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누가 데리러 오래?”
내가 묻자 범준이 가방 쪽으로 손을 뻗는다.
“내가 왔는데.”
“그건 보면 알아.”
“그럼 왜 물어.”
내 방수 가방이 어깨에서 내려간다. 오른쪽 어깨가 잠깐 가벼워진다.
길 할머니가 사진 봉투를 챙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도 들어 주네.”
나는 할머니를 본다.
범준은 나를 본다.
엄마는 우리 둘을 본다.
사진관에서 내 가방 하나가 옮겨 갔을 뿐인데 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뭐 먹었어?”
범준이 묻는다.
“물.”
“먹은 거.”
“물을 먹었다고도 하지.”
범준이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머니, 하늬 밥 먹이고 올게요.”
“그래. 내가 집에 밥 해 놨는데 여기서 먹어도 되고.”
“엄마.”
“왜. 밥 있다니까?”
나는 범준의 팔이 아니라 가방 끈을 잡아당긴다.
“나가자.”
범준이 바로 문을 연다. 내 뒤에서 길 할머니 목소리가 따라온다.
“어디가 좋은지 더 물어볼 걸.”
문이 닫힌다.
나는 길 하나 건너 부동산을 본다. 명숙 아줌마가 안경 너머로 고개를 든다.
이쪽에서는 나왔는데 저쪽에서는 보인다.
“동네 밖으로 가.”
“어깨는?”
범준이 묻는다.
나는 가방 끈에서 손을 뗀다.
“멀쩡해.”
범준의 시선이 내 오른쪽 어깨에 잠깐 머문다.
“방금 돌리던데.”
“팔 달려 있으니까 돌리지.”
범준은 대꾸 없이 가방을 왼손으로 옮긴다.
내가 다시 가져가기 먼 쪽이다.
· · ·
4월 28일 화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자 내 오른팔이 말을 안 듣는다.
물에서는 아이들 손을 잡아 주고, 밖에서는 물병을 들었는데, 탈의실에서는 티셔츠 하나에 걸린다.
팔을 머리 위로 올리다 멈춘다.
“아.”
천천히 내리면 덜 아프다.
나는 목부터 넣고 왼팔을 빼낸다. 오른팔은 마지막이다. 옷 하나 입는 데 순서까지 신경 쓴다.
‘어린이 수영반은 끝났는데 내 팔은 아직 보충 수업 중이다.’
방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범준에게 보내려던 글을 지운다.
조금 아프다.
다시 쓴다.
많이는 아니다.
그것도 지운다.
그러다 화면 위에 범준의 전화가 뜬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묻는다.
“왜.”
“끝났어?”
“응.”
“어깨는.”
나는 오른팔을 조금 들어 본다.
어깨 앞쪽이 당긴다. 입이 먼저 다물어진다.
전화기 너머에서 범준이 다시 부른다.
“하늬.”
“지금 내가 대답 준비 중이야.”
“얼마나 아파.”
“옷은 입었어.”
“그건 얼마나 아픈 건지 대답이 아니고.”
나는 방금 겨우 입은 티셔츠를 내려다본다.
“오른팔을 마지막에 넣었어.”
범준이 짧게 숨을 내쉰다.
“와. 접수 끝나기 전에.”
“너 퇴근하잖아.”
“진료부터 받아.”
“또 시작이네.”
“지난번에도 옷부터 불편했어.”
스물일곱 살 때다.
괜찮다고 하다가 물병을 왼손으로 들었다. 범준에게 들킨 건 그때였다.
토요일마다 어깨를 보러 갔고, 토요일마다 그 말을 들었다.
무리하지 말라고.
나는 그 말이 수영장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했다. 범준은 설명을 다 듣고도 그 말을 또 했다.
나는 가방에서 물병을 빼낸다.
남은 물부터 비운다.
“갈게.”
“가방 무겁게 하지 말고.”
나는 빈 물병을 본다.
“너 혹시 내 가방 안에 살아?”
“집 나왔어. 병원에 있어.”
전화가 끊긴다.
나는 오른팔을 돌리려다 그대로 내려놓는다.
· · ·
저녁 7시.
튼튼재활의학과 치료실 침대에 앉아 있으니 범준이 내 가방을 의자 위로 올린다.
진료실에서 받은 설명은 짧았다. 당분간 어깨에 힘을 덜 주고, 수업할 때도 동작을 줄이라고 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범준은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게 더 신경 쓰인다.
