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별장으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부터 아티니스의 고개가 꾸벅꾸벅 떨어지기 시작했으니까.
한 번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가 화들짝 놀라 눈을 뜨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왼쪽으로 기울었다.
세이런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결국 자신의 쪽으로 쓰러지는 머리를 어깨로 받아주었다.
아티니스가 눈을 아주 조금 떴다.
“세이런…….”
“응.”<
“손주만큼은…… 오러를 가지지 않고 태어났으면 좋겠구나.”그 순간 세이런의 표정도 미세하게 굳었다.가우디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포르투릭스의 혈통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강력한 오러가 이어져 내려왔다.그러나 모든 후손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힘은 아니었다. 몇 대 동안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한 아이에게 발현되기도 했고, 그렇기에 다음 대에 나타날지, 아니면 몇 세대를 건너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리고 세이런은 그 힘을 타고난 사람이었다.문제는 그의 몸이 지나치게 강한 오러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어린 시절부터 오러를 사용할 때마다 몸은 조금씩 망가졌다. 처음에는 잠시 열이 오르거나 가슴에 통증이 생기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은 심해졌고 결국에는 목숨마저 위태로울 정도가 되었다.가우디에게 그 시간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임신 초기가 지나면서 아티니스에게는 입덧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세이런의 걱정은 한층 더 심해졌다.“우욱…….”아티니스가 식탁에서 급하게 입을 가리는 순간이었다.세이런은 의자가 넘어질 듯 벌떡 일어났다.“아티!”“괜찮…… 우욱.”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세이런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그는 곧바로 아티니스의 등을 쓸어주면서도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의원 불러.”“세이런, 괜찮아요.”“어디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보여.”
아티니스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포르투릭스 대공저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가장 크게 달라진 사람은 역시 세이런이었다.원래도 아티니스에게 그 누구보다도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지만, 임신 사실을 확인한 뒤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심해졌다.“아티.”“네?”“그거 내려놔.”아티니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들고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찻잔 하나뿐이었다.“……이거요?”“응.”“차 마시려고요.”“내가 줄게.”세이런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손에서 찻잔을 가져갔다.아티니스는 잠시 제 빈손을 내려다보다가 어이없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고요한 오두막 안에 유난히 선명하게 울렸다.아티니스의 시선이 닫힌 문에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세이런에게로 돌아왔다.그 순간 그녀는 조금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세이런이 웃고 있었다.아침부터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감춰 두었던 듯한, 아주 능글맞은 미소였다.“……왜 그렇게 웃어요?”“그냥.”세이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오늘은 아직 아티가 기운이 남아 보여서.”“……네?”아티니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세이런은 그런 제 아내를 잠시 바라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낮게 웃었다.
아티니스의 시선이 저절로 주변을 훑었다.눈앞에는 넓은 호수가 있었고, 그 너머로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숲이 이어져 있었다. 그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으니 근처에 마을이나 여관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이 호수 앞에서요?”아티니스의 눈에 의문이 더욱 짙어졌다.그제야 세이런의 입가에 조금 더 짙은 미소가 번졌다.하지만 여전히 설명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그는 대답 대신 아티니스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자, 따라와.”아티니스는 미심쩍은 눈으로 세이런과 내밀어진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결국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세이런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대체 어디 가는 건데요?”
얼마나 달렸을까. 앞서가던 세이런이 천천히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아티.”“네?”“저기 봐.”세이런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아티니스가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눈이 크게 뜨였다.“우와…….”나무 사이로 푸른빛이 보였다.숲을 조금 더 빠져나가자, 조금 전까지 빽빽하던 시야가 한순간에 환하게 열리며 넓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우와아……!”아티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호수는 주변을 둘러싼 숲의 푸르름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다. 맑은 수면 위에 바람이
청혼서라는 말에 아티니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면식 없는 대공가에서 결혼을 제안하다니. 게다가 시골 영지에 틀어박혀 살아온 자신을 어떻게 알고 보낸 건지 아티니스는 의아했다. “설마… 예전에 황실 파티에서 우리 아티를 본 건 아닐까요?”백작부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시골 영지 영애인 제게 누가 관심을 보였겠어요… 저도 관심 없었고요.”“무슨 소리야. 우리 아티의 아름다움은 태어날 때부터였단다. 세상을 밝혀주는 따스한 아침 햇살 같은 주홍색 머리카락에, 릴리스를 쏙 빼닮은 아메랄드를 담고 있는 두 눈동자. 그 무도회에
둘은 물에 흠뻑 젖은 채 서로를 바라봤다. 아티니스는 다시 넘어지지 않게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그 소년을 내려다보았고, 소년은 팔꿈치로 몸을 일으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ㅁ… 뭘 봐.”정적을 깨는 차가운 말투였다. 그 말에 아티니스는 눈을 깜빡였다. 잠시나마 그에게서 느꼈던 환상이 살짝 깨지는 듯했지만 그의 얼굴은 쉽게 그 환상을 깨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 또한 그랬다. “옷 다 젖어 버렸네
부드럽게 스며드는 햇살과 달리, 아티니스 세레스니타의 표정은 흐린 하늘처럼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말없이 긴 숨을 내쉬며 그녀는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혼나러 가는 아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아티… 정말 혼자 가야겠니? 엄마가 같이 가 준다니까….”아티니스 뒤를 따라 나온 릴리스 백작부인의 애타는 목소리에 이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던 글라디 백작도 걱정 어린 눈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도무지 딸을 혼자밖에 내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모양이었다.‘3년전부터 외출은 허락해 주셨
“안 되겠어요. 사람을 부를게요. 집사든 누구든….”아티니스가 자리에서 일어서 도움을 청하러 가려 하자, 세이런이 힘겹게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아니야… 소용없어… 그들이 와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조금만... 쉬면 괜... 찮아.”그 말에 아티니스는 잠시 멈칫했다.‘그럼, 정말… 혼자서 이렇게 견디는 거야?’아티니스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세이런의 차가운 손끝에 닿았다.그리고 아티니스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이 마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제발 이 사람의 고통을… 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