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Do you mind me sitting here?”
(“여기 자리 있어요?”)
작은 몸집의 소녀가 류가 앉은 야외 테이블에 맞은 편 자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고글과 넥워머에 가려져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큼은 맑았다.
“No, please.”
“Thanks.”
작은 소녀는 핫초코 한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더니,
자신의 백팩에서 작은 컵라면과 보온병을 꺼냈다.
그리고 마테호른 정상의 야외 테라스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핫초코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이내 사방으로 퍼지는 익숙한 매운 라면 냄새에, 류는 힐끔 소녀를 바라봤다.
그때 그녀와 시선이 어색하게 부딪혔다.
“Would you like a bite?”
(“한 입 드실래요?”)
“No, thanks”
(“괜찮습니다”)
“Well… Suit yourself… but are you sure?”
(“진짜 안 드실래요?”)
“Yep”
소녀는 아쉽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컵라면의 뚜껑을 열었다.
순간 바람을 타고 코 끝을 자극하는 강한 조미료 냄새에...
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스위스의 칼바람 속에서... 라면 냄새를 참는 건... 고문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미세한 흔들림을 포착한 걸까…
그때 소녀가 컵라면 뚜껑을 능숙하게 삼각형으로 접어 앞접시를 만들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발을 덜어, 그에게 불쑥 내밀었다.
거의 코앞까지 밀고, 들어온 라면에 류는 내심 당황했다.
분명 거절했음에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소녀의 뻔뻔함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가 건넨 라면이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는 무심결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See? Soup?”
(“괜찮죠? 국물도 드실래요?”)
소녀는 한술 더 떠 아예 컵라면을 용기째 그에게 내밀었다.
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낯선 이가 건넨 라면 용기를 받아 들고 남은 국물까지 들이켰다.
명문가의 장자로서,
평생 받아온 식사 예절 교육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Korean?”
(“한국인이세요?”)
“No, Japanese. Actually… Korean Japanese”
(“아니 한국인은 아니고… 한국계 일본인입니다”)
“그럼 라면은 못 참죠. 특히 스키 후에 라면은 진리니까”
류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의 의자 옆에 놓은 스키 장비들.
그리고 혼자였다.
산 아래로 내려가기까지는 상당한 체력이 필요한 코스였다.
이런 작은 여자아이가 그것도 혼자는 절대 불가능했다.
“여기서 스키로 내려 가려고 요? 혼자?”
“네”
그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아니… 그러다 응급 상황이라도 오면 어쩌려고?”
“그럼 그냥 죽죠. 뭐… 솔직히 뭐 그렇게 막 살고 싶을 만큼 인생이 재미있지는 않아서… 괜찮아요”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미련 없이 돌아서는 소녀의 태도에,
류는 급하게 벌떡 일어나 그녀의 백팩을 거칠게 붙잡았다.
“너… 안되겠다. 너 몇 살이야? 말해! 부모님 연락처!”
“죄송한데 저 그렇게 꼬맹이는 아니거든요. 그리고 저… 부모님 안 계세요”
류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진짜야? 그래도 Legal guardian (법적 보호자)은 있을 거 아니야”
“있긴 할 텐데… 제가 저... 밑에 떼 놓고 와서”
소녀가 작고 예쁜 손가락을 들어 저 멀리 산 아래를 가리켰다.
“뭐?”
“날… 팔아 먹으려고 하잖아요. 이 타국에서… 그래서 도망치는 중이에요”
류는 소녀를 잠시 가만히 살펴 봤다.
대략 열여섯... 어쩌면 더 어릴지도...
고글을 썼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인형같이 예쁜 미소녀...
그리고 스키복을 입었음에도 아주 가냘픈 몸의 선이 두드러졌다.
서양 변태들이 환장하는 로리타 신드롬에 적합한 외모.
불길한 직감이 스친, 류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 현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소녀가 날렵하게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뭐하는 거에요?”
“유괴 범죄 신고!”
“아… 아저씨 되게… 진지하신 편이시구나… 죄송해요. 농담이었어요”
“진짜야?”
“그게… 어느 정도는?”
“어?”
“아니에요. 그런 게 있어요. 그럼 저 가도 되죠?”
“아니! 혼자는 절대 못 내려 가. 대신 산 아래 내려갈 때까지 너… 내 옆에 딱 붙어서 내려와. 내 시야에서 없어지면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
“네? 네…”
소녀는 풀이 죽은 얼굴로 그를 따랐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의 수행원들을 보고 오해한 아이가 다시 도망이라도 칠까 싶어,
그의 주변에 대기 중인 수행원들의 접근을 조용히 막았다.
