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럼 지금 다시 물어보면?”
범준이 의자를 고쳐 든다.
“들어 줄게.”
“대답을 해야지.”
“의자부터 놓고.”
나는 사진관 앞까지 걸어간다. 의자를 내려놓자 엄마가 화분을 가져온다.
범준도 의자를 놓는다.
엄마가 그 앞에 서서 물을 달라고 한다.
질문 하나 하는 사이에 일이 또 생긴다.
나는 범준을 보고 입을 연다.
“너 다음에도 이렇게 말 돌리면—”
“하늬야, 물.”
엄마가 빈 물조리개를 내민다.
범준이 대신 받는다.
“제가 할게요.”
나는 빈손으로 서 있다.
대답을 받아야 하는데 도움을 받는다.
이러면 따지기도 애매하다.
· · ·
6월 6일 토요일.
수영장 바닥에 물이 튄다.
나는 파란 줄을 목 뒤로 넘기고 새 호루라기를 입에 댄다.
짧게 한 번.
민들레반 아이들이 내 쪽을 본다.
정확히는 절반쯤 본다.
나머지는 관람석의 엄마를 찾고, 수영모를 당기고, 옆 아이 물안경을 구경한다.
“민들레반. 발은?”
“천천히!”
대답은 빠르다.
발은 더 빠르다.
나는 출발대 쪽으로 뛰려는 아이 앞에 손을 편다.
“입으로만 천천히 하지 말고.”
아이가 걸음을 줄인다.
옆에서 금아영이 물안경을 들고 웃는다.
“홍 쌤, 얘들 목소리만 들으면 다 준비 끝났어.”
“목소리로 헤엄치면 우리 반이 이겨.”
“그건 수영이 아니야.”
“알아. 그래서 지금 급해.”
아영은 나와 같은 어린이반 수영 강사다. 긴 머리를 단단히 묶었는데, 아이들 수영모부터 바로잡느라 자기 머리 끝은 어깨에 붙어 있다.
내 반 아이 하나가 아영 앞에 선다.
“선생님, 자꾸 물 들어가요.”
아영이 물안경 줄을 살핀다.
“거꾸로 썼네.”
“아빠가 해 줬는데.”
“아빠도 긴장했나 보다.”
아영은 아이를 탓하지 않고 물안경을 뒤집는다. 눈 주위에 잘 붙는지 손끝으로 살핀 뒤 줄을 맞춘다.
나는 관람석을 올려다본다.
보호자들이 유리 너머에서 손을 흔든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는 옆 사람 휴대폰을 내리게 한다.
그 사이에 검은 백팩이 보인다.
그 위에 도범준이 있다.
정확히는 도범준이 백팩을 앞에 놓고 서 있다.
나는 한 번 더 본다.
범준이 손을 조금 든다.
‘지금 도범준이 관람석에서 나한테 인사한다. 왜.’
아이 하나가 내 손을 잡아당긴다.
“선생님, 저도 엄마 찾았어요.”
“그래? 어디 계셔?”
“저기요.”
아이가 가리킨 쪽에 범준이 있다.
아니, 범준 옆에 아이 엄마가 있다.
나는 얼른 손을 흔든다.
아이 엄마도 흔든다.
범준도 흔든다.
한 번에 둘에게 인사해 버린다.
· · ·
“홍 쌤. 저 남자 알아?”
아영이 내 옆으로 온다.
나는 출발 순서를 확인하며 대답한다.
“동네 친구.”
“동네 친구가 여기까지 와?”
“우리 동네잖아.”
“우리 동네 사람이 다 여기 있지는 않지.”
맞는 말이다.
나는 아이들 수영모를 차례로 본다.
한 아이가 두 손으로 배를 누르고 있다.
“어디 불편해?”
아이가 고개를 젓는다.
“화장실?”
또 젓는다.
“배고파?”
이번에는 고민한다.
나는 아이 앞에 쪼그려 앉는다.
“지금은 뭔데?”
“저 물 먹으면 어떡해요?”
아이 목소리가 작아진다.
