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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집밥 초대, 홍씨 집 식탁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21:29:32

물병을 내려놓자 방문 밖에서 엄마가 부른다.

“하늬야. 범준이 뭐 좋아하니?”

나는 거울에서 눈을 뗀다.

“왜.”

“밥 먹일 거야.”

“지금?”

“토요일에.”

나는 방문을 연다. 엄마가 빨래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서 있다.

“엄마, 걔는 길 건너 살잖아.”

“그래서 멀리서 오는 애만 밥 먹이니?”

“집에서 먹으면 되잖아.”

“우리 집에서 먹으면 안 되니?”

대답하려다가 물병을 다시 본다.

뚜껑은 아직 느슨하다.

“너 어깨는?”

엄마가 묻는다.

“치료받았어.”

“그러니까. 고맙다고 밥 먹여야지.”

“그럼 나 치료해 준 사람 다 불러?”

“범준이만 부를 건데.”

엄마는 빨래 바구니에서 내 수건을 꺼낸다.

내 손에는 안 주고 방 안 의자에 놓는다.

“토요일 저녁. 너도 어디 가지 마.”

“주말마다 한 번이면 되는데.”

“뭐가?”

나는 물병을 든다.

“만나는 거.”

엄마의 손이 수건 위에서 멈춘다.

그러더니 수건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춘다.

“그 한 번 우리 집에서 만나면 되겠네.”

나는 입을 다문다.

맞는 말이라서 더 할 말이 없다.

· · ·

5월 2일 토요일.

저녁상을 차리기도 전에 엄마가 내 자리를 옮긴다.

내 물컵은 원래 아빠 맞은편이다.

지금은 옆이다.

그 옆에 물컵 하나가 더 있다.

나는 컵을 원래 자리로 밀어 놓는다.

엄마가 다시 가져온다.

“거긴 범준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자리가 있어?”

“손님 자리는 있어야지.”

“나는 살고 있는데 자리가 없어?”

엄마가 접시를 내민다.

“이거 놔.”

접시에는 오이무침이 담겨 있다. 나는 왼손으로 받아 식탁에 놓는다.

엄마가 내 오른팔을 본다.

“무거운 건 내가 할게.”

“이 정도는 들어.”

“범준이가 조심하랬다며.”

“내 말은 안 듣고 걔 말은 들어?”

“네가 조심하라고 했으면 네 말도 듣지.”

나는 오이무침을 가운데로 민다.

‘지금 봉경애가 내 반박까지 미리 꺼내 놓는다. 접시 놓을 자리만 남는다.’

아빠는 식탁 끝에 앉아 생선 접시를 보고 있다.

“아빠. 오늘 손님 오는 거 알아?”

“어.”

“누군지 알아?”

“어.”

“누군데.”

아빠가 나를 본다.

대답할 때까지 기다리는데 엄마가 먼저 말한다.

“범준이 온다니까? 아까 내가 말했잖아.”

“아빠한테 물었어.”

“아빠가 알고 있잖아.”

아빠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이 한 대답을 엄마 혼자 한다.

나는 수저를 놓으려다가 손을 멈춘다.

네 벌이다.

우리 집은 세 식구다.

범준이 여기서 밥 먹은 적은 많다. 방학 때도 먹었고, 내가 수업 끝나고 늦게 돌아오는 날에는 나보다 먼저 먹기도 했다.

그때는 수저 하나를 서랍에서 더 꺼냈다.

오늘은 네 벌이 처음부터 나란히 있다.

“젓가락 왜 다 똑같은 거야?”

“손님 오니까.”

“걔가 우리 집 젓가락을 몰라?”

“그래도 좋은 거 꺼내야지.”

엄마가 식탁 위를 한 번 훑는다.

그러고는 내 티셔츠를 본다.

“옷은 그거 입을 거야?”

“밥 먹는 옷이 따로 있어?”

“물어본 거야.”

“나도 물어본 거야.”

엄마가 내 목 부분을 살짝 펴 준다.

나는 그 손을 피하지 못하고 서 있다.

‘작전 사진은 안 찍기로 했는데 내가 먼저 정리되고 있다.’

