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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만족하셨나요.

作者: 이레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6 09:21:09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방 안에는 끈적하게 가라앉은 고요만 남아 있었다.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빛은 조금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설화는 그 빛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몸은 침대 위에 있었고, 마음은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모든 움직임이 멈췄을 때, 방 안에는 끈적하고 무거운 고요만 남았다.

강현은 한동안 설화의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거친 숨을 골랐다. 조금 전까지 거칠게 몰아붙이던 남자는 이제 기묘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설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베개 끝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강현이 몸을 물리자마자 설화는 후다닥 담요를 끌어당겨 엉망이 된 몸을 감싸 안았다. 뒤늦은 수치심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때 강현의 큰 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설화의 뺨 위로 흐른 눈물 자국을 닦아내려는 듯한 손길이었다. 그러나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설화가 발작하듯 몸을 웅크리며 거부했다.

그 움직임에 강현의 손이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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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7화 만족하셨나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방 안에는 끈적하게 가라앉은 고요만 남아 있었다.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빛은 조금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설화는 그 빛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몸은 침대 위에 있었고, 마음은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마침내 모든 움직임이 멈췄을 때, 방 안에는 끈적하고 무거운 고요만 남았다.강현은 한동안 설화의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거친 숨을 골랐다. 조금 전까지 거칠게 몰아붙이던 남자는 이제 기묘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설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베개 끝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강현이 몸을 물리자마자 설화는 후다닥 담요를 끌어당겨 엉망이 된 몸을 감싸 안았다. 뒤늦은 수치심이 해일처럼 밀려왔다.그때 강현의 큰 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설화의 뺨 위로 흐른 눈물 자국을 닦아내려는 듯한 손길이었다. 그러나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설화가 발작하듯 몸을 웅크리며 거부했다.그 움직임에 강현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그의 짙은 눈동자에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흔들림이 스쳐 지나갔다. 한참 뒤, 그가 어울리지 않게 나직한 목소리를 냈다.“……괜찮아?”설화는 웃고 싶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말 실소라도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짓이겨진 입술 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괜찮아요.”대답은 놀랄 만큼 얇고 건조했다. 그 말은 괜찮다는 뜻이 아니었다. 더는 아무것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비참한 방어에 가까웠다.설화는 천천히 눈을 떴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였지만, 강현을 향한 시선만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했다.“이제 만족하셨나요? 그럼. 다행이고요.”강현의 굳은 얼굴이 순간 거칠게 일그러졌다.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열었다가, 끝내 뱉지 못하고 피식, 의미를 알 수 없는 서늘한 웃음만 흘렸다.“그래. 앞으로도 잘해 봐. 만족스럽게.”그 말에 설화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다리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6화 꺾인 날개

    침실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강현은 설화를 침대 앞까지 밀어붙였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물러서자 그의 손이 다시 손목을 붙들었다. 빠져나갈 틈은 없었다. 작은 손이 그의 손아귀 안에서 흔들렸지만, 그 움직임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볍고 무력했다.“이제부터 잘 들어.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내가 정해.” “대표님…….” “그렇게 부르지 마. 지금은.”설화의 눈가가 흔들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버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걸 이 사람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방 안에는 말 없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침실을 짓누르는 정적이 공기마저 무겁게 만들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한 고요가 천천히 공간을 잠식해 들어왔다.강현은 설화를 침대 위로 밀어 눕혔다. 등이 매트리스에 닿는 순간 설화의 숨이 짧게 끊겼고, 그의 손끝이 아주 잠깐 굳었다. 그러나 그 멈춤은 곧 사라졌다. 도망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강현은 곧바로 다가와 그녀의 두 손목을 움켜쥐었다. 설화의 가느다란 손목은 그의 한 손안에 쉽게 갇혔다.“이제부터 잘 배워. 그래야 쓸모가 있지 않겠어?”목소리는 낮고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부드럽게 들리는 만큼 더 잔인했다.설화는 얼어붙은 채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가 갈아입혀 놓은 티셔츠가 어깨 위로 헐겁게 흘러 있었고, 그 사실이 다시금 그녀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공포와 혼란, 그리고 모멸감이 뒤섞여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강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그녀의 눈으로 돌아왔다. 그 눈빛 안에는 냉정함과, 끝내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교차하고 있었다. 설화는 그 시선에 붙들린 채 눈을 떼지 못했다. 마주 보는 순간마다 자신이 조금씩 작아지는 기분이었다.그의 손끝이 티셔츠 자락에 닿았다. 얇은 천이 위로 걷어 올려지며 하얀 맨살이 드러나는 감각만으로도 설화의 몸은 굳어 버렸다. 작은 오한이 목덜미에서 시작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녀는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5화 정해진 가치

