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간밤의 폭풍 같았던 텐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펜트하우스의 공기는 다시 서늘하고 건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채원은 완벽하게 세팅된 블랙 수트 차림으로 1층 거실로 내려왔다.
다이닝 테이블에는 서도진이 커피를 마시며 태블릿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젯밤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 남자의 흔적은 단 1퍼센트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갑니까.”
채원이 무심하게 묻자, 도진이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오전 10시에 JS 본사에서 임원 회의가 있어. 당신은?”
“한성건설 재무팀장이었던 박 부장을 만나러 갑니다. 배정아 이사의 차명 계좌 내역을 넘겨받기로 했거든요. 그것만 손에 넣으면 500억 횡령 누명은 오늘 안으로 벗을 수 있습니다.”
그제야 도진이 고개를 들어 채원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채원의 목덜미 쪽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탁자 위로 떨어졌다. 그는 옆에 놓여 있던 작은 벨벳 케이스를 채원 쪽으로 밀었다.
“이게 뭡니까?”
“차고 가.”
케이스 안에는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빠진 블랙 메탈 소재의 스마트 워치가 들어 있었다.
“이런 액세서리는 필요 없습니다만.”
“내 파트너가 밖에서 객사하는 건 곤란하니까. 어제 한성 본가에서 사촌들을 물어뜯어 놓은 덕분에 당신을 주시하는 눈이 한둘이 아닐 거다. 최소한의 위치 추적과 긴급 구조 신호가 연동되어 있는 기기야. 빼지 말고 차.”
어젯밤의 일에 대한 미안함인지, 아니면 철저한 비즈니스적 통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채원은 군말 없이 시계를 손목에 찼다.
“다녀오겠습니다.”
채원이 펜트하우스 현관문을 나서자, 도진은 닫힌 문을 한참 동안 응시하며 식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오전 11시. 마포구 합정동의 인적 드문 재개발 구역.
철거를 앞두고 펜스가 쳐진 폐상가 골목은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웠다. 채원은 김 비서가 내준 세단을 골목 어귀에 세워두고, 박 부장이 만나자고 한 지하 당구장 입구로 걸어갔다.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하다니, 배정아의 감시가 꽤 심한 모양이군.’
채원은 스마트폰으로 박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길게 이어질 뿐,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때였다.
끼기기기기긱-!!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타이어 마찰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채원이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순간, 번호판에 진흙이 잔뜩 묻은 검은색 스타렉스 한 대가 그녀의 앞을 거칠게 가로막았다.
드르륵!
스타렉스의 뒷문이 열리며, 검은 마스크와 캡모자로 얼굴을 가린 건장한 사내 셋이 미친 듯이 튀어나왔다.
“뭐, 뭐야!”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었다.
선두에 선 사내가 채원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조용히 타라, 아가씨.”
“이거 놔!”
채원은 본능적으로 사내의 정강이를 구두 굽으로 강하게 걷어찼다.
“억!” 소리와 함께 사내의 손에 힘이 빠진 틈을 타 채원은 몸을 돌려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사이렌이 울렸다. 배정아가 보낸 놈들인가? 아니면 서태진?
하지만 10센티미터의 킬힐을 신고 건장한 사내 셋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채 열 발자국도 뛰지 못해 누군가 채원의 머리채를 뒤에서 무자비하게 휘어잡았다.
“아악!”
채원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쓸린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사내 둘이 양옆에서 채원의 팔을 꺾어 누르며 그녀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독한 년. 가만히 있으면 곱게 모셔갈 텐데.”
가장 덩치가 큰 사내가 주머니에서 시큼한 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수건을 꺼내 들었다.
클로로포름.
채원은 숨을 참으며 사내의 손을 물어뜯으려 발악했다.
“이거 놔!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 날 건드리고 무사할 줄 알아?!”
“어, 무사해. 네년 스폰서가 아무리 빵빵해도 이건 못 막아.”
사내가 비릿하게 웃으며 채원의 입과 코를 수건으로 틀어막았다.
