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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8화. 보호자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8 10:05:42

금요일 오후, 봄이의 담임은 작은 봉투 하나를 서연에게 건넸다.

“다음 주 수요일에 가까운 숲으로 산책을 가요. 동의서와 전에 쓰시던 비상 연락 카드를 넣었어요. 바뀐 연락처 확인해서 월요일까지 보내 주세요.”

서연은 봉투를 가방에 넣으려다 멈췄다.

“제가 이모라서요. 아빠에게 그대로 전할게요.”

“네. 보호자분이 작성해 주시면 돼요.”

“이모도 보호자야.”

봄이가 끼어들었다. 선생님은 비상 연락 카드에 이모 번호도 적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아빠가 확인해서 보내 달라는 말에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이터를 지날 때 아이가 다시 물었다.

“보호자가 뭐야?”

“봄이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챙겨 주는 어른.”

“그럼 이모도 보호자네?”

서연은 걸음을 늦췄다. 아이 손이 장갑 안에서 꼼지락거렸다.

“그럼. 오늘 봄이를 데리러 오기로 했잖아. 추운데 혼자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아빠는?”

“아빠는 봄이랑 같이 살면서 매일 챙겨 주잖아.”

“엄마는?”

찬 바람이 모자 아래로 파고들었다. 서연은 봄이의 귀를 덮어 주었다.

“엄마도 그랬지.”

봄이는 잠시 바닥의 보도블록만 밟아 걸었다. 검은 칸은 건너뛰고 회색 칸에만 발을 놓았다. 서연도 아이 속도에 맞췄다. 보호자라는 말이 수요일 밤의 문 닫힌 작은방과 겹쳐, 그녀는 장갑 안에서 아이 손을 더 정확히 쥐었다. 정확히 쥘수록 밤에 한 일이 보호와 멀어졌다.

집에 돌아오자 봄이는 물병 이름표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봤다. 서연은 동의서 봉투를 냉장고 위에 두었다. 자기 이름은 직접 쓰겠다며 연필을 가져온 아이에게는 연습할 종이를 내줬다.

아이가 강봄을 세 번 쓰는 동안 서연은 사과를 깎았다.

태주는 오늘은 7시 10분쯤 들어오겠다고 미리 문자를 보냈다. 서연은 주간표의 저녁 칸에 그 시간을 적었다. 8시부터 할 일은 예정대로 할 수 있겠다는 걸 확인하고 봄이와 먼저 밥을 먹었다.

7시가 조금 넘어 현관문이 열렸다. 태주는 작업복 위에 검은 점퍼를 걸친 채였다. 봄이가 봉투를 들고 달려가자 그는 신발도 벗기 전에 받아 읽었다.

“숲 간대.”

“그래? 언제?”

“수요일. 내가 이름 쓸 거야.”

“손부터 씻고 같이 쓰자.”

태주는 아이를 먼저 욕실로 보냈다. 서연은 식탁에 저녁을 덜어 놓고 봉투를 펼쳤다. 산책 시간과 준비물, 비가 올 경우의 일정이 적혀 있었다. 맨 아래에는 보호자 확인란이 있었다.

태주가 밥을 먹는 동안 봄이는 옆에서 연필을 들고 기다렸다. 그는 국을 반쯤 먹고 서류를 읽었다.

“아빠가 확인란 쓰고, 봄이는 이름 옆에 써 볼래?”

“응.”

태주가 아이 이름을 먼저 또박또박 적었다. 봄이는 그 옆 빈칸에 작은 글씨를 따라 썼다. 강 자가 이번에도 비뚤어졌지만, 태주는 고치지 않았다.

비상 연락 카드에는 순서가 있었다. 태주가 자기 번호를 첫 번째 칸에 적고 두 번째 칸에서 펜을 멈췄다.

“엄마 번호가 아직 여기 등록돼 있네.”

서연은 카드 위에 적힌 숫자를 보지 않으려고 반찬 접시를 당겼다. 태주는 선을 그어 지우지 못하고 한동안 펜만 들고 있었다.

봄이가 자기 의자를 밀어 그 옆으로 붙였다.

“엄마 전화 없어.”

“응.”

태주가 짧게 대답했다.

봄이가 카드 끝을 잡았다.

“그런데 번호도 지워?”

“선생님이 전화할 수 있는 번호를 써야 해서.”

“엄마 거는 뒤에 쓰면 안 돼?”

태주는 카드를 뒤집었다. 뒷면에 서희의 번호를 적고 아이에게 보여 줬다. 봄이가 마지막 숫자를 짚은 뒤에야 카드를 다시 돌려놓았다.

지우개를 가져와 연필로 적힌 번호를 천천히 지웠다. 종이가 얇아져 글씨 자국은 남았다.

서연이 그 옆에서 허리를 숙여 가루를 보았다. 숙인 허리가 태주의 팔에 닿았다. 서류 때문에 붙은 거리였다. 수요일 밤 이후라 둘의 호흡이 먼저 변했다. 봄이는 지워진 자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느라 그 호흡을 듣지 못했다.

“두 번째는 할머니로 할까?”

“이모.”

봄이가 바로 말했다. 태주는 서연을 봤다.

“네 번호 적어도 돼?”

“당분간은요. 어머니 번호도 그다음에 적고요.”

태주가 서연에게 번호를 다시 불러 달라고 했다. 서연은 앞자리에서 잠깐 말을 멈췄다. 지우개 가루 사이로 언니 번호의 마지막 숫자가 남아 있었다.

“잠깐만요.”

그녀는 휴지로 가루를 걷어 냈다. 태주가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써도 돼?”

