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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난 기다릴 수 있어

作者: 랑끗
last update 公開日: 2026-08-02 15:19:48

“이놈의 여편네가! 요새 내가 조용히만 있었더니!!”

포터에서 내리자마자 집에서부터 들려온 거친 음성에 정렬이 집안으로 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쾅. 

현관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자마자 거실 바닥에 주저앉듯이 쓰러진 엄마인 애라와 그 앞에 머리 위로 손을 들고 선 원길이 보였다. 

참 익숙하면서 끔찍하고 동시에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

늘 유순한 시골 청년의 모습을 한 정렬의 두 눈에 일순간 분노의 불이 일었다. 

어렸을 적부터 봐왔던 아버지의 화내는 모습을 혐오해, 도통 화를 내는 적이 없는 정렬이었다. 

그러나, 인간다움을 포기한 아버지 원길 앞에서만큼은 달랐다. 

정렬이 거친 몸짓으로 신발을 벗고서 뛰어 들어가 애라 앞을 막아섰다. 

분노로 인해 거친 숨결을 내뱉는 원길의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겨왔다. 

결국 저보다 몸집이 커버린 아들 앞에서는 분노를 삭이고 말 비겁한 그였다. 

”네 엄마가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를 무시했다!”

그놈의 무시. 정렬이 어렸을 적부터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어왔던 단어였다. 

“어머니가 어떻게 아버지를 무시했는데요?”

애라는 기력도, 말수도 없는 여자였다. 애초에 무시할 힘조차도 없는 사람이었다.

늘 빼빼 마른 몸으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사부작거리며 이 집에 유령처럼 존재해왔을 뿐. 

일평생 순종적으로 살아오며 제대로 목소리 내는 법이 없는 그녀였다. 

그래서 바보처럼 그녀는 이곳에서 폭력적인 남편 곁에 꾸역꾸역 머물러있는지도 몰랐다. 

“어떻게 집안에 점심거리 하나가 준비가 안 되어있어!”

“아버지가 자주 밖에서 드시잖아요. 그래서 준비를 못 하셨나 보죠.”

상 위에는 간단히 차려진 떡국과 김치 그릇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보나 마나 애라는 간단하게 점심만 때우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집안에 당장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게 말이 돼?!”

“아버지-.”

“고 이장네, 본용이 형님네 봐! 마누라들이 몇 분이면 뜨거운 요리 턱턱 내오지.”

“그러면 최 씨 아저씨도 보세요.”

“뭐?”

정렬의 대꾸에 원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최 씨 아저씨는 그렇게 사셔서 아줌마한테 좋은 대접받고 사세요?”

“…….”

“최 씨 아저씨는 부인을 때리지도 않고 그냥 구박만 했던 거였어요.”

타고나기를 마음이 약해 누군가에게 독설을 절대 못 하던 정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손을 파르르 떨면서도 참으며 독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 아버지인 원길 덕분이었다. 

“뭐?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이따위로 갚아-.”

“네, 먹여주고 재워주는 거 감사하죠. 그런데, 때리시기도 하셨잖아요.”

정렬의 결정타에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원길은 이내 욕지거리를 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쾅. 현관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정렬은 애라 앞에 털썩 앉았다. 

“엄마, 일어나.”

애라의 떨리는 손을 붙든 정렬은 바닥에 쓰러진 듯이 있던 그녀를 똑바로 앉혀주었다. 

애라는 영혼도 없어 보이게 텅 빈 얼굴로 겨우 미소 지었다. 어렸을 적부터 늘 봐왔던, 꼭 사람의 껍데기만 있는듯한 얼굴이었다. 

삶에 늘 지쳐있는, 그늘이 잔뜩 드리워진 얼굴은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힘이 쭉 빠져있었다. 

“괜찮아?”

정렬의 물음에 애라의 파리한 얼굴에 힘없는 미소가 깃들었다. 

“응, 고마워. 아들.”

“엄마, 우리 그냥 다 같이 도망갈까? 최 씨 아저씨네 아줌마처럼 말이야.”

정렬이 어느 때부터인가 늘 해오던 말이었다. 

“아니, 엄마는 여기가 좋아. 네 아빠 불쌍하기도 하잖니.”

