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보고는 어부 마을의 빈 집에서 들었다. 무한 어귀의 물안개가 창호지 너머로 스며드는, 그물 냄새 밴 방이었다.겨울이 문턱을 넘고 있었다. 아침이면 그물에 살얼음이 앉았고, 물안개는 낮에도 걷히지 않았다. 안개 너머의 물의 도시는 지붕 끝만 희미했다. 일 년 전 처음 보던 미로가 이제는 통째로 — 김이 오르는 향로처럼 보였다.남궁완은 보름 새 여윈 낯으로 말을 이었다. 세가의 연금을 뒷문으로 빠져나와, 가마도 시비도 없이 혼자 어귀까지 내려온 여인이었다. 부채는 접힌 채 무릎에 있었다. 그 여인이 부채를 잊고 앉은 것을 운설은 처음 보았다."보름 전부터 물지기들이 우물을 돌아요. 정화 의식이라면서 — 흰 가루를 한 줌씩. 새 당주의 영입니다. 성민들은 아무렇지 않아요. 마시고, 밥 짓고, 빨래하고. 몸에 탈이 없으니 다들 고마워하지요.""임자 있는 강한테만 듣는 약이니까." 휘월이 말했다. 노인의 낯이 등잔 빛에 깊게 패어 있었다. "양을 봐라. 상시로, 낮게. 성에 드는 순간부터 귀가 흐려지게 — 그리고 정한 날에 크게 한 번. 판이 보이는구나."판은 이랬다.요녀가 성안의 물에 독을 풀었다는 말이 먼저 풀렸다. 보름을 그 말이 자라, 이제 무한의 골목마다 물독에 부적이 붙었다. 그리고 집법당이 그 독을 씻어 준다는 연극이 우물마다 돌았다. 두려움을 심은 손이, 두려움을 걷어 주는 손 노릇까지 하는 것이다."처분의 단은 물 위에 세워요." 남궁완이 말했다. "폐막의 그 단을 — 그 자리에 다시. 동지에, 만인이 보는 앞에서.""대량 살포의 손은 벌써 성안에 있어요. 향선(香船)이라고 — 동지 물맞이에 향불 실은 배를 띄우는 풍속이 있죠. 그 배들이 올해는 유난히 많이 들어왔대요. 뱃바닥에 실린 것이 향만은 아닐 거고요.""초대장이군." 혈비가 말했다."예. 한겸의 목은 미끼고요. 요녀가 구하러 들면 — 성안의 물이 통째로 향로가 되는 거죠. 만인 앞에서 강이 날뛰고, 도시가 젖고, 그 자리에서 처단까지. 격문이 참말이 되는 무대예요."방이
물소리는 해가 다 지고서야 돌아왔다.멀리서 오는 손님처럼 왔다. 처음에는 귀 끝에 물방울 하나. 다음에는 실개천. 이윽고 낮게 흐르는, 평생을 함께 온 그 소리가 제자리에 앉았다.운설은 나루의 어둠 속에서 오래 숨을 골랐다. 세상은 도로 온전해졌는데, 온전해진 세상이 전과 같지 않았다. 한 번 끊겨 본 소리는 언제든 다시 끊길 수 있는 소리가 되어 있었다.돌아온 소리의 밑에, 다른 소리 하나가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언니의 물소리였다. 끊긴 자리를 건너오던 그 소리를, 그녀는 안에서 들었다. 새벽 여울 소리. 언 강가에서 갓 풀려난, 아직 서툴고 가는 물소리. 그 서툰 소리가 제 안의 어둠을 더듬어 내려와 날뛰는 것의 고삐를 쥐어 주었다."언니."혈비는 뱃전에 앉아 있었다. 등을 곧게 편 채였는데, 그 곧음이 힘으로 세운 곧음이라는 것을 의녀의 눈은 보았다. 낯이 초의 빛깔이었다."빌려주는 쪽이 소리를 반은 태운다고 — 들었습니다.""새로 난 강이다. 반을 태워 봐야 실개천이지." 언니는 아우를 보지 않고 답했다. "덧없는 셈은 하지 마라. 셈을 하려거든 저들 것을 해라."저들의 셈은 휘월이 놓았다. 노인은 향로의 재를 종이 위에 쏟아 놓고, 등불 아래에서 그것을 오래 들여다보았다."오늘 것은 암습이 아니다. 잰 것이다. 향 한 줌에 몇 모금, 몇 모금에 반 시진 — 저들은 오늘 그 값을 얻어 갔다.""다음에는 잰 값대로 오겠군요.""더 많이, 더 촘촘히." 노인이 재 묻은 손끝을 물에 씻었다. "물의 도시에서. 골목마다 물이고 다리 밑마다 물인 곳에서, 끊긴 강이 날뛰면 어찌 되는지 — 저들은 그 그림을 만인 앞에 걸 작정이다. 요녀가 무한을 부수는 그림을. 그러면 처형에 명분이 아니라 곡성이 붙지."베는 것으로 모자라 만인의 눈앞에서 실증하려는 판. 운설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열여덟 해를 고치는 데 쓴 손이, 저들의 종이 위에서는 부수는 손으로 미리 그려져 있었다.그날 밤으로 길의 법이 다시 섰다. 사백이 정했다.먹는 것과 마
