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일요일에는 이불을 빨기로 했다.
서연이 작은방 요의 커버를 벗기자 봄이가 베갯잇을 들고 따라왔다. 자기 것도 같이 빨겠다는 말에 태주가 세탁기 앞에서 색을 나눴다. 요 커버를 뒤집는 동안 서연은 수요일 밤의 주름이 남아 있는지 봤다. 세탁망 안으로 밀어 넣자 그 주름은 보이지 않았다.
“이건 흰 것끼리. 분홍 이불은 다음.”
“왜 같이 안 해?”
“분홍 물 들면 이모 베개도 분홍색 돼.”
봄이는 잠깐 고민하더니 그건 예쁠 것 같다고 했다. 서연은 웃으며 자기 베갯잇을 흰 빨래 더미에 넣었다.
욕실 아래칸에서 개인 세제를 꺼내려는데 언니가 쓰던 섬유유연제 병이 흔들렸다. 뚜껑 둘레에 말라붙은 파란 액체가 보였다. 서연은 자기 병만 빼고 위칸 문을 닫았다.
태주는 세탁기를 돌리고 베란다 건조대를 닦았다. 서연이 창틀 먼지를 훑는 동안 봄이는 노란 집게를 전부 자기 바구니로 가져갔다.
“오늘부터 이건 내 거.”
태주가 순순히 남은 집게를 챙겼다. 서연은 그 모습에 웃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창틀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나눈 대화가 다시 생각났다. 처제라는 두 글자와, 끝나지 못한 오 분.
첫 세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거실 서랍도 정리했다. 비어 있는 색연필 통, 다 쓴 건전지, 유효기간이 지난 쿠폰이 나왔다. 태주는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직접 확인했다. 서연은 물건을 들 때마다 물었다.
“이 영수증은요?”
“버려도 돼.”
“이 충전선은?”
“가족 태블릿 거야. 남겨 줘.”
소파 아래에서 태블릿을 찾아 충전기에 꽂았다. 화면 한쪽이 금이 가 있었지만 전원은 들어왔다. 봄이는 비밀번호를 안다며 숫자를 눌렀다. 자기 생일 네 자리였다.
“내가 춤추는 거 볼래?”
태주가 먼지 묻은 손을 바지에 닦았다.
“빨래 널고 보자.”
“지금 조금만.”
아이는 동영상 목록을 열었다. 가장 위에는 작년 겨울 날짜가 적혀 있었다. 분홍 양말을 신고 거실에서 빙글도는 봄이가 썸네일에 보였다.
서연은 서랍 속 건전지를 한 봉지에 모았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화면 속 봄이가 음악도 없이 팔을 흔들었다. 촬영하던 서희가 웃으며 박자를 세었다.
“하나, 둘. 야, 봄아. 거기서 돌면 넘어져.”
“안 넘어져!”
“엄마가 어제 네 양말 신고 미끄러졌거든?”
“그건 당신이 뛰었으니까 그렇지.”
화면 밖에서 태주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서연은 옆에 있는 사람을 볼 뻔했다. 그가 아니라 영상 속 남자가 아내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집에서 뛰지 말랬잖아.”
“누가 애 자는데 귤 먹자고 불렀어?”
“귤 먹으러 오는 게 왜 뛰는 거야.”
서희가 웃자 화면이 흔들렸다. 영상 속 봄이는 춤을 멈추고 카메라 앞으로 달려왔다.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더니 영상이 끝났다.
거실이 조용해졌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만 욕실에서 일정하게 났다.
봄이가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엄마가 말했어.”
“응.”
태주는 소파 끝에 앉았다. 두 손을 무릎에 놓은 채 화면을 봤다. 두 번째 재생에서도 서희는 똑같이 웃었고, 똑같은 대목에서 태주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아빠, 엄마 웃는 데만 또 해 줘.”
태주가 재생 막대를 조금 뒤로 밀었다. 웃음이 같은 자리에서 끊겼다. 봄이가 그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한 번만 더.”
태주는 재생 버튼을 다시 눌렀다.
서연은 영상 속 언니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 손과 웃음소리만 남았다. 그게 더 언니 같았다. 사진을 찍을 때도 자기는 늘 프레임 밖에 서고, 나중에 왜 자기 사진이 없느냐고 투덜거렸다.
영상이 끝난 뒤 봄이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다음 것도 봐.”
이번에는 식탁 앞이었다. 봄이가 작은 케이크의 초를 끄고, 태주가 뒤에서 박수를 쳤다. 서희가 촬영하다가 카메라를 옆 사람에게 넘겼다. 잠시 뒤 언니가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를 대충 묶고 집에서 입는 회색 티셔츠 차림이었다. 봄이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손가락으로 닦아 자기가 먹었다. 태주가 옆에서 휴지를 내밀자 서희가 말했다.