“왜 그렇게 봐.”
“어떻게.”
“내가 벌써 무리한 사람처럼.”
범준은 침대 옆으로 낮은 의자를 당긴다.
“아직 안 했어?”
나는 대답 대신 치료실을 본다.
침대가 줄지어 있다. 커튼은 대부분 걷혀 있고, 안쪽 침대 옆에서는 누군가 수건을 접는다.
복도에서 닫히는 문소리가 난다.
낮에는 사람이 많았을 자리가 조용해진다.
“누워.”
범준이 베개를 고쳐 놓는다.
나는 침대 끝에 걸친 발을 올린다. 누우려는데 오른쪽 어깨가 먼저 당긴다.
범준의 손이 내 등을 받친다.
“천천히.”
“나도 천천히 하고 있어.”
“말 말고 몸.”
나는 입을 다문다.
등이 침대에 닿는다. 범준은 내 오른팔 아래에 접은 수건을 받친다.
팔이 조금 올라가자 아픈 자리가 덜 당긴다.
“이건 편하네.”
“그대로 둬.”
범준의 손이 어깨 앞쪽에 닿는다.
나는 천장을 본다.
타일이 네모다.
당연하다. 천장 타일이 갑자기 동그랄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네모 하나를 아주 열심히 본다.
“여기는?”
범준이 누르는 자리를 조금 옮긴다.
“거기는 괜찮아.”
“여기.”
“거기는 안 괜찮아.”
손이 바로 멈춘다.
범준이 힘을 줄이고 다시 묻는다.
“지금은.”
“덜해.”
“참지 말고 말해.”
“말 잘하는 거 알잖아.”
“아플 때 빼고.”
나는 천장 타일의 모서리를 센다.
‘하나, 둘, 셋.’
범준이 내 팔을 받쳐 조금 움직인다.
치료받는 건 처음이 아니다.
이 침대도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은 손가락이 어깨에 닿을 때마다 천장에 볼 게 늘어난다.
“왜 자꾸 위를 봐.”
“천장 깨끗하네.”
“눈 감아도 돼.”
“안 졸려.”
“긴장 풀고.”
“나 지금 아주 편하게 누워 있어.”
내 왼손이 침대 가장자리를 꽉 잡고 있다.
범준이 그 손을 본다.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편다.
· · ·
“도 쌤 맞선 분이 환자로 오셨어요?”
치료실 문에서 목소리가 들어온다.
천장 타일을 세던 나는 고개를 돌린다.
안경을 쓴 남자가 수건을 들고 서 있다.
방금 안쪽에서 수건을 접던 사람이다.
범준이 내 팔을 수건 위에 내려놓는다.
“목소리 좀 낮춰요.”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아, 이제 아무도 없는데.”
“그래도요.”
“네. 맞습니다.”
남자가 목소리를 낮춘다.
크기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왕태훈입니다. 여기 같이 일해요.”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조금 든다.
“홍하늬예요.”
“편하게 누워 계세요. 도 쌤이 어깨 봐 드리는 중이죠?”
범준이 내 베개를 손끝으로 짚는다.
고개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나는 다시 눕는다.
태훈 씨가 빈 침대를 정리하며 말한다.
“어깨는 언제부터 안 좋으셨어요?”
“처음 다친 건 열아홉 살 때요.”
“운동하다가요?”
“네.”
내가 손상된 어깨로도 계속 수영할 수 있다고 우겼던 때다.
끝내 선수는 못 됐다.
나는 오른쪽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린다.
“스물일곱에 또 아팠고요. 그때도 여기서 치료받았어요.”
“아. 그럼 오래 다니셨네요.”
태훈 씨가 범준을 본다.
“그때부터 아셨어요?”
“아홉 살부터요.”
범준이 답한다.
태훈 씨 손에서 수건 한 장이 떨어진다.
내가 왼손으로 침대 밖을 가리킨다.
“밑에요.”
“아, 감사합니다.”
태훈 씨가 수건을 주워 다른 바구니에 넣는다.
그러고는 우리 둘을 번갈아 본다.
“아홉 살부터 알았는데 맞선을 보신 거예요?”
“그렇게 됐어요.”
나는 짧게 대답한다.
태훈 씨도 더 캐묻지는 않는다.
대신 의자를 하나 끌어온다.
