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사진에서는 그렇게 잘 웃더니.”
엄마가 휴대폰을 내 얼굴 옆에 댄다.
화면 속 나는 냉면 앞에서 웃는다. 화면 밖 나는 사진관 문손잡이를 잡고 있다.
“지금은 냉면이 없잖아.”
“들어와 봐.”
“집에 올라갈 건데.”
“올라가려면 여기 지나야지.”
“옆에 계단 있어.”
엄마는 내 방수 가방을 잡는다. 나는 끈이 어깨에서 미끄러지기 전에 한 발 들어선다.
문이 닫힌다.
퇴근은 했는데 집에는 못 간다.
4월 24일 금요일 저녁이다.
수영장에서는 아이들을 물 밖으로 꺼내고 왔다. 사진관에서는 엄마가 나를 의자로 밀어 넣는다.
“여기 앉아.”
“왜.”
“길 할머니 오셨어.”
“그럼 인사만 하면 되잖아.”
나는 카메라 앞에 앉은 길 할머니에게 허리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길 할머니가 꽃무늬 조끼를 쭉 편다.
“왔냐. 네 엄마가 너 기다린다더니.”
나는 엄마를 본다.
엄마는 내 눈을 피하지도 않는다.
“잠깐만 앉으라니까?”
손님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내 물병을 보고 자기 가방을 당겨 자리를 만들어 준다.
“이거 무겁겠다.”
“물을 많이 마셔서요.”
“운동하는 사람은 다르네.”
나는 물병을 세운다.
안쪽에서 아저씨 한 분이 목을 가다듬는다.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앉자마자 사람들이 나를 본다.
카메라는 길 할머니를 향해 있다.
그런데 왜 내가 자세를 고치고 있지.
“하늬야.”
길 할머니가 부른다.
“네.”
“범준이가 어디가 좋으냐?”
나는 물병 뚜껑을 돌리다 멈춘다.
엄마가 카메라를 든다.
“할머니, 턱 조금만 내리세요.”
“어디가 좋으냐니까.”
“턱부터요. 그렇게 들면 안 나와요.”
“내 얼굴이 왜 안 나와.”
“얼굴은 나오는데 콧속도 나와요.”
길 할머니가 턱을 내린다.
질문은 내 쪽에 그대로 남는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지금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셋이다.’
엄마까지 넷이다.
“키가 커요.”
옆자리 아주머니가 웃는다.
“그건 우리도 알지.”
“그러니까 설명이 필요 없어서요.”
엄마가 카메라 너머로 나를 본다.
나는 물병을 무릎에 올린다.
“됐고. 사진 찍으세요. 할머니 기다리시잖아.”
길 할머니가 등을 편다.
“나는 네 대답 기다려.”
· · ·
엄마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길 할머니는 촬영 의자에서 일어나 바로 엄마 옆으로 간다. 사진을 찍을 때보다 걸음이 빠르다.
나는 빈 촬영 의자를 본다.
저기 앉으면 질문을 안 받아도 되는 걸까.
사진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증명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길 할머니가 화면을 가리킨다.
“여기.”
“입가요?”
“이것 좀 없애 봐.”
엄마가 마우스를 누른다.
화면 속 길 할머니의 입가가 조금 펴진다.
“여기도.”
“할머니.”
“왜.”
“주름 하나는 남겨 드려야 진짜 같다니까?”
길 할머니가 안경을 올린다.
“진짜 나 맞잖아.”
“문제는 저 사진을 보고 할머니를 못 알아볼 수 있다는 거예요.”
“회장 선거에 붙일 건데 보기 좋으면 좋지.”
옆자리 아주머니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지난달 것도 잘 나왔던데요.”
“지난달은 지난달이고.”
길 할머니가 조끼 앞을 쓸어내린다.
“이번에는 옷이 다르잖아.”
엄마는 화면과 길 할머니를 번갈아 본다.
“얼굴은 같은데.”
“옷이 다르다니까.”
나는 물병을 입에 댄다.
웃다가 물을 흘리면 질문이 하나 더 붙을 것 같다.
길 할머니가 화면 속 자기 어깨를 짚는다.
“이쪽 꽃도 보여 줘.”
엄마가 사진을 조금 넓게 잡는다.
옆자리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낫네요. 얼굴도 편하고.”
“그렇지?”
길 할머니가 내 쪽을 돌아본다.
“하늬 너는 어떠냐.”
