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울컥. 매 순간이 울컥이었다. 사람 눈에서 이렇게 많은 눈물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흐르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태어나 처음으로 알아버렸다.살아질 것 같다가도 또 무너지고, 완벽하게 무너졌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일어나고.어쩌면 남은 날의 평생이 이런 날의 반복이겠지.“오늘도 꿈에 안 나왔어요.”“지금은 엄청나게 바쁘지.”“왜요?”“친구들도 생기고, 예쁨도 받고. 천국 투어에 정신이 좀 팔렸겠어.”“귀여워. 또 꺄르르 웃고 있겠네.”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살면서 수도 없이 들은 말인데, 그들은 아니었다. 묻는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그저 시간이 뚝 멈췄다. 세상이 멈췄다. 상실의 깊이도 없었다. 도저히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메아리쳤다.***동백나무에 빨간 꽃망울이 맺힌 어느 날, 리아가 나무 기둥에 무언가를 둘러주고 있었다. 가까이서 확인한 순간 세준은 숨통부터 조여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다 뜬 거야? 벌써?”“네.”정성스레 직접 뜬 목도리 같은 것. 쌀쌀해진 날씨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리아는 영상을 보고 뜨개질을 배웠다.그래서 시간이 갔다. 조금은 흐르는 것 같았다.나무가 꼭 옷을 입은 모양이 나름 포근해보였는지, 세준은 투박한 손길로 조심스레 어루만졌다.“부드럽네. 비싼 실인가 봐.”“아무래도 다시 떠야겠어요. 중간에 빈 구멍이 많아.”“응, 천천히. 다시.”한동안 손을 놓았던 회사 업무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기철은 전보다 더 대놓고 세준을 챙겼지만, 세화의 이름만큼은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수척해진 얼굴이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아직은 힘들어 뒤지겠다고, 여전히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마스터, 준수가 해커질을 그만한다는데요.”“갑자기?”“예. 앞으로는 주식 고수가 되겠답니다.”“미친놈.”준수는 세화를 떠나 보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들에게 또 한 번의 소중한 생명이 찾아온다면, 그땐 적어도 창피한 삼촌이 되고 싶진 않다고.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세준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리아의 손에 수저를 쥐여주었다.“강리아. 세화 따라갈 거 아니면 먹어.”“싫어요.”“그럼 따라가. 난 어차피 뒤져도 못 따라가니까, 너라도 기어코 따라가라고.”말 같지도 않은 말에 기철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마스터!”“수저 대신 총이라도 쥐여줘? 칼이라도 쥐여줘?”“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왜. 어차피 천국인데 뭐.”참다못한 준수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세화, 천국 못 갔습니다.”순간, 세준의 눈에 사나운 살기가 실렸다. “이 씨발 새끼가.”금방이라도 휘둘러질 듯한 주먹마저 부들부들 떨렸지만 준수는 멈추지 않았다. “두 분이 못 가게 붙잡고 있잖습니까. 여전히 리아 품 안에만 안겨있는데, 천국을 대체 어떻게 갑니까.”뚝뚝.새하얀 유골함 위로 리아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정말 세화가 천국을 못 갔다고? 나 때문에? 정말 나 때문에?“끄윽.... 아저씨.. 어떡해요.. 끄윽...”“씨발.. 하아...”기철도, 준수도 이제서야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예쁜 세화.. 이제 그만 보내줍시다.”“끄윽... 납골당은 무서울 것 같단 말이에요... 너무 어리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엄마랑 떨어져...”한 번도 품 안에서 멀리 했던 적이라고는 없었던 존재.그래서 더 놓질 못했다. 아니, 그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놓아야 할 이유를 몰랐다.모두가 눈물을 쏟던 중, 기철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마스터, 마당에 심었던 동백나무. 기억하십니까.”리아가 만삭이던 어느 날, 세준은 기철과 함께 마당에 동백나무 몇 그루를 심었었다. 꽃말이 변치 않는 사랑이라서, 사랑스러운 딸이랑 어울리는 꽃일 것 같아서. 세화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예쁜 원피스를 입히고, 그 앞에서 소중한 순간을 찍어주려고 했었다.기억을 떠올린 세준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뜨거운 눈물이 턱 끝으로 떨어져 내렸다.“어차피 세화를 위한 나무잖아요.”“그러네요. 