연습할 때는 잘 가던 아이다. 오늘은 관람석도 꽉 차고, 다른 반 아이들까지 레인 뒤에 늘어서 있다.
나는 아이가 움켜쥔 수영모 끝을 펴 준다.
“급하게 안 가면 돼.”
“꼴찌 하면요?”
“벽까지 가서 손 대면 선생님이 볼 거야.”
“꼴찌 해도요?”
“응. 네가 물속에 있는데 딴 데 보겠어?”
아이는 내 뒤로 수영장을 본다.
나는 손바닥을 내민다.
아이 손이 올라온다.
젖은 손끼리 짧게 닿는다.
“연습하던 대로. 발부터 차고.”
“선생님도 같이 가요?”
“옆에서 걸어갈게.”
아이가 내 발을 내려다본다.
내가 미끄럼 방지 신발을 바닥에 한번 눌러 보인다.
“안 뛰어. 너도 안 뛰고.”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영이 옆에서 다른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운다.
나는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작게 돌린다.
유리 너머에서 범준의 손이 내려간다.
눈이 내 어깨 쪽에 잠깐 머문다.
나는 돌리던 팔을 내린다.
아픈 건 아니다.
아직은.
· · ·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물에 들어간다.
발로 물을 차는 소리와 관람석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겹친다.
나는 레인 옆을 걷는다.
“천천히. 고개 들지 말고.”
아까 배를 누르던 아이가 중간에서 얼굴을 든다.
물안경 안쪽을 한번 보고 내 쪽을 본다.
내가 손바닥을 아래로 편다.
아이가 다시 얼굴을 넣는다.
발이 움직인다.
빠르지는 않다.
멈추지도 않는다.
나는 같은 속도로 걷는다.
먼저 도착한 아이가 벽을 붙들고 소리친다.
“선생님! 저 끝났어요!”
“봤어. 잘했어. 옆으로 조금만.”
아이의 손이 벽에서 미끄러진다.
나는 가까이 가서 팔 아래를 받쳐 준다. 계단 쪽으로 가게 한 뒤 다시 레인을 본다.
마지막 아이가 벽에 손을 댄다.
내가 엄지를 든다.
아이는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말한다.
“선생님, 저 물 안 먹었어요.”
“응. 봤어.”
“조금은 먹었는데.”
“얼마큼?”
아이가 손가락 끝을 조금 벌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에는 그것도 줄여 보자.”
아이 얼굴이 펴진다.
아영이 큰 수건을 건네준다.
아이는 수건으로 얼굴부터 가렸다가 다시 내민다.
“엄마 봤을까요?”
“네가 직접 물어봐.”
아이는 관람석을 향해 양팔을 든다.
엄마도 양팔을 든다.
그 옆에서 범준이 박수를 친다.
내가 보는 걸 알자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친다.
나는 호루라기를 손 안에 쥔다.
‘지금 도범준이 남의 집 아이한테 박수를 쳐 준다.’
아이와 엄마 사이에 서 있어서 그런지, 꼭 보호자 한 명이 더 온 것 같다.
· · ·
대회가 끝나도 수업은 끝나지 않는다.
물안경이 바뀌고, 수건 주인이 사라지고, 수영모가 뒤집힌 채 바닥에 붙어 있다.
나는 민들레반 아이들을 다시 모은다.
“가기 전에 자기 물건부터.”
“제 물안경 없어요.”
“지금 이마에 있어.”
아이가 이마를 만진다.
찾았다.
다른 아이가 내 방수 가방을 가리킨다.
“저건 제 거예요.”
“그건 선생님 거야.”
“제 거랑 똑같아요.”
“크기도?”
아이가 내 가방과 자기 팔 길이를 비교한다.
고개를 젓는다.
나는 가방을 왼쪽 어깨에 걸고 아이들을 로비로 데려간다.
수영장 문을 나서자 기다리던 보호자들이 일어난다. 아이들이 뛰어나가지 않게 앞에서 한 번 더 손을 편다.
“천천히.”
이번에는 발도 천천히 움직인다.
몇 명을 보내고 나니 물안경을 거꾸로 썼던 아이가 남는다.
