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러니까 더 재밌잖아.”
해원이 태성의 옷깃을 잡아당기자 태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손 놔.”
해원이 돌아봤다.
“누구한테 명령해?”
“내 형이다.”
“그래서?”
“네가 건드릴 사람이 아니라고.”
태성이 헛웃음을 흘렸다.
“건드린 건 내가 아니라 해원인데.”
“형은 닥쳐.”
“왜. 겁나냐?”
태율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뭐가.”
“나한테 뺏길까 봐.”
“뺏어?”
태율이 코웃음을 쳤다.
“형이 뭘 할 수 있는데?”
태성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적어도 너처럼 입으로만 남편 행세는 안 하지.”
객주 안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돌쇠가 태경의 옆구리를 찔렀다.
“형제끼리 꼴값 제대로 떠네.”
태율이 확 돌아섰다.
“뭐라고 했어, 상놈 새끼야?”
돌쇠도 벌떡 일어났다.
“상놈 귀에도 개소리는 개소리로 들린다고 했다.”
“죽고 싶냐?”
“둘 다 그만.”
해원이 술잔을 탁 내려놓았다.
그런데 태성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태율아.”
“왜.”
“솔직히 말해.”
태성이 태율을 위아래로 훑었다.
“네가 이렇게 발광하는 이유, 해원이가 나한테 가면 비교당할까 봐 그러는 거 아니냐?”
방 안이 조용해졌다가 순식간에 폭소로 터졌다.
태율의 얼굴이 벌게졌다.
“형, 미쳤어?”
“왜. 틀렸어?”
“형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태성이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적어도 네 것보단 낫겠지.”
“개소리.”
“확인해 봤어?”
“누가 형 것을 확인해, 미친놈아!”
“그러니까 모르는 거잖아.”
해원이 이마를 짚었다.
“진짜 별 꼴을 다 보겠네.”
그런데 옆에서 진필이 끼어들었다.
“잠깐만.”
모두가 그를 봤다.
“이건 좀 궁금한데.”
“뭐가?”
“둘이 저렇게 자신만만한데 진짜 누가 더 나은지.”
해원이 진필을 노려봤다.
“너까지 지랄하지 마.”
진필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늦었다.
태경이 술잔을 들고 웃었다.
“내기할까?”
무진도 피식 웃었다.
“미쳤냐?”
“이미 여기 다 미쳤는데 뭘.”
태율이 이를 갈았다.
“이 천한 새끼들이.”
태성이 오히려 태율의 어깨를 툭 쳤다.
“왜 화내. 자신 있으면 보여주면 되잖아.”
“형!”
해원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하, 미친 새끼들.”
태율이 해원을 봤다.
“넌 왜 웃어?”
“안 웃게 생겼어?”
해원은 태율과 태성을 번갈아 봤다.
“둘이 나 하나 두고 네 것이 낫니 내 것이 낫니 싸우는 꼴이 꼭 장터 수탉 두 마리 같아서.”
태성이 말했다.
“그럼 마님이 판정하면 되겠네.”
태율이 버럭 소리쳤다.
“형, 닥쳐!”
“왜? 해원이는 이미 사내 여럿 만났잖아. 보는 눈은 있겠지.”
해원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강태성.”
“왜.”
“내가 사내를 몇 만났든 그걸 네 입으로 점수 매기지 마.”
태성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해원은 다시 태율을 봤다.
“그리고 너.”
“…….”
“내 것이라는 소리도 하지 마.”
“난 그런 말 안 했어.”
“얼굴에 써 있어.”
해원이 태율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내 마누라다. 내 형이 건드리면 안 된다.’”
태율이 이를 악물었다.
“틀렸나?”
해원의 표정이 굳었다.
“완전히.”
“혼서에는 내 이름이 들어갔다.”
“그래서 내가 네 물건이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럼 무슨 뜻인데?”
태율이 대답하지 못했다.
태성이 비웃었다.
“얘는 어릴 때부터 이랬어. 갖고 싶은 건 무조건 자기 거래.”
“형은 입 닥쳐.”
“장난감도.”
“닥치라고.”
“말도.”
“강태성!”
태성이 해원을 보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여자도.”
태율이 태성의 멱살을 잡았다.
“한 번만 더 지껄여.”
