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당신 아버지입니다.
서윤은 화면 위의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글자가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아버지. 너무 익숙한 단어라서, 오히려 낯설었다. 어릴 때 자신을 업어 주던 사람.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 서 있던 사람. 서윤이 플라워 스튜디오를 처음 열었을 때, 작은 화분 하나를 들고 와 어색하게 웃던 사람. 그 사람이. 자신의 결혼 계약서를. 기자에게 넘겼다고. 서윤의 손끝에서 힘이 빠졌다. 휴대폰이 테이블 위로 툭 떨어졌다. 강유라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서윤을 보았다. “무슨 연락이라도 받으셨어요?”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카페 안은 평범하게 시끄러웠다. 컵이 부딪히는 소리, 에스프레소 머신이 작동하는 소리, 창가 자리에서 누군가 낮게 웃는 소리.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서윤의 안쪽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기자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서윤은 천천히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태오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그대로 떠 있었다. 당신 아버지입니다. 그 아래로 새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정확히는 한서윤 대표님의 부친이 처음 자료를 넘겼고, 이후 익명 계정을 통해 확산된 정황이 있습니다. 지금 확인 중입니다. 서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확인 중. 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은 가끔, 증거보다 먼저 진실을 알아차린다. 피하고 싶었던 조각들이 너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아버지가 갑자기 연락이 뜸해졌던 것. 이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래도 너무 섣불리 결정하지 마라”라고 말하던 목소리. 태오와 정리하겠다고 했을 때, 대뜸 돈 이야기를 묻던 태도. 그 모든 것이 이제 다른 의미로 되돌아왔다. 서윤은 휴대폰 연락처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찾았다. 한기석.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잠시 멈췄다. 누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누르지 않으면, 또 남들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할 것이다. 서윤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네 번째가 되기 전, 아버지가 받았다. “서윤아.” 그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조금 피곤하고, 조금 다정한 척하고, 늘 무언가를 숨기는 목소리. 서윤은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 “아빠.” “그래. 무슨 일이냐? 바쁘다며.” “계약서.”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단 한 단어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 침묵만으로도 충분했다. 서윤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빠가 넘겼어?” “무슨 소리냐.” 너무 빠른 부정이었다. 그래서 더 확실했다. “기자한테요. 내 결혼 계약서. 내가 몰랐던 채무 조건까지.” “서윤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서윤은 웃었다. 소리 없이. 어째서 모두 같은 말을 할까. 그런 게 아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너를 위해서였다. 아무도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지 않았다. “그럼 어떤 건데.” “아빠가 너 해치려고 그랬겠냐?” “그럼 왜 그랬는데.” “너 지금 차 서방이랑 이혼한다며.” 차 서방. 서윤은 그 호칭에 속이 울렁거렸다. 아버지는 아직도 태오를 그렇게 불렀다. 딸을 3년 동안 외롭게 만든 남자. 계약서 뒤에 감춰진 조건을 알고도 숨긴 남자. 그런데 아버지에게 그는 여전히 차 서방이었다. 돈을 갚아 준 집안의 사위. 아니, 채권자에 더 가까운 남자. “그게 계약서 유출이랑 무슨 상관인데?” “네가 그 집에서 나오면, 그쪽이 우리를 그냥 둘 것 같아?” 서윤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우리?” “그래. 우리 말이다. 네 아버지 회사, 아직 완전히 정리된 거 아니야. 태경에서 잡아 준 채권도 있고, 만기 연장된 것도 있어. 네가 이혼하면 그쪽에서 손 떼는 순간 끝장이야.” 서윤은 순간 말을 잃었다. 그녀는 아버지 회사가 정리된 줄 알았다. 