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강민우가 오 대리를 접촉했을 때부터, 사모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오 대리는 사모님의 최측근입니다. 아마도 사모님께서 일부러…… ‘가짜 정보’ 내지는 ‘치명적인 덫’이 숨겨진 디자인을 강민우 측에 넘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진의 굳어있던 표정이 서서히 풀리며, 입가에 실소가 번졌다. “하. 그렇지. 한채원이 순순히 당할 리가 없지.” “현재 한유라 측은 그 디자인이 완벽한 원본인 줄 알고, 당장 내일모레 열릴 런칭 발표회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해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마우스에 손을 얹고, 진짜 런칭 발표회에 올릴 ‘진짜 디자인’ 파일의 암호를 해제했다. 전쟁의 서막이었다. 밤 10시. 한성 어패럴 본사 지하 3층 주차장. 인적이 끊긴 어두운 구석. 강민우의 벤츠 조수석 문이 열리고 오 대리가 황급히 올라탔다. “가, 가져왔습니다. 실장님.” 오 대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은색 USB를 내밀었다. 민우가 신경질적으로 낚아채며 실내등을 켰다. “안 걸렸지? 한채원 그 독사가 눈치는 못 챘고?” “네, 넵! 오늘 팀장님이 외부 미팅 가신 틈을 타서 금고 열고 복사했습니다.
제42화. 썩은 미끼를 문 쥐새끼들(2) 같은 시각. 한성 어패럴 본사, 수석 디자이너실. 블라인드가 굳게 쳐진 어두운 사무실 안. 채원은 모니터의 푸른 불빛만을 의지한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서늘하고 창백한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소름 끼치도록 차갑고 고요할 뿐이었다.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팀장님. 저 오 대리입니다.” “들어와.” 채원의 건조한 목소리에 오 대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
제41화. 썩은 미끼를 문 쥐새끼들(1) 쨍그랑-! 최고급 크리스탈 글라스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바닥에는 핏빛 레드 와인이 처참하게 흩뿌려졌다. “아악! 짜증 나! 서도진 그 미친 새끼! 지가 뭔데 거기서 튀어나와서 지랄이냐고!” 강남의 최고급 프라이빗 호텔 스위트룸. 한유라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있던 과일바구니마저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어젯밤 경매장에서 당했던 끔찍한 수모가 떠올라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1,000억. 서도진이 한채원의 어깨를 감싸 쥐고 자신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던 그 서
“서 대표님. 저를 아주 순진한 백치로 보셨나 본데, 유감입니다.” “……뭐?” “어제 1,000억이라는 거금을 스폰해주셨는데, 제가 그냥 입 싹 닦고 모른 척할 순 없지 않습니까.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확실한 리워드를 제공해야 다음번에도 지갑을 열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채원의 말에 도진의 눈썹이 험악하게 꿈틀거렸다. “방금 그 말…….” “그냥 1,000억짜리 화대(花代)를 몸으로 지불한 거라고 해두죠. 덕분에 저도 한성그룹에서 쌓인 스트레스, 아주 잘 풀었습니다. 도진 씨 스킬이 생각보다 꽤 훌륭하시더라고요.” “한
제40화. 심장을 도려내는 아침(2) 오전 9시. “으음…….” 채원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온몸의 뼈마디가 욱신거렸고, 하복부에는 뻐근한 통증이 남아있었다. 어젯밤의 미친 듯한 열기와 거친 숨소리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채원은 반사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다. “…….” 비어 있었다. 서도진의 체온은 이미 식어, 차가운 시트만이 손끝에 닿았다. 채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협탁 위에는 어제 그가 달아주었던 사파이어 브로치가 영롱한 빛을 내며 놓여 있었다. 브로치를 집어 든 채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차피 돈으로 밀린다면, 배정아가 500억이든 1,000억이든 횡령하게 놔둘 작정이었다. 유품을 일시적으로 뺏기더라도, 그 자금 흐름을 추적해 배정아를 감옥에 처넣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어머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반드시 되찾아올 테니까요.’“자,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턱시도를 입은 경매사가 단상에 오르며 화려한 경매의 막이 올랐다. 고미술품, 해외 유명 화가의 미공개작, 희귀 보석들이 차례대로 등장했고, 객석에서는 수십억에서 수백억 단위의 돈이 휴짓조각처럼 오갔다.앞줄 VIP석에 앉은 배정아와
“하아…….”도진이 빈 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였다.“도진 씨.”등 뒤에서 들려온 조그만 목소리. 도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거실 한가운데에 선 채원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시울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평소의 그 빈틈없이 차갑고 오만했던 ‘한채원’의 가면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상처받고 지친,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온전히 기대고 싶어 하는 연약한 여자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채원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도진의 앞까지 다가왔다.“고마워요.”“…….”
제24화. 선을 넘은 밤, 그리고 무너진 경계(1)적막이 내려앉은 마이바흐 뒷좌석.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서도진의 굳은 옆얼굴을 규칙적으로 비췄다. 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지만, 차창에 비친 그의 서늘한 눈동자는 줄곧 채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채원은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사파이어 브로치, ‘눈물의 여왕’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1,000억. 서도진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허공에 던져버린 미친 금액. 그 무거운 숫자가 서늘한 보석의 촉감을 타고 채원의 피부로 고스란히 전해졌다.“…….”채원은 마른침
제23화. 1,000억의 철퇴, 그리고 황제의 경고(2) “……!!”장내에 있던 수백 명의 시선이 일제히 뒤쪽으로 쏠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차가운 밤바람이 밀려들어 오며, 실내의 공기를 순식간에 영하로 얼어붙게 만들었다.어둠을 등지고 선 커다란 실루엣.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며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완벽하게 재단된 쓰리피스 수트.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서늘하고 차가운 이목구비. 그리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모든 것을 찢어 발겨버릴 듯, 시퍼렇게 타오르는 흑요석 같은 눈동자.JS그룹의 황제, 서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