    강현은 말없이 설화를 바라보았다. 정적이 길게 이어졌다. 그의 얼굴은 철저하게 닫혀 있었다. 감정도,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눈빛이었다. 설화는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차라리 화를 냈다면, 차라리 비웃기라도 했다면 견딜 수 있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강현은 이미 결론을 끝낸 사람처럼 고요했다. 이윽고 그의 입꼬리가 아주 느리게 올라갔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에는 온기가 없었다.“그럼 시작해 볼까. 네가 뭘 할 수 있는지.”잠시 사이를 둔 그가 낮게 덧붙였다.“2층에서.”말뜻을 이해하는 순간, 설화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내려앉더니, 곧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전……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작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두려움을 누르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지막 저항이 남아 있었다. 강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한 걸음 다가오며 낮게 물었다.“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니면 정말 몰라?”설화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모욕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강현은 그녀의 침묵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이것도 못 해, 저것도 못 해. 그럼 넌 대체 뭘로 갚을 건데.”잔인한 현실이 정면으로 박혔다. 설화는 숨을 삼켰다. 하지만 수치심 속에서도 억눌려 있던 감정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이대로 물건처럼 무너질 수 없다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네. 먹고살기 바빠서 연애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고, 그런 거 모릅니다. 돈 없는 처지가 비참해서 밑바닥 기는 게, 그게 그렇게 우스운 일인가요?”떨리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강현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짧은 침묵 뒤, 그의 입술 사이로 낮은 욕설이 새어 나왔다."씨발. 끝까지 그렇게 나오겠다는 거지.”강현의 손이 설화의 손목을 잡았다. 크고 차가운 손아귀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설화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잠깐…….” “잠깐? 방금 그렇게 큰소리치더니, 이제 서 약한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4화 가치를 정하는 사람

    "……제가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면서, 한심하다고 비웃으신 거네요." "비웃을 시간도 없고. 네가 얼마나 무력했는지 확인했을 뿐이지." "……." "알바를 세 개를 뛰든, 밤을 새우든, 결국 네 처지는 내 손바닥 안이라는 것."설화는 잠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오기를 부리듯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건 싸움조차 되지 않는 부분이란 걸. 이 집 안에서 자신의 분노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이 식탁 위에 차려진 것들은 배려가 아니라, 네 한계를 알게 하려는 노골적인 조롱이었다.강현은 아무 말 없이 설화의 시선을 받아주었다. 그 시선은 점점 더 무겁고 차가워졌다. 설화는 결국 손에 들고 있던 삼각김밥을 천천히 내려놓았다."왜. 입맛이 없어?" "네."설화는 고개를 숙인 채 단호하게 받아쳤다."너무 질려서, 이제는 손이 안 가네요."강현의 입꼬리가 얄팍하게 올라갔다. 벼랑 끝에 몰려서도 고개를 꼿꼿이 드는 생존 본능이 제법 재미있다는 얼굴이었다.그가 고개를 살짝 돌려 나직하게 명령했다."오 실장님, 이것 좀 치워 주세요."곧 처음에 봤던 남자가 다가왔다.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 컵수프가 빠르게 봉투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설화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저도 이제 가볼게요."그 순간, 강현의 짙은 눈썹이 느릿하게 올라갔다. 그녀가 몸을 틀려는 찰나, 그의 커다란 손이 손목을 단번에 낚아채 그대로 자신 앞에 세웠다."누가 가도 된다고 했지?"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설화의 등줄기가 얼어붙었다."……네?" "아버지 빚 때문이라면, 제가 어떻게든 갚을게요." "갚아?"강현이 식탁 테이블을 밀고 완전히 일어섰다. 압도적인 체구가 설화의 시야를 차단하듯 가로막았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그의 시선이, 설화의 숨통을 기어이 틀어쥐었다."원금에 이자까지 붙으면 하루에도 돈이 불어나." "…….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3화 그 남자의 집 -3