범준이 본다.
“퇴근 안 해요?”
“짐 챙겨야죠.”
태훈 씨는 앉는다.
짐은 안 챙긴다.
“제가 맞선을 11번 봤거든요.”
나는 천장에서 시선을 뗀다.
이건 조금 궁금하다.
“많이 보셨네요.”
“제 경험상, 초반이 중요합니다.”
범준은 테이프를 챙기러 옆 선반으로 간다.
태훈 씨가 그 틈에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인다.
“세 번째 만남에는 손을 잡아야 해요.”
나는 내 오른팔 아래 수건을 본다.
“손을 왜요?”
“계속 밥만 먹으면 밥 먹는 사이가 되니까요.”
“그럼 11번 동안은요?”
태훈 씨가 안경을 올린다.
“제가 손을 좀 늦게 잡으려고 했어요.”
범준이 돌아온다.
“일찍 잡으려고 했을 때도 있었잖아요.”
“도 쌤.”
“상대가 싫다고 했고.”
“그러니까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나는 입술을 안으로 누른다.
웃으면 어깨가 움직일 것 같다.
범준이 가위를 내려놓고 태훈 씨를 본다.
“싫다는데 타이밍이 무슨 상관이에요.”
태훈 씨는 잠깐 입을 다문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맞죠. 아무튼 저는 두 분 잘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말한다.
태훈 씨가 드디어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도 쌤은 참 편하겠어요.”
“뭐가요.”
“오래 알았으니까 좋아하는 거 다 알잖아요. 먹는 거라든가.”
범준이 백팩에서 바나나를 꺼낸다.
내 왼손에 놓는다.
“먹어.”
태훈 씨가 바나나를 본다.
나도 바나나를 본다.
“이런 거요.”
태훈 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바나나를 쥔 채 범준에게 묻는다.
“가방에 몇 개 있어?”
“네가 먹을 만큼.”
“수건보다 내 간식이 많이 나오는 거 같은데.”
태훈 씨가 자기 책상 쪽으로 걸어간다.
“저도 배고픈데요.”
범준이 선반 아래를 가리킨다.
“휴게실에 있어요.”
태훈 씨가 바로 방향을 바꾼다.
치료실 문이 닫힌다.
나는 그제야 웃는다.
어깨가 조금 들썩이자 범준이 수건을 고쳐 받친다.
“아프면 웃는 것도 작게.”
“웃는 크기까지 네가 정해?”
“아픈 쪽 안 움직이게.”
나는 입을 다문 채 한 번 더 웃는다.
· · ·
바나나 껍질은 범준이 벗겨 준다.
나는 왼손으로 들고 조금씩 먹는다.
오른팔은 수건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범준은 내 어깨 옆에 앉아 움직임을 다시 확인한다.
“지금은 어때.”
“아까보다 나아.”
“여기까지는?”
“괜찮아.”
“수업에서 이 위로 드는 동작 줄여.”
“시범 보여야 하는데.”
“말로 설명하고.”
“안 들으면.”
“물 밖에서 다시 설명해.”
나는 바나나를 한입 먹는다.
아이들에게 천천히 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자꾸 급하게 움직인다.
범준은 그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맨날 와서 보는 것도 아닌데 잘 아네.”
“네가 말해 줬잖아.”
“내가?”
“팔 아파도 한 번 보여 주는 게 빠르다고.”
내가 한 말을 나보다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껍질을 조금 더 내린다.
“이제 안 할게.”
범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내 얼굴을 한 번 본다.
“진짜로.”
“응.”
“밥 먹듯이 대답하지 말고.”
나는 바나나를 입에서 뗀다.
“지금 밥은 아니거든.”
범준의 입가가 조금 움직인다.
나는 그걸 보고 묻는다.
“너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4년 차.”
“나는 5년 찼는데.”
“그래서.”
“내가 사회 선배네.”
“바나나 다 먹어, 선배.”
나는 마지막 한입을 넣는다.
범준이 껍질을 받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내가 처음 수영 수업을 맡았을 때 범준은 아직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물에 얼굴을 못 넣으면 어쩌냐고 내가 물었고, 범준은 네가 기다려 주면 넣겠지, 하고 말했다.
나는 그때도 쉬운 소리 한다고 했다.
지금은 기다리는 시간이 수업의 대부분이다.
“너는 처음부터 이 일 하고 싶었어?”
