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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مؤلف: 비담
강루인은 박정금이 손자를 얼마나 원하는지 잘 알았지만 잠잘 때조차 감시받고 싶진 않았다.

“어머님, 여긴 회사랑 너무 멀어요. 매일 일찍 일어나면 영도 씨 잠자는 시간이 부족할 거예요.”

그녀는 아들이 박정금의 전부라는 점을 잘 이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정금이 정말로 망설였다.

강루인을 힐끗 곁눈질하던 주영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날 제대로 방패막이로 쓰는데?’

그녀는 주영도의 시선을 느꼈으나 조금 전의 그처럼 무시하기로 했다.

본가로 들어와 사는 건 이렇게 흐지부지되었지만 시어머니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본가의 도우미를 두 사람의 집으로 보내려 했다.

강루인이 또다시 거절하려는데 박정금의 태도가 완강해서 그냥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 나 배고픈데 밥 언제 먹을 수 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예쁜 소녀가 나타났다. 바로 주영도의 여동생 주초원이었다. 주초원이 그들을 보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오빠, 새언니.”

주영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왔어?”

강루인도 미소로 답했다.

올해 16살이 된 주초원은 주씨 가문의 막내딸이자 주영도 아버지의 늦둥이 딸이었다.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랐다.

박정금은 도우미에게 밥상을 차리라고 일렀다.

주초원이 식탁 앞에 앉아 해맑게 웃었다.

“새언니, 금요일에 학부모회가 있는데 새언니가 와주면 안 될까요?”

그 말에 젓가락을 들었던 강루인이 멈칫했다.

주초원은 어머니를, 주영도는 아버지를 닮아 두 사람의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하지만 모두 아버지 주갑수의 눈매를 쏙 빼닮았다.

차갑고 감정 없는 주영도와 달리 주초원은 늘 눈웃음을 짓고 있어 상대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강루인은 알고 있었다. 그건 모두 꾸며낸 모습이라는 것을.

강루인이 에둘러 거절했다.

“금요일에 출근해야 해서 안 돼. 어머님께 부탁드리는 건 어때?”

주초원은 포기하지 않고 주영도를 보면서 뾰로통한 얼굴로 애교를 부렸다.

“오빤 날 제일 예뻐하잖아요. 새언니를 하루만 빌려주면 안 돼요?”

강루인의 시선도 주영도에게로 향했다. 그가 대신 거절해주길 바랐지만 역시나 헛된 기대였다.

주영도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박정금이 먼저 결정해버렸다.

“초원이가 이렇게 원하는데 그냥 금요일에 회사 가지 마.”

강루인에게 하는 말이었다. 박정금은 주초원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줬다.

주영도는 시종일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에는 전혀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이 집에서 강루인은 여전히 아무런 발언권도 없었다. 심지어 결정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문득 음식이 맛없게 느껴졌고 넘어가질 않았다. 정말 모래를 씹는 듯한 점심 식사였다.

...

본가에서 나와 회사로 돌아가는 길, 강루인은 결국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학부모회 가고 싶지 않아.”

주영도가 말했다.

“휴가 하루 낸다고 월급 깎진 않아.”

‘내가 지금 월급을 깎을까 봐 이러는 줄 알아?’

강루인이 다시 한번 말했다.

“가고 싶지 않다고.”

그녀의 고집에 주영도는 드디어 고개를 돌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도 아닌데 왜 그래?”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더 가고 싶지 않았다.

주영도가 이어 말했다.

“초원이가 널 엄청 좋아해. 그러니까 애 속상하게 하지 마.”

‘날 좋아한다고? 영도 씨 가족들만 그렇게 생각하겠지.’

가식은 사람을 속이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십 년 넘게 함께 지낸 가족이지만 강루인은 그저 외부인에 불과했다.

주초원이 강루인에게 적대심을 느낀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가 이간질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강루인이 물었다.

“영도 씨, 내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

‘가기 싫다는데 안 가면 안 돼?’

그녀의 반항에 주영도가 미간을 찌푸렸다.

“초원이가 널 가족이라 생각해서 학부모회에 참석해달라고 한 건데 그렇게 싫어? 새언니로서 이 정도 부탁도 못 들어줘?”

주영도는 강루인이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새언니인 것처럼 말했다. 그의 말에 강루인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자신을 비웃었다.