힘들었지만, 3년 전 태경의 지원으로 대부분 마무리됐다고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이 결혼에 서명한 것으로 최소한 가족의 오래된 빚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것마저 아니었다. “아직도 남았어?”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윤은 웃지도 못했다. “아빠.”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한테는 끝났다고 했잖아.” “네가 알아서 뭐하겠냐.” 그 말이 서윤의 가슴을 정통으로 찔렀다. 네가 알아서 뭐하겠냐. 아버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딸은 알 필요 없는 사람. 이름은 빌릴 수 있지만, 진실을 들을 자격은 없는 사람. “그래서 계약서를 기자한테 넘겼어?” “기자한테 직접 넘긴 건 아니다.” “그럼 누구한테 넘겼는데.” “아는 사람이 있다. 그쪽 일 잘 아는 사람이. 네가 이혼한다고 해서 상담 좀 했어. 이럴 때는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라. 차 서방 쪽도 쉽게 못 버리게.” 서윤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나를 지키려고 한 게 아니네.” 수화기 너머에서 아버지가 숨을 삼켰다. “뭐?” “아빠 회사를 지키려고 한 거잖아.” “서윤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회사가 누구 때문에 버틴 건데? 너도 그 집 덕 봤잖아. 아빠가 감옥 가고 집안 박살 나는 꼴 안 봤잖아. 그럼 너도 가족으로서 책임이 있는 거 아니냐?” 그 말에 서윤은 더 이상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책임. 그 단어는 늘 그녀를 묶었다.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자주 말했다. 네가 엄마를 닮아서 든든하다. 우리 서윤이는 참 속이 깊다. 네가 조금만 참아 주면 아빠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 말들은 다정한 칭찬처럼 들렸지만, 결국 오래된 족쇄였다. 서윤은 언제나 속 깊은 딸이어야 했다. 이해하는 딸. 기다리는 딸. 참아 주는 딸. 그리고 3년 전에는, 결혼해 주는 딸. “아빠.” 서윤은 아주 천천히 말했다. “나는 아빠 빚 갚으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야.”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 그렇게 말할 거냐?” “응.” “아버지가 힘들다는데?” “아버지가 힘든 걸 왜 내 인생으로 갚아야 해?” “한서윤!” 카페 안의 몇몇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서윤은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지 않았다. 이 말은 끝까지 해야 했다. 평생 삼키고 살았던 말을. “나, 차태오랑 이혼할 거야.” “안 된다.” 아버지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서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그렇구나.” “그 집이 얼마나 큰 집안인데 네가 감정 상했다고 나와? 네가 참고 있으면 다 정리될 일이야. 계약도 어차피 끝났다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서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3년을 참았어.” “그건 네가 선택한 거잖아.” 서윤은 눈을 감았다. 그 말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절반만 알고 선택했어.” 수화기 너머에서 아버지가 멈췄다. “아빠랑 차태오 씨가 나머지 절반을 숨겼잖아.” “너를 위해서…” “그 말 하지 마.” 서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롭게 갈라졌다. “나를 위해서라는 말, 이제 더는 듣기 싫어.” 아버지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 침묵 너머에서 담배를 찾는 듯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서윤은 그 소리마저 지겨웠다. “아빠한테 자료 전부 보내.” “무슨 자료.” “태경이랑 주고받은 채무 관련 자료. 내가 모르는 계약서. 아빠가 가지고 있는 거 전부.” “그걸 네가 봐서 뭐하려고.” “내 인생이었으니까.” 서윤은 낮게 말했다. “내가 알아야겠어.” “서윤아, 너 정말 이러면 아빠도 가만히 못 있어.” “뭘 할 건데?”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윤은 그 대답 없는 침묵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읽었다. 더 넘길 자료가 있을지도 몰랐다. 더 숨긴 이야기가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의 삶 전체가 그런 식으로 짜여 있었을지도 몰랐다. 서윤은 전화를 끊었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울면 다시 딸이 될 것 같았다. 불쌍한 딸. 상처받은 딸. 그래서 또 누군가가 대신 판단해 줘야 할 사람.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서윤은 고개를 들었다. 강유라가 여전히 그녀를 보고 있었다. 흥미롭다는 듯, 그리고 조금은 불쾌하다는 듯. “가족 문제까지 복잡하시네요.” 강유라가 말했다. “그래서 사생활 리스크라고 한 거예요.” 