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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줄게
우주를 줄게
Author: 무취인

1. 의도치 않은 합석

Author: 무취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7 03:21:17

인천 국제공항에 이제 막 귀국한 하늘.

공항안은 연예인을 기다리는 여자팬들로 매우 북적였다.

아이돌 아스트릭스가 월드투어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하늘은 겨우 그 틈을 빠져나왔다.

택시를 타기 위해 게이트로 나섰다.

미리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불러 놓은 콜택시를 발견했다. 번호를 확인한 후, 택시 뒷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택시에 올라탄 순간,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쓴 길쭉한 사람이 대뜸 따라 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 옆자리에 올라타 택시 문을 닫는다.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게 쳐다 만 봤다. 택시 기사는 당연히 일행인 줄 알고 자연스럽게 차를 출발 시켰다.

"어, 어"

차가 출발하자 당황한 하늘은 기사님을 한 번 바라보다 옆자리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같이 좀 타고 가죠. 제가 좀 급해서.."

그는 눌러 쓴 모자를 한번 더 깊이 눌러 넣었다.

"뒤에 택시 많은데.. 기사님, 여기 일행 아닌데요"

기사님을 향해 손을 뻗자 갑자기 그가 뻗은 내 손목을 가볍게 쥐었다.

"제가 좀 따돌려 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이 거의 가려진 그의 눈을 마주쳤다.

하늘을 쳐다보는 눈빛에 반은 짜증이 서려있다.

눈이 깊고 진해, 하늘은 한번 흠칫. 했지만 이내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듯, 그가 잡은 손목을 밑으로 내려 빼내었다.

택시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둘을 힐끔 바라보았지만, 이내 이미 공항 도로에 올려진 택시를 어찌 할 도리가 없다는 듯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하늘은 다시 한번 그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는 답답한 듯 마스크를 슬쩍 내리고는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하늘의 눈을 마주했다.

마스크를 내린 얼굴은 어딘가 익숙했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늘은 아이돌 쪽은 영 관심도, 흥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은 이미 출발한 택시, 돌릴 수도 없다는 걸 깨닫고 빨리 마음을 접었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미련 두지 않는 것. 하늘의 성격이었다.

당연히 따라올 법한 놀란 반응 대신, 하늘이 무관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강우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웃음 뒤엔 황당함이 가득한 눈빛만 남았다.

"아니, 진짜로..모르는 건가?"

나를 모르는 사람이 흔한가?

우주는 무관심한 그녀의 표정에 살짝 짜증이 실린 목소리로 얘기하며 마스크를 다시 올려 썻다.

하늘은 옆자리 남자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급하게 넘겨야 할 업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연착 되는 바람에 마감 기간까지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하늘은 노트북을 꺼내, 무릎에 올려 전원을 키고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서류를 넘기는 하늘의 손길에 바쁜 기색이 역력하다.

강우주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슬쩍 옆을 곁눈질 했다.

자신에겐 전혀 관심 없이 노트북 화면만 응시하며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발끝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이상하게도 흥미로웠다.

"혹시 나 몰라요?"

국민아이돌, 강우주가 예상치 못하게 돌아온 무관심에 살짝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듯, 어이없는 말을 던졌다.

묻고 나서도 스스로 멋쩍었는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택시는 빠르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뭐 바쁘신 건 알겠는데, 그냥 궁금해서요."

업무를 정신없이 보던 하늘은 남자 쪽으로 살짝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하며 타자를 마저 쳤다.

"티비에서 본 것 같긴 한데, 잘은 모르겠는데..혹시 내가 알아야 해요?"

강우주는 잠시 말을 잃었다. 입꼬리가 씰룩이다가 이내 억지로 다물어졌다.

티비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는, 그 미지근한 대답이 생각보다 꽤 거슬렸다.

그는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모자를 고쳐 눌렀다.

" 아뇨, 알아야 할 의무는 없죠."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낮고 건조했다.

"그냥..보통은 좀 다른 반응이 나오거든요."

그러고는 괜히 창밖을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시선은 바깥을 향했지만 신경은 여전히 옆자리에 가 있는게 역력했다.

" 어디까지 가세요?"

하늘은 옆자리 남자의 계속되는 질문에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그리곤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회사로 가요. 마무리 할 업무가 남아서.."

그리곤 그닥 관심없고 궁금하지도 않지만 예의상 질문하듯 말했다.

"그쪽은요?"

강우주는 그녀의 옆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안경을 고쳐쓰며 화면에 집중하는 모습이 완전히 자기 세계에 빠져있었다.

예의상 묻는 게 이렇게 티가 나는 여자라니.

그는 피식 하고 짧게 웃었다. 짜증인지 웃음인지 모를 묘한 표정이었다.

"저요?" 잠깐 뜸을 들인 그는

" 아무데나요. 일단 여기서 따돌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는 뒷 유리 너머로 따라오는 차가 있는지 슬쩍 확인한 후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 했다.

"덕분에 잘 빠져나왔네요. 고마워요."

눈을 살짝 감으며 팔짱을 낀 그가 그녀를 향해 짧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의 말에 일에만 집중하던 그녀가 잠시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서류를 넘기던 하늘이 말했다.

"도망 다녀야 하는 이유가 있나 봐요?"

강우주는 '도망'이라는 단어에 실소를 터뜨렸다.

범죄자도 아닌데 도망이라니.

"뭐 도망 비슷한거죠. 인기가 많아도 피곤한 직업이라."

그는 턱을 한번 쓸며 흥미롭다는 듯, 하늘의 노트북 화면을 곁눈질 했다.

빼곡한 글자와 그래프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회사원들은 다들 그렇게 열심히 일해요? 택시에서도?"

하늘은 그가 하는 말에도 여전히 노트북 업무를 보았지만, 슬슬 그가 하는 질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중이었다.

"먹고 살려면요. 하기 싫어도 해야죠."

하늘은 문득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는 내 노트북을 힐끗 보고 있었다.

"근데 진짜 누구였더라. 가수에요?"

갑자기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강우주는 반사적으로 눈썹을 으쓱거렸다.

뭔가 반가운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능글맞은 표정으로 덮어버렸다.

"오, 이제 좀 궁금해지셨나?"

그는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려 얼굴을 제대로 드러냈다.

잘 다듬어진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번 더 눈썹을 으쓱거린다.

"강우주, 몰라요? 아스트릭스. 북한에서 오셨나."

반응을 기다리듯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곧 덤덤하게 마스크를 다시 올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은 그의 얼굴을 봤지만 꽤나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말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갸우뚱했다.

그러다 그가 강우주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문득 생각났다는 듯, 눈이 작게 올라갔다.

"아, 내 동생이 요즘 쫓아다닌다고 했던 그 강우주? 동생 때문에 몇 번 본 것 같긴 하네요."

한우주의 입가에 걸려있던 희미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요즘 한우주는 사생팬들과 공항까지 쫓아와 못살게 구는 기자들에게서 질릴 때로 질려버린 상태였다.

그녀의 말에 그는 신경이 날카롭게 긁혔다.

"쫓아다녀? 나를? 그럼 그 동샐 같은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도망가는 거 일수도 있겠네요."

그는 삐딱하게 걸터앉아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방금 전까지 능글 거리던 태도는 온데 간데 없이 그는 마치 불쾌한 것을 봤다는 듯 잠시 이를 꽉 물었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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