꼭 여기에 심긴 나무처럼, 애라는 뿌리를 내린 이곳에서 거처를 옮기기를 거부하고는 했다. 

“뭐가 좋아. 나 출근했을 때 낮에 아버지가 이런 적 많아?”

“아니, 집에 잘 들어오시지도 않아.”

“…….”

차분한 애라의 음성은 늘 정렬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깊고도 잔잔한 물속에는 도통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듯이, 정렬은 애라의 고요한 얼굴 속에 담긴 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은 그를 늘 불안하게 만들고는 했다. 곧 시들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선, 그저 주어진 불행을 버티기만을 선택하는 엄마의 모습이.

“엄마….”

“괜찮아. 밥 안 먹고 들어왔지?”

“됐어, 앉아 있어. 내가 알아서 차려 먹을게. 떡국 불겠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애라를 앉힌 정렬은 그녀 대신 부엌으로 향해 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는 손등으로 거칠게 그것을 닦아냈다. 

숨 막힐 정도의 분노가 휩쓸고 지나가면, 또다시 숨 막히는 고요함이 내려앉는 집안이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잠시 감은 눈앞에 에스더의 밝게 웃는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부정해도 더러운 주정꾼의 피가 흐르는 그였다. 

어쩌면 사랑하는 여자에게도 저도 그렇게 돌변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사랑해서 야반도주를 했던 부모님의 사랑이 이렇게 악취 나게 변질되어 버린 것처럼. 

정렬은 밀려오는 공포에 이내 에스더를 향한 마음에 체념을 다짐하고 말았다.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끔찍한 경험을 선물해 줄 필요는 없잖아, 라고 누군가가 그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

그날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에스더와 인협이 밥을 먹고 있었다. 

“내일 교장 선생님이 옆집 문 열어주신대. 지금 우리 집에 있는 가구 그대로 옆집에 있다던데.”

“아, 진짜?”

“그리고 내일부터 출근하면 된대. 아이들 수업 자료 넘겨줄게.”

“네가 좀 많이 알려줘. 아이들 가르쳐 본 경험이 전혀 없어서.”

“좋아. 일단 예체능은 확실히 부담이 덜하니까, 걱정하지 마. 대부분 네가 자율적으로 준비하면 될 거야.”

에스더의 작은 응원에 인협이 피식 웃었다. 별것 아닌 말을 해서 상대를 힘 나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그녀였다. 

“덕분에 살 곳이랑 일자리까지 구했네. 고마워.”

“고마우면 나중에 한턱내던지.”

“그래.”

“나중에 동해 시내 나가서 맛있는 거 사줘. 읍내 말고.”

에스더의 제안에 인협이 잠시 멈칫했다. 

“왜?”

“귀찮은데 읍내로 나가거나 배달시키자.”

“인협아, 여기 읍내에서도 30분은 들어와야 하는 시골이야. 배달은 안 온단다.”

“그럼….”

“아 됐어, 밥 사주기 싫으면 말아라. 보기보다 치사빤스네.”

애스더의 토라진 얼굴을 본 인협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냐, 밥 사주고 싶어. 당연히 사야지.”

“근데, 왜 시내는 안 되는데? 거기까지는 나가야 맛있는 게 많지.”

“…….”

인협은 차마 사람들이 저를 알아볼까 봐, 라는 걱정 어린 진심을 꺼내지 못했다.

“봐봐, 시내 나가서 밥 사달라고 말 꺼낸 나만 이상한 사람 같잖아.”

“왜 네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데?”

“나만 신나서 안달 난 사람처럼, 그림이 좀 그렇잖아.”

입술을 쑥 내민 에스더를 본 인협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답지 않은 인협의 다정한 말에 에스더가 시선을 들어 인협을 마주 보았다. 

“내가 사정상 사람 많은 곳은 좀 힘들어서 그래.”

“아-.”

대인기피증, 뭐 그런 건가? 

에스더는 인협의 사정도 모르고 조금 전 투정을 부린 게 미안해져, 금방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그럼 나랑 밥은 먹고 싶다는 소리인 거지?”

“그럼,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건 뭔데.”

“어어? 집밥이랑 밖에서 사 먹는 밥은 다르지!”

