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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황태자의 답장

Author: 운디네J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0 23:05:56

“공작님을 노린 거라면, 저는 대신 빠진 거예요?”

백작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보다 무거웠다. 서윤은 지도에서 손을 뗐다. 어머니가 의자 팔걸이를 꽉 잡고 있었다. 안심할 일이 아니었다. 표적이 아니었다고 해서 다음에는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니까.

“좌석표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레온이 말했다.

관리인이 고개를 들었다.

“황실 인장이 찍힌 원본입니다.”

“그러면 현장의 배치가 원본과 같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차분했다. 서윤은 그 차분함이 고마우면서도 이상했다. 마차에서 수건을 정리하지 못하던 손과 같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백작은 당분간 혼자 외출하지 말라고 했다. 서윤은 동의했다. 그 대신 사고 조사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도 알려달라고 했다.

“이상한 소문으로 먼저 듣고 싶지는 않아요.”

백작은 딸을 오래 보았다.

“그래. 네가 알아야지.”

그는 아이를 달래듯 약속하지 않았다. 서윤은 그제야 어깨에서 조금 힘을 뺐다.

다음 날 도착한 것은 조사 보고서가 아니라 황태자의 편지였다.

〈어제 드리지 못한 답을 전하고 싶습니다. 직접 만나겠다는 조건을 영애께서 먼저 붙이셨으니, 이번에도 지켜드리겠습니다.〉

서윤은 마지막 줄을 세 번 읽었다.

직접 만나겠다는 조건.

병에 걸리기 전 엘린이 보낸 편지를 찾아야 했다. 그녀는 다시 서랍을 뒤졌다. 책 사이에 끼워둔 영수증까지 살폈지만 사본은 나오지 않았다.

레온에게 물었을 때도 답은 같았다.

“봉인해서 보내신 서신의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누가 가져갔는지는요?”

“황실 전령이 직접 수령했습니다.”

정식으로 보낸 편지였다. 장난이나 연애편지라면 전령까지 왔을까. 소설에서 엘린이 황태자와 특별히 가깝다는 내용은 없었다.

서윤은 손톱 옆을 눌렀다.

모르는 편지 때문에 황태자를 피하는 것과, 모른 채 만나러 가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할지 계산했다. 둘 다 싫었다. 그래도 한쪽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백작의 동의를 받고 나갔다. 레온이 동행했고, 마차 뒤에는 백작가의 경비 두 명이 따랐다.

별궁 대신 황궁의 작은 온실에서 만났다.

아드리안은 먼저 와 있었다. 곁에는 서류철 하나와 덮개를 씌운 접시가 놓여 있었다.

“잠은 좀 주무셨습니까?”

“조금요.”

“거짓말을 잘하시는 쪽은 아니군요.”

그가 의자를 빼주었다. 서윤은 앉기 전에 온실의 출입문부터 보았다. 아드리안이 그 시선을 알아차렸다.

“잠그지 않습니다. 밖에 영애의 수행인도 있고요.”

유리 너머로 레온이 보였다. 그는 다른 시종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서윤이 고개를 돌리자 시선을 맞췄다가 먼저 거두었다.

아드리안은 접시 덮개를 열었다.

빵 대신 배를 졸인 것이 담겨 있었다.

“황실 의사에게 먹어도 되는 것을 물었습니다. 제가 골랐다면 보기에만 예쁜 것이 나왔을 겁니다.”

솔직한 말이었다. 서윤은 포크를 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향신료 냄새가 조금 났지만 목을 긁지는 않았다.

“편지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아드리안이 그녀를 보았다.

“제가 쓴 걸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서요. 열병 뒤로 그런 게 좀 있어요.”

그가 서류철을 열었다. 쉽게 내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봉투째 그녀 쪽으로 밀어주었다.

“제 것이라고 우길 수도 있었는데.”

“안 그러셔서 다행이네요.”

아드리안이 웃었다.

서윤은 봉투에서 편지를 꺼냈다. 엘린의 필체는 일기에서 본 것과 같았다.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글자였다.

〈전하께서 제안하신 혼담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포크를 놓칠 뻔했다.

그녀는 얼굴을 들지 않고 다음 줄을 읽었다.

〈다만 그것이 아버지의 뜻으로 알려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 의사로 거절하는 것입니다. 직접 만나 답을 듣겠습니다.〉

아드리안은 그녀가 편지를 접을 때까지 기다렸다.

“기억이 나십니까?”

“제가…… 전하의 혼담을 거절했네요.”

“아직 혼담은 아니었습니다. 제 어머니가 가능성을 타진했지요.”

“그것도 거절했고요.”

“아주 분명하게.”

서윤은 편지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엘린은 싫다고 말할 줄 알았다. 테오가 한 말이 떠올랐다. 상대가 황태자여도 마찬가지였다.

“답이란 건 뭔가요?”