태성도 태율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왜. 네 것이 크다는 소리라도 해줄까?”
“이 미친 새끼가!”
주먹이 날아갔다.
쾅!
태성이 탁자 위로 넘어졌다.
술병이 깨졌다.
태성도 바로 달려들었다.
“개자식아!”
두 형제가 바닥을 뒹굴었다.
진필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왼쪽! 왼쪽 막아!”
돌쇠가 황당하게 바라봤다.
“지금 응원하는 거냐?”
“재밌잖아!”
허담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그 순간 해원이 술병을 집어 바닥에 내리쳤다.
쨍!
모두 멈췄다.
“둘 다 일어나.”
태율과 태성이 씩씩거리며 일어났다.
해원은 두 사람 앞에 섰다.
“그렇게 네 것이 낫니 내 것이 낫니 궁금하면.”
두 형제의 눈이 해원에게 꽂혔다.
해원이 비웃듯 웃었다.
“서로 비교해. 난 관심 없으니까.”
객주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
태율이 얼굴을 붉혔다.
“윤해원!”
“왜.”
“그럼 오늘 누구랑 갈 건데?”
해원이 주변을 천천히 훑었다.
태성도 아니었다.
태율도 아니었다.
돌쇠도, 허담도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이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사내에게 멈췄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해원이 턱짓했다.
“너.”
사내가 자신을 가리켰다.
“저요?”
“혼인했어?”
“안 했습니다.”
“나 알아?”
“소문은 들었습니다.”
“겁나?”
사내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조금.”
해원이 웃었다.
“마음에 드네.”
태율이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잠깐만!”
태성도 벌떡 일어났다.
“해원, 나를 고른 거 아니었어?”
“마음 바뀌었어.”
“왜!”
해원이 두 형제를 번갈아 바라봤다.
“둘 다 시끄러워서.”
그러고는 낯선 사내의 손을 잡았다.
“이름.”
“서도겸입니다.”
“도겸아.”
“예.”
“가자.”
태율이 앞을 막았다.
“못 가.”
해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비켜.”
“싫어.”
태성도 옆에 섰다.
“나도 싫은데.”
해원이 두 형제를 보다가 웃었다.
“좋아.”
“뭐가?”
해원은 도겸의 팔짱을 끼었다.
“둘이 그렇게 내 것 네 것 따질 거면 오늘 밤 문밖에서 밤새 싸워.”
그리고 일부러 또렷하게 덧붙였다.
“나는 안에서 다른 놈이랑 있을 테니까.”
태율과 태성의 얼굴이 동시에 썩었다.
도겸이 해원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마님.”
“왜.”
“저 두 분, 진짜 문밖에서 밤새 싸울 것 같은데요.”
해원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웃었다.
“그러라고 해.”
그런데 객주 계단을 오르던 순간 아래에서 태율의 고함이 터졌다.
“형 것이 크긴 개뿔! 어릴 때 목욕할 때 내가 다 봤거든!”
태성이 바로 악을 썼다.
“야, 이 개새끼야! 그때 내가 열두 살이었다!”
해원은 계단 난간을 붙잡고 결국 배를 움켜쥐었다.
“미친놈들.”
도겸도 웃었다.
그때 태성이 아래에서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윤해원! 저놈보다 내가 훨씬 낫다!”
태율이 질세라 소리쳤다.
“개소리 마! 해원아, 나부터 확인해!”
해원의 웃음이 뚝 멎었다.
그녀가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두 형제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해원이 도겸의 손을 놓았다.
“그럼 내일 밤.”
태율과 태성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둘 중 하나를 내가 직접 고를게.”
“누구?”
해원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오늘 밤 도겸이랑 있어보고.”
그녀가 두 형제를 위아래로 훑었다.
“기준부터 좀 높여놓은 다음에.”