나는 화면을 본다.
길 할머니의 오른쪽 조끼 깃이 안으로 접혀 있다. 꽃무늬가 반쯤 가린다.
“저거 펴고 다시 찍으면 안 돼요?”
엄마가 화면을 확대한다.
“어머. 이게 말렸네.”
길 할머니가 바로 자기 깃을 만진다.
나는 물병을 내려놓고 일어난다.
“여기요.”
깃 끝을 밖으로 펴 준다. 꽃이 제대로 나온다.
길 할머니가 고개를 숙이려 한다.
“움직이지 마세요. 또 들어가요.”
“내가 안 움직이면 네 엄마가 빨리 찍어야지.”
엄마가 의자를 밀고 일어난다.
“거기서 찍을 거 아니고요. 아까 의자로 오셔야죠.”
길 할머니가 다시 촬영 의자에 앉는다.
나는 옆에서 조끼가 접히지 않는지 본다. 할머니가 등을 기대고 꽃무늬를 한 번 더 내려다본다.
“됐다.”
엄마가 카메라를 든다.
“하늬, 비켜.”
나는 옆으로 빠진다.
찰칵.
길 할머니의 입가에 주름이 잡힌다.
이번에는 지우자는 말이 없다.
· · ·
사진이 나오는 동안 엄마는 나를 다시 손님 의자에 앉힌다.
정확히는 내가 가방을 집자 손바닥으로 의자 등받이를 두드린다.
“아직이야.”
“뭐가 아직인데.”
“얘기하고 있잖아.”
“사진 얘기 끝났어.”
“너 얘기.”
길 할머니가 내 옆으로 와 앉는다.
아주머니가 자리를 조금 옮긴다. 나는 가운데에 남는다.
아저씨도 사진 봉투를 받으러 일어났다가 엄마가 부르지 않자 다시 앉는다.
아무도 나를 둘러싸려고 움직인 건 아닌데 결과는 그렇다.
길 할머니가 내 손등을 톡 친다.
“그래서 키 말고.”
아까 질문이 돌아온다.
나는 천장을 한 번 본다.
“가까이 살아요.”
“그것도 알아.”
“물어보시는 건 다 아시는 거 같은데요.”
아주머니가 웃는다.
“본인이 좋다는 걸 듣고 싶은 거지.”
나는 물병 뚜껑을 닫는다.
힘을 조금 세게 준다.
엄마가 컴퓨터 앞에서 말한다.
“얘가 말을 꼭 저렇게 받아요.”
“엄마도 내가 좋아하는 거 다 알잖아.”
“범준이가 냉면이니?”
“지금 엄마가 냉면 얘기부터 했는데.”
길 할머니가 내 단발을 본다.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렇게 말 잘하냐?”
“애들 앞에서는 잘해요.”
“범준이 앞에서는?”
“더 잘해요.”
옆자리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좋네. 말 못 하고 사는 것보다.”
나는 잠깐 입을 다문다.
그 말에는 대꾸할 게 없다.
엄마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죠? 얘가 밖에서는 아무 말이나 못 해도 범준이한테는 다 해요.”
“아무 말은 안 해.”
“너 목소리 큰 것도 걔는 신경 안 쓰고.”
“물에서 나오라고 하면 크게 해야 돼.”
“지금 물 없잖아.”
나는 물병을 들어 보인다.
엄마가 눈을 가늘게 뜬다.
다시 내려놓는다.
‘작전인데 왜 내가 진짜 심문을 받고 있지.’
주말에 한 번.
사진 한 장.
사진은 이미 보냈다.
금요일 저녁에 손님들 앞에서 대답하는 일은 입 밖에 낸 적도 없다.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보탠다.
“서로 오래 알면 편하겠어요.”
“네. 뭐, 그렇죠.”
“집안도 알고.”
엄마가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길 하나 건너잖아요. 문에서 문까지 30걸음이에요.”
“엄마가 세어 봤어?”
“네가 셌어. 어릴 때.”
나는 입을 다문다.
엄마는 마우스를 누르며 웃는다.
“모르는 게 없다니까?”
길 할머니가 무릎을 두드린다.
“그럼 언제 결혼하냐.”
나는 물병을 다시 잡는다.
마실 물이 필요한 게 아니다. 손에 뭐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아직 그런 얘기는 안 해요.”
“벌써 해야지.”
“만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말하고 나서 멈춘다.
길 할머니도 나를 본다.