범준이 테이프 끝을 잡는다.
“왜.”
“그냥 궁금해서.”
나는 침대 위에서 상체를 일으킨다.
범준이 베개를 치우고 내 등을 받쳐 준다.
등이 세워지자 치료실이 다시 제대로 보인다.
범준의 근무복 소매.
정리된 침대.
선반에 놓인 수건.
나는 열아홉 살 때 범준이 무슨 학과에 갈 거라고 했는지 떠올리려 한다.
분명 들었는데 지금 하는 일과는 달랐던 것 같다.
“너 왜 물리치료사 했어?”
범준의 손이 테이프 위에서 멈춘다.
나는 얼굴을 본다.
대답이 바로 안 나온다.
“나중에 말고, 네가 끝까지 물으면.”
“지금 묻잖아.”
“끝까지는 아니잖아.”
나는 바나나 껍질이 들어간 쓰레기통을 본다.
다시 범준을 본다.
“이 질문에도 깊이가 있어?”
“있어.”
“어디까지 물어야 되는데.”
범준은 테이프를 내려놓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네가 정말 알고 싶을 때.”
나는 입을 연다.
정말 알고 싶은 건지, 대답을 안 하니까 궁금한 건지 잠깐 구분이 안 된다.
범준은 재촉하지 않는다.
내 오른팔이 내려가려 하자 먼저 수건을 받쳐 준다.
나는 그 손을 보다가 말을 바꾼다.
“됐고. 다음에 물을게.”
“응.”
너무 순순하다.
나는 테이프를 가리킨다.
“그것부터 붙여. 내 어깨 질문은 안 어려워.”
범준이 다시 가위를 든다.
“팔 조금만 이쪽으로.”
나는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아까 하려던 질문이 아직 입 안에 남아 있다.
· · ·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다.
티셔츠 목 부분을 왼손으로 조금 내린다.
오른쪽 어깨에 붙은 테이프가 보인다.
길게 뻗은 부분 끝이 두 갈래다. 옆으로 짧게 붙은 조각도 있다.
고개를 기울여 본다.
물고기 같기도 하다.
‘물리치료사는 다 이렇게 자르나.’
휴대폰으로 찍으려다가 팔을 다시 내린다.
범준이 오늘은 자꾸 확인해 보지 말라고 했다. 나아졌는지 시험하다가 더 아프게 하지 말라고.
나는 티셔츠를 놓는다.
거울 속 어깨가 다시 가려진다.
가방을 바닥에 두려고 몸을 숙이다가 의자로 옮긴다. 허리를 굽혀 끌어 올리는 것보다 그게 편하다.
병원에서도 범준이 꼭 의자 위에 놓았다.
그때는 그냥 자리가 있어서 놓는 줄 알았다.
나는 가방에서 물병을 꺼낸다.
뚜껑은 느슨하게 닫혀 있다.
병원에서 범준이 물을 채우고, 내가 한 손으로 열 수 있는지 확인한 다음 돌려놓은 그대로다.
물부터 한 모금 마신다.
조금 전 병원 문 앞에서는 내가 가방을 달라고 했다.
범준은 지하철역까지 들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문을 잡은 채 말했다.
“주말 말고 평일에도 보자.”
나는 문턱을 넘다 멈췄다.
“작전은 주말만이라며.”
“이건 치료.”
그 말에는 따질 게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물병을 든 채로 고개가 조금 움직인다.
‘치료라는 말에 내가 왜 고개를 끄덕이고 있나.’
(5화 끝)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누가 누굴 데려가.”아영이 내 옆을 본다.범준은 내 방수 가방이 넘어지지 않게 의자 다리 안쪽으로 밀고 있다.“지금도 챙기잖아.”“가방이 넘어지니까.”“홍 쌤. 나 가방은 안 넘어져?”아영 가방도 반쯤 기울어 있다.나는 일어나서 바로 세워 준다.“됐다.”“왜 홍 쌤이 해?”“내가 가까워.”범준이 나를 올려다본다.입가가 조금 올라간다.나는 앉으면서 범준의 팔꿈치를 식탁 안쪽으로 밀어 준다. 옆을 지나가는 손님이 부딪힐 뻔한다.아영이 그걸 본다.나도 내가 한 걸 본다.젓가락을 다시 든다.“물회 먹어. 국물 남기면 아까워.”아영은 대답 대신 국물을 뜬다.범준도 그릇 쪽으로 몸을 당긴다.나는 식탁 아래에서 내 가방을 발로 한 번 더 건드린다.안 넘어진다.잘 세워 놨다.괜히 확인했다.· · ·6월 13일 토요일 오후.엄마가 내 손에 안경집을 얹는다.“아빠 갖다줘.”“아빠 어딨어?”엄마가 마우스를 누른다.사진 속 손님의 턱이 조금 줄어든다.“길 건너.”“길 건너에서 안경 없이 바둑 둬?”“안 보인다고 갖다 달래.”나는 안경집을 연다.
