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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다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1 19:40:00

우주는 유리문을 놓고도 한 번 더 뒤를 돌아봤다. 이든이 다시 칼을 든 것을 보고서야 윤슬 옆으로 붙었다.

“엄마, 아저씨는 맨날 저기서 자?”

“가게 뒤에 방이 있어.”

“빵 옆에서?”

“빵은 부엌에 있고.”

우주는 가방 끈을 끌어 올렸다. 윤슬은 아이 어깨에서 뒤집힌 끈을 펴 주고 빌라 쪽으로 걸었다. 우주는 모과나무를 지날 때까지 식당 창을 두 번 더 봤다.

▷

4월 18일 토요일, 윤슬은 마지막 손님의 목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거울 아래에는 우주가 그린 종이가 놓여 있었다. 파란 지붕 밑에 네모난 창이 세 개였다. 실제 집에는 없는 큰 창도 하나 그려져 있었다.

“이건 어디야?”

손님이 나간 뒤 윤슬이 물었다.

“우리 집.”

“창이 이렇게 많아?”

“내 방에 하나 더.”

“왜?”

“아저씨네 보게.”

윤슬은 빗에 낀 머리카락을 빼다가 손을 멈췄다. 빌라에서는 맞은편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우주는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 창을 하나 더 그렸다.

“집에서는 잘 자면 돼.”

“나 잘 자.”

“아침에는 누가 깨워도 눈 안 뜨잖아.”

“눈도 자는 거야.”

윤슬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주는 대답을 잘했다고 여겼는지 종이 아래에 자기 이름을 크게 썼다.

미용실 바닥을 쓸고 수건을 세탁 바구니에 담았을 때, 맞은편에서 철구가 손을 흔들었다. 우주가 문 앞으로 달려갔다가 윤슬을 돌아봤다.

“가도 돼?”

“같이 가.”

윤슬은 문을 잠그고 아이와 골목을 건넜다.

열린 부엌에서는 이든이 빵을 자르고 있었다. 칼이 단단한 가장자리를 지나자 도마에 짧은 소리가 났다. 팬에 올린 빵 아래로 버터가 녹았다.

우주는 카운터에 앉자마자 그림을 펼쳤다.

“우리 집이야.”

이든은 불을 줄이고 종이를 봤다.

“이 큰 창은?”

“새로 만들었어.”

“네 방에?”

“응. 아저씨네 보여.”

이든은 종이를 눕혀 놓고 빵을 뒤집었다. 노릇해진 면이 위로 올라왔다.

“그 창에서 보이면 나도 손 흔들게.”

“진짜?”

“응.”

우주는 유리문 쪽을 보며 손을 흔들어 봤다. 윤슬이 아이 팔을 내려 주었다.

“지금 말고.”

이든이 빵을 접시에 담아 가운데 놓았다. 우주가 한 조각을 집으려다 김을 보고 손을 거뒀다.

“아직 뜨거워.”

“조금 기다려.”

윤슬은 아이 그림의 접힌 귀퉁이를 폈다. 창 하나를 그리는 데는 크레파스만 있으면 됐다. 식탁에 자리를 하나 더 내는 일은 그러지 못했다.

이든은 쓰던 도마를 씻어 세워 두었다. 윤슬은 물소리가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끝나고 잠깐 올래?”

이든이 행주를 접던 손을 멈췄다.

“어디로?”

“우리 집.”

우주가 빵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다.”

“아직 안 왔어.”

“그림일기에 쓰려고.”

“오늘 쓴 건 오늘 있었던 일이어야지.”

우주는 빵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윤슬은 아이가 씹는 동안 이든에게 작게 말했다.

“우주 자고 나서. 볼 게 있어.”

“가게 닫고 갈게.”

윤슬은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벨 누르지 말고. 문 앞에서 전화해.”

이든이 휴대전화를 꺼내 건넸다. 윤슬은 번호를 누른 뒤 자기 전화가 울리는 것을 확인했다. 화면에 뜬 번호를 저장하는 데는 잠깐이면 됐다.

우주는 그 사이 빵 한 조각을 다 먹었다.

“엄마 번호야?”

“응.”

“아저씨도 있어?”

