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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화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4 15:40:46

제8화. 악마와의 거래조건(2)

“네가 원하는 게 아까 말한 그 ‘한성그룹을 되찾는 것’인가? 그건 네가 JS의 안주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권력으로 해결될 텐데.”

“아니요.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채원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시퍼런 독기가 다시 한번 타올랐다.

“단순히 권력을 등에 업는 게 아닙니다. 저는 대표님이 저의 복수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주시길 원합니다.”

“내가 어디까지 개입하길 바라는 거지?”

도진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위험한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았다.

채원은 주눅 들지 않고 또박또박 자신의 요구를 쏟아냈다.

“첫째. 제가 한성그룹의 지분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막대한 자금력. 비공식적으로 전부 지원해 주십시오.”

“둘째. JS그룹 산하의 최고 로펌과 정보망, 감사팀을 제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주십시오.”

“셋째. 제가 제 계모와 이복동생, 그리고 전 약혼자를 완전히 짓밟고 매장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든… 설령 그것이 JS그룹의 이름에 약간의 흠집을 내는 방식이라 할지라도, 제 뒤를 완벽하게 덮어주십시오.”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도진은 표정을 지운 채 채원을 응시했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비호가 아니었다. 자신을 완전한 공범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자, JS의 막강한 화력을 자신의 사적인 복수극에 쏟아부으라는 통보였다.

“한채원.”

도진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이름 석 자가 흘러나왔다.

“넌 지금 내게 백지수표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어. 내가 왜 너의 사적인 복수극에 내 막대한 자본과 권력을 쏟아부어야 하지?”

“그야, 제가 대표님의 가장 완벽한 방패가 되어드릴 테니까요.”

채원은 펜을 내려놓고 도진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대표님의 사촌들, 서태진 전무를 비롯한 이사회의 늙은 너구리들. 그들이 대표님을 물어뜯으려 할 때, 저는 뒤에 숨어서 웃고만 있는 얌전한 아내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먼저 나서서 그들의 목줄을 끊어놓겠습니다.”

“…….”

“저를 위해 투자하십시오. 저에게 칼을 쥐여주시면, 그 칼로 대표님의 적들부터 먼저 도륙해 드리겠습니다. 기꺼이 대표님의 미친 사냥개가 되어드릴 테니, 제 목줄을 잡고 제 복수까지 완벽하게 지원하라는 뜻입니다.”

정적.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팽팽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도진은 채원의 눈을 깊숙이 파고들며 그녀의 진심을 저울질했다.

저 지독한 복수심.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배신자들을 찢어발기겠다는 저 날 것 그대로의 갈망.

아름다웠다.

얌전하고 고상한 척하는 다른 재벌가 영애들에게서는 평생 찾아볼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생명력이었다.

도진의 입꼬리가 천천히, 아주 길게 호선을 그렸다.

“미친 사냥개라. 마음에 드는 표현이군.”

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채원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큰 그림자가 채원의 몸을 완전히 덮었다.

그는 채원의 의자 팔걸이에 양손을 짚고 몸을 숙였다. 두 사람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도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우디 향과 서늘한 체취가 채원의 코끝을 훅 찌르고 들어왔다. 심장이 본능적으로 빠르게 뛰었지만, 채원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도진이 채원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네가 한성그룹을 어떻게 부숴버리든, 그 쓰레기들을 어떻게 요리하든 전폭적으로 지원하마. 내 돈, 내 정보망, 내 권력. 전부 네 마음대로 가져다 써.”

도진의 숨결이 채원의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다.

“단, 약속은 지켜라. 내 사촌들의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그 약속. 만약 네가 내 기대를 배신하거나 쓸모없는 존재로 판명 난다면…….”

도진의 큰 손이 채원의 턱을 부드럽지만 억센 힘으로 쥐어 올렸다.

“그때는 네 계모가 아니라, 내가 직접 널 죽여버릴 테니까.”

섬뜩한 살기가 담긴 경고였다. 하지만 채원은 오히려 턱을 쥔 도진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올리며 도발적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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