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미궁 안에서 하데스와 마주하느라 생사를 오갔는데, 스틸은 다시 찾은 이 일상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월요일 1교시 『귀족의 의무』 히스테리아 교수의 시간.
교수가 도착하기 전, 강의실은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물론 그 수군거리는 소리의 90%는 스틸의 이야기였다.
늠름하다, 가르나르 영지가 기대된다, 소식지 봤냐, 스틸이 지난주 미궁에 있다가 돌아온 것 같다는 둥.
모두의 시선이 스틸에게 쏠렸다. 지니는 그의 팔을 가볍게 잡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부드러운 팔의 온기가 전해지자 그녀는 살짝 고개를 기울여 주변을 살폈다.
“우리 주인님 인기가 하늘을 찌르네?”
인기가 하늘만 찌를까. 아마 아쳐의 심장도 쿡쿡 찔러 대겠지.
지니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묻어났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던가.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미궁 안에서 하데스와 마주하느라 생사를 오갔는데, 스틸은 다시 찾은 이 일상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월요일 1교시 『귀족의 의무』 히스테리아 교수의 시간.교수가 도착하기 전, 강의실은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물론 그 수군거리는 소리의 90%는 스틸의 이야기였다.늠름하다, 가르나르 영지가 기대된다, 소식지 봤냐, 스틸이 지난주 미궁에 있다가 돌아온 것 같다는 둥.모두의 시선이 스틸에게 쏠렸다. 지니는 그의 팔을 가볍게 잡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부드러운 팔의 온기가 전해지자 그녀는 살짝 고개를 기울여 주변을 살폈다.“우리 주인님 인기가 하늘을 찌르네?”인기가 하늘만 찌를까. 아마 아쳐의 심장도 쿡쿡 찔러 대겠지.지니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묻어났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느껴지는 아쳐의 날카로운 시선이 마치 칼날처럼 예리하게 와닿았다.그나저나 아쳐도 주변 학생들이 오랜만에 등장했다고 수군거려 대었다.얼굴은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고, 그의 몸에서는 더욱 지독한 냄새가 풀풀 풍겨 역겨울 지경이었다.스틸은 가면을 쓴 채 묵묵히 앉아 있는 아쳐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경멸의 빛이 공기 중에 서린 듯 선명했다.사실 이제 아쳐는 스틸의 상대가 아니었다. 어디서 더러운 건 잔뜩 주워 먹었는지 여전히 마력을 지저분하게 탐하고 있는 듯싶지만, 사실 눈으로 봤을 때 굳이 램프에게 뭘 물어보지 않아도 그가 스틸보다는 한참 밑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상태창에 등장한 스틸의 수치는 이미 이 아카데미의 그 어떤 학생들보다도 높은 레벨임이 확실해졌다.지금 스틸은 기타 능력이 다 채워졌기에 뭐라도 필요하면 더 치환할 수 있게 되었고 100 레벨을 훌쩍 넘어선 마력 소유자라 그
이세계의 학창 시절을 즐기고 새로운 경험을 쌓겠다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스틸은 강의동 복도를 유유히 걸어갔다.복도를 오가는 학생들의 시선은 지난 4월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외와 호기심이 짙게 서려 있었다.“봐, 스틸 대공이야! 곁에 있는 건 그의 시녀고! 선남선녀네.”“가르나르 미궁이라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나 봐?”“연일 소식지에 뜨는 거 못 봤어? 캔도르 대공가는 여전히 건재하다잖아.”“1학기 때 보니 매일 아침 트레이닝을 하고 주말마다 던전에 들어간다던데, 체격이 거의 상급 기사 수준이야.”스틸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훈훈하고 바람직한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스틸과 지니, 그리고 스펙터의 신변에는 천지개벽할 일들이 몰아쳤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그때, 학생들의 속삭임 중 묘한 이야기가 스틸의 귓가를 스쳤다.“이번 아카데미 축제 때 열리는 검술 대회에 스틸 대공도 출전하려나?”잠깐, 검술 대회?“2학기 축제의 꽃은 단연 검술 대회지. 벌써 기대된다. 나도 출전해 볼까?”“황태자 전하께서도 출전하신다고 들었어. 거기서 활약해서 황실 기사단에 눈도장을 찍고 싶어.”이건 놀라운 소식이었다. 아카데미 축제의 꽃이 무두질된 검과 합법적인 투쟁이라니.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전력을 다해 겨뤄도 된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날붙이가 오가는 서슬 푸른 전장을 아카데미의 이름으로 정당화해 준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아쳐가 출전한다고?’스틸의 얇은 입술 끝이 호선을 그리며 서늘하게 올라갔다.