“네 첫 번째 남편이었다.”해원은 문서를 내려다봤다.그리고 천천히 웃었다.“또 거짓말이네.”아버지가 눈을 들었다.“해원아.”“아니.”해원이 문서를 찢었다.“이번엔 안 속아.”종이가 두 동강 났다.“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면 전부 진실이 되는 줄 알아?”왕이 굳었다.허담이 찢긴 문서를 살펴보다가 말했다.“맞아.”모두가 그를 바라봤다.“이 문서, 필체가 가짜야.”왕의 표정이 굳었다.허담이 종이를 들어 올렸다.“왕실 인장도 위조됐어.”해원이 왕을 바라봤다.“마지막까지 이것까지 준비했습니까?”왕은 침묵했다.그때 해원의 아버지가 힘겹게 말했다.“태문은 네 오빠도, 네 남편도 아니다.”해원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럼?”“네 어머니가 죽기 전에 데려온 아이였다.”태문이 굳었다.“뭐?”“왕실에서 버려진 아이였어.”아버지가 숨을 몰아쉬었다.“네 어머니는 태문을 친아들처럼 키웠다.”해원이 눈을 감았다.“그래서 모두가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거구나.”태문이 고개를 숙였다.“나도 몰랐어.”해원은 그를 바라봤다.“당신도 피해자였네.”태문이 눈물을 흘렸다.“미안하다.”“사과하지 마.”해원이 고개를 저었다.“당신도 속았잖아.”그 순간 왕이 무릎을 꿇었다.모두가 놀랐다.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내가 했다.”해원이 그를 바라봤다.“무엇을요?”“기록을 조작했다.”왕의 목소리가 떨렸다.“네 아버지를 반역자로 만들었고, 네 존재를 지웠다.”“왜?”“네가 왕위를 잇는 순간 내가 모든 것을 잃으니까.”해원은 한참 그를 바라봤다.“그래서 내 아들까지 이용했습니까?”왕은 고개를 숙였다.“그래.”“내 기억까지?”“그래.”해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하지만 이번에는 울면서도 웃었다.“끝났네요.”왕이 고개를 들었다.“뭐가?”“당신들이 내 인생을 대신 결정하는 거.”해원이 아이를 품에 안았다.서하가 작은 손으로 해원의 목을 감쌌다.“엄마.”“응.”“우리 집 가?”
“죽었다던 해원의 친아버지였다.”해원은 문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아버지?”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해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서하야.”아이가 해원을 바라봤다.“엄마.”그 한마디에 해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그녀는 아이에게 달려갔다.“서하야!”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남자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해원은 아이의 얼굴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다친 데 없어?”“응.”“무서웠어?”“아니.”“누가 데리고 있었어?”아이가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켰다.“할아버지.”해원의 몸이 굳었다.천천히 남자를 바라봤다.“정말…… 내 아버지예요?”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왕이 벌떡 일어났다.“그럴 리가 없다.”남자가 왕을 바라봤다.“당신이 죽였다고 했지.”왕의 얼굴이 굳었다.“네가 어떻게…….”“십오 년 동안 숨어 있었다.”해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왜 나한테 나타나지 않았어요?”“네가 나를 찾으면 네가 죽으니까.”“그럼 왜 이제 나타났어요?”남자가 서하를 바라봤다.“이제는 숨길 이유가 없어졌으니까.”해원이 왕을 돌아봤다.“당신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다고 했잖아요.”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버지가 차갑게 웃었다.“저 사람은 나를 죽이지 못했다.”“그럼 누가 죽었다고 속였어요?”“최씨.”최씨 부인의 얼굴이 굳었다.“제가 아니라…….”“당신이 내 시체를 만들었지.”최씨는 입을 다물었다.해원의 눈빛이 서늘해졌다.“왜?”최씨가 울먹였다.“네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네가 왕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그래서 죽은 척하게 만들었다?”“그래.”“그런데 내 아이는?”최씨가 고개를 숙였다.“그 아이까지 이용하면 네가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해원이 이를 악물었다.“당신은 나를 사랑한 게 아니야.”최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알아.”“나를 키운 것도.”“…….”“내 아이를 빼앗은 것