“진작 주지.”
“당신이 먹을 줄 몰랐지.”
“아까워서 그래.”
영상 속 태주가 웃었다. 휴지를 건네는 손이 아내의 손을 잠깐 감쌌다. 서희는 익숙하게 휴지만 빼 가 크림 묻은 입가를 닦았다.
서연의 손에서 건전지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굴러간 건전지가 소파 다리에 부딪쳤다. 영상 속 박수 소리가 멎었다.
봄이가 고개를 들었다.
“이모 울어?”
서연은 손등으로 눈 밑을 닦았다.
“응.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보고 싶어서.”
“아빠도?”
태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에는 영상이 멈춘 마지막 장면이 남아 있었다. 서희가 휴지를 접으며 태주를 보던 순간이었다.
“아빠도 보고 싶어.”
봄이는 태블릿을 가슴에 안았다. 태주는 아이 손에서 빼앗지 않았다. 대신 소파 가까이 앉아 금이 간 모서리를 손으로 감쌌다.
“여기 있는 건 없어지지 않게 해 둘게.”
“어디에?”
“아빠 컴퓨터에도 옮겨 놓을 거야.”
서연은 충전선을 밟지 않게 소파 뒤로 정리했다. 태주는 동영상 파일을 옮기는 동안 하나씩 날짜를 확인했다. 서연에게도 보내 줄지 물었지만, 그녀는 당장은 괜찮다고 했다.
“나중에 제가 골라서 받을게요.”
“응.”
세탁기 종료음이 났다. 봄이는 노란 집게 바구니를 들고 베란다로 갔다. 태주가 젖은 이불을 들어 올리고 서연이 끝을 받쳤다. 봄이는 손이 닿는 낮은 곳에 양말을 집었다.
바람이 차서 문을 오래 열어 두지 않았다. 빨래를 다 넌 뒤 태블릿은 충전선에 연결한 채 거실 탁자에 놓았다. 누구도 영상을 지우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태주는 봄이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동화책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서연은 작은방 문을 닫기 전 거실을 한 번 봤다. 검은 화면에 창문만 비쳤다.
서연은 작은방으로 들어와 마른 옷을 무릎에 놓았다. 문을 잠갔다.
어제는 처제라고 너무 빨리 말한 태주가 서운했다. 조금 전에는 그가 언니에게 웃어 주는 얼굴을 보고 손에서 건전지를 놓쳤다.
보고 싶던 언니가 웃고 있는데, 자신은 그 옆의 남자를 보고 있었다.
바지를 내리고 손가락을 넣었다. 영상 속 ‘당신’ 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손가락이 그 소리의 박자를 따라 움직였다. 안이 이미 열려 있어 쉽게 들어갔다. 수요일과 금요일과 어제의 오 분이 한꺼번에 손끝에 몰렸다.
절정 직전, 옷을 얼굴에 덮을 자리가 됐다. 덮기 전에 입이 먼저 열렸다.
“언니.”
그 말이 몸을 접었다. 허리가 앞으로 굽고, 손가락 위에서 끝이 왔다. 오고 나서야 그 호칭이 어디로 갔는지 알았다. 죽은 언니에게 한 말이 아니라, 그 언니의 남편을 몸 안에서 부르며 쓴 말이었다.
노크가 났다.
“빨래 걷자.”
서연은 손을 빼고 바지를 올렸다. 눈과 입술이 젖은 채로 문을 열었다. 태주가 그 얼굴을 봤다. 보는 데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개다 만 옷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태주가 서연을 그 위에 눕혔다. 콘돔을 찾는 손이 여행 가방 옆을 더듬었다. 수요일에 쓴 상자 자리에 아직 하나가 남아 있었다.
들어가는 순간 태주가 얼굴을 보려고 했다. 서연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
“지금 형부 얼굴 보면, 방금 영상인 줄 알 것 같아서요.”
태주가 그 말에 허리를 멈출 뻔했다. 멈추지 못하고 더 깊게 갔다. 옷더미가 밀렸다. 서연의 무릎이 그의 옆구리를 조였다. 조이면서도 가린 손은 내리지 않았다.
움직임이 빨라졌다. 서연은 가린 손 사이로 천장만 봤다. 작은방 천장은 여전히 낮았다. 낮아서 그의 숨이 더 가까웠다. 영상 속 웃음과 겹치지 않게 하려고, 그녀는 그 숨을 세었다.
끝이 오기 전 서연이 접던 옷으로 자기 얼굴을 덮었다. 덮인 천 너머로 태주의 허리가 한 번 더 떨렸다. 서연의 안이 먼저 접히고, 그가 따라왔다.