서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유라 씨는 이 상황이 재미있어요?” “재미라기보다는…” “아니요. 재미있어 보여요.” 서윤은 테이블 위의 명함을 집어 들었다. “누가 다치는지보다, 그걸 어떻게 이용할지가 먼저 보이는 얼굴이에요.” 강유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말조심하세요.” “강유라 씨도요.” 서윤은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내 가족이 나를 팔았다고 해서, 당신이 나를 싸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기자가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를 살폈다. 서윤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대표님, 기사 관련해서 한 말씀만 더…” “쓰고 싶으면 쓰세요.” 서윤은 차분히 말했다. “다만 제가 녹음한 내용과 다르게 쓰면, 정정 요청하겠습니다.” 기자의 표정이 굳었다. 서윤은 가방을 들었다. 카페를 나서기 전, 그녀는 다시 한 번 강유라를 보았다. “그리고 강유라 씨.” 강유라가 턱을 살짝 들었다. “이 일에 당신이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저도 확인할 겁니다.” “증거 있어요?” 서윤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찾으면 되죠.” 그 말은 원래 태오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서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확인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서윤은 카페를 나왔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하늘은 흐렸고,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비는 금세 머리카락과 코트 어깨를 적셨다. 서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태경호텔 앞 횡단보도에 섰을 때, 맞은편에 검은 세단 하나가 정차해 있는 것이 보였다. 차태오의 차였다. 서윤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운전석도, 조수석도 비어 있었다. 뒷좌석 창문 너머로 태오의 옆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내리지 않았다. 서윤이 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의 태오라면 이미 카페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기자를 압박하고, 강유라를 막고, 서윤의 손목을 잡아끌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차 안에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선 밖에서. 서윤은 그것이 더 화가 났다. 왜 이제야. 왜 지금 와서. 왜 내가 다 망가진 뒤에야. 신호가 바뀌었다. 서윤은 길을 건넜다. 차 옆을 지나칠 때, 뒷좌석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태오가 내리려는 듯했다. 서윤은 멈춰 서지 않았다. 문은 다시 닫혔다. 그는 결국 내리지 않았다. 서윤의 눈가가 시큰해졌다. 그 작은 존중 하나가, 이렇게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서윤의 코트는 반쯤 젖어 있었다. 문을 열자 꽃 냄새가 그녀를 맞았다. 딸랑. 평소와 같은 종소리였다. 그 소리에 겨우 숨이 놓였다. 서윤은 가방을 내려놓고, 젖은 코트를 벗었다. 손이 차갑게 굳어 단추가 잘 풀리지 않았다. 몇 번을 헛손질한 끝에야 겨우 코트를 의자에 걸었다. 휴대폰은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 태오에게서 온 메일 알림이었다. 제목은 짧았다. 3년 전 계약 관련 자료 일체. 서윤은 노트북을 열었다. 메일에는 여러 개의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계약서 원본. 부속 합의서. 채무 조정 내역. 태경 측 내부 검토 보고서. 서윤은 손을 멈췄다. 부속 합의서. 그 파일을 열었다. 화면 위로 낯선 문서가 펼쳐졌다. 그녀가 본 적 없는 문서였다. 맨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혼인 계약 관련 별도 합의 사항. 서윤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한기석 대표의 채무 일부를 태경 측이 인수한다. 혼인 기간 동안 관련 채권 회수를 보류한다. 혼인 관계 종료 시, 태경 측은 잔여 채권에 대한 재협상권을 가진다. 서윤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이 결혼은 끝나면 끝나는 계약이 아니었다. 그녀가 떠나면, 다시 아버지의 빚이 살아나는 구조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붙잡으려 했던 것이다. 서윤은 스크롤을 더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본 합의 사항은 한서윤에게 고지하지 않는다. 서윤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굳었다. 세상이 한 번 더 조용해졌다. 그 문장 아래에는 두 사람의 서명이 있었다. 한기석. 