금세 기분이 좋아져 들뜬 에스더를 본 인협이 피식 웃었다. 

에스더를 보고 있자면, 죽은 줄만 알았던 인협의 감정에 그녀의 다채로운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흐릿한 색만 있는 그의 팔레트에 에스더가 알록달록한 색을 입혀주는 듯한 느낌이랄까. 

뭐가 그리 좋은 것도 많고, 싫은 것도 많은지.

그일 이후로 키워진 분노 외엔 일평생 크게 기쁠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이 살아왔던 인협에게는 새로웠다. 

“뭐가 그렇게 달라?”

“일단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다르잖아. 일단 밖에서 만나서 밥 먹으려면 약속 날까지 설레고 기분이 좋아. 적당히 차려입고 준비도 해야 하고, 시내까지 나가면 평소에 달라진 환경에 또 기분이 좋고.”

“그래?”

인협은 오늘의 저녁 메뉴인 간장 계란밥을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맛있는 밥이 딱 대령이 된다는 것. 뒤처리도 할 필요가 없어. 난 음식 맛만 즐기기만 하면 끝.”

“같이 외식하는 게 그 정도의 의미야?”

“그러엄, 게다가 두 사람이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내서 밥을 함께 먹는 데에도 의미가 있지.”

에스더의 세세한 설명에 인협의 입꼬리는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무채색으로 재미없게 칠해져 있어서 큰 의미가 없던 외식이라는 단어가 에스더로 인해 알록달록 물든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일상이 그러하였듯이.

사소하게는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도, 더운 날 집에 도착해 에어컨을 트는 것도. 

에스더는 일상의 부분들이 마치 큰 행복의 근원이 되는 양 기쁨을 크게 느끼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인협에게까지 전염이 되어 미소로 번졌다. 

“귀엽네.”

“응?”

인협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에스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를 응시했다. 

미친, 나 왜 갑자기 뜬금없이 저 말을 한 거지? 

인협은 당황하며 재빨리 변명거리를 찾아냈다. 

“아, 오늘 양 목사님 댁에 반찬통 갖다드리면서 예솜이를 봤었거든. 갑자기 예솜이 얼굴이 떠올라서.”

어색해진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예솜이 핑계로 겨우 둘러댄 인협은 에스더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예솜이? 진짜 귀엽지! 근데 너는 지난번에 애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기나 하고-.”

다행히 에스더의 얼굴에는 일말의 의심조차 없어 보였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오늘 사과했어. 예솜이가 나 나올 때는 안아주던데.”

“우리 예솜이가 소원리에 소문난 천사라서 다행이지.”

“그때는…. 알잖아. 물론 아이 마음에 상처 낸 걸 핑계 대면 안 되는 거긴 하지만.”

인협의 진심 어린 고백에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를 째려보던 에스더는 표정을 풀었다. 

“알겠어. 이번에는 봐줄게. 대신, 너 학교에서 가르칠 때 애들한테 그런 식으로 조금이라도 막 대하면 바로 교장 선생님한테 내가 보고할 거야.”

“알겠어.”

“아무튼, 그럼, 사람 많은 데 갈 수 있게 되면 나랑 시내 나가서 밥 한 끼 먹어. 그날은 당연히 네가 사고.”

에스더의 집요함에 인협은 쿡쿡 웃고 말았다. 

“뭐가 이렇게 집요해?”

“그냥, 너한테 밥 한 끼 정도는 얻어먹어야겠어.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하면 널 좀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에스더의 대꾸에 밥그릇에 시선을 두었던 인협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되게 속이야기 안 하는 거 알아? 사실 나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왜 알고 싶은데?”

인협의 대꾸에 답을 고민하는 에스더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냥.”

“뭐야, 그게.”

“그냥 궁금해, 네가. 사실 여기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

에스더의 간결한 대답에 인협은 잠시 생각에 잠긴 채로 에스더를 응시했다. 

너는 어디까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중에.”

“응?”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인협의 답에 에스더는 싱긋 미소 지었다. 

“그래, 언제든지 준비되면 말해줘.”

“뭐가 그렇게 좋아? 네가 궁금한 거 지금 당장 말해줄 생각 없다는데.”