“네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 내가 죽였다.”해원은 왕을 바라봤다.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천천히 웃었다.“그래서?”왕의 표정이 굳었다.“뭐?”“이제 또 누구를 바꿀 겁니까?”해원이 장부를 들어 올렸다.“아버지도 가짜. 어머니도 가짜. 아이도 가짜. 남편도 가짜.”그녀가 장부를 왕의 발밑에 던졌다.“도대체 언제까지 사람 인생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 거예요?”왕이 낮게 말했다.“네 아버지는 반역자였다.”“그래서 죽였어요?”“그가 왕실을 배신했다.”“그래서 딸인 나까지 없애려고 했습니까?”왕이 입을 다물었다.해원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아니면 나를 살려둔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까?”왕은 대답하지 않았다.해원이 한 걸음 다가갔다.“말해.”왕이 결국 입을 열었다.“네 아버지는 네가 태어난 날 왕실의 비밀을 훔쳤다.”“무슨 비밀?”“왕위 계승 문서.”해원이 굳었다.왕이 말했다.“그 문서에는 네 이름이 있었다.”“왜?”“네가 적통이었다.”대전 안의 사람들이 술렁였다.해원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럼 지금까지 왕실이 찾은 건 내 아들이 아니었네.”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였어.”“그래.”“내 아들을 이용해서 나를 끌어내려고 했던 거야?”왕이 침묵했다.해원이 웃었다.“참 더럽게도 꼬아놨네.”그때 허담이 장부를 펼쳤다.“잠깐.”모두가 그를 바라봤다.허담이 마지막 장을 가리켰다.“이 기록 날짜가 이상합니다.”해원이 다가갔다.“뭐가?”“아이 교환 기록이 네가 기억을 잃은 날보다 사흘 전입니다.”현수가 굳었다.해원이 그를 바라봤다.“그럼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 이미 아이를 바꿨다는 거야?”현수는 고개를 숙였다.“그래.”“왜?”현수가 대답했다.“네가 직접 시켰어.”해원이 그를 노려봤다.“또 그 말.”“이번엔 진짜야.”현수가 품에서 낡은 편지를 꺼냈다.“네가 내게 남긴 거야.”해원이 편지를 펼쳤다.자신의 글씨였다.‘현수에게.내 아이를 살리고 싶다
“내 아들을 데려가려면 먼저 나부터 죽여야 할 거라고.”해원의 말이 끝나자 군사들이 칼을 뽑았다.“마지막 경고다.”해원은 아이를 태문에게 넘겼다.“서하를 맡아.”태문이 놀랐다.“해원아.”“내가 돌아올 때까지.”“혼자 가려고?”“아니.”해원이 뒤를 돌아봤다.현수와 현우, 허담, 태율이 서 있었다.“다 같이.”강헌이 칼자루를 잡았다.“나도 간다.”해원이 고개를 저었다.“넌 여기 있어.”“왜?”“누군가는 서하를 지켜야 하니까.”강헌은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해원은 군사들을 향해 걸어갔다.“길 안내해.”왕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아무도 해원을 막지 않았다.오히려 모든 사람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허담이 낮게 말했다.“이상한데.”해원도 느끼고 있었다.“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왕실 대전의 문이 열렸다.그 안에는 왕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왕의 옆에는 최씨 부인이 있었다.해원의 눈이 굳었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최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왕이 말했다.“윤해원.”해원이 앞으로 나섰다.“왜 부르셨습니까.”“네 아들을 데려와라.”“싫습니다.”“그 아이는 왕실의 혈통이다.”해원이 웃었다.“증명부터 하시죠.”왕의 표정이 굳었다.그때 해린이 앞으로 나왔다.“제가 증명하겠습니다.”해원이 그녀를 돌아봤다.해린은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저는 왕실이 만든 가짜 후계자였습니다.”왕이 얼굴을 굳혔다.“해린.”“하지만 진짜 기록은 따로 있습니다.”해린이 품에서 장부를 꺼냈다.“왕실은 십 년 전 아이를 바꿨습니다.”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장부를 내놓아라.”해린은 웃었다.“싫습니다.”“감히!”“왜요?”해린이 장부를 펼쳤다.“여기 왕실이 숨긴 모든 이름이 적혀 있는데.”왕의 얼굴이 굳었다.해원이 장부를 빼앗았다.첫 장.아이의 출생 기록.둘째 장.아이 교환 기록.그리고 마지막 장.해원의 손이 멈췄다.“이건…….”
