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수고하셨습니다.”
다른 군의관들이 하나 둘 수술방을 나왔다.
시현에게 인사를 하던 동료들이 사라지자, 시현도 수술복을 벗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 공허한 눈, 차가운 입꼬리.
모든 게 정부가 원하는 모범 시민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목을 감싸던 작은 기계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감정 수치 74%. 안정화 필요합니다.
시현은 다시 거울을 보았다.
날카로운 조각 같은 얼굴에는 그 어디에도 균열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경보음이 계속되고, 점차 그의 눈빛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감정 수치 78%. 안정화 필요합니다.
‘귀찮았지. 짜증도 나고.’
앞으로는 그냥 대충 둘러댈까.
살려달라고 비는 사형수가, 사실은 내심 귀찮고 짜증이 났다.
어차피 애원해도 달라질 것 없는데 말이야.
피식, 그의 굳었던 입매에 작은 미소가 생겼다.
-감정 수치 82%. 안정화 필요합니다.
90%를 넘기면 드론이 날아올 거다.
하지만 시현은 억제제를 먹을 생각도, 애써 억누를 생각도 없었다.
도희가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치솟는다면, 시현은 아슬아슬하게 한계점 주위를 맴도는 사람이었다.
“선생님, 파견 명령 내려왔습니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시현에게 작은 스크린을 건넸다.
“파견?”
“네, SMD로의 파견입니다.”
“SMD…….”
이제 진짜 마음대로 부려먹겠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걸까.
SMD, 정부 직속 산하 의료기관이었다.
여기에 간다는 건, 정부가 직접 시현을 눈여겨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시현은 궁금해졌다.
정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네, 알겠습니다.”
근무지와 자세한 소속까지 전부 확인한 시현은 화면을 꺼 버렸다.
어차피 거기 가도 똑같겠지.
똑같이 사람을 살리고, 그러다 몇 번은 또 사람을 죽이고.
그저 이렇게 로봇 흉내내는 인간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야.
*** “백시현. 오늘부터 공군에서 SMD로 파견이라고?”“네, 그렇습니다.”
“근무지는?”
“섹터 2 M구역입니다.”
“백시현, 한도희 앞으로 더 철저하게 감시해. 하나하나 다 보고하고.”
소연이 머리를 짚었다.
골치아픈 일이 또 생겼다.
백시현, 위험인물 2순위.
한도희, 위험인물 1순위.
둘 다 소연이 직접 올렸다.
시현의 근무지는 섹터 2 M구역, 도희의 근무지는 섹터 2 A구역.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섹터였다.
소연은 다시금 임무 수행 중인 도희를 촬영 중인 바디캠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임무 수행이다.
그러나, 오늘도 도희는 또…….
“아, 진짜 이 새끼가…….”
“이브, 진정 좀 해.”
“짜증나잖아.”
화면 속 도희는 있는 힘껏 짜증을 내고 있었다.
자기 얼굴에 작은 상처를 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희는 적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적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아이러니하지만 여기 대한민국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도희, 또 시작이군.’
요즘 빈도수가 잦아져.
칩도 점점 그녀의 광기를 막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소연에게는 그게 보였다.
“작전 완료했습니다.”
“……그래. 복귀해.”
복귀 명령을 내리는 소연의 표정이 복잡했다.
저 시한폭탄 같은 애를 어떻게 제어하지.
결국 소연은 이번에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매번 같은 명령, 똑같은 지시였으나 지금의 소연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이브, 복귀 후 안정화 교육 수료하고 로그 전송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 “아, 피 묻었잖아. 진짜 짜증나.”“한도희, 너 왜 그래?”
“뭐.”
옷을 갈아입는 도희를 동료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도희는 마치, 흑백 사진 속 홀로 발광하는 붉은 립스틱 같았다.
“너 지금 짜증 내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내 얼굴에 흠집 내고, 지금 옷에 피 튀었잖아. 괜히 지랄하는 바람에.”
“…….”
그는 무표정한 얼굴에, 맑게 비워진 눈을 하고 도희의 그 ‘짜증’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없이 도희는 그 시선을 받다가 피식 웃었다.
동시에 경보음이 울렸다.
-감정 수치 88%. 안정화 필요합니다.