“거절은 아니잖아. 서서히 네가 준비되면 알려준다는 거니까. 날 경계할 사람으로 느낀 건 아니라는 의미기도 하고.”

“…….”

“그러니까 나는 기다릴 수 있어.”

소원리 고 이장 무리를 비롯해 그의 가족까지. 

인협의 삶 속에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마음 문을 멋대로 두들겨대고 있던 터라 그런지, 그를 향한 에스더의 여유가 유독 크게 와닿은 그였다. 

어쩌면 존중이라는 마음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마음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열어줘.”

“…….”

“밥도, 네 이야기도 난 기다릴 수 있어.”

그녀가 한 발짝 물러나 준 만큼 인협은 드디어 숨 쉴 틈이 생긴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방에서 모든 게 그를 욱여싸고 압박해 대던 삶 속에서 드디어 온전한 그로써 숨 쉴 수 있는 틈새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

최 씨 가게 다음으로 마을 초입에 가까운 고 이장의 집. 

소원리에서 가장 넓고, 가장 새로 지어진 순옥과 영애의 집 다음으로 예쁘게 꾸며진 집이었다. 

안방에는 런닝에 트렁크 차림으로 침대에 누운 고 이장이 배를 긁으며 티브이에 골프 채널을 틀어놓고 있었다. 

집 안 거실에 놓인 가죽 소파에 앉은 심 씨는 저녁에도 여전히 심술궂은 얼굴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늘 배경음악처럼 틀어놓는 티브이 속에는 패널들이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식아!”

[아, 엄마. 전화 너무 자주 하지 말라니까.]

“너, 너. 또 걔가 뭐라고 하니?”

수화기 너머로부터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내가 피곤해서라고 몇 번을 말해. 그리고 걔가 아니라 정민이라고 불러]

“말해봐, 걔가 뭐라 했냐고!”

[엄마, 매번 이러면 나 전화 안 받아]

“뭐라고?”

[매번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는 고함만 질러대고, 며느리 존중은 할 줄도 모르고]

“제식아-.”

충격에 물든 심 씨의 입술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너, 도대체 걔가 어떻게 굴었길래 너희 엄마한테 이래? 응?”

[엄마, 나 엄마한테 살가웠던 적 단 한 번도 없어. 그나마 정민이가 안부 전화 드리고 받으래서 받는 거지]

“뭐? 걔가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마는 거야? 네가 걔 종이야?!”

[끊어요. 다시는 전화 안 받아요. 이번 추석에도 안 내려가]

“야, 고제식! 제식아!”

심 씨의 성난 외침 후 이어진 요란한 통곡 소리에 안방에서 고 이장이 불편한 기색을 담아 기침을 했다. 

“왜 또 난리야! 집안 시끄럽게!”

“아니, 글쎄 우리 제식이가 독한 말 할 줄 모르는 앤데 앞으로 전화 안 받겠다고 하더라니까요?”

“뭐? 이 자식이-.”

고 이장은 핸드폰을 집어 들어서 제식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상냥한 안내에 고 이장은 성난 얼굴로 핸드폰을 확 내려놓았다.

“그럼, 제민이한테 전화를 걸어보자.”

“제민이는 일 년 전부터 연락도 끊고 발길도 끊었잖아요.”

“…….”

“제순이 제옥이는 오래전에….”

“…….”

심 씨의 토로에 둘 사이에 정적이 찾아왔다. 

“에이씨, 자식 농사는 망했어. 그러게 당신이 좀 잘 좀 돌보지 그랬어.”

“자식 농사 망하기는. 내가 얼마나 번듯하게 잘 키웠는데! 며느리랑 사위 농사가 망한 거지.”

애초에 살가운 적도 없던 아들딸들이었다. 

젊은 날의 고 이장과 심 씨는 밭일이다, 술자리다 해서 바쁘게 다니느라 첫째인 제식과 둘째인 제옥이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는 했다.

그마저도 해놓으면 성에 안 찬다며 고 이장과 심 씨에게 야단맞기 일쑤였다. 

그 시절의 부모들이 그랬듯이, 손찌검도 자주 했었다. 

화룡점정은 자녀들이 결혼한 후였다. 