암습은 무한을 사흘 앞둔 강나루에서 왔다. 칼도 화살도 없이 — 저녁 국밥과 향로 하나로.해 질 녘, 삯배를 흥정하는 사이였다. 나루의 주막에서 국밥이 나왔고, 김이 오르는 국그릇에 숟가락이 닿기 전에 — 사수가 코를 찡그렸다."향이 이상해."주막의 향로였다. 침향 연기가 낮게 깔리는 것이 나루의 여느 주막 풍경인데, 그 연기의 밑에 다른 냄새가 있었다. 마른 풀 삭은 내. 갈대 종이에서 나던 그 옅은 내."숨을 막아라! 향로다!"휘월의 외침이 반 박자 빨랐고, 반 박자 늦었다.일행은 그릇을 엎고 문을 박찼다. 밖으로 구르며 운설은 제 안에 귀를 기울였다 — 그리고 세상이 이상해졌다.강이 조용했다.처음에는 무슨 일이 났는지도 몰랐다. 세상이 갑자기 반쪽이 되었는데 어느 반쪽이 없어졌는지 짚이지 않는 — 그런 어지러움이었다.사나워진 것이 아니었다. 조용했다. 태어나 한 번도 끊긴 적 없는 소리가 — 낮게 흐르며 평생을 함께 온 그 물소리가 — 들리지 않았다."현."제 목소리가 남의 것 같았다. 부르고 나서야 제가 그를 불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그녀의 낯을 보고 한눈에 알았다."들이마셨소?""조금 — 아주 조금."조금이었다. 향로 곁에 앉지도 않았고, 문가의 바람 드는 자리였다. 한데 그 조금으로 세상의 반이 지워졌다. 물소리 없는 세상. 강 없는 몸. 열여덟 해를 몰랐던 시절에도 강은 그 자리에서 흐르고 있었는데 — 지금은 자리째 없었다.그리고 그 없는 자리의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눈을 떴다.들리지 않는 강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고삐 아니라 존재째 놓친 짐승처럼. 나루의 강물이 이유 없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매어 둔 배들이 서로 부딪치며 울었다. 임자가 못 듣는 강이 임자 밖에서 몸부림치는 소리를 — 남들은 다 듣는데 저만 못 들었다.무서움은 두 겹으로 왔다. 강을 잃은 무서움이 한 겹. 그리고 잃은 강이 저 밖에서 남들을 해치는 것을 — 제 것이 제 것 아니게 날뛰는 것을 — 보고만 있어야 하는 무서움이 한 겹. 폭주는
떠나는 새벽은 서리가 하얗게 내려 있었다. 말들의 콧김이 등불 빛에 희게 피었다 스러지고, 마당의 발소리들이 저마다 조심스러웠다.남행의 명단은 통보로 선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의 입으로 세워졌다.휘월이 먼저 섰다. "산 증인이 가야 종이가 산다. 미끼 노릇은 — 덤이고." 사백이 말없이 활을 들었고, 사수가 그 곁에 제 활을 나란히 세우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우르는 묻는 사람이 없는데 짐부터 쌌다. 그리고 진눈 — 젊은 무사가 제 발로 나섰다. "제가 등잔을 켠 손입니다. 법정이 서면 — 그 손도 증인석에 서야지요."혈비는 남지 않았다. 남기로 되어 있었는데, 떠나는 날 새벽에 명단이 바뀌었다.바꾼 것은 어머니였다."효월이도 간다." 어머니가 마지막 밤에 정했다. "삭월의 왕녀가 중원의 법정에 서는 것과 안 서는 것은 — 종이 백 장 차이다. 궁은 흑요가 지킨다. 열여덟 해를 지켰는데 한 계절을 못 지키겠느냐.""어머니 곁에 누가—""묵이가 있다. 부수 노인이 있고, 더운돌이 있고, 여리가 있고." 어머니는 웃었다. "늙은이들과 아이들의 궁이라 — 좋구나. 세상이 이 궁 같으면 칼이 필요 없을 텐데."남궁완은 사흘 먼저 내려가 있었다. 세가의 연통이 끊긴 까닭을 제 눈으로 보러. 무한 어귀에서 만나기로 한 약조와, "먼저 가서 판을 읽어 둘게요"라는 쪽지와, 부채 소리 같은 걸음만 남기고. 궁이 문득 조용해진 것이 그 여인의 빈자리 때문이라는 것을, 다들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작별은 안채 마루에서 했다.어머니는 일어나 앉아 딸들을 맞았다. 엿새 만에 처음 앉은 것이라고 묵할멈의 손짓이 일렀다. 마지막 힘을 어디에 쓸지 정해 둔 사람의 앉음새였다."효월아.""예, 어머니.""미움 말고 다른 것으로 흐르라 했지. 남쪽에서 — 그 다른 것이 무엇인지 찾아오너라. 찾거든 어미한테 말해 다오. 어미가 어디에 있든.""찾아서 — 돌아와 말씀드리겠습니다.""설야야.""예.""수는 접어 두었느냐.""품에 있습니다.""펴는 날 셋이 함께