그리고 차명환. 태경그룹 회장. 차태오의 아버지. 태오의 서명은 없었다. 하지만 서윤은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태경도 알고 있었다. 오직 서윤만 몰랐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차태오였다. 서윤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봤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목소리는 낮았다. 서윤은 화면을 본 채 대답했다. “네.” “숨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말,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요.” 태오가 숨을 삼켰다. “미안합니다.” 서윤은 웃었다. “차태오 씨 서명은 없네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었죠.” “알고 있었습니다.”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그 솔직함이 더 아팠다. 서윤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럼 당신도 공범이에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태오는 변명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서윤은 눈을 떴다.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공범입니다.” 태오가 낮게 말했다. “내가 만든 조항은 아니지만, 알고도 숨겼습니다.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는데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책임이 있습니다.” 서윤의 목이 메었다. 예전의 태오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책임을 구조 속에 숨겼을 것이다. 아버지의 결정이었다고, 회사의 문제였다고, 당신을 보호하려 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미웠다. 조금만 일찍 그랬더라면. 단 한 번만, 3년 전의 자신에게 이렇게 솔직했더라면. “왜 말 안 했어요.” 서윤이 물었다. 대답을 이미 들었는데도 다시 물었다. 태오는 한참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이 떠날까 봐.” 서윤의 숨이 멎었다. “처음에는 당신이 상처받을까 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태오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당신이 이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그래서 내 옆에 오지 않을까 봐 말하지 않았습니다.”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결혼이 필요했고, 당신이 조용히 받아들이길 바랐습니다. 당신에게 선택권을 준 척했지만, 사실은 선택지를 줄였습니다.” 태오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미안합니다.” 서윤은 눈을 감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너무 늦었다. 그런데도 그 말이 가슴 어딘가에 닿았다. 그래서 더 싫었다. “저는 이제 뭘 믿어야 해요?” 서윤이 물었다. “아버지도, 당신도, 내가 선택했다고 믿었던 3년도 전부 거짓이었는데.” 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 속에서 서윤은 아주 오랜 피로를 느꼈다. “저, 공개 프레젠테이션 할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공식 입장도 낼 거예요.” 태오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도움이 필요하면…” “필요하면 말할게요.” 서윤은 그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제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정말요?” “네.” 태오가 낮게 말했다. “이번에는 당신의 선택을 빼앗지 않겠습니다.”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믿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태오가 조용히 말했다. “서윤 씨.” “네.” “비 맞지 마십시오.” 그 말에 서윤은 잠시 멈췄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젖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가 봤구나. 차 안에서. 그러나 내리지 않았구나. 서윤은 입술을 다물었다. “늦었어요.”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말은 비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태오도 알 것이다. 서윤은 노트북을 덮었다. 그러자 스튜디오 안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 같았다. 그녀는 작업대 위의 꽃들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다듬어 둔 작약이 물통 안에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서윤은 가위를 들었다. 