옷을 내리자 눈가가 젖어 있었다. 울음인지 끝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태주가 빠져나와 콘돔을 쌌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연의 손목만 한 번 쓸었다.
거실에서는 태블릿이 아직 검은 화면이었다. 창문이 그 유리에 비쳤다.
둘은 작은방에서 숨을 골랐다. 태주가 거의 들리지 않게 말했다.
“화면은 멈췄는데 나는 아직이야.”
서연은 그 말을 받지 못했다. 받으려면 언니 다음의 말을 해야 했다.
접던 옷으로 얼굴을 다시 덮었다. 빈소에서부터 한 번도 멎지 않았던 슬픔에, 오늘은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이 섞였다.
“언니.”
그다음 말은 하지 못했다.
봄이는 횡단보도를 건넌 뒤 이모에게 메시지를 보내고서야 다시 걸었다.태주는 아이의 화면 대신 안경점 봉투를 보고 있었다. 손잡이를 너무 오래 쥐어 손가락 마디가 붉어졌다.“내일 이모 집에 가도 돼?”“엄마한테 먼저 말해. 몇 시인데?”“두 시. 내가 지하철 탈 거야.”“역 바꿔 타는 데 알고?”“작년에도 갔잖아.”맞는 말이었다. 태주는 새 안경 때문에 어지럽지는 않은지만 물었다. 봄이는 괜찮다며 안경다리를 귀 뒤로 밀었다.“아빠는 이모 보면 아직 슬퍼?”태주가 걸음을 늦췄다. 봄이는 못 들은 척해 줄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가끔은.”“이모도 그럴까?”“그건 아빠가 대신 말할 수 없지.”“물어봐?”“아니. 아빠 대신 물을 필요 없어.”봄이는 잠깐 입술을 내밀었다. 질문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들렸을까 봐 태주가 말을 보탰다.“네가 궁금한 건 물어도 돼. 그런데 아빠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 주거나, 이모 대답을 아빠한테 가져오려고 하지는 마.”&ld
서연은 아파트 입구를 지나쳐 한 동을 더 걸었다.현관 번호를 누르려다 문 옆에 붙은 이름을 보고서야 잘못 왔다는 걸 알았다. 같은 모양의 출입문이었다. 장바구니를 고쳐 들고 돌아오는 동안 커피가 손등으로 조금 흘렀다.뜨겁지는 않았다. 뚜껑을 너무 세게 눌러 한쪽이 들려 있었다.자기 집에 들어와 고기부터 냉장고에 넣었다. 무와 대파는 식탁에 두고, 세제는 욕실로 가져갔다. 거울에 제 얼굴이 비쳤다. 조금 전 태주가 본 얼굴도 이랬을까.서연은 세제 봉지를 거꾸로 들었다가 바로 세웠다. 아직 뜯지도 않은 봉지였다.휴대전화가 울렸다.『이모, 아까 마트 앞에 있었지?』봄이였다. 뒤이어 새 안경을 쓴 사진이 왔다. 갈색 테가 아이 얼굴에 잘 어울렸다. 사진 뒤쪽에 아빠의 어깨가 걸려 있었지만 서연은 확대하지 않았다.『응. 봤어. 안경 예쁘다. 네가 골랐어?』『아빠는 잘 보이면 된대. 그게 대답이냐고.』서연은 웃음을 흘렸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아빠가 잘 모르는 거지. 다음엔 네가 비교해서 보여 줘.』『했어. 그래도 몰라. 근데 왜 안 불렀어?』입력창에 손가락이 멈췄다.사람이 많았다고 하면 됐다. 신호가 바뀌었고, 장바구니가 무거웠고, 이제 서로 가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고. 그중 마지막 이유만은 봄이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너도 아빠랑 있었잖아.』
서연이 그 집을 떠난 지 5년이 지났다.남색 가방의 손잡이는 그사이 두 번 더 꿰맸다. 이번에 단 실은 원래 것보다 조금 밝았다. 현관에서 실밥을 발견한 서연은 손톱으로 잡아당기지 않고 가위를 가져와 짧게 잘랐다.물건을 챙겨 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 토요일이었다.마트 정육 코너 앞에는 점심을 먹고 나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서연은 국거리 한 팩을 고르고 고기에 적힌 날짜를 확인했다. 작은 무와 대파도 담았다. 세제는 늘 쓰던 것이 할인 중이었다.계산을 마치고 봉투에 물건을 넣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민아가 다음 주 금요일에 밥을 먹자고 했다. 이번에는 회사 사람들과도, 가족들과도 상관없는 약속이었다.‘좋아. 내가 식당 찾을게.’‘지난번처럼 줄 서는 데 말고. 배고프면 나 성질나.’‘원래 나잖아.’곧 욕 한 글자가 답으로 왔다. 서연은 계산대 옆으로 비켜서 소리 내 웃었다. 뒷사람이 지나가자 가방을 다시 어깨에 올렸다.일은 바빴고 가끔 지겨웠다. 수진과 의견이 달라 회의가 길어지는 날도 있었고, 어머니 전화를 일부러 저녁까지 미루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을 보내고도 주말이 오면 누군가와 밥을 약속할 수 있었다.태주에게 걸지 않은 전화만으로 5년을 세지는 않았다.마트 옆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샀다. 사장에게 뚜껑을 한 번 더 눌러 달라고 부탁하고, 장바구니에서 삐져나온 대파를 안쪽으로 밀었다. 집에 도착하면 고기부터 냉장고에 넣을 생각이었다.&nbs