아이 엄마가 탈의실에서 동생을 챙기는 동안 아영이 함께 기다리기로 한다.
나는 아이의 수건을 가방 안에 넣어 준다.
범준이 로비 벽에서 몸을 뗀다.
“끝났어?”
“애들 보내면.”
“가방 줘.”
“안 무거워.”
범준은 내 대답을 듣고 물병을 내민다.
내 것과 달리 작은 병이다.
뚜껑은 이미 조금 풀려 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받는다.
“너 언제 왔어?”
“시작하기 전에.”
“연락하지.”
“바쁘잖아.”
나는 물을 마신다.
아영이 아이의 젖은 가방을 닫으며 끼어든다.
“홍 쌤, 저 남자 쌤 수업 끝날 때까지 서 있었어.”
“의자 없었어?”
범준이 대답한다.
“있었어.”
“왜 안 앉아?”
“뒤에서는 잘 안 보여.”
아영이 나를 본다.
“그건 응원이 아니라 기다림이야.”
나는 물병 뚜껑을 돌린다.
한 번에 안 맞는다.
다시 돌린다.
“대회 보러 왔다잖아.”
“아직 그렇게 말 안 했어.”
나는 범준을 본다.
범준은 내 손에서 삐뚤어진 뚜껑을 받아 바로 잠근다.
맞다.
아직 안 했다.
· · ·
아이가 범준 앞에 선다.
발끝에 작은 물웅덩이가 있다. 젖은 가방에서 물이 떨어진다.
범준이 백팩을 옆으로 옮겨 젖지 않게 한다.
아이는 범준을 위아래로 본다.
“아저씨도 수영 못 해요?”
나는 입술을 누른다.
도범준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못 하는 사람으로 정해졌다.
범준이 대답한다.
“못 해.”
“그럼 왜 왔어요?”
“보러.”
아이는 잠깐 생각한다.
“저 봤어요?”
“응.”
“저 물안경 잘못 썼는데.”
“고쳐 썼잖아.”
“그것도 봤어요?”
범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가 아영 쪽을 돌아본다.
“아저씨도 봤대요.”
아영이 웃는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네가 먼저 확인하자.”
아이는 제 물안경을 가방 밖으로 꺼낸다.
앞뒤를 살피다가 범준에게 보여 준다.
“이렇게요?”
범준이 나를 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범준도 아이에게 끄덕인다.
아이 엄마가 로비로 나온다. 아이는 물안경을 쥔 채 엄마에게 간다.
“엄마. 아저씨도 나 봤어.”
아이 엄마가 우리 쪽으로 고개를 숙인다.
나와 아영도 인사한다.
범준은 아이가 손을 흔들자 따라 흔든다.
아이가 나간 뒤 내가 묻는다.
“너 진짜 다 봤어?”
“응.”
“물안경 고치는 것도?”
“네 옆이었잖아.”
나는 물병을 방수 가방에 넣는다.
입구가 넓은데 병이 옆으로 걸린다.
아영이 그걸 가만히 본다.
“홍 쌤.”
“왜.”
“병 세워.”
“알아.”
나는 병을 세운다.
범준은 아무 말 없이 내 가방끈을 안쪽에서 꺼내 준다.
· · ·
범준이 로비 의자에 백팩을 올린다.
“먹어.”
지퍼를 열더니 젤리 한 봉지를 꺼낸다.
나는 받으려다 아영을 본다.
범준이 한 봉지를 더 꺼낸다.
“드세요.”
“고맙습니다.”
아영은 바로 받는다.
나는 봉지를 돌려 본다.
“너 이거 맨날 갖고 다녀?”
“자주.”
“나 없을 때도?”
범준이 가방 안으로 손을 넣는다.
바나나가 나온다.
“이건 지금 먹을래?”
“질문했잖아.”
“밥 먹기 전에 배고플까 봐.”
아영이 젤리 봉지를 뜯는다.
나는 대답 대신 바나나를 받아 든다.
그때 백팩 입구에서 작은 것이 떨어진다.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의자 아래로 굴러가려는 걸 내가 발로 막는다.
은색 호루라기다.