“방금 넣었어.”

아이는 윤슬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려다 말고 남은 빵을 골랐다. 윤슬은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

우주는 씻고 나서도 현관 쪽으로 두 번 나갔다.

“아직 안 와?”

“가게에 손님 있잖아.”

“다 먹으면 오지?”

“응. 너는 먼저 자.”

“나 안 졸려.”

그 말을 하고 나서 하품했다. 윤슬은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한 번 더 눌러 닦았다. 우주는 수건 끝을 잡고 자기 눈까지 가렸다.

“불은 조금만.”

“문 열어 둘게.”

윤슬은 아이를 눕히고 이불을 배까지 덮어 주었다. 우주는 베개 옆에 놓인 작은 자동차를 손으로 밀었다. 벽에 닿은 자동차를 되돌리려던 손이 조금씩 느려졌다.

“엄마, 아저씨 오면…….”

“응.”

말이 끝나지 않았다. 윤슬은 잠깐 기다렸다가 아이 손에서 자동차를 빼냈다. 잠이 든 우주는 손가락을 한 번 오므리고 다시 폈다.

윤슬은 방문을 손바닥 하나 들어갈 만큼 열어 두었다.

거실 장 아래에서 앨범을 꺼냈다. 세 권을 식탁에 올려놓으니 빈자리가 넉넉하지 않았다. 아이가 아까 벗어 둔 양말을 치우고, 크레파스 통을 작은 선반으로 옮겼다.

첫 앨범의 투명한 겉장을 닦았다. 모서리에 손톱을 대지 않으려고 손가락 바닥으로 눌렀다. 닦고 나서도 그 자리를 한 번 더 훑었다.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윤슬은 소리를 낮추고 현관으로 갔다. 문을 열자 이든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가게에서 두르던 앞치마는 벗었고, 짙은 색 겉옷 아래로 깨끗한 소매가 보였다.

“들어와.”

이든은 문턱 앞에서 신발을 벗었다. 우주의 작은 운동화를 건드리지 않게 자기 신발을 옆으로 붙였다.

“잤어?”

“응. 방금.”

윤슬은 슬리퍼를 꺼내려다 말았다. 손님용으로 둔 것은 한 짝이 장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냥 들어와도 돼.”

이든은 양말을 신은 채 조용히 식탁 쪽으로 갔다. 의자를 빼는 소리가 나자 중간에 손으로 들어 바닥에서 떼었다.

윤슬은 앨범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여기 앉아.”

이든의 시선이 세 권을 차례로 지나갔다. 윤슬은 첫 앨범을 돌려 이든 앞으로 놓았다.

“처음부터 있어. 다 찍은 건 아니지만.”

이든은 겉장에 손을 올렸다. 곧바로 열지 않고 손바닥을 바지에 한 번 문지른 뒤 첫 장을 넘겼다.

윤슬은 물을 따라 식탁에 놓았다.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천천히 봐.”

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슬은 부엌으로 돌아섰다. 저녁에 쓴 컵 두 개와 아이 물병이 싱크대에 남아 있었다. 설거지를 나중에 해도 됐지만, 식탁 맞은편에 앉아서 이든의 손을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물을 약하게 틀었다. 등 뒤에서 앨범의 두꺼운 종이가 넘어갔다.

한 번, 조금 있다가 또 한 번.

윤슬은 물병 뚜껑의 홈을 솔로 닦았다. 평소보다 오래 그 자리를 문질렀다.

한동안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조금 돌리자 백일 사진이 보였다. 우주는 흰옷을 입고 쿠션에 기대 앉아 있었다. 몸은 작고 볼은 둥글었다. 주먹을 입 쪽으로 가져가느라 소매가 턱에 닿아 있었다.

이든의 손가락은 사진 아래에 놓여 있었다. 얼굴에는 닿지 않았다.

윤슬은 수도꼭지를 잠갔다.

부엌이 조용해지고 나서도 이든은 그 장을 넘기지 않았다. 윤슬은 씻은 물병을 엎어 놓고 젖은 손을 닦았다.

“그때는 카메라만 보면 주먹을 먹었어.”

이든이 사진을 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다음 장에는 안 먹고 있어. 졸려서.”