2034년 10월의 금요일 밤, 서연에게 봄이의 메시지가 왔다.‘이모, 엄마랑 싸웠어.’서연은 씻어 둔 물컵을 건조대에 엎다가 휴대전화를 들었다.‘왜?’‘말하기 싫어.’예전 같으면 무슨 일이냐고 거듭 물었을 것이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은 말을 받아 줄 사람으로 불린 것 같았다.‘그럼 말하고 싶을 때 해.’그 뒤로 한동안 답이 없었다. 서연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내일은 남은 국거리를 더 사야 했다. 세제도 바닥나고 있었다.밤 10시가 가까워져서야 봄이가 다시 보냈다.‘엄마가 내 사진 맘대로 할머니한테 보냈어. 나 눈 감고 나왔는데.’서연은 휴대전화를 보며 웃었다. 웃는 얼굴을 보내지는 않았다. 아이에게는 웃을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엄마한테 지워 달라고 했어?’‘그게 뭐 어떠냐고 해서 싸웠어.’서연은 답을 쓰려다가 멈췄다. 언니가 무슨 마음으로 사진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모르는 동안 커 버린 딸이 아니라, 오늘 자기가 찍은 딸의 얼굴을 부모에게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봄이가 싫다는 말을 없앨 수는 없었다.‘이모가 엄마한테 대신 말할까?’‘아니. 그냥 말한 거야.
2033년 봄, 중학교에 들어간 봄이는 처음으로 이모와의 약속을 취소했다.아프거나 학원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토요일에 같이 나가자고 했고, 봄이는 그쪽이 더 가고 싶었다.약속을 취소해도 되는지 엄마에게 먼저 물었다가 혼났다.“먼저 잡은 약속이 있잖아.”“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잖아.”“이모는 토요일을 너한테 비워 뒀을 텐데.”“엄마가 이모도 아니면서 왜 먼저 안 된대.”서희는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딸의 말투는 얄미웠지만 틀린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그럼 네가 직접 설명해. 엄마가 다른 핑계 대 주지는 않을 거야.”봄이는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서연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한참 걸렸다. 나중에 아프다고 하면 쉬울 것 같았지만 그러면 이모가 뭘 먹었는지, 병원은 갔는지 물을 것이었다.“이모, 토요일 있잖아.”서연은 사무실 밖으로 나왔는지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응. 뭐 준비할 거 있어?”“나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말을 꺼내 놓고 봄이는 이불 무늬만 봤다.“그래서 우리 약속을 바꾸고 싶어?”“응.”
2032년 가을, 수진이 교육실 문을 닫고 들어왔다.“팀장님, 내일 매장 사람 한 명이 못 나온대요.”서연은 새 진열 안내서에서 눈을 들었다.“언제 연락 왔어요?”“방금. 아이가 열이 난다고요.”“당장 빠지는 시간부터 확인해요. 내일 나올 수 있는 사람도 같이.”수진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대전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손님 앞에서 반품 기준을 잘못 말할까 봐 긴장하던 직원이었다. 지금은 수도권 매장의 교육을 함께 맡고 있었다.“제가 하루 종일 서면 되긴 해요.”“내일 수진 씨 다른 일정은요.”“오후에 교육 하나요.”“그럼 두 사람 일을 다 하는 거잖아요.”서연은 비어 있는 시간만 표에 표시했다. 오전 물류 작업은 본사에서 한 사람을 보낼 수 있었고, 저녁 마감은 점장이 시간을 바꾸기로 했다. 수진은 그 사이 세 시간만 지원하고 교육에 들어가기로 했다.결정한 내용을 아픈 아이를 돌보는 직원에게 보낸 뒤에도 서연은 괜찮겠느냐는 질문을 붙이지 않았다. 오늘 그 직원이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아이의 상태였다.미경이 문 앞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옛날 같으면 네가 가겠다고 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