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사역마라니.
스틸은 나지막한 탄식을 삼켰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결한 요정인 지니 역시 이형의 존재이기는 마찬가지였으니, 기이한 마법이 판치는 이 세계에서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닐 터였다.
마티어스와 리나 역시 스틸 못지않게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리노 사장님의 마력이 상상 이상이었군요. 하지만 지난번 이형 던전을 겪고 나니, 사람을 지킬 수만 있다면 흑마법이라 해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사술(詐術)이라 비난받을지언정······ 돌아가신 부모님을 한 번만이라도 뵐 수 있다면, 혹은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씁쓸하게 웃는 리나의 말에 스틸은 은밀한 공감을 느꼈다. 자신이야말로 오직 복수라는 염원에 사
“내 기억을 농락하고 조롱거리로 삼다니!”스펙터는 칠흑 같은 빛을 뿜어내는 검을 소환해 단단히 쥐고는 하데스를 향해 쇄도했다.“자, 잠깐! 스펙터!”스틸은 스펙터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모든 전의를 상실한 데다 마력도 바닥난 상태였기에 몸이 절로 멈칫거렸다. 와인까지 한잔 기운 지금으로서는 하데스를 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어머나, 스펙터 님이 화가 나셨나 봐.”지니는 레드 드래곤을 쓰다듬으며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스펙터 정도의 마력이라면 하데스를 충분히 즐겁게 해줄 터, 스틸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아 관전하기로 했다.“뭐, 어쩔 수 없군.”챙—! 채채챙—!이미 시작된 대결은 단순한 대련이 아니었다. 스펙터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걸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하하! 오늘은 정말 운이 좋구나. 이리 즐거울 수가!”하데스는 쏟아지는 스펙터의 검을 모조리 받아내며 한껏 광소를 터뜨렸다.스펙터는 지금 스틸이 환상 속에서 보았던 훤칠한 백인 군인의 모습으로 현현해 있었다.하데스가 스펙터의 기억을 어지럽힌 것에 대한 원한이 깊어 보였다.사실 스틸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욱신거렸다. 조금 전의 상황이 기억을 유린해 화가 나기도 했지만 서글픔으로도 다가왔다.자신에겐 결코 싫지 않은 기억이었다. 어른이 된 모습을 외할머니께 보여드렸고, 사관학교에 당당하게 입학한 데다 어린 시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전해 기분이 묘했다.저승으로 들어오는 인간을 관장하는 신이기에, 하데스는 스틸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그 시각 아쳐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고문장에서 기절했던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차갑고 음습한 감옥으로 옮겨진 후였다. 몸에는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할 수 없을 만큼 마력이 단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넝마가 된 몸을 웅크린 채 감옥 바닥에 굴러다니던 아쳐의 시선 끝에, 의식을 잃은 레무르와 렘브란트가 들어왔다.그리고 또 한 사람.아무리 봐도 마지션과 닮은 왜소한 남성이 있었다.인간의 운명은 얼마나 신의 유희에 의해 얄궂고 처절한지.그가 만약 진짜 마지션의 오빠라면 지난 1년 내내 이렇게 마력을 쥐어짜이며 고통을 받았다는 의미였다.“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도······.”연민조차 사치인 곳이었지만, 진짜 마지션을 향한 불쌍함과 안타까움에 한숨만 절로 밀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레무르와 렘브란트 역시 숨통만 겨우 붙어있는 상태였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끊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아쳐의 뇌리를 스쳤다.하지만 눈을 감기엔 도른의 제논을 향한 저주가 이를 깨물 만큼 강렬했고, 승승장구하며 살아가는 아버지와 스틸을 향한 미친 듯한 원망에 피눈물이 흘렀다.그러나 고통은 지독하게 싫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끝없는 절망이 그를 침식해 들어갈 때쯤, 아쳐의 비참한 탄식을 들었는지 렘브란트가 꿈틀거리며 눈을 떴다. 옆에 쓰러져 있던 레무르 역시 감겨 있던 눈을 겨우 열었다.“전하······ 눈을 뜨셨군요. 더······ 주무시지요.”하지만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대로 죽는