윤슬은 식탁까지 가지 않고 부엌 끝에 서 있었다. 이든이 천천히 다음 장을 넘겼다. 같은 옷을 입은 우주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든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윤슬은 컵을 찬장에 넣었다. 문을 닫을 때 손으로 받쳐 소리를 줄였다.

▷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주 작게 두 번이었다. 윤슬은 방문부터 확인하고 현관으로 갔다. 탁 할머니가 작은 통을 들고 서 있었다.

“오이 좀 남았다. 혼자 먹자니 많아서.”

“내일 주셔도 되는데.”

“불 켜졌길래. 우주는 잤냐?”

“네.”

윤슬이 통을 받자 탁 할머니가 열린 문 안으로 눈길을 주었다. 식탁에 앉은 이든과 펼쳐진 앨범이 그대로 보였다.

탁 할머니의 눈이 한 번 커졌다.

이든이 일어나려 하자 할머니는 손을 가볍게 저었다.

“앉아 있어. 애 깬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그래.”

탁 할머니는 윤슬에게 건넨 통의 뚜껑을 한 번 눌러 주었다.

“이거 꽉 닫혔다. 옆으로 해도 안 샐 거야.”

“고맙습니다.”

“나는 내려간다.”

더 묻지 않았다. 윤슬이 계단 쪽으로 한 발 나가자 할머니가 아래를 가리켰다.

“거기 있어. 문 열어 놓으면 바람 들어가.”

윤슬은 할머니가 난간을 잡고 내려가는 것을 보고 문을 닫았다. 부엌에 통을 내려놓는 동안 이든은 다시 앨범에 손을 올렸다.

두 번째 앨범에는 우주가 가구를 붙들고 선 사진이 있었다. 다음 장에서는 한 손을 놓았다. 그 옆 사진은 흔들려서 아이 얼굴보다 바닥이 더 크게 찍혀 있었다.

이든은 세 사진을 한동안 번갈아 봤다.

“이게 처음 걸은 날?”

“응. 급하게 찍어서.”

윤슬은 이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앨범을 사이에 두고도 무릎이 식탁 아래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진은 저래도 걸었어. 여기까지.”

윤슬이 사진 속 바닥을 짚었다.

이든은 고개를 숙여 흐릿한 아이 발을 봤다.

“몇 걸음?”

“세 걸음. 그다음에는 앉았고.”

이든은 사진의 귀퉁이가 투명한 주머니 밖으로 나온 것을 눌러 넣었다. 손가락 끝으로 밀다가 접힐 것 같자 주머니 입구를 벌려 다시 넣었다.

윤슬은 그 손에서 눈을 떼고 물컵을 당겼다.

어린이집 첫날 사진에서는 가방이 아이 등보다 커 보였다. 우주는 손잡이를 쥔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다른 사진보다 입이 꾹 다물려 있었다.

“이날은 안 울었어.”

윤슬이 말했다.

이든이 사진에서 눈을 들었다.

“들어갈 때는. 내가 데리러 가니까 그때 울더라.”

“늦게 갔어?”

“아니. 자기는 엄마도 같이 들어가는 줄 알았대.”

이든은 다시 사진을 봤다. 윤슬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야기를 꺼내고 나니 사진에 담기지 않은 일이 자꾸 따라왔다. 입을 다문 채 다음 장을 기다렸다.

세 번째 앨범에는 다섯 살 생일 사진이 있었다. 우주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나이를 펴려다 양쪽 손을 다 편 모양이었다.

이든은 사진을 가까이 보려고 앨범을 조금 당겼다.

“이건 열 살인데.”

작은 목소리였다. 윤슬이 웃었다.

“손이 두 개라서 둘 다 해야 된대.”

이든은 사진 아래쪽도 살폈다. 아이 발은 의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양말 한 짝이 발끝에만 걸쳐 있었다.

“양말은 여전하네.”

“집에 오면 반쯤 벗어. 아주 벗든가, 끝까지 신든가 하라니까 저래.”

윤슬은 식탁 아래 자기 발을 내려다봤다. 의자 옆에 오늘 벗은 양말 한 짝이 또 있었다. 아까 치운 것과 짝이었다.