아래층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난다.

엄마가 바로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왔다.”

“발소리도 안 들리는데.”

그 말이 끝나기 전에 계단에서 발소리가 올라온다.

나는 내 티셔츠 목을 한 번 만진다.

엄마는 못 본 척한다.

못 본 척하는 얼굴을 아주 크게 한다.

· · ·

범준이 문 앞에서 신발을 벗는다.

검은 백팩을 멘 채 한 손에 봉투를 들고 있다.

엄마가 문을 더 열어 준다.

“왔어? 얼른 들어와. 밥 다 됐어.”

“어머니, 이거요.”

봉투 안에서 딸기 담긴 상자가 나온다.

엄마의 목소리가 한 번 더 커진다.

“뭘 이런 걸 사 와. 그냥 와도 된다니까?”

받는 손은 아주 빠르다.

나는 범준을 본다.

“우리 집 올 때 원래 빈손이었잖아.”

“오늘은 초대받았잖아.”

“전에는 침입했어?”

범준이 백팩을 내려놓는다.

엄마가 딸기 상자를 들고 부엌으로 간다.

“하늬야, 손님한테 왜 그래.”

“엄마가 손님이라고 할 때마다 걔도 놀랄걸.”

범준은 놀라는 대신 아빠 쪽으로 몸을 돌린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아빠가 고개를 든다.

“어.”

나는 범준을 옆에서 본다.

“그냥 우리 아빠라고 하면 안 돼?”

“인사하는데 우리 아빠라고 해?”

“홍 선생님.”

“네 아버지한테?”

“됐고. 손 씻어.”

범준이 세면대 쪽으로 걸어간다.

아빠는 다시 생선 접시를 본다.

나는 아빠 옆에 서서 목소리를 낮춘다.

“아버님이라고 불러도 안 이상해?”

“어.”

아빠는 조금도 안 이상한 얼굴이다.

나만 식탁 위 수저를 다시 센다.

‘하나, 둘, 셋.’

네 번째에서 범준이 돌아온다.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의자를 당긴다.

내 옆이다.

나는 앉기 전에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범준이 내 오른쪽 어깨를 본다.

“오늘 수업했어?”

“안 했어.”

“팔은.”

“밥 먹을 수 있어.”

“그건 왼손으로도 먹어.”

엄마가 국그릇을 내려놓는다.

“맞아. 왼손으로 먹으면 되지.”

“엄마. 둘이 얘기 중이야.”

“나도 들리는데?”

범준이 내 앞에 놓인 무거운 국그릇을 조금 당긴다.

팔을 길게 뻗지 않아도 닿는 곳이다.

나는 숟가락을 든다.

‘여기서는 천장 대신 국을 보면 되겠네.’

엄마가 범준 앞에 밥그릇을 놓는다.

밥이 위로 올라와 있다.

“엄마, 저거 한 공기 맞아?”

“그릇 하나잖아.”

범준이 밥그릇을 받아 든다.

“잘 먹겠습니다.”

아빠가 숟가락을 들고, 나도 밥을 뜬다.

엄마만 숟가락을 안 든다.

말부터 뜬다.

“범준아. 월급은 잘 나와?”

나는 숟가락을 내린다.

“엄마.”

“왜. 밀리는 데도 있다잖아.”

“밥 먹다가 그걸 왜 물어.”

“밥 먹으면서 물으면 안 되니?”

범준이 삼킨 뒤 대답한다.

“잘 나와요.”

“310만 원이라며?”

“내가 다 알아봤어”는 아직 안 나왔는데 이미 다 알아본 숫자가 나온다.

나는 엄마를 본다.

“알면서 왜 물어?”

“본인한테 듣는 게 다르지.”

범준은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달마다 조금 다른데 보통 그 정도예요.”

엄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만족스럽게.

나는 식탁 아래로 발을 뻗는다.

범준 신발은 현관에 있다. 발등을 건드리기 쉽다.

톡.

범준이 나를 본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발로 불렀잖아.”

엄마도 나를 본다.

아빠까지 나를 본다.

나는 발을 의자 아래로 도로 넣는다.