마지션은 목숨보다 소중한 여동생과 재회하기 위해 교수 사택 문 앞에 섰다. 오랜 세월이 흘러간 듯 가슴이 무겁게 먹먹해졌다.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던가.제논의 손에 죽어 가며 고통의 늪에 빠져 있을 때조차, 그를 버티게 한 것은 단 하나, 이 순간에 대한 열망이었다.투명화나 순간이동으로 은밀히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긴 이별 끝의 재회에 예고 없이 나타나는 것은 동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아쳐와의 은밀한 만남을 훔쳐본 것은 미안했으나, 지금만큼은 형식을 갖추어 그녀를 마주하고 싶었다.그의 한 손에는 화사한 꽃다발이, 다른 한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제 목숨보다 귀한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기에, 세상 무엇을 들려주어도 모자란 심정이었다.[안녕, 나의 동생 마지리안.]누군가 들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저 동생의 눈을 바르게 마주하고 싶을 뿐이었다.“역시!”아쳐에게 미리 귀띔을 들어서였을까. 숙소 안에서 커다란 외침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문 앞으로 급하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문이 활짝 열리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마지리안이 문가에 우뚝 서 있었다.“정말······ 오라버니가 오셨군요!”이 모든 것은 동생 덕분이었다. 쓰레기 같은 아쳐에게 자신을 구해 오라 요청했던 동생의 집념이 아니었다면, 마지션은 살아남을 의지조차 품지 못했을 터였다.제논이나 마르바스가 쓸모를 다한 자신을 당장 쫓지는 않겠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두 번 다시 도른의 어둠 속에 붙잡힐 수는 없었다.향후의 일은 동생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될 터. 지금은 오직 이 행복한 재회의 순간을 누려야 했다.“들어오세요, 오라버니! 우리······ 이제는 정말 행복하게만 살아요.” “그래.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자.”마지션은 집 안으로 발
다음 날이 밝았다.가르나르 꽃밭에 놓아둔 침대에 쏟아지는 햇빛이 스틸의 맨살에 닿자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지니는 램프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것 같았고, 주변을 둘러보니 꽃밭의 결계 밖에서는 듀라한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어디 보자, 스펙터나 불러 볼까?”지니와의 달콤한 시간을 위해 쳐놓았던 결계를 풀고 옷을 입은 스틸이 스펙터를 불렀다.그러자 잠시 후,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휘몰아치더니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일어난 건가.” “그래, 간밤에 잘 있었어?”스펙터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코웃음을 흘렸다.햇살이 눈부신 낮이었지만, 스펙터는 인간 원스 마이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내 안부까지 묻다니, 여유가 넘치는군. 일단 네 인벤토리 안도 점검해야겠으니 그곳으로 들어가야겠다.”하긴, 듀라한들이 스틸의 인벤토리를 거점으로 지내왔으니 스펙터도 얼른 불러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스틸, 네가 이번에는 잠을 꽤 오래 잔 것 같다.스펙터는 스틸의 잠이 늘었다며 황당해했다.그도 그럴 것이, 스틸이 시각을 확인하자 이미 정오가 지나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보름 동안이나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건가. 놀랍군.”- 스틸, 그대도 엄연한 인간이다. 초월적인 존재라 해도 잘 먹고 잘 자야 하는 법이지. 너의 엘프도 피곤해 보이는 것을 보니 휴식은 확실히 필요해 보인다.스펙터도 지금만큼은 인간적인 잔소리를 해 주는 듯싶었다.기묘한 판타지 세계에서는 자신도 정상이 아닌 존재로 취급받는 게 사실이지만, 인간은 엄연히 인간.자야 할 때는 자야 하는 법이었다.일단 스틸은 일어나 대충 씻고 가르나르 영지라도 뛰며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진짜 도른의 대마법사, 마지션은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투명화 마법을 펼치고 은밀하게 기척을 지운 채, 마구간에서 느껴진 이상한 마력을 추적해 다가갔더니 이런 빌어먹을 광경이 펼쳐져 있을 줄이야.‘이런 개새끼가······!’둘은 지금 침대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다행히 옷은 갖춰 입고 있었지만, 밀착해 부둥켜안은 꼴은 누가 봐도 연인의 형상이었다.“흑, 흑······. 전하, 오랜만이라 실감이 나지 않네요. 살아서 돌아오시다니······ 다행입니다.”제 동생은 이 비참한 상황에 벌벌 떨기는커녕, 눈물까지 글썽이며 황태자를 반기고 있었다.“제논 그 썩을 도른 황제 놈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교수님, 정말 그리웠습니다.”마지션은 그제야 아쳐라는 쓰레기가 무슨 의도로 자신을 구출해 냈는지 이해가 되었다.그러나 고맙기는커녕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감히 제 동생을 농락하다니, 은인에서 순식간에 천하의 원수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그런데, 정말 제 오라버니를 만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당당히 개선장군처럼 돌아오지 않았겠습니까.”아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남이 보면 제논을 자력으로 제압하고 당당히 탈출이라도 한 줄 알 정도로 허풍을 떨고 있었다.제 여동생과 조금만 더 진도를 나갔다면 불 마법으로 잿더미를 만들어 버렸을 거라 생각하며, 마지션은 이를 잘근잘근 깨물었다.귀하디귀한 여동생 마지리안 픽스는 자신 못지않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마법사였다. 그러나 흑마법사가 되어 마탑에 들어가 봤자 도른의 개로 혹사당할 것이 뻔했기에, 마지션은 그녀의 재능을 세상에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몸속 마력 절반을 자신만이 풀 수 있는 강력한 봉인으로 가두어 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건만, 결