옆자리 아주머니도 본다.
엄마는 마우스를 놓는다.
“너희가?”
나는 물병의 파란 뚜껑을 본다.
설명을 어디부터 해야 하지.
아홉 살부터 알았지만 지금 만난 건 얼마 안 됐고.
사실은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기서 작전을 꺼낼 수는 없고.
“이렇게 밥 먹는 건요.”
엄마가 눈썹을 올린다.
나는 바로 덧붙인다.
“사진 찍으면서.”
“밥은 전에도 먹었잖아.”
“사진은 안 찍었잖아.”
길 할머니가 벽을 가리킨다.
“저기 다 있구먼.”
나는 고개를 돌린다.
벽 한쪽에 액자가 줄줄이 걸려 있다.
사진 속 나는 키가 다 다르다.
범준도 다르다.
엄마가 찍어 놓은 사진들이 내 대답을 기다린다.
· · ·
가장 가까운 액자에는 운동복 차림의 내가 있다.
그 옆은 책가방을 멘 사진이다. 더 아래에는 앞니가 빠진 얼굴이 있다.
나는 물병을 의자에 놓고 벽 앞으로 간다.
엄마가 뒤에서 말한다.
“거기 있는 건 안 바꿨어. 지난번이랑 같아.”
“내가 매일 보지는 않잖아.”
사진관을 지나 집에 올라가면서 손님 얼굴은 본다. 엄마가 일하는지도 본다.
벽에 붙은 내 얼굴까지 매번 확인하지는 않는다.
작은 액자 하나 앞에서 멈춘다.
내 왼팔이 하얗다.
깁스다.
옆에 선 범준은 가방을 멘 채 카메라를 본다. 왼쪽 눈썹 위에는 작은 상처가 있다.
“이거 열 살 때지?”
엄마가 고개를 든다.
“자전거 타다 넘어졌을 때.”
“왼팔이었네.”
나는 지금의 왼손을 편다.
길 할머니가 의자에서 몸을 돌린다.
“그 녀석이 네 가방 두 개를 메고 다녔지.”
“제 가방 두 개요?”
“네 것하고 제 것.”
“아.”
길 할머니가 양쪽 어깨를 번갈아 두드린다.
“이쪽에 하나. 저쪽에 하나. 너는 빈손으로 가고.”
사진을 가까이 본다.
범준의 어깨 바깥으로 가방 끈이 하나 더 보인다. 내 가방인 것 같다.
내 것은 밝은 색이었는데.
거기까지 생각나고, 모양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멜 수 있었을 텐데.”
엄마가 마우스를 누른다.
“왼팔 들고 오른손으로는 자꾸 과자 먹었잖아.”
“꼭 그렇게 말해야 돼?”
“어떻게 말해. 네 오른손 바빴다고?”
아주머니가 웃는다.
나는 사진 속 내 손을 본다.
오른손에 뭔가 쥐고 있다.
증거가 자꾸 나온다.
길 할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걔가 기다리면 네가 한참 뒤에 나왔어. 가방 주고 뭘 또 먹고.”
“제가요?”
“그래. 걔는 기다리고.”
나는 액자 아래쪽을 본다.
깁스에 검은 선이 여러 개 있다.
그냥 글씨는 아닌 것 같다. 둥근 것도 있고, 길게 이어진 것도 있다.
“여기에 뭐 그렸네.”
엄마가 대답한다.
“범준이가 그려 줬잖아.”
“그랬어?”
“네가 가만히 좀 있으라고 시켰다고 했어.”
그 말은 어렴풋이 생각난다.
여름이었다.
범준은 바닥에 앉아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선풍기 바람이 오는 쪽으로 자꾸 몸을 돌렸다.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내가 잠깐 팔을 들자 범준이 다시 자기 무릎 쪽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뭘 그렸더라.
나는 액자에 얼굴을 가까이 댄다.
검은 선이 보이다가 천장 등이 유리에 비친다. 한쪽으로 움직이면 빛은 빠지는데 그림도 비스듬해진다.
길 할머니가 묻는다.
“안 보이냐?”
“잘 안 보여요.”
엄마가 말한다.
“안경 써야 되는 거 아니야?”
“사진이 작아.”
“내가 크게 뽑아 줄까?”
나는 바로 고개를 젓는다.
이걸 크게 뽑으면 내 오른손에 든 과자까지 선명해질 것 같다.
“됐고. 나중에 물어보지 뭐.”