지원을 안 해준 채로 자녀들이 결혼한 후, 그전까지 안 하던 부모 노릇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심 씨와 고 이장은 자식들에게 제멋대로 굴고는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소원리 방문을 서서히 줄였던 남매들은 결혼 후 하나둘씩 발길을 아예 끊기 시작했다.

딸이라는 이유로 식모처럼 살며 심 씨의 폭력에 가까운 언사를 견뎌왔던 제옥과 제순부터 시작해, 아들들까지.

결국 어렸을 적부터 막내라고 품에 애지중지 끼고 살던 제환만 덜렁 이 소원리에 남게 된 것이었다. 미운 마흔 살이 되어서.

“아, 추석에 마을 사람들한테는 또 뭐라 둘러대?”

“그래봤자 지네가 별수 있겠어요? 잠시는 착각할 수 있어도 부모 품이 최고라는 걸 언젠가는 깨닫겠죠.”

“그래.”

“피 섞인 부모만큼 자기네들 위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다고. 에휴-.”

심 씨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랑끗

감사합니다 :-)

| のよう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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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명함이라니….” “글쎄.”인협은 에스더에게 보이지 않도록 명함을 확인했다. 이름을 확인한 인협의 두 눈에 당황함이 깃들었다. 그는 황급히 그것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뭔데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구나.”에스더는 묻고 싶은 게 많은 표정이었으나,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두 사람은 생각에 잠긴 채로 길을 걸어서 가게에 다다랐다. “어어, 이 시간에 웬 애들이 이렇게 왔나 했더니 선생님들이 쏘는 거였어? 아, 안녕하세요 황 선생님.”웬일로 아이들로 복작거리는 가게에서 신이 난 최 씨가 에스더와 인협을 맞아주었다. “네, 축구 내기를 했는데 저희 팀이 져서요.” “인협이 네가 졌어?”최 씨의 당황한 시선이 에스더에게로 향했다. “네, 저희 팀이 이겼어요.” “네, 황 선생님이 보기보다 운동신경이 좋더라고요.” “나 참, 남자 체면이 있지 인마.”최 씨가 껄껄 웃으며 인협을 놀려댔다. 아이들은 벌써 아이스크림을 고르고는 인협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인협은 이내 지갑을 꺼내 들었으나, 에스더가 더 빨랐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꺼낸 현금을 최 씨를 향해 내밀었다. “어째 인협이 네가 졌다더니.”최 씨는 선뜻 돈을 받지 못하고선 인협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건 인협도 마찬가지였다. “나 선생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고마워서요. 나 선생님 없었으면 전 이미 과로로 쓰러지고도 남았을 거예요. 은혜 갚을 겸, 제가 사려고요.”에스더의 넉살 좋은 미소에 최 씨는 마지못해 그 돈을 받고는 거스름돈을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최 씨는 두 사람의 손이 빈 것을 보고는 이내 워드콘을 두 개 꺼내서 두 사람에게 쥐여주었다.“서비스야. 가져가.” “감사합니다!”최 씨가 내민 아이스크림을 거절하려고 입을 떼던 인협을 가로막고선 에스더는 냉큼 그것을 받았다.“공짜 되게 좋아하시네요.” “그럼요. 게다가 다른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비싼 편인 워드콘이잖아요.”인협의 말에 에스더는 능청스럽게 대

