쓸 여유 따위 없었다.고영훈은 줄곧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손을 뻗어 나를 붙잡으려던 고영훈은 내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손을 거둬들였다.눈시울을 붉힌 고영훈이 후회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윤아, 내가 잘못했어...”고영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김아린은 대학 졸업하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났어. 그날 내가 술에 취해서... 전부 실수였어. 아이가 생긴 것도 나중에 알게 됐어. 김아린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아이를 낳았거든. 내가 사랑한 사람은 너뿐이야...”나는 결국 허탈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살면서 들어 본 말 중 가장 우스운 소리였다.“그러니까 당신 말은...”나는 고영훈을 똑바로 바라봤다.“나를 사랑하면서 다른 여자랑 잤고,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만들었고, 그 아이를 7년 동안 아빠 노릇까지 하며 키웠다는 거네?”고영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나는 더 이상 고영훈을 상대하지 않고 조현우 변호사에게 이혼합의서를 건네받았다.그리고 그대로 고영훈 앞에 내밀었다.“서명해.”하지만 고영훈은 한참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내 목소리는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서명하기 싫으면 하지 마. 법정에서 만나면 되니까.”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덧붙였다.“어차피 당신한테 돌아갈 재산은 한 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나는 어릴 때부터 고영훈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내가 고영훈을 오빠가 아닌 남자로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그 뒤로 고영훈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고영훈이 새로 나온 운동화를 한 번 눈여겨보면 용돈을 모아 사 줬고, 호날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혼자 비행기까지 타고 해외로 가서 친필 사인을 받아 왔다. 스포츠카를 좋아한다는 말에는 부모님을 졸라 차까지 사 줬다.잘생긴 데다 공부까지 잘했던 고영훈은 학교에서 유명한 인기남이었고, 그를 좋아하는 여자애들도 많았다.나는 고영훈이 나를 여동생으로만 생각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선을 넘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맞은 여름방학, 평소 밖으로 나돌며 온갖 아찔하고 위험한 액티비티를 즐기던 고영훈이 갑자기 달라졌다.내 말을 고분고분 들으며 집에만 머물렀고, 시도 때도 없이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심지어 내가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나갈 때도 굳이 따라왔다.고영훈은 나를 지켜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혹시라도 내가 몰래 연애를 시작할까 봐 감시하는 거라고 했다.그렇게 말했던 바로 그날 밤이었다.고영훈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문을 열자 고영훈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나를 바라봤다.“연애하고 싶으면... 차라리 나랑 해.”잠시 머뭇거리던 고영훈이 덧붙였다.“다른 놈이랑 하지 말고. 너무 불안하니까.”그렇게 우리는 부모님 몰래 4년 동안 캠퍼스 커플로 지냈다.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부모님을 찾아가 고영훈을 좋아한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털어놨다.처음에는 부모님도 결혼을 반대했다.하지만 나는 석 달 내내 부모님을 졸랐고, 급기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이라고 우겨서야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나는 미칠 만큼 고영훈을 사랑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고영훈을 위해 회사 경영까지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됐다. 내가 꿈꾸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내 삶의 모든
아빠가 들고 있던 건 고영훈과 김아린이 함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그러다 정다은이 들고 있는 사진을 본 순간, 아빠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아빠는 말없이 고영훈에게 다가가 뺨을 세게 후려쳤다.순식간에 주변이 고요해졌다.“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오히려 서늘하게 울렸다.“열 살 때부터 내 자식이라 생각하고 키웠다. 네가 우리 가족과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느낄까 봐 하윤이와 똑같이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어. 회사에 들어온 뒤에는 네 능력을 믿고 경영까지 맡겼고.”아빠는 분노를 억누르듯 잠시 말을 멈췄다.“그런데 네가 내 믿음에 이런 식으로 보답해?”아빠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하윤이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여? 하윤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면서도 지금까지 우리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있었던 거냐?”아빠는 고영훈을 싸늘하게 노려봤다.“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고영훈은 눈시울을 붉힌 채 다급하게 변명했다.“아버님, 죄송합니다. 제가 하윤이한테 잘못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이건 다 김아린 씨가 먼저 저를 유혹해서 그런 겁니다! 매일 저한테 의도가 다분한 메시지를 보냈고 계속 저를 유혹했어요. 저는 하윤이를 사랑합니다. 정말 잠깐 정신이 나갔던 것뿐이에요.”김아린은 순간 얼어붙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영훈을 쳐다봤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아린에게 향했다. 조금 전까지 김아린을 두둔하던 눈빛에는 어느새 분노와 배신감이 가득했다.“그렇게 아린 씨 편을 들어줬는데, 진짜 불륜이었던 거야?”“능력도 있는 사람이 대체 왜 유부남이랑 바람을 피워? 제정신이야?”“김아린 씨도 남편이랑 아들이 있다면서요? 자기 가정까지 있는 사람이 불륜을 저질렀으면 더 나쁜 거 아니냐고요...”“...”평소 도도하고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김아린이 그런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발끈하며 입을 열었다.“저는 그런 적 없...”하지
내 말을 듣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아린에게 쏠렸다.“사모님, 또 저한테 누명을 씌우시는 거예요? 제가 대체 사모님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김아린이 울먹이자, 직원들이 앞다퉈 두둔하고 나섰다.“대표님이 김아린 씨가 입사한 뒤로 여직원들의 소지품을 집에 가져간 적이 없다고 해서 두 사람이 무슨 사이라는 증거는 아니잖아요. 김아린 씨는 원래 도도하기로 유명하고, 업무 외에는 말도 잘 안 하는 사람이에요.”“맞아요. 평소에도 일밖에 모르잖아요. 업무 이야기 아니면 대표님한테 말 한마디 붙이지 않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그런 사이겠어요!”“앞에 있던 비서 아홉 명도 대표님이랑 아무 사이 아니었다잖아요. 그러니 김아린 씨도 당연히 아니죠! 저도 직장 생활 오래 했지만 이렇게 공과 사가 분명하고 원칙적인 사람은 처음 봤어요. 지난번에는 대표님이 업무상 실수하니까 면전에서 따지기까지 했다니까요.”“그러니까요. 두 사람 평소에 서로 못마땅해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인데, 무슨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예요!”...사람들이 모두 자기편을 들자 김아린은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김아린은 고개를 돌려 나에게 따져 물었다.“이제 제 얘기는 그만하시죠? 정작 사모님은 조현우 변호사랑 호텔에 방까지 잡았잖아요! 그것도 커플들이 주로 찾는 호텔의 더블룸으로요!”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거기가 커플들이 주로 찾는 호텔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더블룸인 건 또 어떻게 알았죠?”나는 김아린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다 곧바로 물었다.“회사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사진, 김아린 씨가 찍은 거죠? 제 뒤를 밟은 거예요?”김아린은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황급히 해명했다.“저, 저는 제 결백을 증명하려고 그런 거예요! 대표님이 저한테 새우 세 마리 까 줬다는 이유로 갑자기 이혼하겠다고 나오는 것부터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 때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따라간 거라고요! 그런데 진짜 두 분이 바람피우는 증거를 잡게 될 줄은 몰랐죠!”직원들이 다시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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