“범준이한테?”
“그린 사람이 걔라며.”
길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녀석은 알겠지.”
나는 사진 속 범준을 본다.
나보다 조금 크다. 어깨에는 가방이 두 개다.
깁스 한쪽이 범준의 옷에 닿아 있다.
엄마가 사진을 찍을 때 가까이 붙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때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붙었다.
나는 액자에서 한 발 물러난다.
· · ·
엄마가 사진 봉투를 길 할머니에게 건넨다.
“15,000원이요.”
길 할머니가 지갑을 연다.
엄마는 돈을 받고도 봉투를 놓지 않는다.
“사진 바꿔 붙이실 때 전에 거 위에 겹치지 마세요. 자꾸 두꺼워진다고 하셨잖아요.”
“이번엔 떼고 붙일 거야.”
“지난달에도 그러셨어요.”
“이번에는 조끼가 다르다니까.”
“조끼하고 겹쳐 붙이는 건 상관없어요.”
나는 가방 끈을 잡는다.
지금이다.
손님이 계산하는 동안 계단으로 가면 된다.
문 쪽으로 한 발 움직인다.
엄마가 나를 부른다.
“하늬.”
나는 멈춘다.
“왜.”
“내가 다 알아봤어. 범준이 월급이—”
“엄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본다.
아주머니가 자기 가방을 집다 말고 시선을 내린다. 아저씨도 벽의 가격표 쪽을 본다.
나는 엄마 앞까지 간다.
“그건 여기서 말하지 마.”
“좋다는 얘기잖아.”
“내 월급도 손님들한테 말할 거야?”
엄마의 손이 사진 봉투 위에서 멈춘다.
나는 조금 낮게 말한다.
“걔가 직접 말할 데서 말하면 되지.”
엄마가 나를 본다.
입을 열었다가 닫는다.
길 할머니가 봉투를 당겨 가져간다.
“그렇지. 월급보다 애가 좋으면 되지.”
나는 대답을 못 한다.
엄마가 곧장 나를 본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더 곤란하다.
나는 가방을 어깨에 멘다.
“나 씻으러 갈래.”
“밥부터 먹어.”
“씻고 먹을게.”
“어디가 좋으냐고 물었는데 아직 대답 안 했네.”
길 할머니가 봉투를 가방에 넣으며 말한다.
나는 문과 계단 사이에서 방향을 못 잡는다.
“가방 잘 들어 줘요.”
결국 아까 사진에서 본 걸 말한다.
엄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렇지?”
“지금도 들어 줘?”
길 할머니가 묻는다.
나는 가방 끈을 고쳐 잡는다.
“가끔요.”
내가 물병을 제대로 닫지 않았을 때도 든다.
어깨를 돌리면 말없이 가져갈 때도 있다.
그것까지 말하면 언제 결혼하느냐는 질문이 돌아올 것 같다.
나는 끈을 조금 더 당긴다.
엄마가 손을 뻗는다.
“그럼 그거라도 내려놓고 있어. 계속 메고 있지 말고.”
“올라갈 거라니까.”
그때 사진관 문이 열린다.
나는 손잡이 쪽을 본다.
범준이 검은 백팩을 메고 들어온다. 문을 닫기 전에 길 할머니와 손님들에게 고개부터 숙인다.
“안녕하세요.”
길 할머니가 나를 본다.
엄마는 의자에서 일어난다.
나는 벽시계를 보고, 다시 범준을 본다.
주말에 한 번이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범준이 내 가방 끈에서 얼굴로 시선을 올린다.
그러고는 엄마에게 말한다.
“어머니, 하늬 데리러 왔어요.”
‘하나, 둘, 셋.’