“그럼 지금 다시 물어보면?”범준이 의자를 고쳐 든다.“들어 줄게.”“대답을 해야지.”“의자부터 놓고.”나는 사진관 앞까지 걸어간다. 의자를 내려놓자 엄마가 화분을 가져온다.범준도 의자를 놓는다.엄마가 그 앞에 서서 물을 달라고 한다.질문 하나 하는 사이에 일이 또 생긴다.나는 범준을 보고 입을 연다.“너 다음에도 이렇게 말 돌리면—”“하늬야, 물.”엄마가 빈 물조리개를 내민다.범준이 대신 받는다.“제가 할게요.”나는 빈손으로 서 있다.대답을 받아야 하는데 도움을 받는다.이러면 따지기도 애매하다.· · ·6월 6일 토요일.수영장 바닥에 물이 튄다.나는 파란 줄을 목 뒤로 넘기고 새 호루라기를 입에 댄다.짧게 한 번.민들레반 아이들이 내 쪽을 본다.정확히는 절반쯤 본다.나머지는 관람석의 엄마를 찾고, 수영모를 당기고, 옆 아이 물안경을 구경한다.“민들레반. 발은?”“천천히!”대답은 빠르다.발은 더 빠르다.나는 출발대 쪽으로 뛰려는 아이 앞에 손을 편다.“입으로만 천천히 하지 말고.”아이가 걸음을 줄인다.옆에서 금아영이 물안경을 들고 웃는다.“홍 쌤, 얘들 목소리만 들으면 다 준비 끝났어.”“목소리로 헤엄치면 우리 반이 이겨.”“그건 수영이 아니야.”“알아. 그래서 지금 급해.”아영은 나와 같은 어린이반 수영 강사다. 긴 머리를 단단히 묶었는데, 아이들 수영모부터 바로잡느라 자기 머리 끝은 어깨에 붙어 있다.내 반 아이 하나가 아영 앞에 선다.“선생님, 자꾸 물 들어가요.”아영이 물안경 줄을 살핀다.“거꾸로 썼네.”“아빠가 해 줬는데.”“아빠도 긴장했나 보다.”아영은 아이를 탓하지 않고 물안경을 뒤집는다. 눈 주위에 잘 붙는지 손끝으로 살핀 뒤 줄을 맞춘다.나는 관람석을 올려다본다.보호자들이 유리 너머에서 손을 흔든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는 옆 사람 휴대폰을 내리게 한다.그 사이에 검은 백팩이 보인다.그 위에 도범준이 있다.정확히는 도범준이 백팩을 앞에 놓고 서
“다음에는 네가 창가에 앉아.”범준이 손가락을 폈다 굽힌다.“그러면 안 기대?”“내가 또 넘어가면 창문이 받아 주겠지.”“아플 텐데.”“그러니까 깨우라고.”버스가 멈춘다.범준은 먼저 일어나서 내 가방을 꺼내 준다. 나는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고, 아직 덜 풀린 범준 손을 본다.“너 물리치료사잖아.”“응.”“자기 팔부터 잘 돌봐.”범준이 손을 내린다.“다음에는.”나는 대꾸하려다가 앞사람을 따라 내린다.다음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나도 방금 했다.· · ·5월 23일 토요일.사진관 앞에 플라스틱 의자가 쌓여 있다.나는 맨 위 의자를 든다.엄마가 바로 손잡이를 잡는다.“그거 말고 옆에.”“의자도 자리가 정해져 있어?”“그건 다리 흔들려. 내가 앉을 거야.”“엄마는 흔들려도 돼?”“나는 일어나면 되지. 어르신들은 허리 아프시다니까?”엄마는 의자를 바닥에 놓고 눌러 본다. 한쪽 다리가 조금 뜬다.나는 멀쩡한 의자 두 개를 포갠다.경로당 봄 잔치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은 했다.놀러 간다.의자를 나른다.아마 접시도 나른다.놀러 가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의 차이는 도착해서 알게 된다.“하늬야, 그거 내려놔.”길 건너에서 범준이 온다.검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었다. 내 손에 든 의자부터 받는다.“두 개야.”“알아.”“나도 들 수 있어.”“그럼 저거.”범준이 접힌 식탁을 턱으로 가리킨다.나는 의자를 다시 잡는다.“됐고. 이쪽이 가벼워.”범준이 웃으며 식탁으로 간다.명숙 아줌마가 부동산 문을 잠그고 천천히 건너온다. 팔 아래에는 두꺼운 스프링 노트가 있다.엄마가 묻는다.“명숙아. 몇 개 모자란대?”“의자 넷.”“넷? 아까는 셋이라며.”“네가 앉을 것도 있어야지. 그렇지?”엄마가 흔들리는 의자를 가리킨다.“내 거 여기 있어.”아줌마는 의자 다리를 보고, 엄마를 본다.“그건 화분 올려.”범준이 식탁을 펼치려다 잠깐 멈춘다.나는 고개를 돌린다.웃으면 엄마가 나도 일 시킨다.