“다리 펴다가.”

범준이 자기 의자를 조금 옆으로 민다.

내가 다리 펼 자리를 만든다.

‘이 사람은 내가 찼는데 자리를 비켜 준다. 작전 방해를 너무 성실하게 한다.’

· · ·

범준이 첫 밥그릇을 비우는 동안 엄마는 길 건너 집 얘기로 넘어간다.

“명숙이는 집이 넓어도 청소할 데가 많아서 싫다는데, 또 좁은 데 가면 답답하다 하고.”

“매일 보잖아.”

내가 말한다.

“매일 봐도 얘기는 하지.”

“그러니까 그 얘기를 명숙 아줌마한테 하면 되잖아.”

“범준이 집이기도 하잖니.”

엄마가 범준을 본다.

“위층까지 쓰면 평수 꽤 되지?”

범준이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정확히는 잘 몰라요.”

“네 집인데?”

내가 묻는다.

“사는 데 평수까지 세고 살아?”

“엄마는 세고 살잖아.”

엄마가 내 밥그릇을 본다.

“너는 밥 몇 숟가락 먹었는지만 세고 살아.”

나는 밥을 뜬다.

범준의 시선도 내 숟가락을 따라온다.

둘이 한쪽을 보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빠가 생선 접시를 당긴다.

젓가락으로 가운데 뼈를 빼고, 옆에 붙은 가시를 골라낸다.

엄마가 그 사이 다시 입을 연다.

“범준이는 어릴 때부터 참 차분했어. 우리 애가 가방 내려놓고 어디 가 버리면 걔가 들고 왔잖아.”

“학교에 놓고 온 건 아니었어.”

“어쨌든 네 가방 걔가 메고 왔어.”

“내가 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엄마가 같은 얘기를 자기 쪽으로 가져간다.

나는 범준에게 묻는다.

“너 그때 그냥 두고 오지 그랬어.”

“네가 찾으러 다시 가야 되잖아.”

“가면 되지.”

“그럼 늦잖아.”

나는 젓가락 끝으로 오이를 고른다.

어릴 때 범준은 자기 가방을 등 뒤에 메고 내 가방은 앞으로 멨다.

나는 앞에 멘 게 우습다고 웃었다.

범준은 벗어 주지 않고 집까지 갔다.

지금 백팩은 내 의자 옆 바닥에 있다.

내 방수 가방을 항상 놓는 쪽이다.

나는 발을 조금 당긴다.

이번에는 안 찬다.

아빠의 젓가락이 범준 밥그릇 위로 간다.

큰 생선 살이 밥 위에 놓인다.

범준이 젓가락을 멈춘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어.”

아빠는 생선 접시를 가운데로 돌려놓는다.

엄마는 그걸 보고도 따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빈 밥그릇을 가져간다.

“밥 더 줄까?”

“네. 조금만 주세요.”

엄마가 밥솥을 연다.

조금이라는 말을 들었는지는 그릇을 봐야 알 수 있다.

다시 놓인 밥이 첫 그릇과 비슷하다.

나는 범준에게 작게 묻는다.

“조금만이라며.”

“응.”

“이게?”

범준이 숟가락을 든다.

“먹으면 돼.”

엄마가 자리에 앉는다.

이번에는 숟가락도 든다.

드디어 밥을 먹는 줄 알았는데, 입에 넣기 전에 다시 묻는다.

“병원에서는 저녁 잘 챙겨 먹니?”

“가끔 늦으면 못 먹어요.”

나는 범준을 본다.

“너 남한테는 그렇게 먹으라고 하면서?”

“집에 와서 먹어.”

“몇 시에.”

“끝나고.”

“그건 몇 시인지 대답이 아니고.”

범준의 숟가락이 멈춘다.

엄마가 나와 범준을 번갈아 본다.

“왜?”

나는 물컵을 든다.

“아무것도 아니야.”

범준은 나를 보다가 다시 밥을 먹는다.

입가가 조금 올라가 있다.

나는 국으로 시선을 내린다.

· · ·

식탁 위에서 짧게 진동이 난다.

