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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그 사람이라면

مؤلف: 랑끗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7-17 10:51:28

“허억-.”

그날의 치욕과 절망에 고스란히 잠긴 채로 인협이 상체를 벌떡 세우고 숨을 헐떡거렸다. 

문의 반이 반투명한 유리로 된 철문 너머로부터 비춰 들어온 가로등 불빛과 달빛에 땀에 젖은 인협의 얼굴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아직 깊은 새벽이었다. 

“또 개같은 꿈-.”

그날 이후로 몇 번째 반복되는지도 모를 지독한 악몽이었다. 인협은 옆에 두었던 페트병을 들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해갈되지 않은, 타는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다시 잠들기 위해 술이 간절했으나, 이 늦은 새벽 시간에, 이 외딴곳에서 술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후우-.”

떨리는 한숨을 토하듯이 내뱉은 인협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차게 젖어있었다. 

악몽을 꾸고 나면 누군가가 제 목을 조이듯이, 꼭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거친 숨을 겨우 내뱉으며 숨을 이어가던 인협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게임 세계에서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섰던 인협은 그렇게 서서히 팀 내에서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월드컵 경기 후, 모든 비난의 화살이 인협을 향했으나 그는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버텨냈다. 

부모님의 사업이 기울어져 있었고 그로 인해 그가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선택이었다. 

그리고는 월드컵 경기가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케이비 팀의 승부조작 논란이 터졌다. 

처음에 익명의 폭로 글. 작은 불씨로 시작된 그 의심은 큰 불길로 번져나갔다.

순간순간 이상함을 느꼈던 때와 단순히 따돌림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승부조작의 증거였다. 

팀 리더인 기태와 감독과 코치진 몇 명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대화를, 목소리를 낮춘 채로 나누고 있었을 때. 

인협을 제외한 모두가 짠 듯이 연습 때와는 다르게 행동했을 때. 

그 폭풍 속에서 스스로의 결백함을 아는 인협은 드디어 권선징악의 때가 왔다, 하며 기쁨 속에서 그것을 관망하기로 했다.

기태와 감독이 인협을 승부조작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기 전까지는.

‘나인협 선수,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뭔가 이상했었어요. 중요한 경기 때마다 연습 때 맞췄던 것과는 다르게 행동했고요.’

‘감독으로서 그런 점이 보였을 때 더 세심하게 살펴야 했는데, 면목이 없습니다.’

겸허히 대신 책임을 지기로 한 리더들처럼 고개를 숙인 둘의 증언에 모든 비난이 인협에게로 향했다. 

다급해진 인협이 몇몇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와서 성실하게 임했으나,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대응하기 시작한 그의 서툰 진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거짓 변명으로 비쳤다.

소수는 그를 믿어주었으나, 그 소수마저도 다수에게 인협과 함께 싸잡아 욕을 먹을 뿐이었다. 

게다가 케이비 팀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파기를 당한 후, 인협은 팀 전체로부터 고소를 당하기 싫으면 팀 명예를 그만 실추하라는 통보를 팀 감독인 정현으로부터 받았다. 

억울함에 저도 싸워봐야겠다 싶어서 인협은 집에다가 그간 선수 생활을 하며 모아두었던 돈을 좀 달라고 했으나, 그에게 돌아온 건 곤란한 얼굴의 부모님이 핑계뿐이었다. 

‘미안하다, 인협아. 그간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웠잖아-.’

부모의 빚을 갚아주고도 적어도 몇억은 쌓여있을 줄 알았더니, 밤낮 제대로 자지도 못하며 훈련해 2인자의 자리에 오른 게 모두 허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한순간에 와르르. 수년간 온 힘 다해 쌓아 올렸던 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가족, 팀, 그리고 팬들에게 배신당한 인협은 걷잡을 수 없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밤마다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이 비참한 삶이 끝나버렸으면, 하고 늘 기도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알아주겠지,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며 미련할 정도로 성실함과 묵묵함으로 바른길만 걸어오던 그는 그렇게 그를 지탱해 주던 믿음을 일순간에 잃고 말았다. 

‘인협아,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거야. 진실되고 성실하게.’

소원리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살 적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가치관은 다 미련한 허상일 뿐이었다. 

어쩌면, 소원리 같은 구닥다리 시골에서만 적용되는 삶의 가치관일지도 몰랐다. 

정의가 승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버린 후, 인협은 서울 자취방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서 매일을 꾸역꾸역 살아냈다. 

죽지 못해 사는 꼴이었다. 

커튼 틈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미세한 햇빛을 보고서 낮인지 밤인지 겨우 구분하며 그는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연명했다. 