어머니는 소풍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 몫의 심지를 다 태운 값이 그렇게 왔다.일어나지 못하는 채로, 어머니는 이상하게 바빴다. 하루에 한 사람씩 머리맡으로 불렀다. 부르는 순서에 법도가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도 그 법도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부르는 첫날은 흑요였다. 늙은 집사가 제일 먼저인 것에는 셈이 있었다. 반나절을 들어앉았다 나온 노파는 그날 저녁 창고를 열어 삭월의 옛 예복들을 꺼내 볕에 널었다. 둘째 날은 묵할멈이었다. 손짓말이 문틈으로 하루 종일 흘렀다. 셋째 날은 사위였다.선우현은 한 식경 만에 나왔다. 무슨 말을 들었느냐고 운설이 물으니, 그는 한참을 골랐다."숙제를 받았소.""무슨 숙제요.""때가 되면 알게 될 거라 하셨소. 한데 — " 그는 그녀의 낯을 오래 보았다. "어려운 숙제요. 평생 치.""평생 치면," 운설이 말했다. "검사도 평생 제가 하겠네요."그가 웃었다. 웃음이 반쯤에서 접혔다. 접힌 자리를 그녀는 캐지 않았다. 요즘 궁의 말들은 다 반쯤에서 접혔고, 접힌 반쪽은 대개 — 펴면 우는 것들이었다.넷째 날은 휘월이었다.죄인은 문지방 밖에 무릎을 꿇고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안에서 나왔다. 도련님. 문지방이 무슨 죄랍니까. 열여덟 해를 한 지붕 아래 살아 놓고. — 노인은 들어갔고, 나올 때 그 어린 눈이 붉어 있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두 사람만 알았다.사수와 진눈과 우르와 여리까지 — 머리맡의 차례는 엿새를 갔다. 다녀온 사람마다 무언가를 받아 나왔다. 말 한마디, 물건 하나, 숙제 하나. 어머니는 열여덟 해 치 어미 노릇을 엿새에 몰아 하고 있었고, 온 궁이 그것을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모르는 척이 그 엿새의 법도였다.다섯째 날, 어머니는 딸들을 불렀다."남행 날을 정했다."어머니의 목소리는 실낱인데 또렷했다."모레 새벽에 떠나거라.""어머니." 혈비가 처음으로 언성을 눌러 막았다. "지금 어머니를 두고—""모레 새벽이다." 어머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
어머니의 덤은 여름의 끝과 나란히 줄어들었다.마루의 볕 걷기가 반의 반 바퀴에서 문지방까지로, 문지방에서 창가로 줄었다. 어머니는 그 줄어듦을 태연하게 살았다. 창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며 — 구름의 종류와 새의 이름과 여리가 마당을 가로지르는 횟수 같은 것들로 하루의 살림을 꾸렸다.운설의 침은 이제 병을 잡는 침이 아니었다.편안하게 하는 침이었다. 통증을 걷고, 숨을 고르고, 잠을 부드럽게 하는. 의녀는 그 전환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고, 알면서 매일 침통을 열었다. 지는 싸움에도 싸우는 법이 있었다. 곱게 지는 법이."잇는 법 말이다."어느 저녁 침을 맞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궁려의 벽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빌려주는 쪽이 제 소리를 반은 태운다지. 그 법 — 어미한테는 쓸 생각 마라.""어머니.""셈을 해 보아라. 어미의 강은 심지가 다한 등잔이다. 네 소리를 반을 태워 부어도 — 심지 없는 등잔은 못 탄다. 기름만 아깝지." 어머니는 딸의 손을 토닥였다. "네 소리는 아껴 두어라. 심지가 남은 등잔이 어두워지는 날을 위해서. 그런 날이 — 사는 동안 꼭 온다."심지가 남은 등잔이 어두워지는 날. 운설은 그 말을 받아 적듯 새겼다. 어머니의 말들은 요즘 다 유언의 결을 하고 있어서, 새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 무렵 궁은 남행의 채비를 조용히 시작하고 있었다. 사백이 길을 그렸고, 사수가 제 발로 남행에 이름을 얹었다. "남쪽 물길은 제가 언니보다 낫습니다." 그 한마디에 사냥막 자매의 열여덟 해가 반쯤 접히는 것을, 곁의 우르가 코를 훌쩍이며 들었다.남쪽의 소식은 나빠졌다.한겸의 파발이 끊긴 지 한 달이 되었다. 마지막 파발은 새 당주가 재조사 청원자들을 하나씩 잡아들인다는 내용이었다. 남궁완의 세가 연통이 그 뒤를 이었는데, 그 연통도 보름째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제일 나쁜 소식이었다."남행을 준비해야 한다." 혈비가 말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종이 전쟁이 지고 있다면 — 산 증인들이 내려가는 수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