윤슬이 주우려 허리를 숙이자 이든이 먼저 보았다. 손을 뻗지 않고 의자를 옆으로 조금 밀어 자리를 내 주었다.

윤슬은 양말을 주워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돌아왔을 때 이든은 마지막 장을 보고 있었다. 사진이 없는 주머니도 몇 장 남아 있었다. 이든은 빈 장까지 넘긴 뒤 앨범을 덮었다.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추고 손을 뗐다.

“한 장만 복사해도 돼?”

윤슬은 첫 앨범을 다시 열었다.

어디에 있는지 찾을 필요는 없었다. 백일 사진의 얇은 주머니 입구에 손가락을 넣었다. 오래 꽂혀 있던 사진이 한 번에 빠지지 않아 반대쪽을 조금 들어 올렸다.

흰옷을 입은 우주가 종이 위로 나왔다.

윤슬은 사진 가장자리만 잡고 이든에게 건넸다.

“이거 가져가. 같은 거 한 장 더 있어.”

이든은 두 손으로 받았다. 사진을 내려다보다가 윤슬을 봤다.

“고마워.”

윤슬은 빈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폈다.

“구겨지니까 그냥 주머니에 넣지 마.”

이든은 휴대전화 덮개를 열었다. 안쪽의 비어 있는 칸에 사진을 대 봤다. 크기가 맞지 않자 다시 빼고 그대로 손에 들었다.

“가져가서 세워 둘게.”

윤슬은 앨범을 덮었다. 빈 주머니는 보이지 않게 됐지만, 손은 한동안 겉장에 남아 있었다.

▷

이든은 의자를 제자리에 넣고 방문 앞에서 멈췄다.

“봐도 돼?”

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조금 더 열었지만 불은 켜지 않았다. 거실의 약한 불빛이 아이 이불 끝에 닿았다.

우주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한쪽 발이 이불 밖으로 나와 있고, 아까 치워 놓은 자동차는 베개 옆에 있었다.

이든은 문턱을 넘지 않았다.

사진을 쥔 손은 아래로 내린 채 잠든 얼굴을 봤다. 우주가 입술을 조금 움직이자 이든의 어깨도 잠깐 멎었다.

윤슬은 안으로 들어가 아이 발을 덮었다. 이불을 당기자 우주가 무릎을 구부렸다. 눈은 뜨지 않았다.

돌아서 나오니 이든은 반걸음 물러나 있었다.

윤슬은 문을 처음만큼만 열어 두었다.

현관에서 이든이 신발을 신었다. 손에 든 사진이 굽혀지지 않도록 먼저 겉옷 안쪽에 평평하게 대고, 몸을 천천히 숙였다.

윤슬은 문고리를 잡았다.

“가게까지 금방이니까.”

말을 하고 나서 무엇을 덧붙이려던 건지 잊었다. 이든은 신발 뒤축을 바로 넣고 일어섰다.

“매주 오면 안 돼?”

윤슬은 문고리에서 손을 조금 내렸다.

“……토요일 밤에만.”

“알았어.”

“우주 자고 나서.”

“응.”

이든은 더 묻지 않았다. 사진을 다시 손에 들고 계단으로 갔다.

윤슬은 문을 닫은 뒤 식탁으로 돌아왔다. 앨범 세 권이 펼치기 편한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장 아래에 넣으려다가 그대로 두었다.

첫 앨범 위에 얹은 손만 한 번 쓸고 방으로 들어갔다.

▷

아침에 윤슬은 빈 오이 통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탁 할머니는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윤슬이 통을 내밀자 할머니가 뚜껑을 열어 안을 봤다.

“벌써 다 먹었어?”

“덜어서 냉장고에 넣었어요.”

“우주도 먹여. 물 많아서 아삭하더라.”

“네.”

탁 할머니는 윤슬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윤슬은 통에서 손을 떼고 옷소매를 내렸다.

“어제는…….”

“그래, 그래.”

할머니는 통을 안으로 들여놓았다. 다시 나와 신발 뒤축을 당겨 신었다.

“가서 애 아침 줘. 기다리겠다.”

윤슬은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올라가니 열린 현관문 틈으로 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여기 있어.”