치고받고, 튕겨 내고, 사선(死線)을 가로지른다. 두 자루의 검이 공허를 찢고 충돌할 때마다 붉은 불꽃이 시공간을 가르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지니는 허공에 부유하는 플로럴 스피릿들을 수호를 받으며 가르나르의 신성한 꽃들을 자신의 인벤토리로 신속히 소환해 냈다.꽃잎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우아함 속에서도, 스틸에게 지속적으로 치유 마력을 퍼붓는 손길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았다.그 자태는 마치 신화 속에서 걸어 나온 신비로운 엘프 그 자체였다.한편, 스틸은 기타 능력을 썼지만, 시간이 가니 다시 체력이 떨어져 사나운 검기에 온몸이 마디마디 베어 피칠갑이 되었음에도 굴하지 않았다.어금니를 악물고 눈동자에 서늘한 투기를 품은 채 하데스를 향해 쇄도했다.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스틸은 그래도 확실하게 예리한 검기를 폭풍처럼 뿜어내며 하데스의 신체에 유효타를 꽂아 넣었다.그러자 신적 존재의 신체에서도 인간과 다름없는 붉은 피가 바닥에 무겁게 흩뿌려졌다.“오호! 제법이군. 재미있구나! 하하!”서로의 칼날은 검붉은 혈류로 물들었으나, 맞물린 눈빛만큼은 태양처럼 불꽃 튀게 타올랐다.검을 주고받는 속도는 이미 인간의 한계 따위는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어때? 20년이나 바친 내 목숨값이!”두 초월자와 저승의 주인은 오직 하나의 검사가 되어 극한의 혈투를 써 내려갔다. 시간과 공간마저 일그러지는 찰나의 연속 속에서, 두 사람은 전신의 기력을 짜내어 검을 맞대었다.그 지옥 같은 광경을 관망하던 케르베로스와 레드 드래곤은 그저 기형적인 정적 속에서 스틸과 하데스의 전투를 지켜볼 뿐이었다.한계를 시험받는 극한의 사선에 도달해서일까.스틸의 가슴 깊은 곳에서 거친
마르바스는 아쳐와 마주하면서 그를 한 번 떠보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아직도 힘이 남았는지 어지간히도 씩씩거리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네놈! 도른의 개자식! ······가만히 안 둬! 감히 한 제국의 황태자에게······ 손을 대? 이 망할 새끼야!”아쳐는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몸을 뒤틀었다.그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쇠사슬을 끊어내고 싶은지 완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마르바스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순간 마르바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쳐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크크억! 네 이······ 이······ 이놈······.”더듬거리던 아쳐는 갑자기 눈을 감더니 기절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주변 마법사들은 마르바스에게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마르바스 경, 고생하셨습니다. 황태자는 데려다 놓겠습니다.”이곳에서 대기하던 마법사들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들의 망토에는 도른 제국의 문양이 선명했다. 눈빛에는 피로가 서려 있었지만, 마르바스에게는 깍듯하게 굴며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마르바스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허리에서 금화 주머니를 꺼냈다.“어서 가서 쉬어, 내가 교육 좀 더 시킬 테니까.&
도른 제국 지하 10층. 고통의 굉음이 차가운 정적을 가르고 기괴하게 찢겨 나갔다.“으악! 으윽! 캬아아악!”황태자 아쳐의 얼굴은 이미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붉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눈구멍과 콧구멍, 터져 버린 입술 사이로 검붉은 혈류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차가운 돌바닥을 기분 나쁘게 적셨다.“이, 개새끼······! 죽여 버리겠어! 내가 탈출하기만 하면 네놈의 뼈를 갈아······ 으아아악!”아쳐의 처절한 비명이 사방이 피로 물든 고문장에 기괴하게 공명했다.“더욱 거세게 몰아붙여라!”마탑주 마르바스의 서늘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문을 하던 마법사의 손에서 더욱 마력이 불꽃처럼 불러일으켜졌다.그 광경을 바라보던 제논의 입가에서 무심하면서도 잔혹한 음성이 나직하게 흘러나왔다.“참으로 형편없군. 적국의 고귀하신 황태자라기에 내심 기대했건만. 짜낼 수 있는 마력마저 비루하기 짝이 없군.”제논의 목소리는 건조했으나, 그 밑바닥에는 기이한 광기와 가학적인 열의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마치 고되게 다듬어진 악마의 예술품을 감상하듯,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쳐의 절망을 보며 자신의 왜곡된 가학심을 충족시키고 있었다.아쳐의 마력과 끈질긴 생명력이 흑마술의 궤적을 타고 남김없이 흡수되어 제논의 전신으로 흘러들었다.