“내가 거절하면 억지를 부리는 거야? 그럼 구아정이 기를 쓰고 끼어드는 건 뭔데? 파렴치하고 뻔뻔한 짓이 아니야?”

그 순간 주영도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이 일이 아정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끌어들여? 네가 함부로 지어낸 말 때문에 한 사람의 명예를 망가뜨릴 수 있어. 너도 여자면서 그것도 몰라?”

강루인이 말했다.

“당신들은 하면서 왜 난 안 되는 건데?”

주영도가 답했다.

“한 번만 말할게. 아정이랑 나 아무 사이 아니야. 난 그냥 걔를 여동생이라 생각한다고.”

강루인이 코웃음을 쳤다.

“그 말을 영도 씨는 믿어?”

‘여동생은 개뿔. 애인이겠지.’

두 사람의 말다툼은 결국 흐지부지 끝났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라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강루인은 중간에 먼저 내렸다.

멀어져가는 차를 보고 있자니 씁쓸함이 밀려왔다.

진짜 아내는 도둑처럼 몰래 숨어다니는데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한 내연녀는 오히려 당당하게 활보하다니.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구아정이 주영도의 비서가 됐다는 소식이 눈 깜짝할 사이에 회사 전체에 퍼져 나갔다.

모두가 구아정이 주영도의 ‘아내’이자 안주인이라고 생각했다.

강루인은 귀를 막고 외부의 소음을 차단한 채 계속 인수인계했다. 이런 골치 아픈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빨리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느덧 금요일이 되었다.

주초원의 학부모회에 가고 싶지 않았던 강루인은 일부러 휴대폰을 꺼버렸고 회사에도 나가지 않았다.

주영도가 유급휴가를 준다고 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곧바로 할머니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주초원의 끈기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강루인이 연락이 안 되자 주영도를 찾아갔고 동생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던 주영도는 강루인을 잡으러 노윤환을 병원으로 보냈다.

병실에 들어선 노윤환은 먼저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넨 후 강루인을 쳐다보았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학교로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노윤환이 나타난 순간 강루인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정말 끈질긴 사람이야. 숨었는데도 찾아내다니.’

이수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학교에는 왜 가는 건데?”

그러자 노윤환이 답했다.

“초원 아가씨의 학부모회에 참석하셔야 해서요.”

그 말에 이수희가 강루인에게 말했다.

“얼른 가서 일 봐.”

이수희는 주씨 가문 사람들이 강루인을 무시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이제 보니 괜한 걱정인 것 같았다. 강루인을 학부모회에 보낸다는 건 강루인이 주씨 가문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본 강루인은 차마 걱정을 끼칠 수가 없어 결국 노윤환을 따라나섰다.

주초원이 다니는 학교는 국제학교로 대부분 부유층 자제들이 다녔다.

사실 강루인은 주초원이 그녀를 부른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주초원이 왜 그녀에게 이토록 적대감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없었다.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은 만만한 상대를 골라 괴롭히기 마련이고 그리고 주초원의 눈에 강루인이 바로 그 만만한 상대였다.

강루인이 연못가를 지나던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눈빛이 번뜩이더니 누군가 다가온 순간 재빨리 몸을 피했다.

다행히 습격을 피했지만 그녀를 습격하려던 사람은 그리 운이 좋지 않았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곧이어 비명이 들렸고 사람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이어졌다.

“왜 사람을 연못에 빠뜨려요?”

16, 17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네댓 명 정도 우르르 몰려왔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섞여 있었고 주초원도 그들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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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765화