우주는 잠옷 차림으로 식탁 옆에 서 있었다. 앨범 한 권을 펼쳤지만, 다른 두 권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놓아뒀다.

“누가 봤어?”

“아저씨.”

우주가 곧바로 현관 쪽을 봤다.

“어디 있어?”

“가게에 갔지. 어젯밤에 왔으니까.”

“나 자서 못 봤잖아!”

“계속 기다리더니 잠들었잖아.”

우주는 앨범 속 백일 사진이 빠진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윤슬이 그 옆에 있는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건 아저씨 줬어. 같은 거 여기 있지?”

우주는 두 사진 자리를 번갈아 봤다.

“아기 나 가져갔어?”

“사진만.”

아이는 비어 있는 주머니를 눌렀다가 손을 뗐다. 그러고는 의자를 끌어 식탁 끝에 붙였다.

“다음에는 여기 앉을래.”

“거기는 아저씨가 앉았던 데인데.”

“그러니까.”

우주는 의자 위로 올라가 앨범을 자기 앞으로 당겼다. 윤슬은 아이가 짚은 빈 주머니 옆으로 아직 사진을 넣지 않은 장을 펼쳐 주었다.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다. 내가 자서 못 봤다. 아깝다. 다음엔 안 잘 거다.』

(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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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은 받은 빗을 선반 위에 놓았다. 빗살이 아래로 가게 놓았다가 다시 뒤집었다.맞은편 의자에 앉은 이든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평소 손님을 앉히던 자리였다. 윤슬은 의자 높이를 낮추는 발판을 밟으려다 발을 거뒀다.“불편하면 뒤로 조금 밀어.”“괜찮아.”이든의 무릎과 윤슬의 무릎 사이에 바닥 타일의 줄이 놓여 있었다. 윤슬은 그 줄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뭐부터 듣고 싶어?”이든이 입을 열기까지 조금 걸렸다.“언제 알았어.”“네가 떠나고, 다음 달.”윤슬은 귀 뒤로 넘긴 앞머리를 다시 눌렀다.“1월 둘째 주였어. 8주라고 하더라.”이든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날짜를 세지는 않았다. 바지에 생긴 주름을 펴다가 손을 멈췄다.“혼자 갔어?”“응.”“그때도 혼자 살았잖아.”“살고 있었지.”윤슬은 의자 끝에 놓인 수건을 집었다. 손님 목에 둘렀다가 세탁하려고 빼 두었다. 접힌 자리가 어긋나 있어 모서리를 맞췄다.“전화할까 했어. 병원 나와서.”이든이 윤슬을 보았다.“안 했어.”“왜.”“말하면 돌아올 거잖아.”윤슬은 수건을 무릎에 내려놓았다.“연수고 뭐고, 다 두고 올 사람이었으니까.”이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 팔걸이를 잡았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안 왔을 거라고는 못 하겠어.”“알아.”“그래도 알았어야 했어.”윤슬은 수건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응. 그건 알아.”더 보탤 말은 없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놓고 소식을 전하면, 이든은 돌아올 테니까. 그걸 알고도 말하지 않은 것은 윤슬이었다.“우리 붙잡지 않기로 했잖아. 연락도 하지 않기로.”“했지.”“3년 뒤 겨울에 둘 다 혼자면 다시 보기로 했고.”이든의 시선이 선반 위 빗에 잠깐 머물렀다.“그때 말하려고 했어. 네가 돌아오면.”윤슬은 무릎 위 수건을 한 번 더 접었다. 더 작게 접을 필요는 없었는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그때는 우주도 같이 데리고 나갈 수 있겠다 싶었어.”“골목에 왔어?”“세 번.”짧게 답하자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8화. 응

