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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그 사람이라면

Autor: 랑끗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7-17 10:51:28

“허억-.”

그날의 치욕과 절망에 고스란히 잠긴 채로 인협이 상체를 벌떡 세우고 숨을 헐떡거렸다. 

문의 반이 반투명한 유리로 된 철문 너머로부터 비춰 들어온 가로등 불빛과 달빛에 땀에 젖은 인협의 얼굴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아직 깊은 새벽이었다. 

“또 개같은 꿈-.”

그날 이후로 몇 번째 반복되는지도 모를 지독한 악몽이었다. 인협은 옆에 두었던 페트병을 들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해갈되지 않은, 타는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다시 잠들기 위해 술이 간절했으나, 이 늦은 새벽 시간에, 이 외딴곳에서 술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후우-.”

떨리는 한숨을 토하듯이 내뱉은 인협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차게 젖어있었다. 

악몽을 꾸고 나면 누군가가 제 목을 조이듯이, 꼭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거친 숨을 겨우 내뱉으며 숨을 이어가던 인협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게임 세계에서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섰던 인협은 그렇게 서서히 팀 내에서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월드컵 경기 후, 모든 비난의 화살이 인협을 향했으나 그는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버텨냈다. 

부모님의 사업이 기울어져 있었고 그로 인해 그가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선택이었다. 

그리고는 월드컵 경기가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케이비 팀의 승부조작 논란이 터졌다. 

처음에 익명의 폭로 글. 작은 불씨로 시작된 그 의심은 큰 불길로 번져나갔다.

순간순간 이상함을 느꼈던 때와 단순히 따돌림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승부조작의 증거였다. 

팀 리더인 기태와 감독과 코치진 몇 명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대화를, 목소리를 낮춘 채로 나누고 있었을 때. 

인협을 제외한 모두가 짠 듯이 연습 때와는 다르게 행동했을 때. 

그 폭풍 속에서 스스로의 결백함을 아는 인협은 드디어 권선징악의 때가 왔다, 하며 기쁨 속에서 그것을 관망하기로 했다.

기태와 감독이 인협을 승부조작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기 전까지는.

‘나인협 선수,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뭔가 이상했었어요. 중요한 경기 때마다 연습 때 맞췄던 것과는 다르게 행동했고요.’

‘감독으로서 그런 점이 보였을 때 더 세심하게 살펴야 했는데, 면목이 없습니다.’

겸허히 대신 책임을 지기로 한 리더들처럼 고개를 숙인 둘의 증언에 모든 비난이 인협에게로 향했다. 

다급해진 인협이 몇몇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와서 성실하게 임했으나,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대응하기 시작한 그의 서툰 진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거짓 변명으로 비쳤다.

소수는 그를 믿어주었으나, 그 소수마저도 다수에게 인협과 함께 싸잡아 욕을 먹을 뿐이었다. 

게다가 케이비 팀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파기를 당한 후, 인협은 팀 전체로부터 고소를 당하기 싫으면 팀 명예를 그만 실추하라는 통보를 팀 감독인 정현으로부터 받았다. 

억울함에 저도 싸워봐야겠다 싶어서 인협은 집에다가 그간 선수 생활을 하며 모아두었던 돈을 좀 달라고 했으나, 그에게 돌아온 건 곤란한 얼굴의 부모님이 핑계뿐이었다. 

‘미안하다, 인협아. 그간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웠잖아-.’

부모의 빚을 갚아주고도 적어도 몇억은 쌓여있을 줄 알았더니, 밤낮 제대로 자지도 못하며 훈련해 2인자의 자리에 오른 게 모두 허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한순간에 와르르. 수년간 온 힘 다해 쌓아 올렸던 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가족, 팀, 그리고 팬들에게 배신당한 인협은 걷잡을 수 없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밤마다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이 비참한 삶이 끝나버렸으면, 하고 늘 기도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알아주겠지,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며 미련할 정도로 성실함과 묵묵함으로 바른길만 걸어오던 그는 그렇게 그를 지탱해 주던 믿음을 일순간에 잃고 말았다. 

‘인협아,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거야. 진실되고 성실하게.’

소원리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살 적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가치관은 다 미련한 허상일 뿐이었다. 

어쩌면, 소원리 같은 구닥다리 시골에서만 적용되는 삶의 가치관일지도 몰랐다. 

정의가 승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버린 후, 인협은 서울 자취방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서 매일을 꾸역꾸역 살아냈다. 