엄마 휴대폰이 내 물컵 옆에 놓여 있다.

화면이 켜지면서 글이 뜬다.

『명숙: 오늘 몇 시에 보낼까』

나는 물컵을 내려놓는다.

‘뭘 보내?’

길 하나 건너면 이 집인데.

엄마가 휴대폰을 집어 든다.

화면을 보고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인다.

“아줌마가 뭐 보낸대?”

엄마는 답장을 마저 누른다.

“들어올 게 있나 보지.”

“뭔데?”

“다 먹었어?”

내 밥그릇을 보며 묻는다.

밥은 남아 있다.

엄마는 휴대폰을 식탁 끝으로 옮기고 생선 접시를 내 쪽으로 민다.

“이것도 먹어. 가시 골라 놨다.”

나는 생선 살을 집는다.

아줌마가 뭘 보내든 내가 받아야 할 건 아닌 모양이다.

지금 받아야 할 건 생선이다.

아빠가 접시의 다른 쪽을 다시 손본다.

잘게 붙은 가시를 빼는 손이 느리다.

나는 젓가락을 멈추고 기다린다.

아빠가 발라낸 살을 든다.

이번에도 범준 밥 위다.

두 번째다.

내 젓가락은 빈 채로 접시 위에 떠 있다.

“아빠.”

아빠가 나를 본다.

“나는?”

아빠가 접시를 내 쪽으로 조금 민다.

내가 먹을 건 여기 있다는 뜻이다.

범준은 밥 위 생선 살을 본다.

그러고는 아빠 쪽으로 고개를 든다.

“아버님.”

아빠의 손이 접시 옆에서 멈춘다.

“저 충분히 먹고 있어요.”

말이 끝나자 아빠가 범준의 밥그릇을 본다.

조금 전 꽉 차 있던 밥은 벌써 줄었다.

아빠가 입을 연다.

“…그래.”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엄마도 숟가락을 든 채 멈춘다.

범준만 고개를 끄덕이고 생선을 먹는다.

“아빠.”

“어.”

돌아왔다.

나는 범준을 본다.

“너 들었지?”

“뭘.”

“방금.”

“응.”

“우리 아빠 두 글자 했어.”

아빠가 물컵을 든다.

엄마가 먼저 웃는다.

“아빠도 말 길게 할 줄 알아.”

“나한테는 안 하잖아.”

“네가 먼저 다 하니까.”

반박하려고 입을 열자 범준이 내 앞 생선 접시를 조금 가까이 민다.

“먹어.”

나는 생선부터 집는다.

아빠가 물을 마신다.

컵 너머로 입가가 조금 움직인다.

나는 모른 척 밥을 먹는다.

· · ·

엄마는 두 번째 빈 밥그릇을 놓치지 않는다.

“더 먹을래?”

나는 범준보다 먼저 고개를 든다.

“엄마, 딸기도 있잖아.”

“밥이랑 딸기가 같니?”

“먹는 배는 같은데.”

범준이 빈 그릇을 엄마에게 건넨다.

“조금만 더 주세요.”

나는 범준을 본다.

범준도 나를 본다.

“왜.”

“이 집 조금만이 얼마나 큰지 아직 몰라?”

“알아.”

“아는데 줘?”

엄마가 밥을 담아 돌아온다.

이번에는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그래도 바닥이 보일 양은 아니다.

“젊은 애가 잘 먹어야지.”

“엄마 딸도 젊어.”

“너도 더 줄까?”

나는 내 그릇을 몸 쪽으로 당긴다.

“나는 지키는 중이야.”

범준이 세 번째 밥그릇을 앞에 놓는다.

아빠는 생선 접시에서 손을 뗀다.

이제야 충분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나는 내 밥을 마저 먹고 딸기를 씻으러 일어난다.

범준도 의자를 민다.

“앉아 있어.”

“딸기 씻을 건데.”

“내가 할게.”

“너 밥 먹어.”

엄마가 바로 손을 내민다.

“내가 씻으면 돼. 둘 다 앉아.”

나는 다시 앉는다.

범준도 다시 앉는다.