“네. 관계 칸에는 이모라고 써 주세요.”

태주는 그 두 글자를 먼저 쓴 다음 서연이 불러 주는 번호를 옮겼다. 세 번째 칸에는 명자의 번호가 들어갔다.

“이건 유치원에서 급할 때 전화하는 순서야.”

태주가 봄이에게 말했다.

“아빠가 못 받으면 이모, 이모가 못 받으면 할머니.”

“셋 다 못 받으면?”

“그러지 않게 아빠가 전화 잘 볼게.”

서연은 자기 차례에도 전화를 놓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회사 고객 전화를 받는 중에는 바로 받지 못할 수 있다고 태주에게 따로 말했다.

“그때는 문자 남기라고 선생님께 말할게.”

“형부도 현장에서 못 받을 때 있잖아요. 서로 확인하면 돼요.”

태주는 카드 여백에 문자 연락도 부탁한다는 메모를 남겼다.

8시가 되자 서연은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일을 마치고 나왔을 때 태주는 작성한 동의서를 냉장고에 잠깐 붙여 두고 봄이의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봄이는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손에는 이름 연습한 종이가 구겨져 있었다.

서연은 아이 손에서 종이를 빼 탁자에 폈다. 태주가 봄이를 안아 방으로 옮겼다. 아이 머리가 그의 어깨에 기울었다.

방을 나오고 문을 거의 닫았을 때 태주가 서연의 손목을 붙잡았다. 붙잡은 손에 아직 지우개 가루가 조금 남아 있었다.

“작은방.”

서연은 주간표가 붙은 냉장고를 한 번 보고 따라갔다. 작은방 문을 닫고, 이번에는 잠금장치까지 내렸다. 아이가 잠든 뒤의 일이었다.

태주가 서연을 접이식 책상 앞 의자에 앉혔다. 무릎을 꺾었다. 작업복 바지의 무릎이 요 커버에 닿았다.

“보호자 칸에 이모라고 쓴 입으로 이러면 안 돼요.”

서연이 낮게 말했다.

태주는 그 입을 막지 않았다. 치마를 걷고 속옷을 내렸다. 혀가 먼저 닿았다. 서연은 그의 머리를 밀쳐야 하는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소리 때문에였다. 막은 손 사이로 숨이 새었다.

혀가 안쪽을 올리자 서연의 발뒤꿈치가 바닥에서 떴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태주가 허리를 붙잡아 의자를 멈췄다. 멈추는 힘과 벌리는 힘이 같은 손에 있었다.

“형부, 거기…….”

말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서연의 허벅지가 그의 귀를 조였다. 태주는 조임을 풀라고 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가 혀 옆을 도와 들어갔다. 수요일 밤보다 각도가 달랐다. 보는 얼굴이 아래에 있었다.

절정이 오자 서연은 막았던 손을 더 세게 입 위에 올렸다. 손이 부족해 다른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집었다. 수납함 뚜껑이 살짝 흔들렸다. 투명한 상자 안에 수건이 보였다.

태주가 입을 떼고 허벅지 바깥을 손등으로 닦았다. 지우는 손길이 아니었다. 수요일과 같은 손길이었다.

서연은 속옷을 올리다가 그의 벨트 안으로 손을 넣었다. 넣자마자 너무 뜨거워 멈췄다. 태주가 그 손목을 잡고 빼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형부는요.”

“너는 보호자 칸에 들어갔어. 그 다음까지 한 밤에 하지 말자.”

잔인한 선이었다. 그러나 그 선이 이 집을 조금 더 집처럼 보이게 했다. 서연은 손을 거두고 치마를 내렸다.

냉장고의 주간표 옆에 비상 연락 순서를 작은 메모로 적었다. 아빠, 이모, 할머니. 그 위에는 보호자 확인란을 태주가 쓴 동의서가 잠깐 붙어 있었다.

그녀는 동의서를 떼어 봄이의 가방 안쪽 지퍼에 넣었다. 태주가 아이 방에서 나와 그 가방을 받았다.

“고마워. 내일 안 잊게 앞에 둘게.”

“월요일에 내는 거예요.”

“아, 그렇지.”

그는 가방을 내려놓고 제 이마를 문질렀다. 서연은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눌렀다.

“웃어?”

“내일 아침에 유치원 문 앞까지 가실까 봐요.”

“그 정도는 아니야.”

“정말요?”

“아까까지는 자신 있었는데.”

서연은 결국 웃었다. 태주도 따라 웃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서연은 그의 눈가에 남은 웃음을 조금 더 보았다. 돌아서도 될 때를 놓친 것처럼, 둘 다 식탁 옆에 서 있었다.

“형부도 그렇게 웃을 줄 아네요.”

말하고 나서야 그를 얼마나 오래 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태주는 웃음을 다 거두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너도 지금 웃잖아.”

서연은 입술을 다물었지만 웃음이 남았다. 태주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먼저 눈을 피하고 싶지 않아 서연도 그대로 바라봤다.

“먼저 잘게요.”

서연이 고개를 돌렸다. 냉장고 메모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빠, 이모, 할머니. 오늘 그가 자기 번호를 다시 묻던 목소리까지 떠올랐다.

“그래. 잘 자.”

태주가 가방을 걸고 부부방으로 들어간 뒤, 서연은 메모 앞에 조금 더 서 있었다. 언니 번호가 지워질 때는 그 칸을 똑바로 보지도 못했다. 조금 전에는 그의 웃음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서연은 펜을 들어 이모라는 두 글자 아래에 선을 그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 위로 한 번 더 그었다.

밑줄을 긋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방금 그 손가락이 그의 벨트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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