죽지 못해 사는 꼴이었다. 

커튼 틈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미세한 햇빛을 보고서 낮인지 밤인지 겨우 구분하며 그는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연명했다. 

배고픔만 가실 정도로, 아니 사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배를 채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술기운에 의지해 괴로움과 그를 향한 모든 미움들을 무디게 만들었다.

미련한 스스로를 향한 미움과 세상을 향한 미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지난 반년을 버텨왔던 그였다.

그렇게 은둔하며 매일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던 그에게 누군가가 생각을 따로 불어넣기라도 한 듯이, 소원리의 한 자락이 불쑥 떠올랐다. 

밝은 햇살 아래 쟁쟁한 푸르름을 자랑하던 마을의 풍경이, 시든 풀처럼 보잘것없는 삶을 겨우겨우 버텨내는 인협의 삶에 새로운 생명이라도 될 것 같다는, 아무 근거 없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렸을 적에는 지긋지긋하고 짜증 나서 당장 떠나고만 싶던 시골이 돌아가야 할 고향처럼 그에게 일순간 떠올랐다. 

그래서 따스함과 따분함이 공존하던 그곳으로 인협은 돌아온 것이었다. 

‘레브님, 그런 분 아닌 거 알아요.’

언젠가 죄인처럼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던 길. 

우연히 인터뷰 장소 앞에서 마주쳤던 부동의 1위 카이 선수이자, 김우겸이 그에게 불쑥 말을 걸어왔다. 

한때는 매우 가까워 손이 닿을만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제 아득할 정도로 멀어 보였다. 

‘……’

모두에게 비난만 받고 있었을 때였다. 

누군가의 신뢰의 말은 그 누구보다 그것이 필요했던 인협의 마음을 잠시 어루만졌으나, 이내 그는 피어오른 희망을 스스로 즈려밟고 말았다.

그 누구에게도 희망 갖지 마. 네가 다칠 뿐이야, 라고 되뇌며 세상이 상처 입히기 전에 그는 스스로를 아프게 찔렀다. 

‘승부조작으로 얻어낸 승리는 싫어요. 다시 복귀해서 정정당당하게 붙어요, 우리.’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채로 제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인협을 향해 우겸이 재차 말을 붙였다. 

인협은 그 당시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비관적인 마음으로 덮어버렸다. 

저 사람도 위선자일 수도 있어. 아무도 믿지 마. 

그는 그래서 모자를 더 푹 눌러쓰고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도망치듯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때의 인협은 세상의 미움을 버텨내며 그것에 맞서 싸울 힘조차 없었기에. 

“……….”

그때 속는 셈 치고 손을 한번 잡아볼 걸 그랬나? 

그 이후, 저보다 더 간절해 보이던 우겸의 음성이 종종 그의 귓가를 울리고는 했다. 

미친 척하고 한번 믿어볼 걸 그랬나? 

또다시 피어오른 희망에 인협은 눈을 꼭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희망이 피어오른 만큼 마음이 높이 날아오르면, 추락이 더 클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픔은 고스란히 인협의 몫이었다. 

“아무도 믿지 마.”

그날 이후로 자주 되뇌던 새로운 가치관을 인협은 다시 한번 읊조렸다. 

성실과 진실,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관은 이제 그의 삶 속에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인협은 자리에서 일어나, 잡념을 지워내기 위해 새벽에 애꿎은 욕실 청소를 시작했다. 

힘을 주어서 더러움을 닦아내다가 보면, 그런 보잘것없는 행위에 스스로가 아직은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걸 증명받는 거 같아서 잡념을 지워내기에 좋았다. 

쓱싹쓱싹. 

솔로 곰팡이 핀 구석구석을 문지르는 소리가 어디부터 고쳐야 할지 모를 낡은 집안을 울렸다.

***

토요일 이른 아침.

“어제 김 씨네 불 켜져 있더라.”

“글쎄 말이다, 언니. 김 씨네 딸내미 부부 왔나? 그 집에 외동딸 하나 있었다잖아.”

이른 아침. 인협의 바로 옆집. 

넓은 밭을 사이에 둔 집이었지만, 어젯밤 잠들기 전 긴 시간 동안 버려져 깜깜하기만 하던 창문에 불이 들어온 걸 본 갑순과 복란이었다. 