곧... 동백꽃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다. 준수와 기철의 도움으로 필요한 서류들을 발급받고, 꼬박 하루를 기다린 뒤 화장터로 향했다. 정신없이 병원을 수소문하던 지연은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화장터에 도착했지만, 차마 리아의 곁에는 다가갈 수 없었다.꼭 리아를 잃었다고 믿고 울부짖던 과거의 자신 같아서. 리아는 정신을 차렸다 놓았다를 반복했고, 세준 역시 혼절만 하지 않았을 뿐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은 유골함을 품에 안은 리아가 맥없이 속삭였다.“가요... 집으로.”모두가 만류했지만 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마지막 인사를 끝내지 못해서. 도저히 사랑하는 딸을 납골당에 혼자 둘 수 없어서. 현관문을 열자 세화의 냄새가 코끝에 풍겨왔다. 리아는 터벅터벅 침실로 향해 유골함을 꼭 끌어안고 몸을 뉘었고, 세준은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렸다.곳곳에 놓여있는 아기 용품들, 세화의 흔적들.그것들은 전부 세화가 살아있다 말해주고 있는데, 왜.. 도대체 왜.. 아빠는 천국도 못 가는데, 그럼 앞으로도 두 번 다신 공주를 못 본다는 거잖아.아니지, 볼 자격이 없지. 이건 다 나 때문이다. 다른 이들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나 때문이다.하늘이 너무너무 미운데, 신이라는 작자의 멱살을 당장이라도 움켜쥐고 싶은데.곰곰이 생각해보니 미워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천국에 간 세화에게 해가 될까 봐.그래서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원망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세상이 무너진 이들에겐 시간조차 멈춰버렸다. 집안의 불은 어디에도 켜지지 않았고, 그 어떤 대화소리도 오고 가지 않았다.들려오는 건 오직 두 사람의 울음소리뿐이었다.유골함을 품고 웅크려 누운 리아의 뒤에 세준이 몸을 말았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유골함과 리아를 품에 안았다.“미안해.”“세화 자요. 그러니까 조용히 해요.”“그러자. 푹 자게 두자.”눈만 감으면 세화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귓가에는 웃음소리와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메아리쳤다.***하루, 또
입원 5일 차, 세화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난 뒤 얼굴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지고, 몸에는 각종 의료기기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 모습도 미쳐 돌겠는 와중에 의사의 입에서는 결국 최악의 말이 떨어졌다.“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쿵.그건, 세준이 바닥에 무릎을 꿇는 소리였다.“선생님,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안 됩니다. 제발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끝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다만, 아이 상태가 너무.. 너무 좋지 않습니다.”리아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다.마음의 준비? 웃기지 말라 그래.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라더니, 여기도 뭐 별거 없잖아.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 하나. 강지연.다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는 기어이 그 연락처를 누르고야 말았다.“리.. 리아니?”“대표님, 저 좀 도와주세요.”수화기 너머, 지연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리아가 스스로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상황.이런 상황을 내내 바라긴 했었는데, 막상 코앞에 닥치고 나니 정말로 무슨 큰 일이 있는 건가 싶어 심장이 벌렁거렸다.“무슨 일이야? 응? 무슨 일인데 그래.”“세화가 아파요. 지금 OO 대학병원에 와 있는데요, 여기, 실력이 영 형편없는 것 같아서요.” 이제야 리아에게 달려온 세준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강리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대표님은 부자시잖아요. 그러니까 저희보다 아는 병원도, 의사도 훨씬 더 많을 거 아니에요.”“상, 상태가 어떤데, 응?”“뇌수막염이요. 점점 안 좋아져서 지금은 중환자실에 들어갔어요.”말문이 막혀버렸다.단순한 열병정도가 아니라 중환자실이라고?말도 안 돼, 얼굴 한 번 못 본 생명이 어디가 그렇게 아프다는 건지.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잔혹한 현실을 되묻고 말았다.“중.. 중환자실?