“내가 열네 살 때 어디 가고 싶다고 했는데?”범준이 골목 모퉁이에서 멈춘다.내 소매 끝을 본다.돈가스 소스가 묻은 자리다.“집에 가서 먼저 씻어.”“내 질문이랑 소매가 무슨 상관인데.”“굳으면 안 지워져.”“어디냐고.”“수족관.”나는 접어 올린 소매를 놓는다.수족관.그 말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려 본다.“내가 그랬어?”“응.”“언제.”“수영부 들어갔을 때.”“너 그걸 아직 기억해?”범준은 다시 걷는다.“가고 싶다며.”나는 잠깐 뒤처졌다가 따라간다.‘도범준은 15년 전 목적지를 갖고 있다. 나는 오늘 휴대폰도 놓고 나왔다.’“그걸 이제 가?”“다음 주에 시간 되잖아.”맞는 말이다.이번에는 맞는 말인데도 곧바로 대꾸가 안 나온다.나는 소매를 더 높이 접는다.“됐고. 거기 매점 있어?”범준이 나를 본다.“있겠지.”“없으면 곤란해.”“물고기 보러 가는 거잖아.”“물고기도 밥 먹어.”범준 입가가 올라간다.나는 앞을 보고 걷는다.· · ·5월 16일 토요일.사진관 문을 열자 엄마가 내 가방을 먼저 본다.“수족관 간다며.”“응.”“수영하러 가는 거 아니지?”나는 방수 가방을 내려다본다.“거기서 내가 들어가면 직원이 꺼내 주겠지.”“가방이 너무 크다니까?”“작은 걸 들면 물병이 안 들어가.”엄마는 내 가방 안에 든 물병을 확인하고서야 비켜선다.곧바로 다시 앞을 막는다.“사진은 물고기만 찍지 말고.”“아직 출발도 안 했어.”“큰 물고기 옆에서 찍어. 둘이.”길 건너 명숙부동산 문이 열린다.범준이 나오고, 명숙 아줌마가 느리게 뒤따른다.엄마는 내 옆을 지나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다.“명숙아. 거기 멀다며?”“지하철로 50분.”“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찾아봤지. 그렇지?”아줌마가 범준을 본다.범준은 고개를 끄덕인다.엄마도 나를 본다.나는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넌 뭐 알아봤어?”“매점 있는지.”“있대?”나는 범준을 본다.범준이 대답한다.“있어.”엄마가 고
나는 거품 묻은 밥그릇을 돌려 본다.바닥까지 깨끗하다.“한 공기 먹는 애한테 왜 세 공기를 줘?”“달라니까 줬지.”“엄마가 먼저 물었잖아.”“물었는데 먹겠다잖아.”엄마가 물기를 닦은 접시를 찬장에 넣는다.나는 밥그릇을 헹군다. 밥풀 하나가 안 붙어 있다.‘도범준은 밥도 남기지 않고 내 반박할 거리도 남기지 않는다.’“다음에는 덜 줘.”“다음에도 부르게?”수돗물이 장갑 안으로 들어온다.나는 손을 든다.“그 말이 아니잖아.”“그럼 다음에는 안 불러?”“그것도 아니고.”엄마가 내 손에서 그릇을 받는다.오른손 장갑 끝을 조금 당겨 준다. 안에 든 물이 손목으로 흐른다.“그릇 그만 씻어. 수저만 마저 해.”“나 할 수 있어.”“할 수 있는 거 알아. 엄마도 할 수 있다니까?”나는 수저를 모은다.엄마는 범준이 쓰던 밥그릇을 물기까지 닦아서 올려 둔다.맨 위다.“걔 이번 주말에는 뭐 하니?”“몰라.”“만날 거 아니야?”“만날 때 물어보면 되지.”“그러면 어디 갈지도 모르니?”나는 수도꼭지를 잠근다.엄마가 나를 기다린다.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인데, 내가 어디 간다고 하면 거기까지 따라올 것 같다.