엄마가 부엌으로 가면서 돌아본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밥 먹으라니까?”

‘앉으라면 앉고 먹으라면 먹는다. 그런데 혼나는 건 똑같다.’

나는 범준의 밥그릇을 본다.

“힘들면 남겨.”

“괜찮아.”

“엄마가 봐도?”

“배고팠어.”

대답이 바로 나온다.

나는 더 안 묻고 물컵을 범준 쪽으로 민다.

범준이 받아 마신다.

컵을 내려놓을 때 내 손 가까이에 놓는다.

물 한 방울이 식탁에 떨어진다.

나는 행주로 닦으려다 왼손을 뻗는다.

범준이 먼저 행주를 가져온다.

딱 그 한 방울만 닦는다.

이런 건 예전에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옆에 놓인 빈 밥그릇까지 자꾸 눈에 들어온다.

· · ·

범준은 딸기까지 먹고 일어난다.

엄마가 상자를 내민다.

“남은 거 가져가. 명숙이랑 먹어.”

“어머니 드세요.”

“우린 먹었어.”

“저도 먹었어요.”

“명숙이는 안 먹었잖아.”

범준이 상자를 받는다.

나는 현관까지 따라간다.

아빠는 식탁에 앉아 고개만 든다.

범준이 백팩을 메고 돌아본다.

“아버님, 잘 먹었습니다.”

“어.”

엄마가 뒤에서 덧붙인다.

“다음에도 와. 빈손으로 와도 돼.”

나는 문을 잡는다.

“다음에는 밥솥 보고 와.”

범준이 신발을 신다가 나를 본다.

“왜.”

“남은 밥 다 먹으라고 할 수 있으니까.”

“다 먹은 건 아닌데.”

부엌에서 엄마 목소리가 온다.

“더 먹을 수 있어?”

나는 문을 조금 더 연다.

“가. 빨리.”

범준이 웃으며 계단을 내려간다.

나는 위에서 딸기 상자가 기울지 않는지 본다.

범준은 손목을 바로 세워 들고 있다.

가방은 한쪽 어깨에 걸쳐져 있다.

내 가방이 없으니 오늘은 하나다.

아래층 문이 닫힌 뒤에야 나는 현관문을 닫는다.

엄마는 식탁에서 그릇을 모으고 있다.

범준이 쓴 밥그릇을 내 쪽으로 내민다.

“많이 먹었지?”

“엄마가 많이 줬지.”

“싫으면 안 먹어.”

“손님이라며.”

“맞아. 우리 집에 온 손님.”

엄마가 국그릇을 포개려 한다.

나는 먼저 받아 싱크대에 놓는다.

무거운 건 엄마가 들고, 나는 수저와 빈 접시를 옮긴다.

아빠가 자기 물컵을 가져와 싱크대 옆에 놓는다.

“아빠는 범준이 밥 잘 먹는 게 그렇게 좋아?”

아빠가 나를 본다.

“어.”

나는 수돗물을 틀고 고무장갑을 낀다.

왼손으로 그릇을 잡고 오른손은 몸 가까이 둔다.

엄마가 뒤에서 빈 밥그릇을 하나 더 놓는다.

나는 거품 묻은 그릇을 내려다본다.

“걔 원래 이렇게 먹어?”

“내가 다 알아봤어. 저 집에서는 한 공기 먹는 애야.”