겉면이 낡았다. 짧게 남은 줄 끝이 끊어져 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집는다.
“이거 뭔데?”
범준 손이 가방 위에서 멈춘다.
“내 거.”
“네가 호루라기를 왜 들고 다녀.”
“그냥.”
대답이 바로 나온다.
나는 범준 얼굴을 본다.
말이 느려지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려는 얼굴도 아니다.
“언제 쓰는데?”
“안 써.”
“안 쓰는 걸 왜—”
아영이 떨어진 젤리 봉지를 집어 의자에 올려놓는다.
“가방에 오래 둔 거 있지. 나도 안 쓰는 머리끈 계속 들고 다녀.”
나는 호루라기를 손바닥에서 돌린다.
새것과 달리 모서리가 매끈하다.
“줄 끊어졌네.”
“응.”
“바꿔야지.”
“그대로 둘 거야.”
범준이 손을 내민다.
나는 호루라기를 올려놓는다.
큰 손 안에 은색이 가려진다.
범준은 백팩 안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는다.
아영이 내 손에 들린 바나나를 가리킨다.
“홍 쌤. 그거 먹을 거야?”
나는 손을 내려다본다.
호루라기를 보느라 껍질도 안 벗겼다.
“밥 먹을 거니까 나중에.”
범준이 바나나를 받아 가방에 넣는다.
이번에는 떨어지는 게 없다.
내 목에 걸린 파란 줄만 방수 가방 위로 늘어진다.
나는 줄을 접어 넣고 지퍼를 닫는다.
· · ·
스포츠센터 앞 바닷가 물회집에 들어가자 아영이 먼저 빈자리를 찾는다.
“셋 앉으면 되죠?”
범준이 나를 본다.
“같이 먹을 거지?”
아영이 자기 가슴을 가리킨다.
“저요?”
“네.”
“저는 홍 쌤한테 물은 줄 알았어요.”
“같이 일하셨잖아요.”
아영이 의자를 당긴다.
“그건 아주 좋은 이유네요.”
나는 아영 맞은편에 앉는다.
범준은 내 옆이다.
앉자마자 내 방수 가방을 안쪽으로 밀어 준다. 내가 꺼내려던 물병도 식탁 위에 놓는다.
아영은 그걸 보고 메뉴판을 편다.
나는 가격부터 본다.
물회 15,000원.
아영이 묻는다.
“홍 쌤, 물회?”
“응.”
범준도 같은 걸 고른다.
주문을 마치자 아영이 팔꿈치를 식탁에 올린다.
“두 분은 얼마나 오래된 친구예요?”
“20년.”
내가 대답한다.
아영이 범준을 본다.
“그러면 홍 쌤 말 빠른 것도 오래 들으셨겠네요.”
“응.”
범준이 짧게 대답했다가 덧붙인다.
“네.”
나는 물을 따른다.
“나한테 말하듯 해도 돼. 아영이도 우리랑 동갑이야.”
“편하게 해요. 저는 이미 젤리 먹었어요.”
아영이 빈 봉지를 접는다.
범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범준 잔에도 물을 채운다.
아영이 묻는다.
“근데 동네 친구가 대회 날 맞춰 오는 건 처음 봐.”
“맨날 오는 건 아니야.”
“처음이야?”
나는 범준을 본다.
범준이 대답한다.
“대회는.”
짧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물병을 내려놓는다.
아영이 눈썹을 조금 올린다.
“대회 말고도 왔다는 뜻이네.”
“어깨 때문에.”
내가 빨리 말한다.
범준은 물잔을 들었다가 놓는다.
아영은 더 묻지 않는다.
대신 젖은 머리 끝을 등 뒤로 넘긴다.
“홍 쌤, 나 하나만 부탁해도 돼?”
“뭔데?”
“나중에 우리 반 대회 준비 같이 봐 줘. 오늘 애들 끝까지 데리고 가는 거 좋더라.”
나는 젓가락 포장을 뜯는다.
“너도 물안경 고쳐 줬잖아.”
“그건 내 일이었고.”
“이것도 내 일이야.”
아영이 웃는다.