두 사람은 집의 대청마루에 한 다리만 올리고 비스듬히 앉아서 어제 뒷산에서 따온 나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갑순과 복란은 한 살 차이로, 둘 다 80대 초반에 비슷한 시기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는 넓은 기와집에서 함께 사는 중이었다. 

갑순은 투박한 시골 할머니 그 자체였다. 잘게 파마로 만 짧은 회색 머리에 왜소한 체구에 비해 거칠고 두꺼운 손마디. 

오랜 밭일로 인해 굽은 등과 햇빛에 잔뜩 그을린 주름진 피부. 

스타일이라고는 없는 몸빼바지와 얇고 넉넉한 사이즈의 삼베옷. 

그녀가 견뎌낸 거친 세월이 새겨진 주름살은 삶에 대한 애환의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그 맞은편에 앉은 복란은 정반대였다. 

고향인 소원리에서 결혼 전까지 살다가 대구에서 살았던 복란은 소원리에서 제일 가는 멋쟁이 할머니였다. 

온갖 밝은 빛으로 물든 스카프를 목에 가벼이 두른 그녀는 연분홍빛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가죽 샌들을 신고 있었다. 복란의 허리는 꼿꼿했다.

연분홍빛 입술에 고운 화장까지 한 복란은 단아한 단발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브로치나 머리핀까지 해서 그녀는 그녀만의 스타일링을 하고는 했다. 

고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주름은 졌지만 기다랗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날쌔게 움직이는 편이었다. 

“아니면 인협이나 인섭이가 왔는가 보지.”

“거기는 또 누군데?”

“김씨네 손주들이잖아. 어릴 적에 여기서 몇 년 살았었어. 부용이네 사업이 쫄딱 망해가지고 한동안 여기 있었어.”

“그래?”

나물을 다듬는 그들의 손길이 수다와 함께 점점 더 빨라졌다. 

“안녕하세요-!”

그때,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에스더가 대문 밖에서 인사를 했다. 

“아이고, 황 선생님이 무슨 일이래.”

“그러게.”

익숙한 음성에 복란이 단숨에 걸어나가 대문을 열어주었다. 늘 열려 있어 사실 형식적인 문일 뿐이었다. 

끼이익. 녹슨 철문이 열리고 밝은 얼굴의 에스더가 소쿠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지난번에 주셨던 오이랑 애호박 잘 먹었습니다.”

“아휴, 또 뭘 이런 걸 다-.”

소쿠리 위에는 전병과 약과가 여러 개씩 올려져 있었다. 

“지난번에 읍내에 나갔을 때 사 왔어요. 할머니들 좋아하시잖아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

“그런 거 담지 말라고 지난번에 이야기했는데!”

갑순이 굽은 허리로 걸어서 보행기를 잡고 에스더와 복란을 향해 걸어왔다.

“그래도요. 빈손으로 오는게 제가 섭섭해서요.”

갑순은 애정이 담긴 손으로 에스더의 팔을 툭 쳤다. 

일평생 시골에서 거친 삶을 견뎌왔던 그녀만의 투박한 애정 표현이었다. 

“그래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오는 길에 김 씨네 집에 누가 와있는지 봤어?”

“아-.”

그 싸가지. 

어제의 만남을 떠올린 에스더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으나 이내 표정 관리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저랑 비슷한 또래의 남자분이 계시던데요? 안경 끼고 성격은 좀 까칠해 보이고-.”

“인협이겠네. 그 집 첫째 손주가 안경을 썼었거든.”

“아, 손주분을 아시나 봐요?”

아하, 이름은 인협이구나. 어차피 이렇게 다 들통날 걸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구냐고. 

에스더는 갑순의 말에 은근한 희열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래, 이전에 걔네 부모님 사업이 망해서 한동안 외할머니인 김 씨네서 지냈었어.”

“그렇군요.”

“열다섯인가, 여섯인가 즘에 이 마을에 엄청 이골이 난 채로 지 부모님이랑 떠나더니, 또 돌아왔나 봐?”

갑순은 의아해하며 혼잣말에 가까운 설명을 마쳤다. 

“그래, 얼마나 이골이 났던지 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장례치를 때도 안 왔다던데.”

“네?”

그 정도인 사람이었나? 

자기를 몇 년 동안 키워줬던 할머니 할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 안 할 만큼 냉혈한인가.

에스더는 날이 잔뜩 서 있던 인협을 떠올리고는 갑순의 말을 어느 정도 납득했다. 