그 기계음 속 도희는 여전히 웃는다.
비틀린 입꼬리를 바라보던 동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도희를 몇 초 동안 돌연변이라도 보는 듯 쳐다보는 게 끝이었다.
도희는 그런 시선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감함이 역겹고 싫었다.
“나 간다. 너 오늘도 안정화 교육 수료하래.”
“알았어.”
혼자 남게 된 도희는 거울을 보고 피를 마저 닦아냈다.
피비린내가 아직 팔뚝 사이사이 남아 있었다.
도희는 무감각한 얼굴로 팔을 닦다가, 잔혹히도 말끔해지는 피부를 바라보았다.
“……왜 안 먹히지.”
그녀는 중얼거렸다.
귀 뒤쪽, 목덜미 속 감정 제어 칩.
수치를 낮춰야 했다.
지금도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더 올라가면 드론이 올 것이다.
짜증, 분노, 기쁨, 슬픔, 사랑…… 그 무엇도 허락되지 않은 시대.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느꼈다.
거울 속 도희가 천천히 웃었다.
“내가 에러인가. 시스템 오류, 돌연변이, 바이러스.”
-감정 수치 89%. 안정화 필요합니다.
본부에서 도희를 지켜보다 다시 상승하는 수치를 보며 움찔했다.
드론 출동 대기 중.
그래프는 불안정하게 튀었고, 심박수는 빨라졌다.
도희도 안다.
그 사실이 너무 재미있어서, 또 웃음이 났다.
이번에는 진짜 웃음이었다.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명확한 이름을 가지지 못해 더 짜릿한.
그녀는 칩을 손가락 끝으로 눌러보았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몰라, 내가 고장났나 봐.”
그녀는 억제제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감정 수치 73%. 안정화 필요합니다.
*** 3년이 지났다.소연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시현과 도희를 감시하고 살피느라 바쁘다.
다행인 건, 둘이 아직 폭발하지 않았다는 점.
“오늘 한도희 요원 근무지 변경시켜. 백시현 대위랑 가까워.”
“알겠습니다.”
“그리고 백시현 대위, 오늘 14시 수술 잡아. 5시간 이상 걸릴 만한 걸로.”
“네.”
부하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현란하게 스크린을 조작한다.
소연에게 시현과 도희는 만나게 해서는 안 될 도화선들이었다.
“신입, 이리 와.”
“아, 네!”
신입 직원이 올 때마다 소연은 가르친다.
“백시현, 한도희. 둘이 절대 같이 묶어두지 마. 이해 못 하겠으면 그냥 외워. 가까운 구역으로 배치하는 것도 절대 안 돼. 최소 오늘만큼의 거리 유지는 필수야. 알겠어?”
“네,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다시 스크린으로 눈을 돌린 소연.
지금까지 3년 동안 둘을 잘 격리해 왔다.
지금처럼만 하면 돼.
도희와 시현의 감정 수치 게이지가 나란히 화면에 띄워져 있다.
자꾸 선을 건드리는 도희, 자꾸 선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맴도는 시현.
“저 두 사람 기록이 위험인물 1순위, 2순위에 랭크된 것을 봤습니다, 본부장님.”
“그래, 잘 봤네. 저 둘.”
소연이 조용히 경고했다.
“한도희는 시한폭탄. 백시현은…… 목줄 풀린 군견이지.”
“둘 다 사살하는 게 어떻습니까? 본부장님께서 직접 위험인물로 올리신 사람들인데…….”
“3년 전에도 딱 그 질문을 하는 놈이 있었어.”
소연이 픽 웃었다.
그러나 도희에 비해서는 아주 작고 옅은 미소.
“한도희 저거 괴물이야. 사람 아니야. 빨아먹을 수 있을 때까지 빨아먹어야지.”
임무 성공률 97%는 아직도 유지 중이었다.
“아무튼 다시 말하지만 저 둘을 절대 같이 있게 하면 안 돼. 철저히 격리시키고 못 만나게 해. 서로 존재도 모르게 만들어.”
“알겠습니다.”
교육을 받는 신입 옆에서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한 남직원, 민기가 중얼거렸다.
그는 소연이 왜 저러는지 알고 있다.
“금수저 주제에 진짜 끝을 모르네. 대통령이라도 될 거야, 뭐야?”