“그럼 서로 일 도와주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범준이 내 앞에 굴러온 젓가락을 잡아 준다.
아영은 그 손을 한번 보고 자기 젓가락을 나란히 놓는다.
· · ·
물회가 나온다.
그릇이 식탁에 닿자 찬 기운이 손끝에 닿는다.
나는 국물을 한 숟갈 뜬다.
시원하다.
아영도 먹자마자 어깨를 내린다.
“이제 살겠다.”
“오늘 계속 서 있었잖아.”
“홍 쌤도 그랬지.”
범준이 내 오른쪽 어깨를 본다.
나는 숟가락을 바꿔 잡지 않고 먼저 말한다.
“괜찮아.”
“나 아직 안 물었어.”
“눈으로 물었어.”
아영이 그릇에서 고개를 든다.
범준은 내 물잔을 가까이 밀어 놓는다.
나는 국물을 다시 뜬다.
대화가 조금 줄어든다. 아영은 배가 고팠는지 채소까지 골고루 먹고, 범준은 내가 가방을 발로 밀자 아래를 본다.
가방이 의자 다리에 걸려 있다.
범준이 몸을 숙여 옆으로 옮긴다.
“놔둬. 내가 할게.”
이미 끝났다.
아영이 물을 마신다.
“동네 친구라 그랬지?”
“응.”
“오늘도 맞선이야?”
숟가락이 그릇 안에 닿는다.
나는 아영을 본다.
“그건 어떻게 알아?”
“홍 쌤이 말했잖아. 맞선에서 친구 만났다고.”
말했다.
수업 전에 물안경을 정리하면서.
그때 아영은 분명 아이들 이름표를 보고 있었다.
들었구나.
나는 범준 쪽을 보지 않고 대답한다.
“그 뒤로 주말에 밥 먹는 거야.”
“둘이?”
“원래는.”
아영이 숟가락을 내린다.
“아. 내가 끼었네.”
“그런 뜻 아니야.”
범준이 바로 말한다.
“하늬 오늘 일했잖아. 같이 밥 먹으면 되지.”
아영이 나를 본다.
나는 물회 속 채소를 젓가락으로 고른다.
범준이 덧붙인다.
“끝나고 같이 가려고 왔어.”
나는 고르던 채소를 놓친다.
아영은 국물을 한 숟갈 더 뜬다.
천천히 마신다.
그러고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본다.
“홍 쌤, 이건 맞선이 아니야. 이건 데려가는 거야.”
(10화 끝)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누가 누굴 데려가.”아영이 내 옆을 본다.범준은 내 방수 가방이 넘어지지 않게 의자 다리 안쪽으로 밀고 있다.“지금도 챙기잖아.”“가방이 넘어지니까.”“홍 쌤. 나 가방은 안 넘어져?”아영 가방도 반쯤 기울어 있다.나는 일어나서 바로 세워 준다.“됐다.”“왜 홍 쌤이 해?”“내가 가까워.”범준이 나를 올려다본다.입가가 조금 올라간다.나는 앉으면서 범준의 팔꿈치를 식탁 안쪽으로 밀어 준다. 옆을 지나가는 손님이 부딪힐 뻔한다.아영이 그걸 본다.나도 내가 한 걸 본다.젓가락을 다시 든다.“물회 먹어. 국물 남기면 아까워.”아영은 대답 대신 국물을 뜬다.범준도 그릇 쪽으로 몸을 당긴다.나는 식탁 아래에서 내 가방을 발로 한 번 더 건드린다.안 넘어진다.잘 세워 놨다.괜히 확인했다.· · ·6월 13일 토요일 오후.엄마가 내 손에 안경집을 얹는다.“아빠 갖다줘.”“아빠 어딨어?”엄마가 마우스를 누른다.사진 속 손님의 턱이 조금 줄어든다.“길 건너.”“길 건너에서 안경 없이 바둑 둬?”“안 보인다고 갖다 달래.”나는 안경집을 연다.