“알겠다는 대답입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드리안은 어깨를 한 번 움직였다.

“거절한 사람을 설득하려고 불렀을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솔직히요.”

“그럴 수도 있었겠지요. 저에게 편리한 혼인이었으니까.”

그 말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그는 베이라 가문이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것, 황실이 북부 귀족들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짧게 설명했다. 혼담 이야기를 하면서도 펼쳐놓은 것은 귀족 가문의 명단이었다.

“그럼 왜 제게 직접 답하려고 하셨어요?”

“영애께서 직접 거절하셨으니까.”

아드리안이 편지 모서리를 가리켰다.

“아버지 뒤에 숨지 않겠다고 했잖습니까. 저도 어머니 뒤에 숨으면 예의가 아니겠지요.”

“거절한 뒤에도, 전하께 부탁을 드려도 되는 거예요?”

서윤이 물었다.

“어떤 부탁인지에 따라 다르겠지요.”

“기부금 기록을 보는 건요.”

“영애의 가문이 낸 돈입니다. 제 혼담을 받아들여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녀는 편지 끝을 놓았다. 종이에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드리안이 그것을 보고 덧붙였다.

“다만 제 호의를 전부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잘 보이고 싶은 마음까지 없는 건 아니니까.”

서윤은 그 말에 웃을 뻔했다가 참았다.

그는 거절할 자리를 내주면서도, 자기가 그 자리를 내주었다는 사실은 잊지 않게 했다. 다정함과 계산이 따로 놓인 사람이 아니었다. 둘 다 그의 일부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기 대답도 조금 솔직하게 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전하가 어떤 분인지도요.”

“그 정도면 출발하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는 대답을 독촉하지 않았다.

서윤은 그를 조금 다르게 보았다.

친절해서 안전한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주는 사람일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고맙습니다.”

“너무 빨리 감사하지 마십시오. 영애가 보내신 다른 청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다른 청.

편지 뒷면에 글이 있었다.

〈별궁 수문 공사에 관한 기부금 내역을 열람하게 해주십시오. 베이라 가문의 이름으로 지출된 금액이 실제 공사와 맞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서윤은 종이 끝을 잡았다.

수문. 강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시설.

사고가 난 별궁 바로 아래에 있었다. 음악회에서 본 물살이 떠올랐다.

“회계에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틀린 숫자는 신경 쓰여서요.”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 대답이었다.

아드리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그 말씀도 예전에 하셨지요.”

서윤은 편지를 내려놓았다. 닮은 점을 발견했다고 기뻐할 수는 없었다. 엘린이 자취를 감췄다는 소설의 내용이 자꾸 걸렸다.

혼담을 거절하고, 기부금 내역을 요구하고, 봄의 연회 뒤에 사라진 여자.

단순히 분량이 적었던 조연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드리안은 빈 접시를 치우며 소매를 걷었다. 손목에 붉은 자국이 있었다. 어제 물에서 입은 상처라고 했다.

“구조하신 아이는 괜찮아요?”

“지금은 저보다 잘 먹고 있습니다.”

그가 웃었다.

“애가 제 옷에 토한 걸 걱정하길래, 옷값은 나중에 커서 갚으라고 했지요.”

“진짜로요?”

“그랬더니 울음을 멈추더군요. 사과하면 제가 죽여버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서윤도 웃었다. 잘 웃으려던 게 아닌데 나왔다.

아드리안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그녀가 입가를 만지자 그가 먼저 시선을 옮겼다.

“다행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덜 겁먹은 얼굴이라서.”

그 말에 괜히 포크를 다시 들었다. 접시는 비어 있었다.

아드리안은 못 본 척했다.

돌아가기 전 서윤은 강에서 있었던 일을 물었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오던 순간, 다리 밑에서 누군가 서윤을 밀어 올리는 것을 봤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세요?”

“흰 셔츠. 어두운 겉옷은 벗었거나 물에 떠내려갔겠지요.”

모두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새 단서를 얻었는데, 아무도 지울 수 없었다.

그가 문을 열어주었다. 가까이 스친 옷깃 안쪽에서 붉은 선이 보였다. 고리를 닮은 굽은 모양이었다. 서윤의 시선이 멈추자 아드리안이 옷깃을 정리했다.

“궁금한 것이 남았습니까?”

그녀는 대답을 고르다가 편지를 들었다.

“이건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사본을 남기는 조건으로.”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로 시종을 불렀다.

마차에 오르기 직전 황태자가 그녀를 다시 불렀다.

“엘린 영애.”

그녀가 돌아보았다.

“다음에는 용건 없이 만나도 되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가벼웠다. 그래서 오히려 대답이 어려웠다.

서윤이 망설이는 사이, 뒤에서 레온이 마차 문을 잡았다.

레온의 손아귀에서 금속 손잡이가 짧게 삐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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