독한 화학 약품 냄새가 폐부로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시야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채원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부여잡았다. 서도진이 준 스마트 워치의 측면 버튼. SOS 구조 신호를 보내는 버튼이었다.
‘딸깍-’
버튼이 눌리는 미세한 감각과 함께, 채원의 시야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야. 물 뿌려.”
철썩!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얼굴에 쏟아지는 감각에, 채원은 날카로운 숨을 들이마시며 번쩍 눈을 떴다.
“켁, 콜록! 하아…….”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들러붙어 시야를 가렸다.
코끝을 찌르는 짙은 곰팡이 냄새와 녹슨 철근의 비린내. 주변을 둘러보자 칠이 벗겨진 콘크리트 벽과 낡은 기계들이 보였다. 폐공장이었다.
채원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녹슨 철제 의자에 앉혀진 채, 두 손은 등 뒤로 꺾여 두꺼운 케이블 타이로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다. 발목 역시 의자 다리에 묶여 있었다.
손목의 살을 파고드는 케이블 타이의 고통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남자들이 풍기는 역겨운 분위기였다.
마스크를 벗은 그들은 하나같이 싸구려 문신을 두른 전형적인 삼류 양아치들이었다.
“일어났냐, 공주님?”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남자가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그가 채원의 젖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움켜쥐고 고개를 젖히게 만들었다.
“크윽…….”
“얼굴 반반한 거 보소. 이래서 재벌가 회장님이 아주 눈이 뒤집혀서 데려갔구만.”
칼자국이 채원의 뺨을 툭툭 치며 비아냥거렸다.
그때, 뒤쪽에 서 있던 깡마른 남자가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
“형님. 사모님 전화 연결됐습니다.”
“어, 스피커폰으로 틀어.”
휴대폰에서 찢어질 듯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한채원. 정신이 좀 들어? ]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채원의 눈동자에 서늘한 살기가 돌았다.
배정아가 아니었다.
한유라였다.
“……한유라. 네년 짓이구나.”
채원이 갈라진 목소리로 씹어뱉듯 말했다.
[ 하! 네년? 쥐새끼처럼 묶여 있는 주제에 아직도 혓바닥이 기네. ]
전화기 너머로 한유라의 표독스러운 웃음소리가 울렸다.
[ 네가 서도진 대표 등에 업고 우리 엄마랑 내 숨통을 끊어놓겠다고? 퍽이나. 어제 약혼식장에서 날 망신 준 대가가 어떤 건지 똑똑히 가르쳐줄게. 넌 오늘 여기서 인간 이하의 쓰레기로 전락할 거야. ]
유라의 목소리에는 이성이 끊어진 자의 광기가 묻어났다.
[ 아저씨들! 내가 지시한 대로 해. 그 년 옷 싹 다 벗기고, 제일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동영상 찍어! 그리고 얼굴은 아주 형체를 못 알아볼 정도로 박살 내놔. 흉터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JS그룹 서도진이 창녀 꼴이 된 그 얼굴을 보고도 널 계속 안고 갈지 어디 한번 보자고! ]
“미친년…….”
[ 찍은 영상 넘겨받는 대로 약속한 잔금 1억 꽂아줄 테니까, 확실하게 짓밟아. 알았어?! ]
뚝.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폐공장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칼자국이 입맛을 다시며 바지 버클에 손을 댔다. 그의 눈빛에는 돈에 대한 탐욕과 여자를 향한 더러운 정욕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들었지? 네 동생이 너 아주 험하게 다뤄달란다. 우리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너무 원망하지 마라.”
사내들이 더러운 웃음을 흘리며 채원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강간과 폭행. 철저한 파멸을 목적으로 한 린치.
보통의 여자였다면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채원은 달랐다.
그녀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비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당장 누군가 그녀를 구하러 올 확률은 미지수였다. SOS 신호가 도진에게 제대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 쥐덫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 물어뜯는 수밖에 없었다.
채원은 고개를 숙인 채, 미친 사람처럼 낮게 웃기 시작했다.
“크큭…… 큭…….”
“뭐야, 이 년? 미쳤어?”
사내들이 멈칫하며 채원을 내려다보았다.
