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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강제 결혼
소문난 강제 결혼
작가: 움디

1화 태강의 후계자

작가: 움디
last update 게시일: 2026-09-08 14:43:50

  11월의 서울은 해가 짧았다.

 며칠 전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옷차림도 서서히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운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오갔고 가로수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둘 보도 위로 떨어졌다.

 오후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한낮의 빛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늘은 벌써 저녁빛으로 기울고 있었다. 흐릿한 햇살이 빌딩 숲 사이로 길게 번졌고, 태강그룹 본사의 유리 외벽에는 잿빛 하늘이 차갑게 비쳤다.

 강태호는 서른여덟 층 회의실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오전부터 이어진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진 데다 곧바로 건설부문 실적 보고까지 이어졌다. 몇 시간을 꼬박 회의실에 붙잡혀 있다 나온 사이 창밖은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성북 재개발 건, 경쟁사에서 공사비를 한 번 더 낮춰서 들어왔습니다.”

 태호의 전담 비서 민도윤이 태블릿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수주팀에서는 기존 제안가에서 삼 퍼센트 정도 더 낮추면 승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태호는 앞만 보며 걸었다.

 “안 해.”

 짧은 대답이 떨어졌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가실 겁니까?”

 “삼 퍼센트 더 낮추면 수주하고도 남는 게 없잖아.”

 “대신 시공권 확보 자체에 의미를 두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주변 구역까지 연계해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태호의 입가에 짧은 비웃음이 스쳤다.

 “돈 못 버는 공사 따놓고 실적으로 포장하자는 소리를 길게도 하네.”

 도윤은 더 말하지 않았다.

 “처음 제안한 금액 그대로 가.”

 “알겠습니다.”

 “그걸로 떨어지면 그냥 빠져.”

 “예.”

 태강그룹의 주력인 태강건설은 국내 건설업계에서 몇 년째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주택사업을 시작으로 재개발과 재건축, 대형 복합개발, 플랜트, 해외 인프라 사업까지.

 국내에서 굵직한 건설 사업을 이야기할 때 태강의 이름을 빼놓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시작부터 지금처럼 번듯한 기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강그룹의 이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따라붙는 말이 하나 있었다.

 ‘조직폭력배 출신 기업.’

 지금도 인터넷에 태강그룹을 검색하면 연관어처럼 붙어 나오는 오래된 꼬리표였다.

 강태호의 아버지이자 현 태강그룹 회장인 강덕수는 젊은 시절 서울 일대를 주름잡던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재개발 붐이 한창이던 시절 철거와 용역을 시작으로 건설업에 발을 들였고 이후 태강건설을 세우며 사업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거칠게 시작한 회사는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중견 건설사를 인수했고 주택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지금의 태강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강태호가 경영 전면에 나선 뒤부터 태강은 다시 한번 크게 달라졌다.

 태호는 서른이 되기 전부터 주요 계열사 경영에 참여했다.

 태강건설 사장에 오른 뒤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을 정리하고 대형 개발사업과 해외 사업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몇 년 뒤 부회장에 오른 후부터는 그룹의 굵직한 의사결정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태호가 경영에 뛰어든 이후 태강건설의 매출은 가파르게 올랐다.

 줄곧 상위권을 맴돌던 업계 순위 역시 결국 1위까지 올라섰다.

 강덕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경영자로서 강태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내놓은 결과가 워낙 확실했으니까.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부회장 자리에 오른 것도 자연스럽게 그룹의 후계자로 굳어진 것도 그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수순이었다.

 지금의 태호만 보면 과거의 태강과는 제법 거리가 멀었다.

 고급 정장을 입고 회의실에 앉아 숫자를 보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수천억이 오가는 사업의 방향을 결정했다.

 적어도 지금의 강태호만 놓고 보면 과거의 태강을 떠올릴 만한 구석은 많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만큼은 달랐다.

 큰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격,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얼굴. 가만히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긴장하게 만드는 눈매까지.

 태호는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가 낮아질수록 주변은 더 조용해졌다.

 말투도, 행동도 이미 오래전에 기업인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간혹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오래된 흔적이 드러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은 새삼 떠올렸다.

 아무리 번듯한 정장을 입고 기업인이 되어도 결국 이 남자가 강덕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부회장실이 있는 최상층은 아래층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넓고 긴 복도 양옆으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적게 잡아도 여덟은 되어 보였다.

 모두 태강그룹 소속 경호팀 직원들이었다. 과거 조직 시절부터 이어져 온 태강 특유의 문화가 아직 일부 남아 있는 탓이었다.

 태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에 늘어서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부회장님.”

 태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저거 언제 치울 건데.”

 “회장님 지시라서요.”

 “……이러니 아직도 깡패 소리를 듣지.”

 잠시 후 집무실에 들어선 태호는 재킷 단추를 풀며 곧장 책상 앞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의자에 앉은 태호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자 왼쪽 팔뚝 안쪽에 길게 남은 흉터가 드러났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서류 한 부를 집어 들었다.

 그때 도윤이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양손에는 각각 다른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부회장님, 결재 건부터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것부터 확인하시겠습니까.”

 태호는 결재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답했다.

 “결재부터.”

 “근데…… 이것도 오늘 안에 확인하셔야 하는 건이라서요.”

 도윤이 조심스럽게 한쪽 태블릿을 내밀었다.

 태호가 마지못해 시선을 들었다.

 화면 가운데 큼지막한 제목 하나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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