“보름? 그렇게나 오래?”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귀한 시간을 던전 미궁 속에서 통째로 날렸다니.“주인님, 나도 너무 놀랐어.”지니 역시 스틸과 마음이 통한 듯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지체할 시간이 없군.”스틸은 망설임 없이 가르나르 꽃밭 중앙의 욕조를 소환해 그곳으로 지니를 이끌었다.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낸 보름간의 시간. 온몸을 뒤덮은 피로와 핏빛 흔적을 씻어 내고자 하는 간절함이 가득했기에, 두 사람은 함께 욕조로 들어섰다.“주인님, 너무 좋아!” “씻고, 피로도 풀고, 서로의 마음도 확인하고. 우리에겐 낭비할 시간이 없어.”스틸의 거침없는 손길에 지니의 옷가지가 스르르 벗겨져 내렸다. 두 사람이 욕조 안으로 몸을 담그자 아늑한 온기가 전신을 감싸 왔다.가르나르 영지 고유의 영묘한 결계 기운이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살결이 맞닿을 때마다 미세한 전율이 일었고, 깊은 파동이 은근하게 퍼져 나갔다.스틸은 지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천천히 몸을 닦아 내려갔다.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쇄골을 따라 손가락이 미끄러졌고, 부드러운 가슴 곡선을 그려 내렸다. 지니의 숨소리가 가빠질 즈음, 스틸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귓가에 속삭였다.잘록한 허리를 지나 매끈한 허벅지에 손이 닿자, 스틸의 손길은 거침없이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아읏······! 오랜만이라, 조금 부끄러운데.” “하긴, 보름이나 흘렀다니까.”그만큼 서로를 향한 갈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스틸은 애틋하면서도 강렬하게 지니를 품에 안았다.두 사람의 손길이 서로의 몸을 탐하듯 스쳤고, 물속에서 피어오른 열기는 꽃향기와 어우러져 밀폐된 공기를 붉게 물들였다. 스틸의 묵직한 탐닉에 야외에서의 은밀한 행위는 온몸을 불처럼 달구었다.마침내 서로가 완벽히 하나
스틸은 군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광장을 둘러싼 대리석 건물들은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반짝였고, 학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반면 귀족들은 마차에 올라탄 채 지나갔다.이곳 건물은 현대 건축 양식처럼 꽤 잘 정비된 데다가 전기라는 개념은 없는 대신 마정석이라는 마력을 이용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레투카 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현생의 이 몸이 지닌 기억 따윈 전혀 없었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살펴야 하니 그건 머리가 복잡
스틸은 죽음과 동시에 이세계로 떨어졌다. 환생을 겪으면서 이렇게 기사들에게 끌려가 본 적은 없었는데 그 대단한 경험을 지금 하게 되었다. 스틸을 체포하러 왔을 때만 해도 살기등등하던 기사들은 그가 순순히 항복하자 머쓱한 듯 거리를 좁히며 따라붙었다.나름 고위 귀족이라 그런지 포박은 안 하고 수 미터 거리만 둔 채 걷는 수준이었다.전생에는 죄짓고 산적이 없어 이런 자들도 만난 기억이 없었다.스틸은 현재 자신이 마구간 방화범으로 몰려 있긴 하지만, 사실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딱 봐도 건초만 탄 정도지 어디가 무너져 내린
30대 중반의 노련한 호위 기사단장, 세도르는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를 거칠게 휘감은 채 말을 달리던 중이었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를 뚫고 은발의 젊은 부하 기사가 다급하게 다가와 앞을 가로막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고삐를 홱 잡아챘다. “세도르 단장님! 방금 이스트 마구간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이런 황당할 데가. 세도르는 황망함에 굵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황실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아카데미 안에서 화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이버 경, 지금 뭐라고 했나?” “진화는 방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
자신이 알고 있는 ‘소원을 말해 봐!’라고 하는 램프의 요정이 그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서 빨리 이 소녀를 전문가에게 보여줘야 하는데.“어이, 내가 나이가 많아 보이니 말은 좀 편히 할게. 엘프야, 일단 내가 눈 떠보니 다른 세상에 소환되어 환생한 것 같아서 얼른 적응해야 하거든? 그러니 그쪽도 정신 차려.”넋두리하듯 그리 스틸이 말을 내뱉고 몸을 돌리라 하자, 엘프는 제 두 어깨를 꼭 부여잡더니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어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초월자인가? 나 횡재했잖아? 초월자를 주인님으로 맞이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