“그럼 지금 다시 물어보면?”범준이 의자를 고쳐 든다.“들어 줄게.”“대답을 해야지.”“의자부터 놓고.”나는 사진관 앞까지 걸어간다. 의자를 내려놓자 엄마가 화분을 가져온다.범준도 의자를 놓는다.엄마가 그 앞에 서서 물을 달라고 한다.질문 하나 하는 사이에 일이 또 생긴다.나는 범준을 보고 입을 연다.“너 다음에도 이렇게 말 돌리면—”“하늬야, 물.”엄마가 빈 물조리개를 내민다.범준이 대신 받는다.“제가 할게요.”나는 빈손으로 서 있다.대답을 받아야 하는데 도움을 받는다.이러면 따지기도 애매하다.· · ·6월 6일 토요일.수영장 바닥에 물이 튄다.나는 파란 줄을 목 뒤로 넘기고 새 호루라기를 입에 댄다.짧게 한 번.민들레반 아이들이 내 쪽을 본다.정확히는 절반쯤 본다.나머지는 관람석의 엄마를 찾고, 수영모를 당기고, 옆 아이 물안경을 구경한다.“민들레반. 발은?”“천천히!”대답은 빠르다.발은 더 빠르다.나는 출발대 쪽으로 뛰려는 아이 앞에 손을 편다.“입으로만 천천히 하지 말고.”아이가 걸음을 줄인다.옆에서 금아영이 물안경을 들고 웃는다.“홍 쌤, 얘들 목소리만 들으면 다 준비 끝났어.”“목소리로 헤엄치면 우리 반이 이겨.”“그건 수영이 아니야.”“알아. 그래서 지금 급해.”아영은 나와 같은 어린이반 수영 강사다. 긴 머리를 단단히 묶었는데, 아이들 수영모부터 바로잡느라 자기 머리 끝은 어깨에 붙어 있다.내 반 아이 하나가 아영 앞에 선다.“선생님, 자꾸 물 들어가요.”아영이 물안경 줄을 살핀다.“거꾸로 썼네.”“아빠가 해 줬는데.”“아빠도 긴장했나 보다.”아영은 아이를 탓하지 않고 물안경을 뒤집는다. 눈 주위에 잘 붙는지 손끝으로 살핀 뒤 줄을 맞춘다.나는 관람석을 올려다본다.보호자들이 유리 너머에서 손을 흔든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는 옆 사람 휴대폰을 내리게 한다.그 사이에 검은 백팩이 보인다.그 위에 도범준이 있다.정확히는 도범준이 백팩을 앞에 놓고 서
“다음에는 네가 창가에 앉아.”범준이 손가락을 폈다 굽힌다.“그러면 안 기대?”“내가 또 넘어가면 창문이 받아 주겠지.”“아플 텐데.”“그러니까 깨우라고.”버스가 멈춘다.범준은 먼저 일어나서 내 가방을 꺼내 준다. 나는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고, 아직 덜 풀린 범준 손을 본다.“너 물리치료사잖아.”“응.”“자기 팔부터 잘 돌봐.”범준이 손을 내린다.“다음에는.”나는 대꾸하려다가 앞사람을 따라 내린다.다음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나도 방금 했다.· · ·5월 23일 토요일.사진관 앞에 플라스틱 의자가 쌓여 있다.나는 맨 위 의자를 든다.엄마가 바로 손잡이를 잡는다.“그거 말고 옆에.”“의자도 자리가 정해져 있어?”“그건 다리 흔들려. 내가 앉을 거야.”“엄마는 흔들려도 돼?”“나는 일어나면 되지. 어르신들은 허리 아프시다니까?”엄마는 의자를 바닥에 놓고 눌러 본다. 한쪽 다리가 조금 뜬다.나는 멀쩡한 의자 두 개를 포갠다.경로당 봄 잔치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은 했다.놀러 간다.의자를 나른다.아마 접시도 나른다.놀러 가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의 차이는 도착해서 알게 된다.“하늬야, 그거 내려놔.”길 건너에서 범준이 온다.검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었다. 내 손에 든 의자부터 받는다.“두 개야.”“알아.”“나도 들 수 있어.”“그럼 저거.”범준이 접힌 식탁을 턱으로 가리킨다.나는 의자를 다시 잡는다.“됐고. 이쪽이 가벼워.”범준이 웃으며 식탁으로 간다.명숙 아줌마가 부동산 문을 잠그고 천천히 건너온다. 팔 아래에는 두꺼운 스프링 노트가 있다.엄마가 묻는다.“명숙아. 몇 개 모자란대?”“의자 넷.”“넷? 아까는 셋이라며.”“네가 앉을 것도 있어야지. 그렇지?”엄마가 흔들리는 의자를 가리킨다.“내 거 여기 있어.”아줌마는 의자 다리를 보고, 엄마를 본다.“그건 화분 올려.”범준이 식탁을 펼치려다 잠깐 멈춘다.나는 고개를 돌린다.웃으면 엄마가 나도 일 시킨다.