민기의 조금 격한 손짓 아래 데이터가 전산 속으로 사라졌다.
국가정보국 심리연구본부 1팀 요원, 정민기.
도희의 데이터를 업로드하고, 로딩 중에 그는 문득 혼자 물었다.
“근데 둘이 만나면 서로 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왜 저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할 만큼 만나게 하면 안 되는 거지?”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나직한 질문이었다.
*** “타깃 생포 완료.”오늘도 도희는 임무 수행 중이었다.
기밀을 캐내는 게 필요해서, 오늘은 생포해야 하는 임무였다.
“야, 기밀 불어.”
도희의 말투는 냉철한 특수부대 요원의 것이라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투였다.
“너네 배후 따로 있는 거 다 알아. 누구야, 어디 소속이야?”
“우, 우리 단독 행동이야!”
“다 안다니까? 주둥이 다문다고 뭐 너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
“말 못 해!”
지금 도희가 짜증을 내며 추궁하고 있는 사람은 무장 세력의 간부였다.
그러나 정부에게는 ‘반역자’, 도희에게는 그저 ‘타깃’.
“이브, 차라리 본부로 데려가서…….”
“아니, 난 여기서 입 열고 싶어.”
“본부로 데려가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야! 왜 그래?”
이번에도 틈 하나 없는 얼굴로 동료가 도희를 말렸다.
도희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왜냐고?”
그녀가 피식 웃었다.
경보음과 함께, 도희가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하는 소리가 나며 도희는 인질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겨누었다.
“좆같잖아.”
-감정 수치 89%. 안정화 필요합니다.
이제 경보음마저 도희에겐 소음이었다.
“죽이면 안 돼!”
도희는 총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 위협은 해야 입을 열든 말든 하지 않을까?
도희의 고개가 천천히,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입 열어. 진짜 쏴 버리기 전에.”
“너 나 못 쏘는 거 알아.”
인질의 말에 도희는 농락이라도 당한 듯,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짜증나네?
“……개새끼가.”
도희의 군홧발이 인질의 머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분노와 화가 틈을 비집고 기어이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도희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스스로도 분노를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브, 그만해. 뭐해, 지금?”
동료가 차갑게 식은 얼굴로 도희를 말렸지만, 도희는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었다.
“마지막 기회야.”
도희는 정말 인질을 쏴 버릴 것 같아서 총을 냅다 바닥에 집어던졌다.
인질을 쏘면 중요한 기밀을 얻지 못하게 된다.
정부에서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고.
도희는 피 묻은 인질의 머리를 발로 거칠게 눌렀다.
“…….”
인질은 입술을 깨물며 끝내 눈을 감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의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순간, 뚝.
도희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입꼬리가 비틀리듯 일그러졌다.
“이 씨발……!”
용암이 폭발하듯 게이지가 한계점을 뚫었다.
-감정 수치 94%. 안정화 필요합니다.
경보음과 함께 들려오는 드론 소리.
고속 회전음이 들려오고, 하얀 기계가 도희의 눈에 들어왔다.
정부가 파견한, 일정 감정 수치 이상이면 자동으로 안정제가 발사되도록 명령이 입력된 병기였다.
도희는 그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누구 때문에 여기 날아왔는지도 안다.
-대상 0092. 감정 초과, 제어 불가. 안정화 프로토콜 가동합니다.
붉은 조준선이 도희의 이마에 맺혔다.
그러나 도희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가늘게 떴다.
사살해야 할 타깃을 바라보던 때와 똑같았다.
도희가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쾅-
고열을 띤 무언가가 손끝에서 튀어나오고, 드론이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폭발음이 벽을 때렸다.
동료들이 비명을 질렀고, 도희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씩씩거리는 숨소리에는 아직 다 지우지 못한 분노가 남아 있다.
‘전부 다 죽여버리고 싶어.’