그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인성일 수도. 

“아무튼, 그 녀석 뭔지는 몰라도 뿔이 단단히 나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뿔이 아주 단단히 나 있기는 하더라고요, 라고 고자질하려던 에스더는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런 시한폭탄 같은 사람을 괜히 들쑤셨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조심할게요.”

앞으로 깊이 엮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에스더는 속으로 인협과의 만남을 최소화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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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웰컴 투 소원리   70.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강릉의 어느 오래된 경양식 돈가스집. 봉길과 유진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때요? 입에 좀 맞아요?” “네, 맛있어요.” 유진의 소개로 오게 된 곳이었다. 봉길의 얼굴에 깃든 아쉬움을 포착한 유진은 피식 웃었다. “나는 여기 되게 좋아하는데.” “네?” “첫 데이트인데, 더 좋은 곳으로못데려가서 지금 미안해하는 거 아니에요?” “엇….” 자신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봉길을 본 유진은 쿡쿡 웃었다. “나한테는 여기가 가장 좋은 맛집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식당이라, 봉길 씨랑 한번 와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요?” “네, 다른 곳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나한테는 가장 특별한 곳이에요.” “아….” “그러니까, 첫 데이트다운 데이트, 잘 즐겨봐요.” 유진의 말에 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나는 돈가스 진짜 좋아하는데, 여자분들은 파스타집 이런 곳을 데이트 장소로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어디서요? 인터넷에서요?” “네. 연애를 따로 배울 곳이 없다 보니, 이 나이를 먹고도 힘을 빌릴 수 있는 데가 인터넷뿐이네요.” 봉길은 면목이 없는지 시선을 내리깔며 고해성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유진은 그런 봉길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서툰 모습에서도 절로 묻어나오는 저를 향한 사랑에 유진은 고마울 뿐이었다.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닐 수도요. 아마도 평균적인 여자들은 좋아할 수도요?” “네?” “근데, 나는 평균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잖아요. 일단 대학생 때를 제외하고는 늘 이런 소도시에서 자라왔고, 지금은 시골에서 애 하나 키우는 미혼모인데요.” “…….” “그런 사람의 취향은 인터넷에는 알려진 게 많이 없어서 봉길 씨가 직접 알아봐야 할지도요?” “유진 씨.” “그러니까, 인터넷 같은데 뒤지지 말고, 나한테 직접 물어봐요. 아이 키우고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니까 좋은 게 뭔지 알아요? 삶이 아주 심플해져요.” 유진의 말에 봉

  • 웰컴 투 소원리   69. 물음표로

    “봉길 씨!”“유진 씨.”유진은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카페 주차장에 서 있는 봉길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그를 불렀다. 분명히 오늘 할 일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러자 봉길은 태연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품에는 만개한 꽃이 가득한 꽃다발을 들고서, 그보다 더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보고 싶었어요.”“…….”봉길의 수줍은 고백에 유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간 그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간 쌓여있던 마음이 기쁨이 되어 벅차오르면서도, 유진은 바보같이 눈물을 흘리게 될 것만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어? 유진 씨, 울어요?”“몰라요.”“어? 내가 뭐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내가 너무 불시에 왔죠.”바보 같은 사람. 내 눈물에 당신이 왜 사과하는지.유진은 봉길의 품에 폭 안기면서 생각했다. 그의 품 안에 안기자, 그가 뿌린 향수 향과 함께 진득한 땀 냄새가 났다. 아마도 봉길은 바깥에서 긴 시간 동안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녀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서. 사랑에 실패하고 주아를 키우면서 마음이 많이 무뎌지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봉길 앞에서는 말랑해지고 말았다. “바보.”“맞아요, 좀 바보예요. 어쩌죠? 유진 씨같이 예쁜 사람이 이렇게 모자란 나랑 만나게 되어서요.”이런 게 정말 더 바보 같다니까. 내가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유진은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봉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나도 봉길 씨를 닮아가나 봐요.”누군가를 한 명 바보 만드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을 일일 줄이야. 나도 덩달아 바보가 되어버려서 그런가. 유진의 말에 봉길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내 그녀를 더 꼭 안아주고는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일단 차에 가요. 너무 덥겠다.”봉길이 유진의 이마에 맺힌 작은 땀방울을 보며 걱정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그의 머리는 이미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좋아요.”봉길은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살짝 감싸고선 그녀를 차 안으로 이끌었다. “주아 픽업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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