채원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피딱지가 앉은 이마, 물에 젖은 창백한 얼굴.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같았다.
“겨우 1억.”
채원의 건조한 목소리가 폐공장을 서늘하게 울렸다.
“겨우 1억에 니들 목숨을 내놓겠다고? 멍청한 새끼들.”
“뭐라고? 이 년이 쳐 돌았나. 입 안 닥쳐?”
칼자국이 손을 치켜들며 채원의 뺨을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채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칼자국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때려봐. 내 뺨에 상처 하나 나는 순간, 니들 목숨값은 1억이 아니라 100억 단위의 빚으로 돌아올 테니까.”
“이, 이 씨발년이 진짜……!”
“내가 누군지 알고나 납치한 거야? 한유라 그 멍청한 년이 말 안 해줬지? 내가 지금 누구랑 살고 있는지.”
채원의 서슬 퍼런 기백에 칼자국이 멈칫했다.
“어제 내가 대한민국 재계 1위, JS그룹 서도진 대표와 약혼을 발표했어. 난 지금 서도진의 여자야. 그런데 삼류 양아치 새끼들 세 명이 JS그룹의 예비 안주인을 건드린다? 니들 진짜 제정신이야?”
“……뭐?”
JS그룹이라는 단어에 깡마른 남자가 움찔하며 칼자국의 눈치를 보았다.
“형, 형님. 저 여자 진짜 JS그룹이랑 연관 있는 거면 우리 진짜 좆되는 거 아닙니까? 회장님 사모가 아니라 JS 서도진이면 얘기가 다르잖아요…….”
“닥쳐! 씨발, 재벌이 한둘이야? 한성그룹 둘째 딸이 뒤 봐준다는데 뭐가 쫄려!”
칼자국이 윽박질렀지만, 그의 목소리에도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채원은 그 균열을 놓치지 않고 뱀처럼 파고들었다.
“한성그룹 둘째 딸? 걔 지금 내 손에 약점 잡혀서 집안에서 쫓겨날 위기야. 그래서 발악하는 거라고. 한성그룹이 JS그룹을 상대로 니들을 지켜줄 수 있을 거 같아? 당장 서도진 대표가 니들 신상 털어서 드럼통에 공구리 쳐서 서해 바다에 처넣을 텐데, 한유라가 니들을 보호해 줄 거라 믿어? 꼬리 자르기 당하고 뒤집어쓰는 건 니들이야.”
“이 년이 자꾸 주둥이를……!”
“내가 10억 줄게.”
채원이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판돈을 올렸다.
“뭐?”
“내 결박 풀고, 방금 한유라랑 통화한 녹음 파일 나한테 넘겨. 그럼 이 자리에서 니들 대포 통장으로 10억 쏴줄 테니까. 한유라가 준다는 1억 따위에 목숨 걸지 말고, 깔끔하게 10억 챙겨서 해외로 떠. 그게 니들 살길이야.”
세 명의 사내가 일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1억과 10억. 그리고 삼류 양아치들도 알 만큼 무시무시한 JS그룹의 보복.
“형님…… 저 여자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10억이면 우리 중국 가서 떵떵거리고 살 수 있잖아요. 괜히 재벌가 여자 건드렸다가 뼈도 못 추려요.”
덩치가 큰 남자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칼자국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탐욕과 공포가 충돌하고 있었다.
채원은 등 뒤로 결박된 손목을 아주 미세하게 비틀기 시작했다.
그녀가 앉아 있는 철제 의자의 등받이 하단부. 용접이 떨어져 나가 날카롭게 튀어나온 쇳조각이 느껴졌다.
말을 뱉으며 시선을 분산시키는 동안, 채원은 손목의 케이블 타이를 그 쇳조각에 대고 미친 듯이 문지르고 있었다.
손목의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고통을 씹어 삼키며 오직 케이블 타이를 끊는 것에만 집중했다.
‘거의 다 끊어졌어. 조금만 더…….’
“씨발…… 잠깐만.”
칼자국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저 년 결박 풀지 마. 나 나가서 아는 형님한테 서도진이 누군지 확인 좀 하고 올 테니까. 너희 둘 눈 딱 감고 저 년 감시해. 딴짓하면 대가리 깨버리고.”