“수고하셨습니다.”다른 군의관들이 하나 둘 수술방을 나왔다.시현에게 인사를 하던 동료들이 사라지자, 시현도 수술복을 벗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정돈했다.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 공허한 눈, 차가운 입꼬리.모든 게 정부가 원하는 모범 시민의 모습이었다.그러나 그의 손목을 감싸던 작은 기계에서 경보음이 울린다.-감정 수치 74%. 안정화 필요합니다.시현은 다시 거울을 보았다.날카로운 조각 같은 얼굴에는 그 어디에도 균열이라곤 없었다.그러나 경보음이 계속되고, 점차 그의 눈빛도 살아나기 시작했다.-감정 수치 78%. 안정화 필요합니다.‘귀찮았지. 짜증도 나고.’앞으로는 그냥 대충 둘러댈까.살려달라고 비는 사형수가, 사실은 내심 귀찮고 짜증이 났다.어차피 애원해도 달라질 것 없는데 말이야.피식, 그의 굳었던 입매에 작은 미소가 생겼다.-감정 수치 82%. 안정화 필요합니다.90%를 넘기면 드론이 날아올 거다.하지만 시현은 억제제를 먹을 생각도, 애써 억누를 생각도 없었다.도희가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치솟는다면, 시현은 아슬아슬하게 한계점 주위를 맴도는 사람이었다.“선생님, 파견 명령 내려왔습니다.”그때, 간호사가 들어왔다.그녀는 시현에게 작은 스크린을 건넸다.“파견?”“네, SMD로의 파견입니다.”“SMD…….”이제 진짜 마음대로 부려먹겠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걸까.SMD, 정부 직속 산하 의료기관이었다.여기에 간다는 건, 정부가 직접 시현을 눈여겨 보았다는 것이었다.그걸 잘 알고 있는 시현은 궁금해졌다.정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네, 알겠습니다.”근무지와 자세한 소속까지 전부 확인한 시현은 화면을 꺼 버렸다.어차피 거기 가도 똑같겠지.똑같이 사람을 살리고, 그러다 몇 번은 또 사람을 죽이고.그저 이렇게 로봇 흉내내는 인간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야. *** “백시현. 오늘부터 공군에서 SMD로 파견이라고?”“네, 그렇습니다.”“근무지는?”“섹터 2 M구역입니다.”“
한도희는 피에 젖은 군복을 질질 끌며 문을 걷어찼다.그 문은 철판이었고, 도희의 발도 군용 부츠였는데 이상하게 문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안에서는 피 냄새가 뜨겁게 피어올랐다.그리고 그 냄새 위에, 달콤하게 미친 웃음이 가볍게 얹혀 있었다.백시현은 조용히 피 튀긴 얼굴을 들었다.불 꺼진 방에서 그의 눈만 유난히 맑았다.마치 좋은 일이라도 생긴 사람처럼.“너 왔네.”도희는 방바닥의 시체들을 스치듯 보았다.심장이 뜯긴 놈, 척수가 잘린 놈, 이미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도 헉헉거리며 살려달라 기어오는 놈.“혼자 다 했어?”“응. 지루해서.”도희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총을 발끝으로 밀어 올려 잡았다.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놈의 머리통을 겨눴다.“살려줘…….”“살려달래.”“죽일까?”시현은 메스를 닦던 손을 잠시 멈추고 말했다.“도희야. 그건 네 몫이 아니지. 오늘은 내가 하고 싶어.”도희는 총을 내렸다.그리고 천천히 걸어가더니 시현의 턱을 엄지로 툭 밀었다.피가 튀어 손톱에 고였다.“오늘 너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네가 들어오는 소리 들리니까 더 미쳤지.”둘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포개졌다.시체 위에서.피 웅덩이 위에서.군 병동 지하의 썩은 공기 속에서.시현은 다시 메스를 들었다.이번엔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우리 어디로 갈까?”도희가 웃었다.“몰라. 근데 너랑 있으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아.”“내가 데려갈까?”“응. 날 좀 망가뜨려봐. 이 지옥을 먼저 때려부수기 전에.”시현은 도희의 손을 잡았다.손가락 사이로 피가 천천히 스며들었다.도희는 건물 밖으로 뛰어오르는 순간,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시현은 그 뒤를 따라가면서 아주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중얼거렸다.“지옥에서 기다릴게.”***“에러코드 442. 감정 통제 이상 감지됩니다. 반응 임계치 초과. 세부 경로, 섹터 2.”화면에 뜬 글자들과 숫자들, 그리고 붉게 울리는 'Warning' 이라는 신호.경고 사인을 읽은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