대학교 스키선수였던 류에 비해,
한참 실력이 모자란 소녀는 숨을 헐떡이며... 그를 따라 내려왔다.
그러다 고꾸라 넘어지기도 했다.
몇 번째인지 모를 슬랩스틱에,
류가 한숨을 쉬며 손을 내밀자... 소녀가 그의 손을 짜증스럽게 쳐냈다.
그리고 더 이상 못 가겠다는 듯 눈밭에 누워 버렸다.
“야! 꼬맹이! 이런 실력으로 여기를 스키로 내려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거야? 그것도 혼자? 너… 나 아니었음 진짜 조난 당했어. 암튼 엄살 그만 피고 일어나!”
그는 다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소녀가 그의 손은 잡는 척 하다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당겨 넘어 뜨렸다.
그리고 그의 높은 무게중심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그 역시 소녀의 바로 옆 눈밭 위로 보기 좋게 나자빠졌다.
“야!”
“딱 5분만 요. 딱 5분만 쉬고 일어날 게요”
그녀의 애원하는 목소리에, 류는 결국 헛웃음을 터뜨리며 몸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누운 채, 차가운 눈의 감촉을 받아들였다.
소녀는 쓰고 있는 고글을 벗어 던지고 눈을 감았다.
“꼬맹이! 너 이거 완전 사기인 거 알지? 라면 한입 얻어 먹고 이게 무슨 고생이냐?”
그의 툴툴거리는 농담에 소녀가 깔깔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하얀 설산의 태양 빛이 고스란히 반사된 황금빛 눈동자를...
보석같이 반짝이며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순간 류의 심장이 멈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는 넋을 잃은 듯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죄송해요.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아저씨 따라오길 잘 한 것 같아요. 안 그랬음 저… 진짜 저승사자와 하이파이브 할 뻔 했어요”
“왜 죽어도 괜찮을 만큼 세상이 시시하다며? 겁 나?”
“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음… 그냥 팔려 가는 게 훨씬 좋을 뻔 했네요. 아저씨 덕분이에요”
“하하하… 야! 근데 아직 서른 살도 안 됐는데 아저씨 소리는 좀… 억울한데!”
아저씨라는 호칭이 억울하다는 그의 말에,
유진은 그를 빤히 바라봤다.
190cm에 달하는 압도적인 피지컬...
조각처럼 정교하게 빚어진 이목구비에, 어딘지 모르게 예민하고 차가운 인상,
하지만 그 속에 빠져들 것만 같은 깊고 아득한 눈매...
잘생겼다는 세속적인 표현보다는...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남자였다.
무심코 자신을 바라보는 그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설산의 한기마저 단숨에 녹여버릴 것 같은 낯선 열기였다.
“하기사 그쪽… 외모도 아저씨는 아니긴 해요”
“어쭈… 그쪽?”
“아저씨 싫다면서 요”
“됐다. 맘대로 불러라. 일어나! 이제 진짜 내려가야 돼!”
첫 회는 재밌으셨나요? 독자 여러분, 이곳에도 떡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떡밥은 이 단어가 상대에게 어떻게 들리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떡밥은 회수 되는 회를 다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계속 됩니다. 그래도 예시를 들면, 3회 20회 46회 47회에서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계속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독자들을 위해서 스포일러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의 유진과 요스케의 긴 여정을 함께 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아픈 유년시기를 보낸 유진과 오만했던 나쁜 남자 요스케, 그리고 유진과 비슷한 처지였던 어쩌면 더 외로웠을 또 다른 요스케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독자 여러분들을 설득했기를 조심히 바라봅니다.이제 세 사람의 가슴 아픈 피폐 로맨스는 여기서 막을 내립니다.보시다시피 꽉 막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지어서 이제는 이번 세계관 속에서는 잘 살거라 바라며 마음 편하게 보내 주려고 합니다.*아시는 독자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제 소설들 모두 같은 주인공, 유진과 요스케의 이야기입니다.혹시라도 두 사람의 다른 세계관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제 다른 작품들 속에서 이 두 사람을 다시 만나실 수 있습니다.그리고 혹시라도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과 비슷한 느낌의 애절 피폐 후회남 로맨스를 찾으신다면, 무조건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을 추천 드립니다.장담컨대,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보다 조금 더 많이 애절 맴찟 피폐물이 될 겁니다.또한 새 소설도 11월 초에 공개되오니, 기대해 주세요.*다시 한번 제 작품을 즐겨주신 독자 여러분께 큰 절 드리며 끝내겠습니다.다른 작품에서도 만나뵙고 소통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
