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경서의 싸늘한 시선이 윤모의 얼굴에서 느긋하게 아래로 내려갔다.먼저 선명한 쇄골에 머물렀다.이어서 셔츠 아래 단단한 가슴으로 내려갔다.마지막에는 잘록한 허리와 복부 언저리에 시선이 멈췄다.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눈이라기보다, 값을 매겨야 할 상품을 구석구석 살피는 눈에 가까웠다.몇 초 뒤 경서가 고개를 들었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지만 온기는 없었다.“아?”끝음을 길게 늘인 목소리에 느긋한 품평이 섞였다.“심 대표, 돈 받고 하는 사람이었어?”“그래서 얼마인데?”경서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지금 안전한 시기잖아. 괜찮아.”‘가임기간도 계산할 줄 알아?’‘됐어. 너무 피곤해. 생리도 일주일쯤 뒤면 시작하니까 지금은 따질 힘도 없어.’혜니도 더 이상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결국 AK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가 넘은 뒤였다.나래는 혜니의 품에서 새끼돼지처럼 푹 잠들어 있었다. 인우는 아이가 추울까 봐 자기 외투를 벗어 나래 위로 감쌌다.건물 아래에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서 있었다. 매끈한 차체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남자 한 명이 차에 기대 있었다. 손가락 사이의 담뱃불만 붉게
인우가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너 내 여자친구 해.”혜니가 뜻밖이라는 듯 인우를 바라봤다.“혜니, 넌 인우 여자만 해.” 인우가 제멋대로 선언했다.‘이 말투... 왜 이렇게 익숙하지?’대학교 때 혜니가 인우에게 고백할 때 딱 이런 식으로 말했었다.“자기야, 그만 화내고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인우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나 아직 장모님한테 점수도 못 땄는데 너까지 나랑 싸우면 안 돼. 진짜 미쳐 버릴 것 같아.”말투에는 억울함과 은근한 애교가 섞여 있었다.“왜, 이제 현장 덮치기는 안 하게? 원준 오빠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식탁에서는 진춘심이 경서에게 반찬을 하나하나 챙겨 주고 있었다.“고마워, 엄마.” 경서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처음 왔을 때보다 표정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많이 먹어. 내일은 어머니가 토종닭 두 마리 사다가 푹 고아 줄게. 너 다친 데가 한두 군데여야 말이지.”“응.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 경서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춘심은 경서를 찬찬히 살폈다. “좀 더 먹어. 요새 너무 말라서 바람 세게 불면 날아가겠다.”“응.” 경서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대답했다....얼마 지나지
“최상급 홍삼이랑 보양식 좀 골라서 보내.”윤모가 지시했다. 하지만 몇 초 뒤 생각을 바꿨다.“아니다. 네가 직접 가. 내 장모님 될 분이니까 잘 보여 둬.”민찬은 ‘장모님’이라는 말을 듣자 제 귀를 의심했다.‘우리 대표님... 하경서 이사님과 결혼까지 생각하시는 건가?’‘정말 결혼하실 생각이라고?’ ‘회장님이 손자에게 드디어 결혼할 마음이 생겼다는 걸 알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윤모는 민찬의 놀란 표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경서가 늘 진춘심을 ‘엄마’라고 불렀으니, 진춘심은 당연히 자신의 예비 장모님이나 다름없었
시호와 용훈이 정말 이헌을 이길 수만 있다면 하늘은 별장에서 당장 나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날 밤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니까.용훈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상대가 네 삼촌이면 최소 연간권은 끊어야 해. 우리 열세 명이 팀 짜서 풀로 붙어서 밤낮없이 기습하면 어떻게든 잡을 수는 있겠다.”재무 조간 리포트를 보고 있던 이헌이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등 뒤가 묘하게 서늘했다.“와, 그렇게까지 해야 해?” 하늘은 입을 떡 벌렸다.경서는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병실 밖.윤모는 복도 그늘에 큰 몸을 기대
혜니는 이를 악물고 보고서를 다시 확인했다.한 번으로는 부족해 두 번이나 더 들여다보았다.그렇게 시계가 밤 9시 반을 가리킬 때가 되어서야, 겨우 보고서 검토를 끝낼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확인해도 결과는 같았다.오류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혜니는 보고서를 챙겨 다시 대표실로 향했다.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보고서를 정중히 올려놓았다.“검토 끝났습니다.”인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보고서를 한 번 훑더니, 태연하게 말했다.“미안해. 윤 비서. 내가 잘못 본 것 같다.”혜니는 할 말을 잃었다.‘
인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아이는?”“없습니다.”“좋군.”인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혜니는 그런 인우를 한 번 바라보았다.‘좋긴 뭐가 좋아.’‘그때 남겨 놓은 네 ‘보물’ 때문에 내가 죽을 뻔했어!’“됐어. 회의 있습니다.”인우가 새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소 비서, 따라와.”“네, 대표님.”새연은 기쁜 얼굴로 회의록을 적을 노트를 챙기러 갔다....결국 회의는 세 시간이나 이어졌다.새연의 키보드는 불꽃이라도 튈 듯 쉴 새 없이 두드려졌다.‘우리 새 대표님... 확실히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그대로 굳어 버린 듯했다.사실 혜니는 어젯밤에도 인우의 꿈을 꾸었다....은행나무 아래, 매트, 별빛, 이혼하던 날의 마지막 작별. 혜니가 울부짖었고, 인우는 뜨거운 숨을 귓가에 뿌리며 끝을 정하는 건 자신이라고 했다. “한인우, 이제 그만해.”혜니가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마음까지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인우는 낮게 숨을 내쉬며 혜니를 내려다보았다.뜨거운 기운이 가까이 닿았지만, 인우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렇게 소리칠 힘은 남아 있
“공주님, 얼른 신발 신자. 늦겠다!” 바쁜 아침, 시간에 쫓기는 윤혜니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싫어!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나래는 미꾸라지처럼 몸을 비틀며 말랑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아이고, 우리 착한 아가. 오후에 엄마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 사 줄게. 딸기 맛이야.” 혜니는 온갖 방법을 다 써 목소리를 한껏 부드럽게 낮췄다.달콤한 회유가 통하자 나래는 마지못해 조그만 발을 내밀었다.혜니는 잽싸게 신발을 신기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핸드폰을 꺼내 소새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새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