“조금만 기다리십시오, 폐하, 극상의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마르바스의 간신배 같은 아첨이 더해지자 지하의 공기는 한층 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사슬에 묶인 아쳐에게 잔혹한 저주와 물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사나운 검기의 폭풍 속에서, 스틸은 지독하게 짓눌린 호흡을 가다듬으며 번뜩이는 눈빛으로 하데스를 마주했다.“하데스!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겠다!”“나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줄 휴식이라면 얼마든지 베풀어 주지.”쉬게 해 줬으니 그만큼 더 뼈가 부러져라 싸워 보라는 뜻이겠지.스틸은 어금니를 악물며 램프를 거세게 문질렀다. 이대로 저승의 신이 퍼붓는 무자비한 유희에 놀아나다간 수명만 줄어들 것 같은 처절한 위기감이 뇌리를 스쳤다.“램프여! 하데스가 자극적인 즐거움을 원한다! 그에 응수할 방도를 제시해 줘!”눈앞의 공간에 일그러지며 떠오르는 상태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랜드 마스터 급 이상으로 향상되면 하데스와 즐겁게 대련할 수 있음.★초월자는 기타 능력을 사용하여 검술 능력 극대화할 수 있음.★기타 능력 100,000을 사용하면 술자의 수명이 10년 줄어들게 됨.★단 체력도 증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임. 100,000을 더 사용하길 권장함.*************************이런 망할!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데 써야 할 수명이 10년, 그리고 체력 증진에도 10년을 써야 한다는 건가.하데스는 머리 위에 떠오른 상태창의 문구들을 조롱하듯 읽어 내리며, 더없이 흥미진진하다는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었다.지니의 비명 같은 외침이 스틸의 뇌리를 세차게 때렸다.“주인님! 그렇게 되면 남아있는 수명이 18년밖에 안 돼!”이대로 주저앉으면 가르나르 영지는 삼켜질 것이고, 자신은 저승의 하수인이 되어 끌려갈 것이며, 지니는 잔혹한 운명 속에서 다른 주인을 만나게 될
30대 중반의 노련한 호위 기사단장, 세도르는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를 거칠게 휘감은 채 말을 달리던 중이었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를 뚫고 은발의 젊은 부하 기사가 다급하게 다가와 앞을 가로막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고삐를 홱 잡아챘다. “세도르 단장님! 방금 이스트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이런 황당할 데가. 세도르는 황망함에 굵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황실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아카데미 안에서 화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이버 경, 지금 뭐라고 했나?” “진화는 방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
자신이 알고 있는 ‘소원을 말해 봐!’라고 하는 램프의 요정이 그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서 빨리 이 소녀를 전문가에게 보여줘야 하는데.“어이, 내가 나이가 많아 보이니 말은 좀 편히 할게. 엘프야, 일단 내가 눈 떠보니 다른 세상에 소환되어 환생한 것 같아서 얼른 적응해야 하거든? 그러니 그쪽도 정신 차려.”넋두리하듯 그리 스틸이 말을 내뱉고 몸을 돌리라 하자, 엘프는 제 두 어깨를 꼭 부여잡더니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어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초월자인가? 나 횡재했잖아? 초월자를 주인님으로 맞이하다니!”
주인님은 무슨. 불이 난 연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스틸은 우선 잠시 목걸이를 들여다보았다.3초 잠깐 고민한 그였다. 누가 봤나? 참 CCTV는 없는 세상이지? 하지만 목숨까지 내던지며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던 천하의 파일럿 강철신이 이런 목걸이 하나의 움찔하다니.게다가 망한 영지기는 해도 고위 귀족 대공 인생에 뭘 주워서 넙죽- 꿀꺽할 수 없는 법.일단 이 화재부터 진압하고 주인이나 찾아줘야겠다 싶어 주변을 훑었다.강철신은 일단 구유통이 아닌 우물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불길에 쫓겨 물을 찾던 그의 눈에 목걸이가 들어
한 달 전, 20XX년 4월 1일 오전. 인생 2번째라 공군 소령 강철신은 오늘이 당연히 올 줄 알았다. 그리고 당연히 적국기 등장으로 출격 명령을 받았다. 전생의 기억이 혈관 속을 맴돌았다. 오늘, 그는 죽을 각오로 전투기에 올라가야 하는 날이다. 분명 적국의 전투기에는 망할 아쳐가 타고 있을 터.정밀유도폭탄(SDB)까지 무장하고 스텔스 전투기로 출격 30분 만에, 지금 그는 사선을 넘나들게 되었다. 여전히 그는 대한민국 영공을 휘저어 놓았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 미사일을 터트릴 요량으로 북방 한계선을 넘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