상한 잎을 잘라 냈다. 줄기 끝을 다시 사선으로 잘랐다. 꽃을 살리려면 썩은 부분을 잘라 내야 했다. 아프더라도. 늦었더라도.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서윤은 받지 않았다. 곧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서윤 대표님. 방금 한기석 대표님 인터뷰 전문을 받았습니다. 따님도 계약 조건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셨는데, 사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서윤의 손에서 꽃가위가 떨어졌다.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메시지 아래에는 녹취 파일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서윤은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였다. “서윤이도 다 알고 한 겁니다. 그 애가 원래 속이 깊어요. 집안 살리겠다고 자기가 먼저 결혼하겠다고 했어요.” 서윤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녹취 속 아버지는 계속 말했다. “이제 와서 모른 척하면 안 되죠. 부모 자식 사이에 그런 것도 감당 못 하면 되겠습니까.” 파일은 거기서 끊겼다. 서윤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아버지는 자신을 팔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태오였다. 서윤은 받지 않았다. 화면 위로 그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서윤 씨, 지금 당장 기사 막아야 합니다. 곧이어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당신 아버지가 방송 인터뷰까지 잡았습니다. 서윤의 시야가 흐려졌다. 하지만 눈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바닥에 떨어진 꽃가위를 주웠다. 손잡이를 꽉 쥐었다. 아팠다. 그런데 그 아픔이 오히려 정신을 붙잡아 주었다. 서윤은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새 문서를 띄웠다. 제목을 적었다. 한서윤 플라워 스튜디오 공식 입장문. 그리고 첫 문장을 썼다. 저는 제 인생을 더 이상 타인의 입으로 설명하게 두지 않겠습니다. 문장을 쓰는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그 순간, 스튜디오 유리문 밖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쳤다. 서윤은 고개를 들었다. 비에 젖은 유리 너머.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차태오가 아니었다. 아버지였다. 한기석은 문밖에서 초인종도 누르지 않은 채, 서윤을 보고 있었다. 손에는 두툼한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쪽 골목 끝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서 있었다. 서윤의 손이 천천히 멈췄다. 아버지는 유리문 너머로 입모양만 움직였다. 문 열어라. 이번에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외전 5화. 내일도 보는 사이금요일 밤 열 시 십삼 분.두 사람은 서윤의 작업실 앞에 서 있었다.태오가 데려다주겠느냐고 묻지 않은 첫날이었다.서윤이 택시를 잡으려 하자 자연스럽게 말했다.“제가 데려다드리겠습니다.”“그래요.”그게 전부였다.허락을 받아냈다는 안도도, 선을 넘었다는 긴장도 없었다.차 안에서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했다.서윤이 다음 주에 들어갈 현장.태오의 자문사에서 처음으로 받은 장기 프로젝트.점심으로 먹었던 국수가 생각보다 맛없었다는 이야기까지.작업실 앞에 도착하자 태오가 차에서 내려 문을 열었다.서윤이 그를 올려다봤다.“내일 뭐 해요?”“오전에 운동할 생각입니다.”“그다음은?”태오가 잠시 생각했다.“별일 없습니다.”“그럼 나랑 화분 보러 갈래요?”이번에는 그의 대답이 바로 나왔다.“좋습니다.”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안 물어보네요.”“뭘 말입니까?”“제가 정말 같이 가고 싶은 건지.”태오가 웃었다.“같이 가자고 먼저 말했으니까요.”“많이 늘었네.”“교육비가 비쌌으니까요.”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백십억짜리 농담은 이제 두 사람 사이에서 꽤 자주 쓰였다.“그럼 내일 열한 시.”“어디로 가면 됩니까?”“우리 집 앞으로 와요.”태오가 아주 잠깐 멈췄다.서윤이 곧바로 말했다.“또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화분 사러 갈 거예요.”“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얼굴이 했어요.”