『엄마 단톡: 경애 — 밥 세 공기 먹었다. / 명숙 — 집에서는 한 공기야. 그렇지?』

(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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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지금 다시 물어보면?”범준이 의자를 고쳐 든다.“들어 줄게.”“대답을 해야지.”“의자부터 놓고.”나는 사진관 앞까지 걸어간다. 의자를 내려놓자 엄마가 화분을 가져온다.범준도 의자를 놓는다.엄마가 그 앞에 서서 물을 달라고 한다.질문 하나 하는 사이에 일이 또 생긴다.나는 범준을 보고 입을 연다.“너 다음에도 이렇게 말 돌리면—”“하늬야, 물.”엄마가 빈 물조리개를 내민다.범준이 대신 받는다.“제가 할게요.”나는 빈손으로 서 있다.대답을 받아야 하는데 도움을 받는다.이러면 따지기도 애매하다.· · ·6월 6일 토요일.수영장 바닥에 물이 튄다.나는 파란 줄을 목 뒤로 넘기고 새 호루라기를 입에 댄다.짧게 한 번.민들레반 아이들이 내 쪽을 본다.정확히는 절반쯤 본다.나머지는 관람석의 엄마를 찾고, 수영모를 당기고, 옆 아이 물안경을 구경한다.“민들레반. 발은?”“천천히!”대답은 빠르다.발은 더 빠르다.나는 출발대 쪽으로 뛰려는 아이 앞에 손을 편다.“입으로만 천천히 하지 말고.”아이가 걸음을 줄인다.옆에서 금아영이 물안경을 들고 웃는다.“홍 쌤, 얘들 목소리만 들으면 다 준비 끝났어.”“목소리로 헤엄치면 우리 반이 이겨.”“그건 수영이 아니야.”“알아. 그래서 지금 급해.”아영은 나와 같은 어린이반 수영 강사다. 긴 머리를 단단히 묶었는데, 아이들 수영모부터 바로잡느라 자기 머리 끝은 어깨에 붙어 있다.내 반 아이 하나가 아영 앞에 선다.“선생님, 자꾸 물 들어가요.”아영이 물안경 줄을 살핀다.“거꾸로 썼네.”“아빠가 해 줬는데.”“아빠도 긴장했나 보다.”아영은 아이를 탓하지 않고 물안경을 뒤집는다. 눈 주위에 잘 붙는지 손끝으로 살핀 뒤 줄을 맞춘다.나는 관람석을 올려다본다.보호자들이 유리 너머에서 손을 흔든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는 옆 사람 휴대폰을 내리게 한다.그 사이에 검은 백팩이 보인다.그 위에 도범준이 있다.정확히는 도범준이 백팩을 앞에 놓고 서

  • 소꿉친구가 내 맞선 상대로 나왔다   9화. 동네 잔치, 경로당 마당

    “다음에는 네가 창가에 앉아.”범준이 손가락을 폈다 굽힌다.“그러면 안 기대?”“내가 또 넘어가면 창문이 받아 주겠지.”“아플 텐데.”“그러니까 깨우라고.”버스가 멈춘다.범준은 먼저 일어나서 내 가방을 꺼내 준다. 나는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고, 아직 덜 풀린 범준 손을 본다.“너 물리치료사잖아.”“응.”“자기 팔부터 잘 돌봐.”범준이 손을 내린다.“다음에는.”나는 대꾸하려다가 앞사람을 따라 내린다.다음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나도 방금 했다.· · ·5월 23일 토요일.사진관 앞에 플라스틱 의자가 쌓여 있다.나는 맨 위 의자를 든다.엄마가 바로 손잡이를 잡는다.“그거 말고 옆에.”“의자도 자리가 정해져 있어?”“그건 다리 흔들려. 내가 앉을 거야.”“엄마는 흔들려도 돼?”“나는 일어나면 되지. 어르신들은 허리 아프시다니까?”엄마는 의자를 바닥에 놓고 눌러 본다. 한쪽 다리가 조금 뜬다.나는 멀쩡한 의자 두 개를 포갠다.경로당 봄 잔치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은 했다.놀러 간다.의자를 나른다.아마 접시도 나른다.놀러 가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의 차이는 도착해서 알게 된다.“하늬야, 그거 내려놔.”길 건너에서 범준이 온다.검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었다. 내 손에 든 의자부터 받는다.“두 개야.”“알아.”“나도 들 수 있어.”“그럼 저거.”범준이 접힌 식탁을 턱으로 가리킨다.나는 의자를 다시 잡는다.“됐고. 이쪽이 가벼워.”범준이 웃으며 식탁으로 간다.명숙 아줌마가 부동산 문을 잠그고 천천히 건너온다. 팔 아래에는 두꺼운 스프링 노트가 있다.엄마가 묻는다.“명숙아. 몇 개 모자란대?”“의자 넷.”“넷? 아까는 셋이라며.”“네가 앉을 것도 있어야지. 그렇지?”엄마가 흔들리는 의자를 가리킨다.“내 거 여기 있어.”아줌마는 의자 다리를 보고, 엄마를 본다.“그건 화분 올려.”범준이 식탁을 펼치려다 잠깐 멈춘다.나는 고개를 돌린다.웃으면 엄마가 나도 일 시킨다.