배고픔만 가실 정도로, 아니 사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배를 채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술기운에 의지해 괴로움과 그를 향한 모든 미움들을 무디게 만들었다.

미련한 스스로를 향한 미움과 세상을 향한 미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지난 반년을 버텨왔던 그였다.

그렇게 은둔하며 매일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던 그에게 누군가가 생각을 따로 불어넣기라도 한 듯이, 소원리의 한 자락이 불쑥 떠올랐다. 

밝은 햇살 아래 쟁쟁한 푸르름을 자랑하던 마을의 풍경이, 시든 풀처럼 보잘것없는 삶을 겨우겨우 버텨내는 인협의 삶에 새로운 생명이라도 될 것 같다는, 아무 근거 없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렸을 적에는 지긋지긋하고 짜증 나서 당장 떠나고만 싶던 시골이 돌아가야 할 고향처럼 그에게 일순간 떠올랐다. 

그래서 따스함과 따분함이 공존하던 그곳으로 인협은 돌아온 것이었다. 

‘레브님, 그런 분 아닌 거 알아요.’

언젠가 죄인처럼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던 길. 

우연히 인터뷰 장소 앞에서 마주쳤던 부동의 1위 카이 선수이자, 김우겸이 그에게 불쑥 말을 걸어왔다. 

한때는 매우 가까워 손이 닿을만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제 아득할 정도로 멀어 보였다. 

‘……’

모두에게 비난만 받고 있었을 때였다. 

누군가의 신뢰의 말은 그 누구보다 그것이 필요했던 인협의 마음을 잠시 어루만졌으나, 이내 그는 피어오른 희망을 스스로 즈려밟고 말았다.

그 누구에게도 희망 갖지 마. 네가 다칠 뿐이야, 라고 되뇌며 세상이 상처 입히기 전에 그는 스스로를 아프게 찔렀다. 

‘승부조작으로 얻어낸 승리는 싫어요. 다시 복귀해서 정정당당하게 붙어요, 우리.’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채로 제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인협을 향해 우겸이 재차 말을 붙였다. 

인협은 그 당시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비관적인 마음으로 덮어버렸다. 

저 사람도 위선자일 수도 있어. 아무도 믿지 마. 

그는 그래서 모자를 더 푹 눌러쓰고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도망치듯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때의 인협은 세상의 미움을 버텨내며 그것에 맞서 싸울 힘조차 없었기에. 

“……….”

그때 속는 셈 치고 손을 한번 잡아볼 걸 그랬나? 

그 이후, 저보다 더 간절해 보이던 우겸의 음성이 종종 그의 귓가를 울리고는 했다. 

미친 척하고 한번 믿어볼 걸 그랬나? 

또다시 피어오른 희망에 인협은 눈을 꼭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희망이 피어오른 만큼 마음이 높이 날아오르면, 추락이 더 클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픔은 고스란히 인협의 몫이었다. 

“아무도 믿지 마.”

그날 이후로 자주 되뇌던 새로운 가치관을 인협은 다시 한번 읊조렸다. 

성실과 진실,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관은 이제 그의 삶 속에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인협은 자리에서 일어나, 잡념을 지워내기 위해 새벽에 애꿎은 욕실 청소를 시작했다. 

힘을 주어서 더러움을 닦아내다가 보면, 그런 보잘것없는 행위에 스스로가 아직은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걸 증명받는 거 같아서 잡념을 지워내기에 좋았다. 

쓱싹쓱싹. 

솔로 곰팡이 핀 구석구석을 문지르는 소리가 어디부터 고쳐야 할지 모를 낡은 집안을 울렸다.

***

토요일 이른 아침.

“어제 김 씨네 불 켜져 있더라.”

“글쎄 말이다, 언니. 김 씨네 딸내미 부부 왔나? 그 집에 외동딸 하나 있었다잖아.”

이른 아침. 인협의 바로 옆집. 

넓은 밭을 사이에 둔 집이었지만, 어젯밤 잠들기 전 긴 시간 동안 버려져 깜깜하기만 하던 창문에 불이 들어온 걸 본 갑순과 복란이었다. 

두 사람은 집의 대청마루에 한 다리만 올리고 비스듬히 앉아서 어제 뒷산에서 따온 나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갑순과 복란은 한 살 차이로, 둘 다 80대 초반에 비슷한 시기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는 넓은 기와집에서 함께 사는 중이었다. 

갑순은 투박한 시골 할머니 그 자체였다. 잘게 파마로 만 짧은 회색 머리에 왜소한 체구에 비해 거칠고 두꺼운 손마디. 