(4화 끝)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누가 누굴 데려가.”아영이 내 옆을 본다.범준은 내 방수 가방이 넘어지지 않게 의자 다리 안쪽으로 밀고 있다.“지금도 챙기잖아.”“가방이 넘어지니까.”“홍 쌤. 나 가방은 안 넘어져?”아영 가방도 반쯤 기울어 있다.나는 일어나서 바로 세워 준다.“됐다.”“왜 홍 쌤이 해?”“내가 가까워.”범준이 나를 올려다본다.입가가 조금 올라간다.나는 앉으면서 범준의 팔꿈치를 식탁 안쪽으로 밀어 준다. 옆을 지나가는 손님이 부딪힐 뻔한다.아영이 그걸 본다.나도 내가 한 걸 본다.젓가락을 다시 든다.“물회 먹어. 국물 남기면 아까워.”아영은 대답 대신 국물을 뜬다.범준도 그릇 쪽으로 몸을 당긴다.나는 식탁 아래에서 내 가방을 발로 한 번 더 건드린다.안 넘어진다.잘 세워 놨다.괜히 확인했다.· · ·6월 13일 토요일 오후.엄마가 내 손에 안경집을 얹는다.“아빠 갖다줘.”“아빠 어딨어?”엄마가 마우스를 누른다.사진 속 손님의 턱이 조금 줄어든다.“길 건너.”“길 건너에서 안경 없이 바둑 둬?”“안 보인다고 갖다 달래.”나는 안경집을 연다.
“그럼 지금 다시 물어보면?”범준이 의자를 고쳐 든다.“들어 줄게.”“대답을 해야지.”“의자부터 놓고.”나는 사진관 앞까지 걸어간다. 의자를 내려놓자 엄마가 화분을 가져온다.범준도 의자를 놓는다.엄마가 그 앞에 서서 물을 달라고 한다.질문 하나 하는 사이에 일이 또 생긴다.나는 범준을 보고 입을 연다.“너 다음에도 이렇게 말 돌리면—”“하늬야, 물.”엄마가 빈 물조리개를 내민다.범준이 대신 받는다.“제가 할게요.”나는 빈손으로 서 있다.대답을 받아야 하는데 도움을 받는다.이러면 따지기도 애매하다.· · ·6월 6일 토요일.수영장 바닥에 물이 튄다.나는 파란 줄을 목 뒤로 넘기고 새 호루라기를 입에 댄다.짧게 한 번.민들레반 아이들이 내 쪽을 본다.정확히는 절반쯤 본다.나머지는 관람석의 엄마를 찾고, 수영모를 당기고, 옆 아이 물안경을 구경한다.“민들레반. 발은?”“천천히!”대답은 빠르다.발은 더 빠르다.나는 출발대 쪽으로 뛰려는 아이 앞에 손을 편다.“입으로만 천천히 하지 말고.”아이가 걸음을 줄인다.옆에서 금아영이 물안경을 들고 웃는다.“홍 쌤, 얘들 목소리만 들으면 다 준비 끝났어.”“목소리로 헤엄치면 우리 반이 이겨.”“그건 수영이 아니야.”“알아. 그래서 지금 급해.”아영은 나와 같은 어린이반 수영 강사다. 긴 머리를 단단히 묶었는데, 아이들 수영모부터 바로잡느라 자기 머리 끝은 어깨에 붙어 있다.내 반 아이 하나가 아영 앞에 선다.“선생님, 자꾸 물 들어가요.”아영이 물안경 줄을 살핀다.“거꾸로 썼네.”“아빠가 해 줬는데.”“아빠도 긴장했나 보다.”아영은 아이를 탓하지 않고 물안경을 뒤집는다. 눈 주위에 잘 붙는지 손끝으로 살핀 뒤 줄을 맞춘다.나는 관람석을 올려다본다.보호자들이 유리 너머에서 손을 흔든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는 옆 사람 휴대폰을 내리게 한다.그 사이에 검은 백팩이 보인다.그 위에 도범준이 있다.정확히는 도범준이 백팩을 앞에 놓고 서
“다음에는 네가 창가에 앉아.”범준이 손가락을 폈다 굽힌다.“그러면 안 기대?”“내가 또 넘어가면 창문이 받아 주겠지.”“아플 텐데.”“그러니까 깨우라고.”버스가 멈춘다.범준은 먼저 일어나서 내 가방을 꺼내 준다. 나는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고, 아직 덜 풀린 범준 손을 본다.“너 물리치료사잖아.”“응.”“자기 팔부터 잘 돌봐.”범준이 손을 내린다.“다음에는.”나는 대꾸하려다가 앞사람을 따라 내린다.다음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나도 방금 했다.· · ·5월 23일 토요일.사진관 앞에 플라스틱 의자가 쌓여 있다.나는 맨 위 의자를 든다.엄마가 바로 손잡이를 잡는다.“그거 말고 옆에.”“의자도 자리가 정해져 있어?”“그건 다리 흔들려. 