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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친구니까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07.09.2026 06:17:24

“팀장님, 저 진짜 혼자 해도 돼요.”

민지가 벌써 세 번째 같은 말을 했다.

로로는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알아.”

“그런데 왜 안 가세요?”

“나도 할 거 있어서.”

“아까부터 제 수정안만 보고 계시잖아요.”

“그게 내 할 일이야.”

오후 아홉 시.

사무실에는 절반도 안 되는 사람만 남아 있었다.

민지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로로가 마우스를 내려놓았다.

“민지야.”

“네.”

“이거 네 실수 때문에 수정하는 거 아니야.”

생산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규격이 변경된 탓이었다.

“그러니까 혼자 책임지려고 하지 마. 우리는 팀이야.”

“……네.”

“울지는 말고.”

“안 울어요.”

“눈 빨개졌는데?”

“모니터 오래 봐서 그래요.”

“그래. 그런 걸로 하자.”

로로가 피식 웃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한기태]

― 아직 회사야?

― 응. 거의 끝나

― 나도 조금 늦을 것 같아

― 생산팀이랑 확인할 게 남았어

― 기다릴까?

잠시 후 답장이 왔다.

― 먼저 들어가

― 너 오늘 피곤하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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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80화. 네가 빠진 자리

    새집에서 맞는 첫아침이었다.로로는 천장을 봤다.조용했다.옆의 숨소리도, 욕실 물소리도 없었다.“로로야, 커피.”기태와 살 때는 먼저 일어난 사람이 커피를 내리고 욕실을 먼저 쓰겠다고 싸웠다.그 생활이 싫었던 건 아니다.오히려 좋았다.“……좋아했으니까.”좋아했던 사람과 시간은 끝났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그래도 이제는 혼자 살고 싶었다.“커피나 먹자.”냉장고를 열었다.물, 맥주, 남은 치킨.“아.”탄산수가 없었다.혁의 타투샵에는 늘 있었다. 자기가 가니까.“사면 되지.”장보기 목록을 열었다.[탄산수][커피][계란][휴지][술]“완벽하네.”새 생활은 자기가 채우면 된다.점심시간.혁은 승철에게 전화했다.“걔 집은 어때.”― 안 궁금하다며.“집이 어떠냐고.”― 회사도 가깝고 방도 괜찮아. 작은방은 작업실로 쓴대.“작업방?”― 어.혁은 조용해졌다.그런 것도 몰랐다.― 로로가 주소 알려주지 말라고 했어. 나한테 캐묻지 마.“안 물어봤거든.”― 방금 물어봤잖아.혁은 전화를 끊었다.“씨발.”로로와의 채팅방을 열었다.[밥 먹었냐.]썼다가 지웠다.[집 괜찮냐.]또 지웠다.&ld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8화. 예전처럼은 안 됐다

    “야. 너 어제 장혁 만났지?”“너 내 뒤에 사람 붙였냐?”― 장혁이 말했어. 한로로 다시 왔다고.“걔가 내 얘기를 왜 너한테 해?”― 나한테 하지 누구한테 해. 우리 셋밖에 더 있냐?우리 셋.단톡방을 나온 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오늘 술 먹자. 혁이도 와.“장혁도 와?”― 왜 그렇게 빨리 물어봐?“죽고 싶냐?”― 일곱 시. 원래 가던 데.뚝.“장혁 씨도 온대요?”민지가 물었다.“너까지 왜 이래?”“사랑에 빠지면 성격 더 더러워지는구나.”“다 들려.”“들으라고 했어요.”오늘 안 가면 또 피하는 거였다.“야, 이 배신자 새끼야.”“아! 미친년아!”“그래서 왔냐?”“……왔지.”“그럼 앉아.”로로는 빈자리를 봤다.“혁은?”“왜 자꾸 혁이부터 찾냐?”“셋이 먹는다며.”“오고 있어.”그때 혁이 옆에 와 앉았다.“뭐가 이상해.”“얘.”“알아. 원래 이상해.”“씨발.”승철이 웃고 혁도 웃었다.스무 해 동안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9화. 부르지 않은 사람