  • 소꿉친구가 내 맞선 상대로 나왔다   8화. 네 번째 맞선, 수족관 매점

    “내가 열네 살 때 어디 가고 싶다고 했는데?”범준이 골목 모퉁이에서 멈춘다.내 소매 끝을 본다.돈가스 소스가 묻은 자리다.“집에 가서 먼저 씻어.”“내 질문이랑 소매가 무슨 상관인데.”“굳으면 안 지워져.”“어디냐고.”“수족관.”나는 접어 올린 소매를 놓는다.수족관.그 말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려 본다.“내가 그랬어?”“응.”“언제.”“수영부 들어갔을 때.”“너 그걸 아직 기억해?”범준은 다시 걷는다.“가고 싶다며.”나는 잠깐 뒤처졌다가 따라간다.‘도범준은 15년 전 목적지를 갖고 있다. 나는 오늘 휴대폰도 놓고 나왔다.’“그걸 이제 가?”“다음 주에 시간 되잖아.”맞는 말이다.이번에는 맞는 말인데도 곧바로 대꾸가 안 나온다.나는 소매를 더 높이 접는다.“됐고. 거기 매점 있어?”범준이 나를 본다.“있겠지.”“없으면 곤란해.”“물고기 보러 가는 거잖아.”“물고기도 밥 먹어.”범준 입가가 올라간다.나는 앞을 보고 걷는다.· · ·5월 16일 토요일.사진관 문을 열자 엄마가 내 가방을 먼저 본다.“수족관 간다며.”“응.”“수영하러 가는 거 아니지?”나는 방수 가방을 내려다본다.“거기서 내가 들어가면 직원이 꺼내 주겠지.”“가방이 너무 크다니까?”“작은 걸 들면 물병이 안 들어가.”엄마는 내 가방 안에 든 물병을 확인하고서야 비켜선다.곧바로 다시 앞을 막는다.“사진은 물고기만 찍지 말고.”“아직 출발도 안 했어.”“큰 물고기 옆에서 찍어. 둘이.”길 건너 명숙부동산 문이 열린다.범준이 나오고, 명숙 아줌마가 느리게 뒤따른다.엄마는 내 옆을 지나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다.“명숙아. 거기 멀다며?”“지하철로 50분.”“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찾아봤지. 그렇지?”아줌마가 범준을 본다.범준은 고개를 끄덕인다.엄마도 나를 본다.나는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넌 뭐 알아봤어?”“매점 있는지.”“있대?”나는 범준을 본다.범준이 대답한다.“있어.”엄마가 고