    우주가 골목 끝에서 한 번 더 손을 당겼다.“엄마, 여기 밝은 데.”빌라 입구의 등이 켜져 있었다. 아이는 불빛 아래로 먼저 발을 넣고 새로 짧아진 머리를 만졌다. 윤슬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우주가 양손을 폈다.“아저씨는 뭘 기다려?”윤슬은 아이 점퍼의 지퍼를 내려 주었다.“언제?”“아까. 가게 앞에서.”점퍼 안쪽에 머리카락 하나가 남아 있었다. 윤슬은 손톱으로 집어 떼고 옷을 걸었다.“가게 문 닫고 있었겠지.”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발판을 당겼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 뒤에도 윤슬은 현관에 서 있었다.가방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선우가 보내 준 사진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 머리가 똑같아진 두 아이가 나란히 웃고 있었다.윤슬은 화면을 끄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4월 8일 수요일 아침, 우주는 빌라 계단을 내려오며 가방 끈을 고쳐 멨다.“엄마, 이쪽.”아이가 모과나무 쪽으로 발을 돌렸다. 윤슬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골목 바깥쪽을 가리켰다.“오늘은 저쪽으로 가자.”“또?”우주가 멈춰 섰다.그 길로 가면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접시 하나 앞을 지나게 됐다. 유리문 안에서 빵을 자르는 손이나 카운터를 닦는 이든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윤슬은 요 며칠 골목 어귀를 돌아서 다녔다.“여기도 길 있잖아.”“아저씨 집 앞에도 있어.”“알아.”“엄마는 왜 저 집 앞만 돌아가?”윤슬은 아이 가방에서 한쪽으로 기운 물통을 바로 넣었다. 뚜껑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엄마가 생각할 게 있어서.”우주가 윤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걸으면서?”“응.”“그럼 천천히 가.”아이는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윤슬 옆에 붙어 작은 걸음으로 걸었다. 파란 운동화 앞코가 바닥의 금을 넘을 때마다 가방에 달린 고리가 흔들렸다.윤슬은 아이 손을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우주는 빨리 가도 돼.”“손 잡았잖아.”우주가 잡힌 손을 들어 보였다. 윤슬은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7화.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뭘 세

    윤슬은 공책을 덮어 가방 옆에 놓았다. 예약 장부에는 다음 토요일 오후가 한 칸 비어 있었다. 우주 머리를 깎으려고 남겨 둔 자리였다.방 안에서 이불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장부를 닫고 아이 곁으로 갔다. 베개 아래에 눌린 머리카락을 빼 주자 우주가 잠결에 고개를 돌렸다. 귀를 덮은 머리끝이 손등을 간질였다.▷4월 4일 토요일, 우주는 미용실 의자 앞에서 두 발을 붙이고 섰다.“다음에.”윤슬은 아이 목에 두를 작은 수건을 펴 들었다.“오늘 하기로 했잖아.”“내일.”“내일도 머리는 깎아야지.”우주는 귀를 양손으로 덮었다. 머리카락까지 눌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왔다.윤슬은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귀 안 자르는 거 알지?”“아는데.”“그럼 앉자.”“싫은 건 알아도 싫어.”윤슬은 펴 놓은 수건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예약한 손님이 늦는다는 연락을 해 와서 잠깐 틈이 났다. 그사이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우주는 의자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머리가 눈 찌르잖아.”“눈 감으면 돼.”우주가 눈을 꼭 감았다. 그러고는 한쪽만 살짝 뜨고 윤슬의 손을 살폈다.가위는 아직 허리 가위집에 있었다.“엄마, 조금만 잘라.”“응. 조금만.”“조금보다 더 조금.”“먼저 앉아 봐.”윤슬은 아이를 안아 의자 위에 놓았다. 높이를 맞추려고 받침을 올리고 덮개를 펼치자 우주의 턱이 벌써 가슴 쪽으로 내려갔다.지난번에도 이 자리에서 울었다. 목에 머리카락이 붙는다고 울고, 털어 주려고 덮개를 풀면 아직 안 끝났느냐고 울었다. 윤슬은 오늘 쓸 수건을 두 장 준비해 두었다.“목에 안 들어가게 할게.”우주는 수건을 두른 목을 만졌다.“여기 다 막아.”“막았어.”“뒤도.”윤슬은 목덜미 쪽을 한 번 더 접었다. 우주가 고개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덮개를 여미고 빗을 꺼냈다.빗살이 앞머리를 지나기도 전에 아이의 어깨가 올라갔다.“아직 안 잘랐어.”“지금 자르잖아.”“빗는 거야.”우주의 입이 벌어졌다. 윤슬은 가위를 꺼내려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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