“내가 열네 살 때 어디 가고 싶다고 했는데?”범준이 골목 모퉁이에서 멈춘다.내 소매 끝을 본다.돈가스 소스가 묻은 자리다.“집에 가서 먼저 씻어.”“내 질문이랑 소매가 무슨 상관인데.”“굳으면 안 지워져.”“어디냐고.”“수족관.”나는 접어 올린 소매를 놓는다.수족관.그 말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려 본다.“내가 그랬어?”“응.”“언제.”“수영부 들어갔을 때.”“너 그걸 아직 기억해?”범준은 다시 걷는다.“가고 싶다며.”나는 잠깐 뒤처졌다가 따라간다.‘도범준은 15년 전 목적지를 갖고 있다. 나는 오늘 휴대폰도 놓고 나왔다.’“그걸 이제 가?”“다음 주에 시간 되잖아.”맞는 말이다.이번에는 맞는 말인데도 곧바로 대꾸가 안 나온다.나는 소매를 더 높이 접는다.“됐고. 거기 매점 있어?”범준이 나를 본다.“있겠지.”“없으면 곤란해.”“물고기 보러 가는 거잖아.”“물고기도 밥 먹어.”범준 입가가 올라간다.나는 앞을 보고 걷는다.· · ·5월 16일 토요일.사진관 문을 열자 엄마가 내 가방을 먼저 본다.“수족관 간다며.”“응.”“수영하러 가는 거 아니지?”나는 방수 가방을 내려다본다.“거기서 내가 들어가면 직원이 꺼내 주겠지.”“가방이 너무 크다니까?”“작은 걸 들면 물병이 안 들어가.”엄마는 내 가방 안에 든 물병을 확인하고서야 비켜선다.곧바로 다시 앞을 막는다.“사진은 물고기만 찍지 말고.”“아직 출발도 안 했어.”“큰 물고기 옆에서 찍어. 둘이.”길 건너 명숙부동산 문이 열린다.범준이 나오고, 명숙 아줌마가 느리게 뒤따른다.엄마는 내 옆을 지나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다.“명숙아. 거기 멀다며?”“지하철로 50분.”“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찾아봤지. 그렇지?”아줌마가 범준을 본다.범준은 고개를 끄덕인다.엄마도 나를 본다.나는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넌 뭐 알아봤어?”“매점 있는지.”“있대?”나는 범준을 본다.범준이 대답한다.“있어.”엄마가 고
나는 거품 묻은 밥그릇을 돌려 본다.바닥까지 깨끗하다.“한 공기 먹는 애한테 왜 세 공기를 줘?”“달라니까 줬지.”“엄마가 먼저 물었잖아.”“물었는데 먹겠다잖아.”엄마가 물기를 닦은 접시를 찬장에 넣는다.나는 밥그릇을 헹군다. 밥풀 하나가 안 붙어 있다.‘도범준은 밥도 남기지 않고 내 반박할 거리도 남기지 않는다.’“다음에는 덜 줘.”“다음에도 부르게?”수돗물이 장갑 안으로 들어온다.나는 손을 든다.“그 말이 아니잖아.”“그럼 다음에는 안 불러?”“그것도 아니고.”엄마가 내 손에서 그릇을 받는다.오른손 장갑 끝을 조금 당겨 준다. 안에 든 물이 손목으로 흐른다.“그릇 그만 씻어. 수저만 마저 해.”“나 할 수 있어.”“할 수 있는 거 알아. 엄마도 할 수 있다니까?”나는 수저를 모은다.엄마는 범준이 쓰던 밥그릇을 물기까지 닦아서 올려 둔다.맨 위다.“걔 이번 주말에는 뭐 하니?”“몰라.”“만날 거 아니야?”“만날 때 물어보면 되지.”“그러면 어디 갈지도 모르니?”나는 수도꼭지를 잠근다.엄마가 나를 기다린다.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인데, 내가 어디 간다고 하면 거기까지 따라올 것 같다.