오랜 밭일로 인해 굽은 등과 햇빛에 잔뜩 그을린 주름진 피부. 

스타일이라고는 없는 몸빼바지와 얇고 넉넉한 사이즈의 삼베옷. 

그녀가 견뎌낸 거친 세월이 새겨진 주름살은 삶에 대한 애환의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그 맞은편에 앉은 복란은 정반대였다. 

고향인 소원리에서 결혼 전까지 살다가 대구에서 살았던 복란은 소원리에서 제일 가는 멋쟁이 할머니였다. 

온갖 밝은 빛으로 물든 스카프를 목에 가벼이 두른 그녀는 연분홍빛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가죽 샌들을 신고 있었다. 복란의 허리는 꼿꼿했다.

연분홍빛 입술에 고운 화장까지 한 복란은 단아한 단발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브로치나 머리핀까지 해서 그녀는 그녀만의 스타일링을 하고는 했다. 

고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주름은 졌지만 기다랗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날쌔게 움직이는 편이었다. 

“아니면 인협이나 인섭이가 왔는가 보지.”

“거기는 또 누군데?”

“김씨네 손주들이잖아. 어릴 적에 여기서 몇 년 살았었어. 부용이네 사업이 쫄딱 망해가지고 한동안 여기 있었어.”

“그래?”

나물을 다듬는 그들의 손길이 수다와 함께 점점 더 빨라졌다. 

“안녕하세요-!”

그때,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에스더가 대문 밖에서 인사를 했다. 

“아이고, 황 선생님이 무슨 일이래.”

“그러게.”

익숙한 음성에 복란이 단숨에 걸어나가 대문을 열어주었다. 늘 열려 있어 사실 형식적인 문일 뿐이었다. 

끼이익. 녹슨 철문이 열리고 밝은 얼굴의 에스더가 소쿠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지난번에 주셨던 오이랑 애호박 잘 먹었습니다.”

“아휴, 또 뭘 이런 걸 다-.”

소쿠리 위에는 전병과 약과가 여러 개씩 올려져 있었다. 

“지난번에 읍내에 나갔을 때 사 왔어요. 할머니들 좋아하시잖아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

“그런 거 담지 말라고 지난번에 이야기했는데!”

갑순이 굽은 허리로 걸어서 보행기를 잡고 에스더와 복란을 향해 걸어왔다.

“그래도요. 빈손으로 오는게 제가 섭섭해서요.”

갑순은 애정이 담긴 손으로 에스더의 팔을 툭 쳤다. 

일평생 시골에서 거친 삶을 견뎌왔던 그녀만의 투박한 애정 표현이었다. 

“그래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오는 길에 김 씨네 집에 누가 와있는지 봤어?”

“아-.”

그 싸가지. 

어제의 만남을 떠올린 에스더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으나 이내 표정 관리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저랑 비슷한 또래의 남자분이 계시던데요? 안경 끼고 성격은 좀 까칠해 보이고-.”

“인협이겠네. 그 집 첫째 손주가 안경을 썼었거든.”

“아, 손주분을 아시나 봐요?”

아하, 이름은 인협이구나. 어차피 이렇게 다 들통날 걸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구냐고. 

에스더는 갑순의 말에 은근한 희열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래, 이전에 걔네 부모님 사업이 망해서 한동안 외할머니인 김 씨네서 지냈었어.”

“그렇군요.”

“열다섯인가, 여섯인가 즘에 이 마을에 엄청 이골이 난 채로 지 부모님이랑 떠나더니, 또 돌아왔나 봐?”

갑순은 의아해하며 혼잣말에 가까운 설명을 마쳤다. 

“그래, 얼마나 이골이 났던지 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장례치를 때도 안 왔다던데.”

“네?”

그 정도인 사람이었나? 

자기를 몇 년 동안 키워줬던 할머니 할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 안 할 만큼 냉혈한인가.

에스더는 날이 잔뜩 서 있던 인협을 떠올리고는 갑순의 말을 어느 정도 납득했다. 

그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인성일 수도. 

“아무튼, 그 녀석 뭔지는 몰라도 뿔이 단단히 나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뿔이 아주 단단히 나 있기는 하더라고요, 라고 고자질하려던 에스더는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런 시한폭탄 같은 사람을 괜히 들쑤셨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조심할게요.”