그 외설적이고도 헌신적인 고백은, 요스케의 이성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유진은 더욱 속도를 높여 그를 최고조의 황홀경으로 사정없이 밀어붙였다.이내 그의 허리가 굳어지며 절정의 꼭대기에 도달하는 순간.그의 거대한 중심을 자신의 목구멍 깊은 곳까지 단숨에 받아들였다.“하윽……! 으윽, 유진아……!”그의 가장 뜨겁고 묵직한 줄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유진의 목구멍 안쪽으로 엄청난 양의 뜨거운 생명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유진은 밀려오는 비릿하고 뜨거운 액체를 단 한 방울도 빠짐없이 기꺼이 목 뒤로 삼키며 깊게 빨아 마셨다.지독한 절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요스케의 호흡이 거칠게 이어졌다.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얼굴로…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내를 바라보며…요스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만져주었다.유진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로…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따뜻한 스팀 타월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방금 전 자신이 삼켜낸 남편의 중심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보물을 다루듯, 지극히 부드럽고 경건하게 닦아내기 시작했다.따뜻한 수건의 온기가 요스케의 신체에 닿았고.유진은 마지막으로 붉게 가라앉은 그의 중심부 머리 끝에 잔잔하게 입술을 맞추며 정성스러운 애무의 마침표를 찍었다.요스케는 자신의 아래에서 완벽하게 순종하면서도…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이 사랑스러운 아내를 눈물겨울 만큼 벅찬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슬립 자락을 정리하며 생긋 미소 지었다.“빨리 서요스케 끝내고 침실로 와요. 나…… 지금 당신 미치도록 필요해.”유진이 서재 밖으로 걸어 나갔다.하지만 혼자 남겨진 요스케는 더 이상 그 어떤 재무보고서의 숫자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이미 온 몸의 피가 아내가 남긴 잔상으로 미친 듯이 역요스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쾅-!’요스케는 서요스케를 내팽개치고 곧바로 침실 문을 부수듯 열고 들어갔다.이미 침대 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누워 자신을 기다리던 유진을,
“커피 말고, 레몬 모과 차 진하게 해서 가져왔어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카페인 말고 비타민으로 정신 차리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서요.”늦은 밤 적막이 가라앉은 도쿄 러브하우스의 서재.문이 열리며 부드러운 실크 슬립 차림의 유진이 들어섰다.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레몬 모과 차와 수제 그래놀라 볼,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스팀 타월이 들려 있었다.밤샘 작업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재무보고서를 검토하던 요스케의 눈가에 비로소 부드러운 온기가 돌았다.“고마워. 오늘 아무래도 검토해야 할 서요스케가 많아서 좀 늦을 것 같으니까, 유진아 넌 먼저 침실 가서 자.”“안 돼요. 같이 잘 거야.”유진은 찻잔을 데스크 한구석에 내려놓더니,망설임 없이 데스크 의자에 앉아 있는 요스케의 묵직한 허벅지 위로 부드럽게 걸터 올라앉았다.그녀는 요스케가 보던 복잡한 숫자의 재무보고서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렉스 그룹 제왕의 완벽한 파트너인 유진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수재 변호사이자 CPA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고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요스케는 품 안 가득 안겨드는 유진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깊숙이 파묻었다.깊은 호흡으로 아내의 향기를 들이마시는 그의 입술이 유진의 하얀 목덜미와 매끄러운 어깨 라인을 따라 부드럽게 키스를 남겼다.“이번 가전 사업 신제품은 제조 비용이 너무 큰데요? 이익구조가 리스크에 비해 너무 약해요. 차라리 핵심 메인 칩 공정만 빼고, 나머지 제조는 전부 외주(OEM)로 돌리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비즈니스에 대한 예리한 유진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이미 요스케의 이성은 아내의 나긋나긋한 살결에 녹아내린 지 오래였다.요스케는 대답 대신…유진의 가느다란 허리를 터질 듯이 끌어안으며 슬립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그녀를 은밀하게 애무하기 시작했다.허벅지 안쪽을 자극하는 남편의 억센 손길에, 유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보고 있던 보고서를 책상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황금빛 눈동자