외전 4화. 이번에는 연애부터서윤이 태오의 사무실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작은 기업 자문사라고 했지만 생각보다 더 작았다.대표실도 따로 없었다.유리벽 안쪽의 가장 평범한 책상이 태오 자리였다.“진짜 여기서 일해요?”“네.”“대표인데?”“대표가 제일 넓은 방을 써야 할 이유가 없어서요.”서윤이 피식 웃었다.“사람이 너무 바뀐 거 아니에요?”“불편합니까?”“또 물어본다.”태오가 입을 다물었다.그때 회의실에서 나오던 직원 하나가 두 사람을 발견했다.순간 표정이 굳었다.서윤의 얼굴을 알아본 모양이었다.“대표님, 혹시 사모님께서—”“한서윤 대표님입니다.”태오의 정정은 빨랐다.직원도 바로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한 대표님.”서윤은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받았다.하지만 엘리베이터에 탄 뒤 태오에게 물었다.“사모님이라고 불리는 거 싫어할까 봐 바로 고친 거예요?”“그 호칭은 지금 사실이 아니니까요.”“예전에는 사실이었고?”태오가 잠시 침묵했다.“법적으로는요.”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았다.그렇다고 없던 일로 만들지도 않았다.둘은 근처의 작은 와인바로 갔다.서윤이 먼저
세 번째 금요일에는 서윤이 장소를 골랐다.호텔도, 유명한 레스토랑도 아니었다.작업실에서 십 분쯤 떨어진 작은 야외 정원이었다.태오가 입구의 안내판을 바라봤다.“여기였습니까?”“왜요. 싫어요?”“아닙니다.”그가 정원 안쪽을 바라봤다.“한서윤 씨가 만든 곳이라서요.”개장한 지 한 달 된 소규모 복합문화공간이었다.태오는 그 사실을 알고도 먼저 찾아오지 않았다.서윤이 보여 주겠다고 말하기 전까지 기다렸다.“궁금하지 않았어요?”“많이 궁금했습니다.”“그런데 왜 안 왔어요?”“당신이 일하는 곳까지 제가 마음대로 들어가는 건 싫었습니다.”서윤은 잠깐 그를 바라보다 먼저 걸었다.“오늘은 내가 초대한 거예요.”“네.”“그러니까 마음대로 봐도 돼요.”태오는 그제야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정원 한가운데에는 낮은 수로가 있었고, 돌 사이로 늦여름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예전의 서윤이 만들던 정원과 달랐다.화려한 꽃이 채우던 자리에는 바람이 드나드는 여백이 남아 있었다.식물과 돌 사이의 빈 공간마다 늦여름의 공기가 천천히 지나갔다.무언가를 끝까지 채워 넣지 않아도 완성된 정원이었다.“달라졌네요.”태오가 말했다.“뭐가요?”“예전에는 중심을 먼저 만들었습니다.”서윤이
금요일 오후 여섯 시 오십칠 분.서윤이 식당 앞에 도착했을 때 태오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정확히는 입구에서 세 걸음 떨어진 곳이었다.서윤이 그를 보자마자 물었다.“왜 안에 안 들어가 있었어요?”“같이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그것도 물어보려고 기다린 건 아니죠?”태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서윤은 한숨처럼 웃었다.“설마.”“먼저 들어가도 되는지는 못 물어봤으니까요.”“차태오 씨.”“네.”“이러다 나중에는 숨 쉬어도 되냐고 묻겠어요.”태오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얼굴이었다.서윤은 먼저 식당 문을 열었다.“들어와요. 이건 허락 안 받아도 돼요.”예약한 자리는 창가였다.지난번 카페와 달리 이번 식당은 태오가 골랐다.서윤이 메뉴를 펼치며 말했다.“여기는 왜 골랐어요?”“작업실에서 가깝고, 예약할 때 알레르기나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만 물어봐서요.”“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식당은 피한 거고요?”“네.”“왜요?”“다시 좋아하는지 모르니까요.”서윤은 메뉴 너머로 그를 바라봤다.“그럼 오늘부터 다시 알아가려고요?”“그럴 생각입니다.”“조사하듯이?”“그건 자신 있습니다.”서윤이 웃었다.“그건 좀 무섭네요.”태오도 이번에는 농담인 것을 알아들었다.식사가 시작된 뒤 서윤은 일부러 예전에는 잘 먹지 않던 매운 요리를 주문했다.태오가 물을 건네며 말했다.“매운 거 싫어하지 않았습니까?”“요즘은 좋아해요.”
카페 문을 먼저 연 사람은 서윤이었다.태오는 뒤따라 들어왔지만 자리를 고르지 않았다.창가와 안쪽 테이블 사이에서 서윤이 잠시 둘러보자 그가 물었다.“어디가 좋습니까?”서윤은 웃을 뻔했다.삼 년을 함께 살았던 남자가 처음 만난 사람처럼 물어보고 있었다.“창가요.”두 사람은 창가에 마주 앉았다.태오가 종이봉투에서 메뉴 카드를 꺼내 테이블 가운데 놓았다.“뭘 마실래요?”그 질문에도 서윤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예전의 태오라면 묻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도, 싫어하던 향도 알고 있었으니까.“내가 뭘 마시는지 알잖아요.”“알았죠.”태오가 메뉴를 내려다봤다.“삼 년 전의 한서윤 씨가 뭘 마셨는지는.”서윤의 시선이 멈췄다.“지금도 같은지는 다시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서윤은 메뉴를 넘겼다.“오늘은 라테요.”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아메리카노로 하겠습니다.”“그건 그대로네요.”“네. 바꿀 이유가 없어서.”“모든 걸 바꾸려고 애쓰는 줄 알았는데.”태오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잘못한 것과 원래 좋아했던 것까지 전부 버리는 건 다른 일이니까요.”서윤은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아주 짧았지만 태오의 눈이 멈췄다.그는 그 웃음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주문한 음료가 나온 뒤에도 둘은 한동안 평범한 이야기를 했다.서윤의 새 작업실.최근 맡은 호텔 정원 프로젝트.태오가 요즘 하고 있는 일.그는 태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섯 달 뒤.