꺼억꺼억 거리며 울어대던 중, 병실 문이 열리며 중년의 간호사 한 명이 들어섰다. 간호사는 조심스레 다가와 리아의 등을 토닥여주었고,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며칠 새 전전긍긍하며 아이 곁을 지키는 젊은 엄마가 영 신경쓰였던 것.“우리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뇌수막염이었어요.”리아의 눈동자가 간호사에게 향했다.또렷하진 않지만 전처럼 팅팅 부어있지도 않았고, 약간의 충혈기가 남아 있는데 그것조차 버팀의 흔적이었다. “태어나자마자요..?”“네. 그때의 저는 아마... 평생 쏟을 눈물을 다 쏟았던 것 같아요.”갑자기 병실로 들어와 왜 이런 말을 전하는지는 몰랐지만 문득 궁금해졌다.그래서 조심스레 물었다.“지금은요? 지금은 건강한 거죠?”“그럼요,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골머리가 썩을 지경이에요.”안도의 숨이 흘러 나왔다.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서.같은 병을 진단받고도 건강하다는 말은 어쩌면 지금의 리아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세화는 벌써부터 돌 찬지 장소를 알아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겨내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잖아.“혹시.. 얼마나 입원하고 퇴원했어요?”“2주요. 세화는 아직 3일차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힘을 내라는 직접적인 위로 없이도 충분한 위로가 된 순간.리아는 어깨를 곧추세우고 세화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엄마가 힘내볼게.'***집으로 향한 세준은 황급히 샤워를 마치고 짐가방을 쌌다. 부족한 아기 용품들은 물론 최대한 따뜻한 리아 옷까지. 병원으로 향하는 길엔 마트를 들러 두유와 미숫가루도 샀다. 틈만 나면 강리아를 먹이려고. 먹어야 힘이 나니까. 그리고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든 모습에 잠시 멈칫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깨에 조심스레 담요를 덮어주었다.“눈 좀 봐라. 그새 또 울었네.”세준의 기척에 리아의 눈꺼풀이 스르륵 떠올랐다.“응? 왔어요?”“응. 얼른 샤워실부터 다녀와. 찝찝하겠다.”리아의 시선이
병원으로 달려온 기철과 준수 역시 말을 잇지 못했다.본인들이 보기에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부모 마음이야 오죽할까. “뭐라도 좀 드셔야죠.”“리아야, 김밥이라도 먹어. 얼른.”물도 넘어가지 않는데, 배고픔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그들의 귓가에 걱정 어린 말이 들려올 리 없었다. “니들은 돌아가. 다 같이 고생할 필요 없어.”“마스터.”“괜찮아지면 연락할게.”맞다. 본인들이 함께 있어준다고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신경만 쓰이겠지. 마음만 더 불편하겠지.병원을 나서는 기철과 준수의 표정은 그림자가 내려앉은 것처럼 어둡기만 했다.“썅, 진짜 못 보겠다.”“이건 아닙니다. 하필이면 뇌수막염이라뇨.”“하, 어떡하냐 진짜...”세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김밥과 오뎅탕을 펼쳐 리아를 앉혔다. 지금은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부모가 쓰러지면 절대로 안 된다. “먹어.”“싫어요.”“언제까지 애처럼 굴 거야? 세화 안 볼 거야?”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 리아가 꾸역꾸역 김밥을 욱여넣었다. 