    식탁 위에는 이미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고급 저택의 주방에 어울릴 법한 한식 상차림도, 호텔 조식 같은 접시들도 아니었다.편의점 도시락 몇 개. 삼각김밥. 컵수프와 작은 우유, 플라스틱 포크까지. 그것들이 지나치게 반듯한 식탁 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설화는 잠시 말문을 잃은 채 헛웃음이 나왔다."이건……." "먹을 수 있는 걸로 사 오라고 했어."강현은 의자 쪽을 턱으로 한번 가리켰다."비싼 거 차려 놔 봐야 못 먹을 것 같아서."그 말에 설화는 미묘하게 얼굴을 굳혔다. 배려인지, 무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말투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는, 그녀가 이런 음식을 더 익숙하게 느낄 거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그게 조금 불쾌했다.설화는 의자 앞에 서서 식탁 위를 내려다보았다. 삼각김밥 포장지에 맺힌 작은 물기, 아직 온기가 남은 도시락, 옆에 놓인 나무젓가락.강현은 맞은편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앉아." "저, 괜찮……." "유설화."주방에 이름이 낮게 불렸다. 말하는 법도, 부르는 법도 익숙한 사람처럼. 그 한마디에 설화는 입을 다물었다. 강현의 눈빛은 차갑고 무심했다."먹고 말해."설화는 결국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담요를 무릎 위로 끌어당긴 채, 조심스럽게 삼각김밥 하나를 집었다. 포장지를 뜯는 작은 소리만이 식탁 위에 어색하게 번졌다.강현은 그런 설화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맞은편 의자에 앉지 않은 채 식탁 끝에 비스듬히 기대섰다."옷은."설화의 손이 멈췄다. 강현의 시선이 그녀의 티셔츠 자락으로 잠깐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젖어서 버렸어."설화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그를 쳐다봤지만 돌아오는 건 무료한 눈빛뿐이었다."버렸다고요?" "입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제 옷인데요." "그럼 다시 가져다줄까? 기름이 배고 빗물에 절어서 냄새나는걸."냉정한 말에 설화는 할 말을 잃었다. 맞는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2화 그 남자의 집 -2