    집을 구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회사와 가깝고, 햇빛이 잘 들고, 작업할 작은 방이 있을 것.네 번째 집에서 로로는 베란다 창을 열었다.바람이 들어왔다.“여기로 할게요.”“조금 더 보셔도 되는데요.”“아뇨. 여기가 좋아요.”소파도 식탁도 누군가의 흔적도 없었다.누구와 함께 살 집도 아니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로로 혼자 고른 집이었다.토요일 오전.“야, 미친년아. 이게 짐이 적은 거냐?”“적지.”“저건?”“술.”“장혁 불러.”로로의 손이 멈췄다.“싫어.”“왜.”“너 있잖아.”“장혁까지 부르면 사람이 둘이잖아!”“전화해봐.”“싫다고.”“걔랑 싸웠냐?”“안 싸웠어.”“근데 왜 안 불러.”“그냥.”부르면 올 테니까.예약이 있어도 끝내고 와서 짐을 들고, 탄산수까지 사다 놓을 인간.그래서 부르지 않았다.“침대 여기 맞아?”“응.”“창문 옆인데 추워.”“난 더위 많이 타.”“그건 장혁이고.”둘 다 멈췄다.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7화. 다시 네 앞에

    일주일이었다. 장혁을 피한 지. 정확히 말하면—도망친 지.로로는 책상에 턱을 괸 채 휴대전화를 봤다. 연락도 없는데 몇 번씩 같은 이름을 검색했다.[장혁]“미친년.” “네?”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본인한테 욕하셨어요?” “맞아. 병신 같아서.” “또 장혁 씨요?” “꺼져.” “좋아하는 거 알았으면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로로의 손이 멈췄다.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그걸 알아버렸다. 그럼 하진은?“아무것도 안 해.” “왜요?” “걔 여자친구 있잖아. 내가 남의 연애 깨도 돼?”기태와 사귀면서 혁과 잤다. 섹스와 마음은 별개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처음부터 분리된 적이 없었다.“나 이미 한 번 충분히 개같이 굴었어. 이번에는 안 그래.” “그럼 계속 피하게요? 20년 친구라면서요.” “말은 쉽지.” “쉬우니까 제가 하죠.”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었다. 스무 해까지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민지야. 나 오늘 칼퇴한다.” “데이트요?” “아니.” “그럼요?” “친구 보러.”퇴근 후 타투샵 앞에 섰다. 예전에는 문부터 열었다. 야, 장혁. 그거면 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혁을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었다.그때 혁과 시선이 마주쳤다. 혁이 들어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했다.“저 새끼가 진짜.”딸랑— 문을 열자 익숙한 종소리가 났다.“앉아 있어.” “오랜만에 온 친구한테 그게 끝이냐?” “일주일 가지고?” “일주일이면 오래지.” “스무 해 봤는데?”혁은 냉장고를 가리켰다. “탄산수 있어.”자기가 마시던 탄산수가 있었다. 하나를 열었다. 예전 같았다. 그래야 했다.마지막 손님은 아홉 시 넘어 나갔다.“밥 먹었냐?” “어.” “뭐 먹었는데.” “왜.” “안 먹었네. 거짓말할 때 대답부터 짧아져.” “떡볶이나 시켜.” “김말이?” “응. 순대는 내장 많이.”혁을 보며 로로는 다시 생각했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6화. 말도 안 되는 생각