앞으로 깊이 엮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에스더는 속으로 인협과의 만남을 최소화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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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웰컴 투 소원리   24. 아이의 용서

    저녁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난, 어느 조용한 일식당 안. 180센티미터 남짓한 키에 적당한 체구. 안경을 쓴 남자가 누군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는 상대를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가장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반갑습니다, 조봉길 코치님.” “우겸 씨, 안녕하세요.”마스크를 쓴 우겸의 인사에 봉길이 화답하고는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제게 연락을….” “지난 5년 동안 몸담았던 케이비에서 반 쫓겨나듯이 코치직을 그만두셨다고 들었어요.”우겸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봉길이 잠시 흠칫했다. 그런 봉길을 기다려주며 우겸은 잔에 물을 따라서 봉길 앞에 놓아주었다. “아…. 네, 그렇게 됐습니다.” “혹시 갑작스러운 인협 씨 퇴출과 관련된 일 때문이었을까요?” “…….” “승부조작건 말이에요.” “…….”봉길보다 열 살은 족히 어리지만, 현재로서는 리그 오브 카오스로 전 세계 1위이자 유일무이한 존재인 우겸이었다. 그의 포커페이스에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한 봉길은 막막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침묵했다. 신뢰 혹은 불신.모두가 쉬쉬하고 넘어갔지만, 몇몇은 진실을 알고 있는 승부조작건을 우겸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가 관건이었다.특히나 내부에서 모든 진실을 보고 들었던 봉길의 입장으로선. 게다가 우겸은 케이비의 오랜 천적인 원티드의 수장이었다. “저와 우겸 씨와 오며 가며 인사도 나눴기에 일면식은 어느 정도 있고, 제가 우겸 씨의 엄청난 팬이기도 하지만 답하기 조심스러운 질문이네요.”그가 택한 전략은 보류였다. 우겸의 반응을 보기 위한 보류. 봉길의 긴장한 시선에 미소 띤 우겸의 얼굴이 담겼다. “아, 제가 중요한 사안인데 너무 다짜고짜 여쭤봤죠?” “사실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봉길의 조심스러운 대답에 우겸이 쿡쿡 웃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일단은 봉길 코치님을 제가 옮겨갈 새 팀으로 영입하고 싶어요.” “네? 저를요?” “네, 그리고 인협 씨도 같은 팀 팀

  • 웰컴 투 소원리   23. 바윗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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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씨는 구멍가게 앞, 낡을 대로 낡아 색이 다 바래버린 자판기 옆 평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위에 길게 늘어진 처마 너머로 내려오는 빗줄기를 구경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한 손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담배가 들려있었고, 그의 앞에는 조금 전 기탁이 방문하며 놓고 간 보온 가방이 있었다. 빈속에 술 마시지 말라는 다정한 잔소리를 늘 꿋꿋이 해대는 양반이었다. 교회에는 전혀 관심 없는 최 씨를 여태 포기하지 않은 끈질긴 인물이기도 했고. 원래 이렇게 반강제로 농사를 쉬어야 하는 날이면 고 이장의 무리가 방문하고는 했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아무도 소식이 없었다.오늘이 나를 빼고 노는 날이던가. 최 씨는 좋은 장소를 제공해 주고, 때때로 공짜로 마른안주나 술을 내어주기도 해서 그들이 자신을 이용 가치로만 보는 걸 알고 있었다. 때때로 그를 아래로 보고, 때때로 그를 뒤에서나 앞에서 대놓고 비웃기도 하면서 최 씨를 종종 모임에 끼워주고는 했다. 남 주려니 아깝고, 진짜 친구로 받아들이자니 그들의 눈에는 최 씨가 한참 모자라 보이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부인이 그를 두고 도망간 버린 후부터 원래도 팽배했던 그들의 업신여김이 더 심해졌다. ‘자고로 성공한 사내라면 옆에 훌륭하게 내조해 주는 부인이 꼭 있어야지.’그런 말을 끝마친 고 이장이나 심 씨의 시선 끝에 걸리는 건 최 씨였다. “후-.”최 씨가 들이마셨던 공기가 연기가 되어 흩어져 나왔다. 아내는 첫째 딸의 아이보는 걸 도와줘야한다며 서울로 떠나버렸다. 딸아이가 육아로 많이 힘들어한다면서 도와야겠다는 이유였다. 그게 벌써 5년 전이었다. 그 사이 둘째 딸도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듣자 하니 아내는 두 집을 오가며 손주들을 봐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떠난 후, 그의 아내는 단 한 번도 소원리에 오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하게 되는 연락도 용건만 간단히. 최 씨가 그녀의 의중을 떠보기라도 하면, 그녀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그렇다고 아내와 마을 사람들