목이 막혀 가슴을 치는 건지, 심장이 아파 가슴을 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세준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래도 먹었다. 그래야 버티니까, 그래야 무너지지 않으니까.“괜찮을 거야. 나도 너도 건강 체질이잖아.”“열만 떨어지면 좋겠는데.. 열이 제일 무서운 건데...”의사는 분명 열이 오르는 것보다 세화의 컨디션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세화의 모습은 평소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저 기진맥진. 분유는 먹는 족족 토해내기 바빴고, 꼭 미약한 숨만 쉬고 있는 것 같달까.“우리가 세화를 너무 힘들게 했나 봐요.”“강리아.”“괜히 욕심부려서 웨딩 사진이나 찍고, 우리 좋자고 분리 수면도 일찍 시키고...”“너 잠 못 자서 지금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세준은 담요를 펼쳐 리아를 소파 위에 억지로 눕혔다. 마음은 알지만, 자꾸만 약한 소리를 내뱉는 턱에 마음이 더 괴로웠다.“잠깐 눈만 붙여.”세화의 침대 옆에 앉은 세준은 리아와 세화를
세준은 머리가 지끈지끈 쑤셔왔지만, 소파에서 일어나 리아를 향해 다가갔다. “어떻게 아픈데.” “으.. 체한 것 같아요.. 아저씨.. 배가.. 막 아파요...” “가지가지 하세요.”TV 아래 서랍장을 열어 사혈기를 꺼냈다. 그리고 일회용 바늘을 끼우는 순간, 리아는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짓더니 이번엔 방향을 바꿔 뒤로 기어 물어났다. “뭐 하냐? 씨발, 유격훈련해?” “그거 싫어요...” “손 따.” “아저씨가 따면.. 손가락에 구멍 날 것 같단 말이에요...” “아직 덜 아프구만. 어?”도망은 의미가 없었다. 애초
아... 로팡.. 총알배송이 가능한 그 어플 말이지? 그래. 거기까지 로그인을 해줘야 마음껏 쇼핑이 가능하구나. 근데 난.. 왜 이 기지배 요청을 하나하나 다 들어주고 있는 거야?“근데요.. 얼마까지 써도 돼요? 3만 원 넘어가도 돼요?” “애기야. 얼마를 긁으면 혼날 것 같은데?” “5.. 5만 원...?” “5만 원이고 50만 원이고. 필요한 거 있으면 사시라고요.” “진짜요?” “거참 말 많네.”강리아는 맹했고, 도세준은 물렁했다. 아니, 한 번도 물렁했던 적이 없었는데 강리아 앞에서만 자꾸만 물렁해졌다. 사는
“아저씨!” “따라와.”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모님은 이미 퇴근을 하셨다. 한가득 든 종이백을 들고 침실로 향하자, 리아가 조심스레 뒤따랐다.“이게 다 뭐예요?" “너. 정신이 있어, 없어.” “네..? 뭐가요...?”리아는 정말 몰랐다. 아저씨가 이렇게 화가 난 이유를.“이모님이 네 친구야? 언제 봤다고 헤벌쭉 붙어서 히히덕거려.” “버릇없게 안 굴었어요.. 일도 도와드렸고...”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거 하랬지.” “할 게 딱히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근데요....”또 나왔다
삼십 분쯤 달려 도착한 건물엔 ‘SJ 홀딩스’라 적힌 아크릴 간판이 세련되게 걸려 있었다. 아무리 킬러지만, 그 단어는 명함에 적을 수 없으니까. 명목상 투자회사를 운영하며 자본을 키우고, 동시에 VIP들의 약점을 수집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물론 의뢰가 들어오면 직원들이 움직인다. 강리아 일은 특별 케이스였고.생각보다 의뢰인이 많다는 것, 그건 스물두 살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도 놀라울 따름이다.뒷문이 열리자, 핸드폰을 확인하던 기철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마스터.” “왜.” “그게.. 여자 속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