  • 웰컴 투 소원리   34. 딱한 녀석

    “여기네.”소원리라고 쓰인 표지판을 발견한 봉길이 차를 자연스럽게 마을 길 쪽으로 틀었다. “어휴, 차 한 대나 겨우 지나다니겠네.”그때 봉길의 눈에 최 씨의 가게가 눈에 띄었다. 일단 차를 가게 옆쪽에다가 세우고 인협을 수소문해 볼 예정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마을이면, 비밀은 없을 테니까.차를 길가에 세운 봉길은 운전석에서 내려서 가게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이미 가게 문을 열고서 가게 안에 있는 주인에게 무언가를 묻는 할머니 두 사람이 서 있었다.“소주 없어? 고기 잡내 잡을 때 그것만 한 게 없는데.” “아이, 없다니까요 누님.” “그러게, 술 좀 작작 처먹지! 웬 소주를 팔 생각은 안 하고 맨날 무식한 술꾼들이랑 술판만 벌여서 처먹어대니까 없지!” “아이, 다짜고짜 와서 화만 낼 거면 집으로 가세요!”갑순의 야단에 최 씨가 덩달아 거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눈치만 살피며 기웃거리던 봉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냥, 마을 안에서 한번 여쭤봐야 하나? 망설이던 봉길이 이내 발길을 돌리려 하자, 그런 그를 갑순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복란이 발견했다.“어어? 청년, 뭐 사러 왔어요?”복란의 부드러운 음성에 갑순의 시선이 동시에 봉길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럽게 그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번에 받게 된 봉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아, 뭐 좀 여쭤보려고요.” “뭔데요?”갑순의 무뚝뚝한 말투에 봉길은 긴장한 채로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조금 전 최 씨와 실랑이하던 그녀의 모습을 본 탓이었다. “저…. 혹시 나인협이라고 아세요? 지금 찾고 있는데….”봉길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갑순의 눈빛에 의심이 깃들었다. “왜요?” “아, 인협이!”가게 문 쪽으로 걸어온 최 씨의 목소리에 갑순이 그를 바로 째려보았다. 당장 입을 다물라는 경고였다. “가게 주인분은 인협이를 아시나 봐요?”봉길의 희망찬 눈빛을 본 갑순이 그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안 그래도 최근에 부용의 방문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그녀였다.

  • 웰컴 투 소원리   33. 애들은 애들이지

    우겸의 차 안. 주변에 들킬까 봐 어느 한적한 공원 주차장에서 만난 봉길과 우겸이었다. “레브님은 컨택해 보셨어요?” “네.” “어땠어요?” “많이 침울해 보였어요. 상처가 커서 앞으로 리그 오브 카오스 판으로 다시 돌아올 의향이 있는지도 의문이고요.”봉길의 말에 우겸은 탄식했다. 분명 좋은 팀을 만나고, 좋은 기회를 하나라도 잡을 수 있었더라면 어쩌면 인협은 우겸에 견줄만한 선수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참 어렵네요.” “우겸 씨는 이제 곧 원티드랑 계약 종료되죠?” “네. 그래서 때맞춰서 이적해서 제가 직접 팀을 꾸릴 예정이었어요. 엘비 그룹 아시죠? 거기서 신생팀을 하나 꾸리고 싶다면서 제게 컨택을 해오셨거든요.” “엘비 그룹이요?”엘비라면 가전제품부터 시작해, 몸집을 키워온 대기업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절대로 모를 수 없는 거물이었다. “네, 그리고 그쪽에서 저를 중심으로 새로 출발하는 만큼 저만 제안을 승낙하면 제가 원하는 것을 모두 맞춰주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봉길 코치님께 직접 감독 제안을 할 수 있는 거고요.” “……”엘비 그룹이 서포트해주는 팀에다가 우겸이 수장인 조합이라면 훨훨 날 일만 있을 팀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협이가 이 팀으로 복귀했으면 좋겠는데. 팀의 새로운 시작에 걸맞게, 인협도 새롭게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처음에는 저의를 의심했으나, 우겸은 지켜보면 볼수록 올곧은 심성의 사람이었다. 제 팀의 스폰서와 코치진이 손을 잡고서 일방적으로 승부조작을 해서 장장 2년여 간의 시간 동안 1위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밝혀내자마자 우겸은 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인협의 복귀를 위해서 가장 먼저 힘을 쓰고 있었다. 비리와 조작으로 쓰게 된 왕관은 수치심을 일으킬 뿐이었다. 리그 오브 카오스에서 최고라고 여겨지는 우겸마저도 다 내던지고 도망가 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월말쯤 이적해서 훈련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그리고 두세 달 정도 집중 훈련 후, 실전에서 손발을 맞추는 연습