  • 웰컴 투 소원리   20. 조금은 서툰 진심

    꺄아아-.방음이 잘 된 집 덕분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에 인협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아무래도 열려 있는 학교 창문을 통해 들려온 소리인 듯싶었다. 날이 워낙 우중충한 데다가 커튼까지 잘 처져있어서 그런지, 한낮의 관사는 꽤나 어둑어둑했다. 체감상 눈을 아주 잠시 감았다가 뜬 것만 같은데, 몸은 굉장히 개운했다. 얼마 만에 잠을 뒤척이지 않고 편안하게 잔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태와 감독과 트러블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나서는 사실 그 좋던 숙소에서조차도 잠을 뒤척이기 일쑤였으니까. “후-.”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된 시간이었다. 나가는 소리도 못 듣고 푹 잤네. 인협은 괜한 머쓱함에 제 차림과 머리카락을 슬쩍 확인했다. 다행히 지나치게 추한 모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끼야야-! 신난 아이들의 소리에 인협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무채색에서 색이 입혀진 세상은 생각보다 더 다채롭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성가시게 다가오던 아이들의 소리조차도 유심히 감상해 볼 만한 것이 되었으니까. “집 상태를 한번 확인은 해봐야 하나.”그는 빗소리를 들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짐도 어느 정도 챙겨는 봐야 할 터였다. 곧 에스더의 옆집으로 이사 오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아직 아이들이 수업 중인 거면, 여기서 나가서 샛길로 내려가면 학교에서 눈에 띄지는 않을 텐데. 인협은 그곳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식탁 위에 차려진 단출한 아침 식사가 보였다. [간단하게라도 챙겨 먹어. 점심으로 먹을만한 반찬들은 냉장고 안에 있으니, 밥이랑 같이 챙겨 먹어. 굶지 말고!]꾹꾹 눌러쓴 동글동글한 글씨체에 인협이 피식 웃었다. 에스더의 들뜬 음성이 귓가에 직접 울리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그를 이렇게 살뜰하게 챙겨준 건 할머니 이후로 처음이었다. 서울에 가서는 가족들과 제대로 시간을 보낼 새도 없이 바로 팀 합숙 훈련에 들어갔으니까. 인협은 포스트잇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냉장고에서 반

  • 웰컴 투 소원리   19. 색안경을 벗겨낸 듯이

    천둥소리와 인협의 흐느낌이 모두 잦아든 후. 집 안에는 세찬 빗소리만 들려왔다. “일단 오늘은 우리 집으로 가요.”에스더의 권유에 인협은 순순히 그녀를 뒤따랐다. 에스더의 손을 붙들고 그녀를 뒤따라서 인협은 질퍽한 오르막을 올라갔다. 그가 미끄러질 때마다 에스더는 그의 손을 강하게 붙들어주었다.신기한 여자였다. 덩치가 훨씬 큰 자신을 이렇게 안정적으로 붙들어주는 걸 보면. 관사의 문이 열렸고, 늘 은은하게만 맡아지던 에스더에게 배어있던 향이 인협의 얼굴에 온기가 되어 훅 다가왔다. “들어와요.”혼자서 지내기에는 널찍한 크기의 관사는 깔끔해 보였다. 젖은 상태로 머뭇거리는 인협을 알아차린 에스더는 재빨리 욕실로 향해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많이 춥죠? 일단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몸 좀 녹이면서 씻을래요?” “갈아입을 옷이-.” “찾아보면 입을만한 옷이 좀 있을 거예요.” “네….”인협은 순순히 대답하고는 곧장 에스더의 인도를 따라서 욕실로 향했다.오랜시간동안 젖어있던 몸의 체온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에, 그도 물의 온도에 몸을 내맡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아예 욕조에 몸 좀 담그고 나와요.” “네.”욕실 문 바깥에서 들려온 에스더의 권유에 인협은 순순히 답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처음으로 제 바닥을 내보였다는 사실은, 은근한 위안이 되어주었다.에스더 앞에서만큼은 더 이상 무언가 있는 사람인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아주 편리했다. 이미 그녀는 그의 있는 그대로의 바닥을 보았으니까.온수를 튼 인협은 욕조에 앉았다. 작지 않은 체구의 그에게도 크게 불편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욕조의 크기는 적당했다. 물의 온기에 몸을 내맡기자, 오랜 시간 동안 식어 내려있던 체온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좋다-.”그는 눈을 감은 채로 머리를 뒤에 있는 벽에 기대었다. 제대로 보수되지 않은 할머니의 낡은 집보다 훨씬 더 쾌적한 환경이었다. 게다가 관사는 최근에 인테리어를 모두 새로 한 건지, 매우 신식인 데다가 깔끔했다.그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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