칼자국이 전화기를 들고 공장 바깥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기회가 왔다.
남은 것은 지능이 떨어져 보이는 깡마른 놈과 덩치 큰 놈 둘뿐이었다.
채원은 눈빛을 누그러뜨리고 처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기요…….”
그녀가 모기 기어가는 목소리로 불렀다.
“저, 숨이 너무 막혀서 그런데…… 물 한 모금만 주실 수 있나요? 어차피 묶여서 도망도 못 가잖아요. 10억 받으시려면 제가 살아있어야 계좌 이체를 해드리죠.”
깡마른 놈이 침을 꿀꺽 삼키며 덩치에게 고갯짓을 했다.
“야, 저기 굴러다니는 생수병 좀 줘봐라. 저러다 진짜 숨 넘어가면 10억 날아간다.”
덩치가 바닥에 나뒹굴던 반쯤 남은 생수병을 주워들고 채원에게 다가왔다.
“마, 마셔라.”
덩치가 생수병을 채원의 입가로 가져다 대기 위해 허리를 숙인 그 순간.
채원의 등 뒤에서 ‘툭-’ 하고 두꺼운 케이블 타이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채원의 눈빛이 순식간에 굶주린 포식자처럼 돌변했다.
그녀는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덩치의 눈을 향해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세워 무자비하게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악!!”
덩치가 눈통을 부여잡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뭐, 뭐야 씨발!”
깡마른 놈이 기겁하며 달려오려 했지만, 채원은 이미 결박이 풀린 손으로 발목의 끈을 순식간에 풀어헤친 뒤였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무거운 철제 파이프를 주워들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가녀린 체구에서 나올 수 없는 폭발적인 속도였다.
“죽어!”
채원이 휘두른 쇠파이프가 깡마른 놈의 무릎 관절을 정확하게 박살 냈다.
“아악! 내 다리!!”
놈이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채원은 피투성이가 된 손목으로 쇠파이프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방금 전의 이지적이고 도도했던 한성그룹 본부장의 모습은 없었다. 살기 위해 밑바닥까지 내려온 짐승의 생존 본능만이 번뜩였다.
“이 년이……!”
그때, 밖으로 나갔던 칼자국이 안쪽의 비명을 듣고 공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쓰러진 부하들을 보고 짐승처럼 포효하며 주머니에서 번쩍이는 잭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씨발년이!! 얌전히 뒤질 것이지 어딜 발악을 해!! 오늘 여기서 네년 배때지에 구멍을 내주마!!”
칼자국이 살기를 뿜어내며 채원을 향해 돌진했다.
채원은 뒤로 물러서며 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공장의 유일한 출입구는 칼자국이 막아서고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무릎의 상처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채원은 쇠파이프를 들어 올리며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들어와 봐, 쓰레기 새끼야. 누가 먼저 뒈지는지 해 보자고.”
눈앞으로 날아드는 잭나이프의 서늘한 칼날.
채원은 죽음을 각오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쾅-!!!
폐공장의 거대한 철제 셔터문이 폭탄을 맞은 것처럼 요란한 굉음을 내며 찌그러졌다.
어두운 공장 안으로 붉은색 브레이크 라이트의 살벌한 광원이 쏟아져 들어왔다.
육중한 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이 셔터를 그대로 들이받고 공장 내부로 처참하게 밀고 들어온 것이다.
끼이이익-!
엄청난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차가 멈춰 서고, 칼자국이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부서진 셔터 사이로 흙먼지가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팬텀의 운전석 문이 열렸다.
구두 굽이 바닥에 닿는 서늘한 소리.
그리고 흙먼지를 뚫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남자의 실루엣.
“……찾았다.”
숨이 멎을 듯한 낮은 저음이 공장 안을 집어삼켰다.
분노로 인해 완벽하게 이성을 상실한 맹수의 눈동자. 서도진이었다.
채원은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떨어뜨리며, 처음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블랙 스마트 워치가 어둠 속에서 붉은빛을 깜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