    “어떤 납치범이 일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인질을 풀어주겠어요?”주승우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그래도 우리가 예전에 쌓은 정이 있으니까 마지막까지 루인 씨의 안전만큼은 보장해 줄 수 있어요. 목숨까지 빼앗을 생각은 없거든요.”지금 이 상황에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정이 남아 있다는 건지 강루인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그 말을 믿어도 될까요?”주승우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믿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있나요?”그의 질문에 강루인은 말문이 막혔다.결국 그녀의 목숨은 주승우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었다.강루인은 다시 물었다.“그럼 저는 언제쯤 나갈 수 있는데요?”주승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그건 주영도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죠.”강루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주씨 가문 사람 중 제대로 된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그들은 뿌리부터 썩어 빠진 사람들이었다.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주승우가 한마디 덧붙였다.“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괜한 짓을 했다가는 결국 다치는 건 루인 씨뿐이니까.”강루인은 계속 침묵을 지키더니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잠시 후 주승우는 자리를 떠났고 철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폐건물 안에 오래된 먼지와 곰팡이가 뒤섞인 듯한 냄새가 강루인의 코를 찔렀다.그녀는 주승우가 대체 주영도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생각해 보았다.하지만 강루인이 걱정하는 것은 주영도가 아니었다.그녀는 오직 자신의 안전만을 걱정할 뿐이었다.강루인은 주영도에게 버림받은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더 이상 그에게 기대 같은 것을 걸지도 않았다.그녀는 주영도가 구하러 오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거나 죽음을 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두 가지 선택지 외에도 강루인에게는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었다.바로 지수현이었다.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분명 누구보다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764화

    강루인이 이름을 제대로 부르기도 전에 그들은 재빨리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고 몸부림치거나 반항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그녀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순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강루인은 자신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는 낯선 곳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텅 빈 건물 안에는 그녀가 누워 있는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벽은 여기저기 허물어져 있었고 누가 봐도 오래전에 버려진 폐건물이었다.강루인은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으로 뒷목이 욱신거리고 머리까지 어지러웠던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강루인은 이번에 자신을 납치한 사람이 누구인지 추측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납치범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끼익!낡은 철문이 힘겹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빛을 등진 채 걸어오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한눈에 안겨 왔다.강한 빛에 가려져 처음에는 강루인도 상대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하지만 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상대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주승우였다.그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강루인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주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러 온 사람처럼 태연하게 물었다.“왜 놀란 기색이 하나도 없죠? 두렵지도 않아요?”강루인은 편한 자세로 다시 벽에 등을 기대더니 이미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듯 담담한 태도로 되물었다.“제가 두렵다고 하면 보내줄 거예요?”주승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요.”강루인은 곧바로 받아쳤다.“그럼 제가 두려워할 것도 없잖아요. 그쪽이 납치범 노릇을 하는 쾌감이나 채워주라고요?”그 말에 주승우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역시 재미있는 사람이라니까. 주영도랑 결혼한 건 아마 루인 씨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을 거예요. 사람 보는 눈도 정말 없었고.”강루인이 비꼬듯 말했다.“제가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763화

    지수현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주영도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그는 아프고 괴로웠지만 그 사실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주영도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강루인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는 것은 그가 부정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주영도는 강루인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빚졌고 인제 와서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었다.그리고 그는 정말 비겁한 사람이었다.주영도의 나약함 때문에 강루인이 온갖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그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핸들을 세게 움켜쥔 채 거칠게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강루인이 많이 힘들게 살았어?”주영도는 강루인이 죽었다고 믿었던 지난 5년 동안 그녀가 해외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만약 알았더라면 그는 절대 그녀의 계좌를 막지 않았을 것이다.그때의 주영도는 그저 이기적인 마음으로 강루인이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자신에게만 기대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하지만 결국 그의 생각은 틀렸다.인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가 했던 모든 행동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그 잘못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고 더 이상 되돌릴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주영도는 이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지수현이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왜 대답해 줘야 해? 너한테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길 기회까지 줄 생각은 없어.”주영도는 얼굴이 굳어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진심이 담겨 있었다.“고마워. 그 사람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지수현이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줬기에 강루인은 수많은 고통을 피할 수 있었다.그 사실만큼은 주영도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지수현은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 아내를 내가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야. 아무것도 아닌 네가 고마워할 일은 아니니까. 참 뻔뻔하기도 하네.”그는 주제도 모르는 주영도의 태도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주영도의 가슴은 다시 한번 날카롭게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762화