겨우 6일이었다.자신의 유일무이한 구원이자 숨통인 아내 서유진과 육체적으로 떨어져 지낸 지.고작 144시간에 불과했다.하지만 요스케에게 그 시간은 지옥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었다.유럽 출장의 모든 스케줄을 칼같이 짓밟고 일주일을 채우지 못한 채, 그는 6일 만에 도쿄로 돌아왔다.제정신으로는 단 일 분 일 초도 파리의 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매 순간 모든 공기와 풍경이……온통 서유진이라는 지독하고 관능적인 환영으로 가득 차, 사내의 숨통을 사정없이 조여대며 발작을 일으키게 만들었다.콰당, 소리를 내며 도쿄 러브하우스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요스케는 재킷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침실로 직행했다.은은한 간접 조명 아래 거대한 침대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다 지쳐 알몸으로 곤히 잠든 유진의 나신이 눈에 들어왔다.요스케는 이성을 잃고 침대 위로 뛰어들어 잠든 그녀를 그대로 끌어안았다.“으음…….”그 순간 유진의 가슴팍과 목덜미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복숭아 향이 제일 먼저 그의 후각을 사로잡았다.파리의 거친 아로마 향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오직 서유진만의 살 냄새.찰나에 요스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다가, 이내 얼음처럼 얼어붙었던 온몸의 신경이 거짓말처럼 편안하게 풀려나갔다.참을 수 없었다.요스케는 거친 손길로 자신의 셔츠와 바지를 찢어발기듯 벗어던졌다.유진과 자신 사이에는 단 하나의 실오라기조차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마침내 아무런 방해물 없이, 단단하고 뜨거운 그의 가슴과 허벅지가 유진의 살결에 빈틈없이 맞닿았다.요스케의 단단한 피부 위로 느껴지는 유진의 촉감은 마치 불길에 녹아버릴 듯이 말랑하고 부드러운 아기 살결 그 자체였다.지독한 출장 피로를 단숨에 씻어내리는 나른한 평온이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그의 묵직한 무게감과 거친 손길에, 유진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맑고 투명한 황금빛 눈동자가 남편을 담아냈다.“……왔어요? 요스케, 저녁은요?”잠에 취해 가라앉은 유진의 목소리가 애
“KL에 투자금 얼마 더 주면… 너 다시 내 맘대로 내 일정에 묶어둘 수 있지? 당장 렉스 법무팀 시켜서 계약서 다시 쓰라고 할까?”“ㅎㅎㅎ 또 돈으로 날 사려고요, 회장님?”“응. 돈이라도 써야지 별수 있어? 내가 너 없으면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는데. 내가 몸값이 얼마짜리인데… 내 하루 스케줄 꼬이는 게 얼마나 큰 손해인지 알아? 솔직히 그냥 투자금 던져주는 게 나한테는 훨씬 싸게 먹혀.”오만하고도 거침없는 제왕의 투정에 화면 너머의 그녀의 목소리가 기묘할 정도로 낮고 진득하게 가라앉았다.“한동안 당신 그렇게 잘난 척하면서 오만하게 구는 거 못 봐서 좀 그리웠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아무래도 난 당신에게는 완전히 M 성향인가 봐요. 지금 너무…… 당신이 보고 싶어졌어요, 요스케.”유진의 은밀한 고백에 요스케의 하반신 핏대가 순식간에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침구 시트를 쥔 그의 커다란 손에 힘이 들어갔다.“너 혹시…… 지금 젖었어?”“네. 완전히요……”스마트폰 화면 속, 도쿄의 집무실에 있던 유진이 가만히 문을 잠그더니 이내 카메라를 제 상반신으로 비추었다.그리고 입고 있던 화이트 실크 블라우스의 단추를 위에서부터 거침없이 풀기 시작했다.실크 원단이 양옆으로 벌리며, 하얗고 매끄러운 한쪽 가슴과 이미 열기로 잔뜩 부풀어올라 단단해진 핑크빛 유두를 화면 가득 선명하게 드러냈다.“하아…… 나, 당신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가슴이 벌써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어요. 그리고 당신 내 곁에 없는데도 자꾸 골반 안쪽이 벌어져서 아파요. 당신 생각만으로도 내 몸이 당신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당신을 내 몸 안으로 받아들이려고, 혼자서 자꾸 문을 열고 아래를 적셔요.”“아…… 아…… 유진아…… 서유진…… 미치겠어……”화면 속 유진의 벗겨진 가슴과 외설적인 고백에, 요스케는 짐승 같은 신음을 내뱉으며 자신의 파자마 바지를 거칠게 풀어내렸다.터질 듯이 팽창한 그의 신체가 어둠 속에서 거대한 고개를 들었다.“네 안에 들어가고 싶어. 널 당장
