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7년을 사귄 남자친구는 나와 혼인신고를 하기로 한 약속을 99번이나 취소했다. 처음에는 새로 뽑은 여비서가 사무실에 갇혔다며 급히 회사로 돌아갔다. 나는 혼인신고를 하러 간 구청 앞에서 새벽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섯 번째에는 함께 신고서를 작성하던 중, 여비서가 거래처 고객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남겨진 나는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됐다. 그 후로 우리가 어느 날 혼인신고를 하기로 하든, 여비서에게는 어김없이 그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 결국 마음을 완전히 접은 나는 떠나기로 했다. 내가 남안시를 떠난 뒤, 송재원은 무려 5년 동안 미친 사람처럼 나를 찾아다녔다.
View More나는 미소를 지었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고객이 난처해하자 직원에게 눈짓해 안쪽으로 안내하게 했다.나는 송재원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우린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송재원, 여기서 소란 좀 피우지 마.”한 달 남짓 못 본 사이 그는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널 찾으려고 얼마나 오래 헤맸는지 알아? 그런데 넌 왜 나한테 기회조차 안 주는 거야...”“기회는 이미 백 번이나 줬어. 앞으로 천 번, 만 번을 더 줘야 해? 고은서 일만이 아니잖아. 네 아버지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너도 알잖아.”송재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네가 떠난 날 밤에 집으로 돌아가서 달래 주려고 했어. 그런데 이미 사라지고 없더라...”나는 헛웃음을 쳤다.“그만 좀 해. 내가 진짜 떠나 버렸으니까 인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잖아.”“내가 안 떠났으면 그날 밤에도 고은서랑 함께 있었겠지.”송재원은 입술만 달싹일 뿐 대답하지 못했다.“나, 나는... 은서를 경찰에 넘겼어.”고은서와는 이미 이혼했고 모든 연락도 끊었다며,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변명했다.“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정말 잘못했어...”그가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피했다.“더는 역겨운 짓 하지 마.”차갑게 내뱉은 말에 송재원은 한 걸음 물러섰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 모습을 보니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상처를 받아도 아무 말도 못 했던 그때의 나...‘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저런 모습이 정말 처량하게 보이는구나...’나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돌아섰다.친구처럼 지내던 고객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누구예요?”“좀 집요하게 구는 전 남자친구예요.”“그런데 저 정장은 자기를 위해 맞춤 제작한 거라던데요?”나는 망설임 없이 끄덕였다.“맞아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그때는 사랑했으니까요. 지금은 아무 상관 없지만요.”“원하시면 저 옷에 들어간 개인적인 장식은 전부 빼고 고객님 취향에 맞춰 새로 만들어 드릴게요.”
한편 내가 남안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마중 나오겠다고 했던 엄마도 졸음을 이기지 못해 먼저 잠들어 있었다.하지만 익숙한 집 문을 열고 불을 켜자 곧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우리 딸, 왔니?”엄마가 다정한 목소리로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이었다.나는 달려가 엄마를 꼭 안았다.“엄마...”엄마도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돌아왔으면 됐다. 정말 잘 왔어. 배고프지는 않니?”나는 고개를 저었다.“그럼 얼른 쉬어. 네 방은 미리 깨끗하게 치워 두라고 했어.”엄마를 더 붙잡고 이야기하기가 미안해 고개만 끄덕였다.방은 7년 전 떠나던 날과 똑같았다.시간이 그 순간 멈춘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갓 대학에 들어갔던 시절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이틀을 쉬고 나서는 작업실을 여는 일에 몰두했다.송재원의 회사에서 일하며 이미 많은 인맥을 쌓아 둔 덕분에 작업실 문을 열자 예전 고객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기 시작했다.엄마는 자신의 고객들이 올 때마다 내 작업실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우리 서연이가 얼마나 똑똑하고 솜씨가 좋은데요.”고객들도 입을 모아 칭찬했다.“어머니 젊으셨을 때랑 똑같네요.”엄마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나는 그제야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달았다.조그만 작업실에 드나드는 고객들이 하나같이 거물급 인사였다.한 달 뒤에는 엄마와 함께 이곳저곳 산에 오르며 시간을 보냈다.산 위에서 나란히 노을을 보던 엄마가 나를 위로했다.“서연아,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아. 사랑도 억지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다. 하지만 마음이 맑고 단단하다면 분명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가끔은 엄마가 네 아빠와 헤어진 일 때문에 네가 사랑을 그렇게 붙잡으려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어른에게는 사랑 말고도 소중한 게 많거든. 다만 네 아빠와 나 사이에는 사랑밖에 없었어.”“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아직도 네 존재조차 모르지. 하지만 이제 와 알 필요도 없단다.”“우린 이