  • 웰컴 투 소원리   32. 한번 멀어져 봐

    에스더와 인협은 잔뜩 부른 배를 쥐고서 길을 걷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며 보이는 주변 풍경을 각자의 방식대로 둘러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아으, 배부르다!” “버스가 20분 후면 온다고 했지?” “응. 아, 이 코스에서 다이수까지 들려줬어야 완벽한 건데 말이야.” “거기까지 들리는 게 네 토요일 루틴이야?” “응. 다이수가 얼마나 귀한데-.” “미국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 많이 있어서?”인협이 대신해서 문장을 마쳐주자, 에스더가 푸하하, 웃었다.“올, 제법인데? 독심술도 할 줄 알아, 너?” “그런가 봐.” “근데 하나가 빠졌지롱. 모든 물건들이 엄청 튼튼하고 엄청 저렴해.” “그나저나, 너 미국에서 어렸을 적부터 살았다면서 한국말은 왜 이렇게 잘해?” “왜? 2개 국어 하는 게 이상해? 생각보다 나 같은 사람 흔한데.”인협의 의심에 에스더가 대꾸했다.“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환경에 있어서 그래.” “그래? 미국에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환경은 또 뭐지.” “한국인들만 있는 교회에 다녔거든. 내 이름에서부터 알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중에 완전 신실하신 분이시고. 좁디좁은 이민 사회에서 그 사실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너는 모르지?”“치명적? 부모님의 종교 생활이 너한테 영향이 갈 일이 있어?”인협의 질문에 에스더는 과거의 어려움을 떠올린 듯이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그럼, 많지. 미국에서의 삶은 일종의 소원리의 확장판 같았달까?” “그게 뭔데?”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사람들끼리 모든 한국 사람의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전혀 진실과 가깝지 않은 헛소문이 퍼지기도 하고, 약간의 진실이 섞였지만, 허무맹랑한 소문이 퍼져서 그게 나를 직접적으로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정사실이 되기도 하고.” “그렇구나.” “그리고 소원리 보다 더 어려운 점은 사람들이 더 많아서, 그걸 제대로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 내가 수십 명, 수백 명에게 직접

  • 웰컴 투 소원리   31. 너랑은 올만 하겠다

    “오! 여기다. 생각보다 가까웠네. 여기서 후딱 먹고 가면 되겠다.” “그래.”두 사람이 열심히 검색해 도착한 아귀찜 전문 식당. 두 사람은 옆 벽면에 붙은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로 드려요?” “사장님, 여기 아귀찜 소자 하나요. 감사합니다.” “네~. 여기 아귀찜 소자 하나!”노년을 향해 달려가는 주름진 얼굴의 사장이 주문을 받아서 식당으로 외쳤다. 모든 게 오래된 식당이지만 내부는 깨끗했다.오후 한 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에는 그들 외에는 6, 7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부부가 앉아 있는 두 테이블뿐이었다. “아주 좋아.” “뭐가?” “그냥, 식당 분위기가 아주 좋네. 마음에 쏙 들어.”인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당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며 말했다. “안 바글바글한 곳이라 다행이네. 내가 널 위해 친히 검색했지.” “아휴, 고마워.”에스더의 생색에 인협은 고마움을 표했다. “웬일로? 순순히?” “야, 나 그 정도는 아니야.” “그으래?”의아해하는 에스더를 얄밉다는 듯 쳐다보는 인협이었다. “그래서, 읍내에서 적당히 연습 끝나면 나랑 시내로 나가줄 거야? 아님, 내가 시내에 최악의 식당 하나 알아볼게. 거기부터 연습해 볼래?”“아직.” “알겠어. 으이그, 사연 많은 나인협.”에스더가 인협을 향해서 눈을 흘기던 순간, 식당 문이 열리며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셋이서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을 본 인협은 숨을 참으며 고개를 벽 쪽으로 돌렸다. 제발 이쪽으로는 오지 말아라. 제발. 간절한 기도가 통한 건지, 다행히도 사장은 그들을 식당 반대편 자리로 이끌었다. “후-.” “뭐야? 너 혹시….”그런 인협을 지켜보던 에스더가 목소리를 낮추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 “범죄자는 아니지? 뭐 사회에서 굉장히 비난받을 짓을 했다거나…” “…….”정곡을 찔린 인협은 아무 답도 하지 못한 채로 마른침을 삼켰다. “야, 케이비 요새 폼이 너무 떨어졌더라.”익숙한 단어에 인협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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