“밥 먹겠지.”“뭐.”“밥.”“범준이는 밥을 잘 먹더라.”나는 젖은 장갑을 벗는다.‘이 얘기는 다시 세 공기로 돌아간다.’· · ·5월 9일 토요일.나는 신발을 신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엄마가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든다.“왜? 뭐 놓고 왔어?”“휴대폰.”“그걸 놓고 가면 어떡하니. 사진 찍어야지.”“연락부터 해야지.”“연락은 길 건너 가서 하면 되잖아.”맞는 말이다.그런데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먼저 나오는 건 이상하다.나는 방에서 휴대폰을 챙긴다. 물병은 방수 가방 안에 넣는다.아래층 사진관으로 내려오자 엄마가 보정하던 화면에서 눈을 뗀다.“오늘은 어디 가?”“옛날돈가스.”“돈가스?”“응.”“둘이 먹는 거지?”“다른 사람까지 부를까?”“둘이 먹으라니까?”엄마는 내가 먼
물병을 내려놓자 방문 밖에서 엄마가 부른다.“하늬야. 범준이 뭐 좋아하니?”나는 거울에서 눈을 뗀다.“왜.”“밥 먹일 거야.”“지금?”“토요일에.”나는 방문을 연다. 엄마가 빨래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서 있다.“엄마, 걔는 길 건너 살잖아.”“그래서 멀리서 오는 애만 밥 먹이니?”“집에서 먹으면 되잖아.”“우리 집에서 먹으면 안 되니?”대답하려다가 물병을 다시 본다.뚜껑은 아직 느슨하다.“너 어깨는?”엄마가 묻는다.“치료받았어.”“그러니까. 고맙다고 밥 먹여야지.”“그럼 나 치료해 준 사람 다 불러?”“범준이만 부를 건데.”엄마는 빨래 바구니에서 내 수건을 꺼낸다.내 손에는 안 주고 방 안 의자에 놓는다.“토요일 저녁. 너도 어디 가지 마.”“주말마다 한 번이면 되는데.”“뭐가?”나는 물병을 든다.“만나는 거.”엄마의 손이 수건 위에서 멈춘다.그러더니 수건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춘다.“그 한 번 우리 집에서 만나면 되겠네.”나는 입을 다문다.맞는 말이라서 더 할 말이 없다.· · ·5월 2일 토요일.저녁상을 차리기도 전에 엄마가 내 자리를 옮긴다.내 물컵은 원래 아빠 맞은편이다.지금은 옆이다.그 옆에 물컵 하나가 더 있다.나는 컵을 원래 자리로 밀어 놓는다.엄마가 다시 가져온다.“거긴 범준이.”“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자리가 있어?”“손님 자리는 있어야지.”“나는 살고 있는데 자리가 없어?”엄마가 접시를 내민다.“이거 놔.”접시에는 오이무침이 담겨 있다. 나는 왼손으로 받아 식탁에 놓는다.엄마가 내 오른팔을 본다.“무거운 건 내가 할게.”“이 정도는 들어.”“범준이가 조심하랬다며.”“내 말은 안 듣고 걔 말은 들어?”“네가 조심하라고 했으면 네 말도 듣지.”나는 오이무침을 가운데로 민다.‘지금 봉경애가 내 반박까지 미리 꺼내 놓는다. 접시 놓을 자리만 남는다.’아빠는 식탁 끝에 앉아 생선 접시를 보고 있다.“아빠. 오늘 손님 오는 거 알아?”“어.”“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