  • 소꿉친구가 내 맞선 상대로 나왔다   7화. 세 번째 맞선, 돈가스집

    나는 거품 묻은 밥그릇을 돌려 본다.바닥까지 깨끗하다.“한 공기 먹는 애한테 왜 세 공기를 줘?”“달라니까 줬지.”“엄마가 먼저 물었잖아.”“물었는데 먹겠다잖아.”엄마가 물기를 닦은 접시를 찬장에 넣는다.나는 밥그릇을 헹군다. 밥풀 하나가 안 붙어 있다.‘도범준은 밥도 남기지 않고 내 반박할 거리도 남기지 않는다.’“다음에는 덜 줘.”“다음에도 부르게?”수돗물이 장갑 안으로 들어온다.나는 손을 든다.“그 말이 아니잖아.”“그럼 다음에는 안 불러?”“그것도 아니고.”엄마가 내 손에서 그릇을 받는다.오른손 장갑 끝을 조금 당겨 준다. 안에 든 물이 손목으로 흐른다.“그릇 그만 씻어. 수저만 마저 해.”“나 할 수 있어.”“할 수 있는 거 알아. 엄마도 할 수 있다니까?”나는 수저를 모은다.엄마는 범준이 쓰던 밥그릇을 물기까지 닦아서 올려 둔다.맨 위다.“걔 이번 주말에는 뭐 하니?”“몰라.”“만날 거 아니야?”“만날 때 물어보면 되지.”“그러면 어디 갈지도 모르니?”나는 수도꼭지를 잠근다.엄마가 나를 기다린다.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인데, 내가 어디 간다고 하면 거기까지 따라올 것 같다.“밥 먹겠지.”“뭐.”“밥.”“범준이는 밥을 잘 먹더라.”나는 젖은 장갑을 벗는다.‘이 얘기는 다시 세 공기로 돌아간다.’· · ·5월 9일 토요일.나는 신발을 신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엄마가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든다.“왜? 뭐 놓고 왔어?”“휴대폰.”“그걸 놓고 가면 어떡하니. 사진 찍어야지.”“연락부터 해야지.”“연락은 길 건너 가서 하면 되잖아.”맞는 말이다.그런데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먼저 나오는 건 이상하다.나는 방에서 휴대폰을 챙긴다. 물병은 방수 가방 안에 넣는다.아래층 사진관으로 내려오자 엄마가 보정하던 화면에서 눈을 뗀다.“오늘은 어디 가?”“옛날돈가스.”“돈가스?”“응.”“둘이 먹는 거지?”“다른 사람까지 부를까?”“둘이 먹으라니까?”엄마는 내가 먼

  • 소꿉친구가 내 맞선 상대로 나왔다   6화. 집밥 초대, 홍씨 집 식탁

    물병을 내려놓자 방문 밖에서 엄마가 부른다.“하늬야. 범준이 뭐 좋아하니?”나는 거울에서 눈을 뗀다.“왜.”“밥 먹일 거야.”“지금?”“토요일에.”나는 방문을 연다. 엄마가 빨래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서 있다.“엄마, 걔는 길 건너 살잖아.”“그래서 멀리서 오는 애만 밥 먹이니?”“집에서 먹으면 되잖아.”“우리 집에서 먹으면 안 되니?”대답하려다가 물병을 다시 본다.뚜껑은 아직 느슨하다.“너 어깨는?”엄마가 묻는다.“치료받았어.”“그러니까. 고맙다고 밥 먹여야지.”“그럼 나 치료해 준 사람 다 불러?”“범준이만 부를 건데.”엄마는 빨래 바구니에서 내 수건을 꺼낸다.내 손에는 안 주고 방 안 의자에 놓는다.“토요일 저녁. 너도 어디 가지 마.”“주말마다 한 번이면 되는데.”“뭐가?”나는 물병을 든다.“만나는 거.”엄마의 손이 수건 위에서 멈춘다.그러더니 수건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춘다.“그 한 번 우리 집에서 만나면 되겠네.”나는 입을 다문다.맞는 말이라서 더 할 말이 없다.· · ·5월 2일 토요일.저녁상을 차리기도 전에 엄마가 내 자리를 옮긴다.내 물컵은 원래 아빠 맞은편이다.지금은 옆이다.그 옆에 물컵 하나가 더 있다.나는 컵을 원래 자리로 밀어 놓는다.엄마가 다시 가져온다.“거긴 범준이.”“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자리가 있어?”“손님 자리는 있어야지.”“나는 살고 있는데 자리가 없어?”엄마가 접시를 내민다.“이거 놔.”접시에는 오이무침이 담겨 있다. 나는 왼손으로 받아 식탁에 놓는다.엄마가 내 오른팔을 본다.“무거운 건 내가 할게.”“이 정도는 들어.”“범준이가 조심하랬다며.”“내 말은 안 듣고 걔 말은 들어?”“네가 조심하라고 했으면 네 말도 듣지.”나는 오이무침을 가운데로 민다.‘지금 봉경애가 내 반박까지 미리 꺼내 놓는다. 접시 놓을 자리만 남는다.’아빠는 식탁 끝에 앉아 생선 접시를 보고 있다.“아빠. 오늘 손님 오는 거 알아?”“어.”“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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