“밥 먹겠지.”“뭐.”“밥.”“범준이는 밥을 잘 먹더라.”나는 젖은 장갑을 벗는다.‘이 얘기는 다시 세 공기로 돌아간다.’· · ·5월 9일 토요일.나는 신발을 신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엄마가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든다.“왜? 뭐 놓고 왔어?”“휴대폰.”“그걸 놓고 가면 어떡하니. 사진 찍어야지.”“연락부터 해야지.”“연락은 길 건너 가서 하면 되잖아.”맞는 말이다.그런데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먼저 나오는 건 이상하다.나는 방에서 휴대폰을 챙긴다. 물병은 방수 가방 안에 넣는다.아래층 사진관으로 내려오자 엄마가 보정하던 화면에서 눈을 뗀다.“오늘은 어디 가?”“옛날돈가스.”“돈가스?”“응.”“둘이 먹는 거지?”“다른 사람까지 부를까?”“둘이 먹으라니까?”엄마는 내가 먼
물병을 내려놓자 방문 밖에서 엄마가 부른다.“하늬야. 범준이 뭐 좋아하니?”나는 거울에서 눈을 뗀다.“왜.”“밥 먹일 거야.”“지금?”“토요일에.”나는 방문을 연다. 엄마가 빨래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서 있다.“엄마, 걔는 길 건너 살잖아.”“그래서 멀리서 오는 애만 밥 먹이니?”“집에서 먹으면 되잖아.”“우리 집에서 먹으면 안 되니?”대답하려다가 물병을 다시 본다.뚜껑은 아직 느슨하다.“너 어깨는?”엄마가 묻는다.“치료받았어.”“그러니까. 고맙다고 밥 먹여야지.”“그럼 나 치료해 준 사람 다 불러?”“범준이만 부를 건데.”엄마는 빨래 바구니에서 내 수건을 꺼낸다.내 손에는 안 주고 방 안 의자에 놓는다.“토요일 저녁. 너도 어디 가지 마.”“주말마다 한 번이면 되는데.”“뭐가?”나는 물병을 든다.“만나는 거.”엄마의 손이 수건 위에서 멈춘다.그러더니 수건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춘다.“그 한 번 우리 집에서 만나면 되겠네.”나는 입을 다문다.맞는 말이라서 더 할 말이 없다.· · ·5월 2일 토요일.저녁상을 차리기도 전에 엄마가 내 자리를 옮긴다.내 물컵은 원래 아빠 맞은편이다.지금은 옆이다.그 옆에 물컵 하나가 더 있다.나는 컵을 원래 자리로 밀어 놓는다.엄마가 다시 가져온다.“거긴 범준이.”“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자리가 있어?”“손님 자리는 있어야지.”“나는 살고 있는데 자리가 없어?”엄마가 접시를 내민다.“이거 놔.”접시에는 오이무침이 담겨 있다. 나는 왼손으로 받아 식탁에 놓는다.엄마가 내 오른팔을 본다.“무거운 건 내가 할게.”“이 정도는 들어.”“범준이가 조심하랬다며.”“내 말은 안 듣고 걔 말은 들어?”“네가 조심하라고 했으면 네 말도 듣지.”나는 오이무침을 가운데로 민다.‘지금 봉경애가 내 반박까지 미리 꺼내 놓는다. 접시 놓을 자리만 남는다.’아빠는 식탁 끝에 앉아 생선 접시를 보고 있다.“아빠. 오늘 손님 오는 거 알아?”“어.”“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