내가 앉을 거야.”“엄마는 흔들려도 돼?”“나는 일어나면 되지. 어르신들은 허리 아프시다니까?”엄마는 의자를 바닥에 놓고 눌러 본다. 한쪽 다리가 조금 뜬다.나는 멀쩡한 의자 두 개를 포갠다.경로당 봄 잔치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은 했다.놀러 간다.의자를 나른다.아마 접시도 나른다.놀러 가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의 차이는 도착해서 알게 된다.“하늬야, 그거 내려놔.”길 건너에서 범준이 온다.검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었다. 내 손에 든 의자부터 받는다.“두 개야.”“알아.”“나도 들 수 있어.”“그럼 저거.”범준이 접힌 식탁을 턱으로 가리킨다.나는 의자를 다시 잡는다.“됐고. 이쪽이 가벼워.”범준이 웃으며 식탁으로 간다.명숙 아줌마가 부동산 문을 잠그고 천천히 건너온다. 팔 아래에는 두꺼운 스프링 노트가 있다.엄마가 묻는다.“명숙아. 몇 개 모자란대?”“의자 넷.”“넷? 아까는 셋이라며.”“네가 앉을 것도 있어야지. 그렇지?”엄마가 흔들리는 의자를 가리킨다.“내 거 여기 있어.”아줌마는 의자 다리를 보고, 엄마를 본다.“그건 화분 올려.”범준이 식탁을 펼치려다 잠깐 멈춘다.나는 고개를 돌린다.웃으면 엄마가 나도 일 시킨다.
“내가 열네 살 때 어디 가고 싶다고 했는데?”범준이 골목 모퉁이에서 멈춘다.내 소매 끝을 본다.돈가스 소스가 묻은 자리다.“집에 가서 먼저 씻어.”“내 질문이랑 소매가 무슨 상관인데.”“굳으면 안 지워져.”“어디냐고.”“수족관.”나는 접어 올린 소매를 놓는다.수족관.그 말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려 본다.“내가 그랬어?”“응.”“언제.”“수영부 들어갔을 때.”“너 그걸 아직 기억해?”범준은 다시 걷는다.“가고 싶다며.”나는 잠깐 뒤처졌다가 따라간다.‘도범준은 15년 전 목적지를 갖고 있다. 나는 오늘 휴대폰도 놓고 나왔다.’“그걸 이제 가?”“다음 주에 시간 되잖아.”맞는 말이다.이번에는 맞는 말인데도 곧바로 대꾸가 안 나온다.나는 소매를 더 높이 접는다.“됐고. 거기 매점 있어?”범준이 나를 본다.“있겠지.”“없으면 곤란해.”“물고기 보러 가는 거잖아.”“물고기도 밥 먹어.”범준 입가가 올라간다.나는 앞을 보고 걷는다.· · ·5월 16일 토요일.사진관 문을 열자 엄마가 내 가방을 먼저 본다.“수족관 간다며.”“응.”“수영하러 가는 거 아니지?”나는 방수 가방을 내려다본다.“거기서 내가 들어가면 직원이 꺼내 주겠지.”“가방이 너무 크다니까?”“작은 걸 들면 물병이 안 들어가.”엄마는 내 가방 안에 든 물병을 확인하고서야 비켜선다.곧바로 다시 앞을 막는다.“사진은 물고기만 찍지 말고.”“아직 출발도 안 했어.”“큰 물고기 옆에서 찍어. 둘이.”길 건너 명숙부동산 문이 열린다.범준이 나오고, 명숙 아줌마가 느리게 뒤따른다.엄마는 내 옆을 지나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다.“명숙아. 거기 멀다며?”“지하철로 50분.”“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찾아봤지. 그렇지?”아줌마가 범준을 본다.범준은 고개를 끄덕인다.엄마도 나를 본다.나는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넌 뭐 알아봤어?”“매점 있는지.”“있대?”나는 범준을 본다.범준이 대답한다.“있어.”엄마가 고