일주일로 예정된 유럽 출장의 겨우 셋째 날이었다.세계적인 정재계 인사들이 총출동한 ‘파리 기업인의 밤’ 연회장.불빛이 화려하게 부서지는 리츠 호텔의 대연회장 테이블 위에는 미슐랭 셰프가 심혈을 기울여 내온 최고급 디너 정찬이 서빙되어 있었다.트러플과 진한 버터 향이 가득한 스테이크가 코앞에 놓였지만, 요스케는 와인 잔만 만지작거릴 뿐 정찬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주변의 외국 기업인들이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으나, 요스케의 머릿속은 온통 전혀 다른 이질적인 풍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아… 유진이가 집에서 해줬던 그 칼칼하고 맑은 소고기국에다가, 알싸한 마늘 소스 듬뿍 올려서 먹고 싶다. 거기에 푹 익은 갓김치 한 점 올리면 딱인데.]요스케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이런 느끼한 버터 덩어리 스테이크 말고, 지난 주말에 제주에서 유진이가 입에 넣어주던 그 고소한 잣소스 너비아니 구이가 미치도록 그리운데…… 배는 고픈데, 입맛이 아예 없네.]시차 적응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줄줄이 잡힌 숨 막히는 미팅 스케줄.요스케는 완전히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화려하지만, 지독히도 넓고 쓸쓸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지독한 두통과 피로감 속에서, 그는 오직 숙면을 취하겠다는 일념으로 욕실 서랍에 넣어둔 수면제 한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켰다.그리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하지만 특유의 포근한 거위 털 침구도, 방 안을 은은하게 채우는 최고급 아로마 향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뒤척이면 뒤척일수록.품 안에 들어와야 할 유진의 부드러운 살결과 달콤한 살 냄새의 부재가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깨웠다.겨우 얕은 잠과 가위에 눌리기를 반복하다가 요스케는 결국 새벽녘에 눈을 완전히 떠버렸다.땀에 젖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린 그가 협탁 위의 휴대폰을 확인했다.도쿄는 지금 막 정오를 지나고 있을 시간이었다.요스케는 참지 못하고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신호음이 채 두 번을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그리운
“아빠…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KL 그룹 서회장이 스위스 기숙학교 교장실에 나타났다.10살 때부터 다닌 이 학교에 아버지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열여섯의 유진은 제 눈을 의심했다.“우리 딸 보고 싶어서 왔지. 진작에 와 봤어야 했는데… 네 엄마 죽고 회사가 엉망이어서 수습하느라 아빠가 정신이 없었잖니? 이해하지?”“네…”“아빠가 말은 안 했지만… 알아서 척척 잘해내는 우리 딸 소식 들으면서 뿌듯하고 힘이 많이 됐다. 고맙다. 우리 착하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가 건네는 다정한
파리 리츠의 화려한 야외 연회장.'아시아 기업인의 밤'황금빛 조명 아래......류는 아시아의 내로라하는 신흥 부호들에 둘러싸여 있었다.하지만 정작 그는 그들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었다.그리고 그의 시선이 연회장 한편의 무대에서 흐르는 감미로운 첼로 선율로 향했지만,끊임없이 밀려드는 비즈니스 인사들 탓에, 온전히 연주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공연이 끝나고 장내가 소란스러워질 무렵.KL 그룹의 회장 부부가 득달같이 류의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겉치레뿐인 정형적인 대화가 몇 마디 오갔다.“공연 잘 보셨어요?”“아…
유난히 까만 밤.별빛마저 없는 유난히 칠흙 같은 제주도의 밤.유진은 프라이빗 빌라 2층 마스터 베드룸 침대 끝에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아무리 네가 내 투자금의 담보라고 해도… 난 최소한 네가 침대에서 날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는지 정도는 봐야겠어… 그러니 어차피 할 거… 빨리 끝내 버리는 게 낫잖아”*무성의한 결혼 통보도 모자라, 그가 그녀에게 첫날밤을 요구했다.순간 유진은 머리 속이 온통 하앴다.이 밤을 피할 수 있는 변명도 달아날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그저 이런 억울한 상황에 자신을 처 박은 아버지를 향한
‘생일 축하해’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시야를 가득 채운 화려한 선물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유진은 작은 산처럼 쌓여 있는 상자들 맨 꼭대기에 놓여 있는 작은 카드를 집어 들었다.감정이라곤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무미건조한 한 줄의 축하 인사.꼬박 5개월 만에 날아온 그 남자의 메시지였다.직접 찾아오는 정성과 수고를 들이기보다는,이렇게 압도적인 돈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게 훨씬 편하고 익숙한 남자.물론 그와는 태생부터 장거리 만남이었으니,그가 평소처럼 일본 본사에 머물고 있었다면 백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