    설화는 무심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티셔츠 하나만 걸친 다리 위로 서늘한 공기가 닿았다. 순간, 피부 위로 소름이 잘게 돋았다.이게 뭐야.원래 입고 있던 옷이 아니었다. 비에 젖어 무겁게 들러붙어 있던 낡은 티셔츠도, 축축한 청바지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나치게 큰 흰 티셔츠 한 장이 어깨부터 허벅지 위까지 헐겁게 걸쳐져 있었다.낯선 옷. 아니, 낯선 남자의 옷.설화는 반사적으로 티셔츠 자락을 움켜쥐었다. 원단에서 희미한 향이 났다. 이 방에 배어 있는 차갑고 건조한 스킨 향. 어젯밤 희미한 의식 너머로 스쳤던, 남자의 품에서 나던 향이었다.누가 갈아입힌 거지.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더 나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이미 가장 불편한 가능성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설화는 속으로 숨을 삼키며 급히 담요를 끌어올렸다. 손톱이 천을 파고들 만큼 세게 움켜쥐고 나서야, 간신히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이런 곳에 내가 왜…….불안이 발목부터 스며들었다. 낯선 침실, 지나치게 넓은 침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가구들. 어느 것 하나 자신 것이 아니었다. 설화는 한동안 침대 위에 굳어 있다가, 조심스럽게 발을 내렸다.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자, 집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난간 손잡이를 붙잡고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설화는 담요가 구명줄라도 되는 듯 몸에 바짝 감고 있었다.시야에 들어온 거실은 상상보다 훨씬 넓었다. 높은 천장, 반듯하게 놓인 가구들, 차갑게 빛나는 대리석 바닥. 통유리 너머 정원에는 밤새 내린 비가 아직 남아, 나뭇잎과 꽃잎 끝마다 투명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설화는 저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세상 불공평하네……."그 순간, 뒤쪽에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일어나셨습니까."놀란 설화가 고개를 돌렸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자세는 지나치게 단정했고, 시선은 예의 바르면서도 차가웠다."대표님께 방금 연락드렸습니다. 곧 오실 겁니다."대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10화 세상은 언제나 문을 닫았다.

    뭐가 이렇게 불편한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여자 하나가 방 안에 잠들어 있을 뿐인데, 그런데도 손끝에 닿았던 설화의 부드러운 살결과 입술의 촉감이 기어이 잔상처럼 달라붙었다.아주 오래전 닫아 둔 문 안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손잡이를 건드리는 것처럼.비가 내렸다. 회색 하늘 아래, 굵은 빗방울이 낡은 식당 문을 쉼 없이 때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산을 쓰고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그 작은 식당 앞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열 평 남짓한 식당은 젊은 여자와 어린 소년이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엄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9화 닫힌 문 안쪽에서

    설화가 차가운 기운을 느꼈는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더 둥글게 웅크렸다. 강현의 커다란 재킷 아래로 가냘픈 어깨가 파묻히고,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강현은 그 위태로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강제로 시선을 뚝 끊어냈다. 그런데도 의지는 배신하듯 다시 고개가 돌아갔다.확인하듯, 아니면 상황을 부정하려는 사람처럼.……이건 아니야.그는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눈물처럼 붙어 있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닿는 순간마다 감각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고, 단단히 손끝에 들어가 있던 통제력은 허무하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8화 비에 젖은 여자

    축 늘어진 설화를 품에 안은 채, 강현은 빗속을 가로질렀다. 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의식 없는 몸 하나쯤 옮기는 일에 버거움을 느낄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품 안에 닿은 체온이 신경을 거슬렀다. 그런데도 그 작고 힘없는 무게가 불쾌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강현은 설화를 조수석에 눕힌 뒤 안전벨트를 매어 주었다. 벨트가 가느다란 몸 위로 걸리는 순간,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마치 그 멈칫거림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 그는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뒷좌석의 재킷을 집어 들었다.축축하게 젖은 상체 위로 재킷을 덮어 주는

  • 우는 너를 보고 싶었다.   7화 비 속으로 걸어온 남자

    설화는 다리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빗방울이 머리카락을 타고 목덜미 아래로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손끝은 점점 차가워지고, 온몸이 젖어들수록 오한이 몸을 감싸 안았다. 가로등 불빛마저 거센 빗속에서 흐릿하게 번져 눈앞을 어지럽혔다.그 순간, 머리 위로 툭— 소리와 함께 암전처럼 검은 우산이 펼쳐졌다."그래서… 여기서 끝낼 생각이야?"낯설지만 낮고 묵직하게 깔리는 남자의 목소리. 설화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리며 천천히 남자를 응시했다.우산 아래 서 있는 남자는 빗물에 젖은 검은 셔츠 사이로 단단한 어깨를 드러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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