차명환은 증거인멸 교사와 사문서위조 교사,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윤재헌은 자신이 보관한 지시 기록을 제출했지만 실행자로서의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정현수와 강유라 역시 각자가 관여한 범위에 따라 재판과 조사를 받았다.한기석도 예외가 아니었다.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은 참작될 수 있었다.그러나 한미정이 쓰러진 것을 알고도 채무 약정에 서명하고, 딸을 계약의 대가로 넘긴 선택까지 지워 주지는 못했다.서윤은 아버지의 사과문을 받았다.읽었지만 답하지 않았다.용서하지 않겠다는 선언조차 더는 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한미정의 원본 녹음은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됐다. 사건과 관련된 구간만 법정에서 검증됐고, 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비공개 상태로 봉인됐다.서윤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세상의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았다.태경의 이사회는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이해관계를 분리하는 내부 통제안을 통과시켰다. 회장실 비상 권한은 폐지됐고, 주주 정보 접근과 전자 서명 복구에는 외부 감사인의 승인이 필요해졌다.태오는 그 과정에 직함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대표이사도, 전무도, 후계자도 아니었다.자신의 의결권으로 개편안에 찬성한 뒤 주주석에서 일어났을 뿐이었다.백십억 원의 상환도 개인 자산으로 마쳤다.그가 잃은 것은 아버지가 허락한 자리였다.그가 남긴 것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은 자기 이름이었다.서윤은 태경과 관련된 마지막 합의서를 검토했다.[한서윤에 대한 채무·혼인·비밀유지 관련 모든 부속 약정의 효력 부인.][향후 어떠한 명목으로도 권리 포기 또는 침묵을 요구하지 않음.]그녀는 서명하지 않았다.서윤의 외부 변호인이 의아한 표정
스튜디오 유리문 너머로 아버지가 서 있었다.한기석.서윤은 그 이름을 속으로 천천히 불렀다.아버지라고 부르면, 또 무너질 것 같아서.그는 비에 젖은 코트 차림이었다. 한 손에는 두툼한 봉투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유리문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문은 잠겨 있었다.한기석이 손잡이를 한 번 더 잡아당겼다.딸랑.문 위의 작은 종이 흔들렸다.“서윤아.”유리문 너머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문 열어. 아빠랑 얘기 좀 하자.”서윤은 움직이지 않았다.작업대 위에는 아직 쓰다 만 공식 입장문이 떠 있었다.저는 제
“나만 몰랐던 건가요?”수화기 너머로 서윤의 목소리가 떨어졌다.낮고, 조용하고, 차가웠다.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말해야 했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말해야 했다. 그러나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3년 동안 숨겨 온 진실은 한 문장으로 꺼내기엔 너무 무거웠다.그 침묵이 답이었다.서윤은 웃었다.아주 작고 짧은 웃음이었다.“그렇구나.”“서윤 씨.”“대답 안 해도 알겠어요.”“듣고 설명하겠습니다.”“설명?”그녀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차태오 씨는 늘 그래요. 말하지 않고 숨겨 놓고, 일이 터진 뒤에야
차태오는 그날 밤, 결국 이혼 서류에 서명하지 못했다.펜은 손에 쥐고 있었다. 검은 만년필의 뚜껑도 열려 있었다. 서류 맨 아래, 한서윤의 이름 옆 빈칸은 지나치게 깨끗했다.차태오.석 자만 쓰면 끝나는 일이었다.3년 전에도 그랬다. 결혼 서류에 이름을 적는 데 걸린 시간은 5초도 되지 않았다. 그때의 그는 결혼이란 사업상 필요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한서윤은 그 결정의 조용한 상대였다.말수가 적고, 선을 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 여자. 공식 석상에서 웃어야 할 때 웃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며, 그의 곁에 있어
비가 오고 있었다.한서윤은 식탁 위에 식어가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찻물 위로 얇은 김이 사라진 지는 오래였다. 잔 가장자리에는 입술 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차태오는 오늘도 마시지 않았다.그는 늘 그랬다. 서윤이 우려 놓은 차를 보고도, 정작 손을 대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도 서윤은 매번 새 찻잎을 골랐다. 새벽 두 시에 돌아오는 사람의 위장을 생각했고, 비 오는 날 젖은 어깨를 생각했고, 피곤할 때마다 조금 굳어지는 그의 미간을 생각했다.그런 것들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서윤은 찻잔을 싱크대로 가져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