송재원은 뒤를 돌아보자마자 고은서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네가 무슨 낯짝으로 나를 찾아와?”고은서는 멍해졌다가 곧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친구들 SNS에 대표님이 여기 있다는 글이 올라와서 바로 달려온 건데, 왜 저한테 이래요?”“일단 저랑 돌아가요.”고은서가 송재원을 일으키려 손을 잡았다.하지만 송재원은 손을 뿌리치고 그녀를 밀어냈다.“꺼져. 네 동정 따위 필요 없어.”“네가 회사 단체방에서 입만 함부로 놀리지 않았어도 내가 이 지경이 됐겠어?”고은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무슨 말이에요? 누가 저에 대해 뭐라고 했어요?”송재원은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대화 내용을 고은서의 앞에 내밀었다.“내가 틀린 말 했어? 처음부터 네 생활을 책임져 주기로 했을 때, 서연이 앞에서는 절대 티 내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잖아!”“그런데 넌 뭘 했어?”“회사에서 네 직위를 이용해 일부러 서연이 앞에서 나랑 무슨 사이인지 자랑했잖아!”“직원들이 알려 주지 않았으면 난 끝까지 몰랐을 거야!”고은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휴대전화를 낚아채려 했지만 송재원이 막았다.“누가 알려 준 거예요?”“대표님, 제가 잠깐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랬어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송재원은 급기야 무릎을 꿇고 비는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저를 버리지 말아요. 정말 가족들한테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고은서는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울었다.하지만 송재원은 심서연도 찾지 못하고 반지마저 잃어버린 터라 이미 마음이 얼어붙어 있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네가 몰래 단체방에서 헛소리만 안 했어도 서연이가 상처받을 일은 없었어. 상처받지 않았으면 나를 떠날 일도 없었겠지!”송재원은 나직이 말하더니 갑자기 고은서의 목을 움켜쥐었다.“다 너 때문이야!”고은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송재원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건 처음이었다.비서에 불과했지만 그동안 원하는 것은 뭐든 손에 넣었다.혼인신고만 마치면 떳떳하게 송재원 곁을 차지할 수
심서연의 행방을 알아내기 전, 송재원은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가사도우미는 맡은 일을 마치고 퇴근한 뒤였다.그는 오늘 고은서 때문에 내뱉었던 말들을 몇 번이고 후회했다.텅 빈 침실을 보자 차마 오래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정장을 벗고 곧장 회사로 돌아가 밤을 보내기로 했다.집에 온 적도 없고, 심서연이 사라진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속였다.그저 회사에서 야근 중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그러다 책상 위 액자에 시선이 닿았다.언제부터였을까. 심서연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고은서의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그 사진을 본 심서연이 왜 바꿨느냐며 따졌던 게 언제였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그때 송재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사진 한 장 가지고 왜 그래?”하지만 지금은 그 순간 심서연의 얼굴이 얼마나 창백했는지 선명하게 떠올랐다.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송재원은 서랍을 뒤져 맨 아래 칸에서 오래된 사진을 찾아냈다.기억이 났다.연애 4주년이자 회사를 설립하던 날 찍은 사진이었다.당시 송재원은 아직 풋풋했고, 사진 속 심서연은 침착한 미소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그토록 소중한 사진을 서랍에 처박아 먼지나 쌓이게 하다니.그러고 보니 연애 5주년에는 약혼을 했다.순간 송재원은 아침에 버렸던 반지가 떠올랐다.곧바로 사무실 밖 쓰레기통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비워진 뒤였다.청소 담당 직원에게 묻자 쓰레기를 아래층으로 가져갔다고 했다.“대표님, 지금 가 보시면 아직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쓰레기차는 밤 12시에 오거든요.”송재원은 망설임 없이 뛰어 내려갔다.시간은 밤 11시 반이었지만 거리는 여전히 북적였다.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쓰레기통 쪽을 향했다.비싼 정장을 입은 남자가 쓰레기통 안에 상반신을 들이밀고 뒤지고 있었다.송재원은 몇 번이나 헛구역질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괜찮은지,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하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제가 저지른 일이니까 제가 찾아야 해요...”“반지만 찾으면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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