    주영도의 얼굴은 먹물을 들이부은 듯 새까맣게 굳어 있었다.하지만 그가 아직 폭발하기도 전에 뒤따라온 지수현이 참지 못하고 먼저 다가왔다.그는 주영도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쥐더니 그대로 차 문에 밀어붙였다.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영도의 등이 차 문에 세게 부딪혔다.지수현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지금 날 갖고 노는 거야?”지수현은 주영도의 뒤를 따라 무려 네 곳이나 돌아다녔다.매번 폐건물 안을 한 바퀴 대충 둘러보고 나오는 일이 반복되자 주영도가 일부러 자신을 데리고 장난치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주영도는 차가운 얼굴로 그를 거칠게 밀어내며 말했다.“널 갖고 놀 만큼 한가하지 않아.”말을 마친 주영도는 몸을 돌려 다시 차에 올라탔다.그때 차량 내비게이션 화면에 새로운 주소가 떠 있었다.그는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핸들을 움켜쥐었다.지수현을 일부러 농락한 건 주영도가 아니었다.주승우가 일부러 그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농락하고 있었던 것이다.주영도가 막 시동을 걸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곁눈질로 조수석에 올라탄 지수현을 확인한 그는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내려.”하지만 지수현은 내리기는커녕 안전벨트까지 매며 짧게 말했다.“운전해.”그야말로 주영도를 운전기사처럼 부리는 듯한 태도였다.지수현은 이제야 주영도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내 아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지?”의문이 아닌 확신에 찬 말이었다.강루인을 데려간 납치범이 남편인 지수현이 아닌 전남편 주영도에게 연락했다면 상대가 주영도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하지만 지수현은 입을 다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몰아붙였다.“주영도, 넌 진짜 암 덩어리 같은 인간이야. 너랑 엮이기만 하면 누구든 재수가 없어. 결국 여자가 너 대신 고통받는 거잖아. 넌 그냥 하찮은 쓰레기 같은 놈이야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761화

    주승우의 이름이 나오자 최지호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잠깐. 주승우가 신부 대기실에 가서 강루인 씨를 만났다는 거야?”함지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히 설명했다.“응. 루인이한테 결혼 선물도 주고 주영도를 비꼬는 말도 했었어. 그리고 이안이랑 장난도 좀 쳤는데 아이가 그 사람 손을 붙잡고 빨기까지...”말을 이어가던 함지율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최지호와 시선을 마주했다.“설마 우리 아들한테 약을 먹인 사람이 주승우인 거야?”최지호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함지율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그런데 만약 정말 주승우라면 왜 그런 거야? 우리랑 아무런 원한도 없잖아.”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때 최지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강루인 씨 때문이야.”“뭐?”함지율은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그 말은 루인이가 사라진 것도 주승우와 관련이 있다는 거야?”최지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커.”주이준이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최지호 역시 알고 있었다.그런 사람이 주영도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고 심지어 평생 감옥에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그렇다면 그들이 이 일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누군가에게 복수하려 한다면 직접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무너뜨리는 편이 훨씬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다.그리고 지금 주영도가 가장 집착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루인 이었다.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주영도는 절대 받아들일 리 없었다.강루인이 죽었다고 믿었던 지난 5년 동안 주영도가 산송장처럼 살아온 모습이 그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였다.무언가를 떠올린 최지호는 함지율에게 아이를 부탁한 뒤 비상구로 나와 주영도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아 곧바로 연결되었다.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자신이 주승우를 의심하

  •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제760화

    아랫배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 탓에 주영도의 반응은 한 박자 늦었다.“네가 강루인을 데려간 거야?”지수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기실 안에 울려 퍼졌다.그제야 주영도는 상황을 파악한 듯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강루인이 사라졌다고?”지수현은 압박하듯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지금 연기하는 거야?”주영도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밀어낸 뒤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지수현과 마찬가지로 주영도 역시 대기실 안팎을 샅샅이 뒤졌다.아담한 공간이었던 터라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강루인이 입었던 웨딩드레스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고 그녀의 휴대전화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상황은 이미 너무나 명확했다.그 사이 지수현은 계속해서 주영도의 표정을 살폈다.그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연기를 하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듯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그때 최지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영도야, 강루인 씨가 정말 사라졌어.”강루인이 아직 이곳에 있었다면 최이안이 이렇게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을 리 없었다.주영도 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그는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수현을 향해 말했다.“대체 사람을 어떻게 지킨 거야? 결혼식장 보안 문제 하나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거야?”순간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살벌한 기류가 감돌았다.최지호가 적절한 타이밍에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야. 사람을 찾는 게 먼저야.”주영도와 지수현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이 상황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지수현은 즉시 경호원들에게 연회장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라고 지시했다.그가 대기실을 떠난 시점부터 계산하면 고작 30분 남짓했다.그렇다면 강루인은 그 30분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그 시간 안에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불길한 생각에 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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