나는 거품 묻은 밥그릇을 돌려 본다.바닥까지 깨끗하다.“한 공기 먹는 애한테 왜 세 공기를 줘?”“달라니까 줬지.”“엄마가 먼저 물었잖아.”“물었는데 먹겠다잖아.”엄마가 물기를 닦은 접시를 찬장에 넣는다.나는 밥그릇을 헹군다. 밥풀 하나가 안 붙어 있다.‘도범준은 밥도 남기지 않고 내 반박할 거리도 남기지 않는다.’“다음에는 덜 줘.”“다음에도 부르게?”수돗물이 장갑 안으로 들어온다.나는 손을 든다.“그 말이 아니잖아.”“그럼 다음에는 안 불러?”“그것도 아니고.”엄마가 내 손에서 그릇을 받는다.오른손 장갑 끝을 조금 당겨 준다. 안에 든 물이 손목으로 흐른다.“그릇 그만 씻어. 수저만 마저 해.”“나 할 수 있어.”“할 수 있는 거 알아. 엄마도 할 수 있다니까?”나는 수저를 모은다.엄마는 범준이 쓰던 밥그릇을 물기까지 닦아서 올려 둔다.맨 위다.“걔 이번 주말에는 뭐 하니?”“몰라.”“만날 거 아니야?”“만날 때 물어보면 되지.”“그러면 어디 갈지도 모르니?”나는 수도꼭지를 잠근다.엄마가 나를 기다린다.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인데, 내가 어디 간다고 하면 거기까지 따라올 것 같다.“밥 먹겠지.”“뭐.”“밥.”“범준이는 밥을 잘 먹더라.”나는 젖은 장갑을 벗는다.‘이 얘기는 다시 세 공기로 돌아간다.’· · ·5월 9일 토요일.나는 신발을 신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엄마가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든다.“왜? 뭐 놓고 왔어?”“휴대폰.”“그걸 놓고 가면 어떡하니. 사진 찍어야지.”“연락부터 해야지.”“연락은 길 건너 가서 하면 되잖아.”맞는 말이다.그런데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먼저 나오는 건 이상하다.나는 방에서 휴대폰을 챙긴다. 물병은 방수 가방 안에 넣는다.아래층 사진관으로 내려오자 엄마가 보정하던 화면에서 눈을 뗀다.“오늘은 어디 가?”“옛날돈가스.”“돈가스?”“응.”“둘이 먹는 거지?”“다른 사람까지 부를까?”“둘이 먹으라니까?”엄마는 내가 먼
물병을 내려놓자 방문 밖에서 엄마가 부른다.“하늬야. 범준이 뭐 좋아하니?”나는 거울에서 눈을 뗀다.“왜.”“밥 먹일 거야.”“지금?”“토요일에.”나는 방문을 연다. 엄마가 빨래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서 있다.“엄마, 걔는 길 건너 살잖아.”“그래서 멀리서 오는 애만 밥 먹이니?”“집에서 먹으면 되잖아.”“우리 집에서 먹으면 안 되니?”대답하려다가 물병을 다시 본다.뚜껑은 아직 느슨하다.“너 어깨는?”엄마가 묻는다.“치료받았어.”“그러니까. 고맙다고 밥 먹여야지.”“그럼 나 치료해 준 사람 다 불러?”“범준이만 부를 건데.”엄마는 빨래 바구니에서 내 수건을 꺼낸다.내 손에는 안 주고 방 안 의자에 놓는다.“토요일 저녁. 너도 어디 가지 마.”“주말마다 한 번이면 되는데.”“뭐가?”나는 물병을 든다.“만나는 거.”엄마의 손이 수건 위에서 멈춘다.그러더니 수건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춘다.“그 한 번 우리 집에서 만나면 되겠네.”나는 입을 다문다.맞는 말이라서 더 할 말이 없다.· · ·5월 2일 토요일.저녁상을 차리기도 전에 엄마가 내 자리를 옮긴다.내 물컵은 원래 아빠 맞은편이다.지금은 옆이다.그 옆에 물컵 하나가 더 있다.나는 컵을 원래 자리로 밀어 놓는다.엄마가 다시 가져온다.“거긴 범준이.”“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자리가 있어?”“손님 자리는 있어야지.”“나는 살고 있는데 자리가 없어?”엄마가 접시를 내민다.“이거 놔.”접시에는 오이무침이 담겨 있다. 나는 왼손으로 받아 식탁에 놓는다.엄마가 내 오른팔을 본다.“무거운 건 내가 할게.”“이 정도는 들어.”“범준이가 조심하랬다며.”“내 말은 안 듣고 걔 말은 들어?”“네가 조심하라고 했으면 네 말도 듣지.”나는 오이무침을 가운데로 민다.‘지금 봉경애가 내 반박까지 미리 꺼내 놓는다. 접시 놓을 자리만 남는다.’아빠는 식탁 끝에 앉아 생선 접시를 보고 있다.“아빠. 오늘 손님 오는 거 알아?”“어.”“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