“강현수는 네 아이를 숨긴 게 아니야. 나를 숨긴 거야.”문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해원은 손을 멈췄다.현수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해원아. 문 열지 마.”해원이 천천히 돌아봤다.“왜?”“저 안에 있는 사람은 위험해.”“그래서 십 년 동안 숨겼어?”“…….”“이번에는 내가 결정해.”해원은 자물쇠를 잡았다.현수가 다급하게 다가왔다.“안 돼!”쾅!해원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비켜.”“해원아!”“내 아이가 저 안에 있다면 내가 들어가.”현수가 다시 막아서자 해원이 그의 뺨을 때렸다.“내 앞에서 또 내 인생 결정하지 마.”찰싹.현수는 그대로 굳었다.해원이 자물쇠를 열었다.철컥.문이 열렸다.별채 안에는 낡은 책상과 침대 하나가 있었다.그리고 침대 옆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해원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굳었다.“……강태문?”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오랜만이야.”현수가 뒤에서 숨을 삼켰다.“형.”태문이 웃었다.“그래. 네 형이다.”해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여기 있었어?”태문은 침대 옆 작은 요람을 가리켰다.그 안에서 아이가 자고 있었다.해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서하…….”태문이 말했다.“네 아들이야.”해원은 아이에게 다가갔다.작은 손을 잡았다.아이가 눈을 뜨더니 해원을 바라봤다.“엄마?”해원은 그대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그래.”목소리가 떨렸다.“엄마야.”현수가 문 앞에 서 있었다.해원이 그를 돌아봤다.“이제 설명해.”현수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태문은 왕실에서 너 대신 죽은 사람으로 처리됐어.”태문이 말했다.“그리고 나는 네 아이를 지키는 조건으로 이곳에 갇혔다.”해원이 물었다.“누가?”태문은 최씨를 바라봤다.“최씨 부인.”최씨의 얼굴이 굳었다.해원이 그녀를 노려봤다.“왜?”최씨가 울먹였다.“아이를 살리려면 방법이 없었어.”“거짓말.”해원이 차갑게 말했다.“아이를 살린 게 아니라 나를 통제하려고 했잖아.”최씨는 고개를 숙
“왕실이 아니라 네가 먼저 죽어.”해원은 해린이 든 칼을 바라봤다.“내가 왜?”해린의 손끝이 떨렸다.“그 아이 때문이야.”“아이 이름을 말하면 내가 죽는다고?”“그래.”“누가 죽이는데?”해린은 대답하지 않았다.현수가 천천히 해원 앞으로 섰다.“해린아. 칼 내려놔.”“당신이야말로 입 다물어.”“해원은 아무것도 몰라.”“그래서 지금까지 네가 마음대로 했잖아!”해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기억도 빼앗고, 아이도 빼앗고, 이름까지 빼앗았잖아!”해원이 그녀를 바라봤다.“해린.”“왜!”“내 아이 이름.”해린의 얼굴이 굳었다.“말해.”“안 돼.”“내가 죽더라도 알아야겠어.”“안 된다고!”해린이 소리쳤다.그 순간 현수가 해원의 손을 잡았다.“그만하자.”해원이 손을 뿌리쳤다.“너도 알고 있지?”“…….”“내 아이 이름.”현수는 침묵했다.해원이 차갑게 웃었다.“역시 알고 있었네.”“해원아.”“이번에는 나한테 선택권 줘.”현수가 눈을 들었다.“뭘?”“내가 누구를 믿을지.”해원의 시선이 현수에서 해린으로 옮겨갔다.“너희 둘 다 내 인생을 망쳤어.”두 사람의 얼굴이 굳었다.“그러니까 이제 내가 결정할 거야.”해원이 해린에게 다가갔다.“칼 내려.”“가까이 오지 마.”“내가 무서워?”“아니.”“그럼 내려.”해린의 손이 조금씩 내려갔다.그 순간 뒤에서 최씨 부인이 말했다.“해원아, 그 아이 이름은 윤서하야.”모두가 얼어붙었다.해원이 천천히 돌아봤다.“……뭐?”최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네 아이 이름.”현수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해린은 칼을 떨어뜨렸다.쨍그랑.“안 돼…….”해원이 최씨에게 다가갔다.“서하?”“그래.”“살아 있어?”최씨가 고개를 끄덕였다.“살아 있어.”해원의 입술이 떨렸다.“어디 있어?”최씨는 대답하지 못했다.해원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어디 있냐고!”최씨가 눈을 감았다.“네가 가장 믿었던 곳.”“어디?”“네가 매일 지나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