    혹시.정말 혹시—한로로가 자신 때문에 저러는 거라면.장혁은 한참 휴대폰을 내려다봤다.그러다 피식 웃었다.“……지랄.”말도 안 됐다.한로로였다.자기가 소개팅을 나간다고 했을 때 옷까지 골라주던 여자.하진과 손을 잡았다고 하자 잘했다고 했고.정식으로 만나게 됐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신나게 축하했다.한기태와 데이트가 있다고 자신과의 약속을 취소하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여자.그런 한로로가—이제 와서 자신을 좋아한다고?장혁은 고개를 저었다.“미쳤네, 진짜.”잠깐이라도 기대한 자신이 병신이었다.로로는 그냥 변한 게 싫은 거다.이십 년 동안 자기 필요할 때마다 있던 놈이 갑자기 다른 여자 때문에 안 움직이니까.그게 낯선 거겠지.그 이상일 리 없었다.장혁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오빠.”하진의 목소리에 장혁이 고개를 들었다.“응?”“또 딴생각.”“아.”하진이 웃었다.“오늘 세 번째예요.”둘은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하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어요?”“아니.”“친구분?”장혁의 손이 멈췄다.하진은 금방 알아차리고 웃었다.“맞네.”“……티나?”“조금?”“미안.”“미안할 건 아닌데.”하진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로로 씨 맞죠?”장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남자친구랑 헤어졌대.”“아…….”하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많이 힘들겠네요.”그 말뿐이었다.왜 헤어졌냐고 묻지도 않았다.자기와 있을 때 다른 여자를 생각하냐고 화내지도 않았다.오히려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장혁이 눈을 들었다.“어딜.”“로로 씨한테.”“…….”“오래된 친구라면서요.”장혁은 헛웃음을 흘렸다.“오지 말래.”“싸웠어요?”“그런 것 같기도 하고.”“왜 싸웠는데요?”장혁이 대답하지 못했다.왜 싸웠지.생각해보면 시작은 로로였다.왜 변했냐고 했다.연락하면 안 된다고 하고.불러도 안 나오고.자기와의 관계도 끝냈다고.그러다—하진을 만나면서 자기와도 자자고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5화. 셋도 끝났다

    [버려.]메시지를 보낸 뒤.장혁에게서는 답이 없었다.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로로는 그날 밤 몇 번이나 휴대폰을 확인했다.“……병신.”답하지 말라고 밀어낸 건 자신이었다.그러면서 답장이 없다고 서운해하는 것도 자신이었다.결국 휴대폰을 침대 반대편으로 던졌다.며칠 동안 로로는 호텔에서 출퇴근했다.회사에서는 기태와 필요한 말만 했다.“2팀 수정안 전달드렸습니다.”“확인하겠습니다.”그뿐이었다.기태도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오히려 그래서 더 숨이 막혔다.민지가 눈치를 보며 커피를 내려놓았다.“팀장님.”“응.”“집은 알아보고 계세요?”“응. 주말에 몇 군데 보려고.”“혼자 가세요?”“그럼 누구랑 가.”민지가 입을 다물었다.예전 같으면 당연히 기태였을 것이다.아니면—로로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얼굴에 미간이 찌푸려졌다.장혁.“씨발.”“네?”“아무것도 아니야.”이제 생각하는 것조차 습관이었다.점심시간.휴대폰이 연달아 울렸다.한동안 조용했던 단체방이었다.[박승철][야][니들 언제까지 분위기 이럴 건데]로로의 손이 멈췄다.현재 방에는 셋뿐이었다.박승철.장혁.한로로.기태가 빠졌을 뿐인데—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이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박승철][기태랑 헤어진 건 헤어진 거고][우리 셋까지 이럴 필요는 없잖아]잠시 뒤 장혁이 답했다.[냅둬.][박승철][뭘 냅둬 새끼야][니도 요즘 존나 이상해]로로는 화면을 바라봤다.우리 셋.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익숙한 말이었다.어디를 가도 셋.술을 먹어도 셋.여행을 가도 셋.누가 연애를 해도 결국 돌아오면 셋이었다.그런데 이제—그럴 수 있을까.[박승철][이번 주 토요일 가게로 와][술이나 먹자][장혁][난 하진이랑 약속 있음.]로로의 손가락이 굳었다.아무 잘못 없는 말이었다.당연한 말.장혁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으니까.그런데도 가슴 한쪽이 욱신거렸다.[박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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