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담이 지금 그곳으로 갔어연목하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자매........ 옥선녀의 쪼개진 나머지 반쪽 영혼을 가진 강소하가 있는 곳으로...”구미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재민의 두 눈이 잔뜩 커졌다.그는 몸을 벌떡 일으켜 위협적으로 구미호에게 다가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죽은 목하의 이름과 소하의 이름이 왜 함께 나오는 것인지그리고 그들이 쌍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대체 무엇인지. 재민은 묘하게 뒤틀린 표정으로 물었다."목하가 강소하랑.......... 쌍둥이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재민의 격앙된 반응에도 구미호는 ‘흐응’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그녀는 앞으로 기울였던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뉘고는 재민을 비웃듯 앞에 놓인 펜을 손가락으로 데굴데굴 굴렸다.입가에 머금은 조소는 마치 어리석은 인간을 농락하는 포식자의 여유와 같았다."무슨 소리냐고 묻잖아! 말해!"재민은 당장이라도 구미호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수갑에 묶인 두 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취조실 안은 그의 고함 소리로 윙윙 울려 퍼졌다. 구미호는 귀찮은 듯 귀를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성질을 냈다."소리 좀 죽여. 그런다고 죽은 연목하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그 더러운 입에 목하 이름 담지 마! 죽여버릴 거야!"오열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재민이 구미호에게 달려들던 그때였다.굳게 닫혀 있던 취조실 문이 ‘벌컥’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지훈이었다.그는 재민보다 빠르게 구미호에게 다가서더니 품에서 꺼낸 부적으로 감싼 예리한 칼날을 구미호의 목줄기에 들이밀었다."허- 어이없네?"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구미호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구미호.....""박지훈- 너 어떻게 여기를...."지훈의 등장에 재민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바르르 떨리는 등을 바라보았다.지훈의 등 뒤로는 억누를 수 없는 살기와 분노가 진동하고 있었다. 지훈의 뺨을 타고 뚝뚝
“천계에서부터 이어진 자네를 포함한 여섯 명의 질긴 인연.........”스님의 나직하고도 깊은 목소리가 법당 안의 정막을 깨뜨렸다.잠시 몽롱하게 어두운 과거의 잿더미 속에 빠져들었던 지훈의 정신이 그 목소리에 이끌려 현재로 끌어 올려졌다.지훈은 방금 본 환영이 단순한 꿈이 아님을 직감하며 의문이 가득 서린 눈으로 살짝 고개를 비틀었다.“스님 말처럼 모든 게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면.... 옥선녀, 그리고 천계.......그 모든 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에게 이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운명을 만든 거죠?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겁니까?”격양된 지훈의 목소리가 법당 천장에 매달린 연등을 가늘게 떨게 했다.하지만 스님은 요동치는 지훈의 감정과는 대조적으로, 호수처럼 고요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이제 자네들도 기억해야 할 때가 되었지.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는 그 지독한 전쟁의 끝이 다시 시작될 터이니....”스님은 옆에 놓여 있던 다섯 개의 작은 단지 중 하나를 천천히 탁자 중앙으로 옮겼다.단지 표면에는 해묵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만큼은 예사롭지 않았다.“이게 뭐죠? 이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겁니까?”“이 안에는 200년전 자네들의 기억을 강제로 봉인해 놓은 영혼의 구슬이 담겨 있네..”지훈은 단지들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문득 위질감을 느꼈다.“.......기억이라고요? 헌데, 우리 인연이 여섯이라 하셨으면서 왜 단지는 다섯 개뿐인 거죠?”“여섯 중 한 명의 기억이 이미 돌아왔기 때문이라네. 주인에게 돌아간 기억의 구슬은 저절로 깨져 사라지는 법이지”그 순간 지훈의 뇌리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최근 들어 부쩍 이상한 행동을 보이던 사람“.........설마 스님......... 그 한 명이라는 ......... 이정혁입니까?” [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기억이 나게 해주지. ]지훈은 정혁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그 남자의 서늘한 목소리를 떠올렸다.스님
“어머,지훈아!” “박지훈! 정신 차려!”귓가를 찢는 고함 소리에 지훈은 남자의 역겨운 과거로부터 서서히 현실로 끌어올려졌다.간신히 눈을 뜨자 거실 바닥에 쓰러진 자신을 붙잡고 흔드는 어머니와 당황한 안색의 아버지, 그리고 오빠의 팔을 꼭 쥔 채 펑펑 울고 있는 지민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지훈은 파르르 떨리는 시선을 옮겼다. 난장판이 된 식탁 너머 그곳에는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인자한 가면에 가려졌던 포식자의 눈빛. 지훈의 눈동자가 분노로 번뜩였다.“괜찮니- 지훈아? 갑자기 왜 그래?”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일으켰다.이성이 마비된 자리에 짐승 같은 본능만이 남았다. 지훈은 순식간에 남자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졸랐다.“이 개새끼야! 죽여버릴 거야!”광기 어린 비명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돌발 행동에 어머니는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고 지민은 겁에 질려 오열했다.‘짝-!’그때 거실을 울리는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지훈의 몸이 저만치 내동댕이쳐졌다.지훈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남자가 컥컥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이게 무슨 짓이야! 박지훈!”주방을 울리는 아버지의 노호. 지훈은 불에 덴 듯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아버지를 노려보았다.붉게 충혈된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저 남자가......... 지민이를 노린다고요! 저 괴물이!”“지훈아! 너 정말 왜 이러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어머니가 울먹이며 지훈을 말렸지만 아버지는 참담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미안하네.... 내 아들이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요새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야...”“아닙니다 검사님.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군요.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남자는 여전히 선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뒷머리를 긁적이며 현관으로 향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지훈은 마지막 힘을 짜내 비명을 질렀다.“저놈 장기매매 브로커라고요! 지민이가 이번
“와~ 박지훈 진짜 미쳤다. 너 또 전교 1등이냐?”“야- 너는 도대체 공부의 ‘공’ 자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어째 맨날 전교 1등을 찍냐고!”지금보다 앳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18살의 지훈.그를 둘러싼 아이들이 부러움 반, 시샘 반이 섞인 눈빛으로 웅성거렸다.하지만 지훈은 그런 소란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책상 위 물건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챙겨 넣었다.“이것 봐 이것 봐. 야자도 맨날 빼먹는 놈이 성적은 괴물이라니까”“야- 박지훈 솔직히 말해봐. 너 사실 초능력 같은 거 있지?”장난 섞인 친구의 물음에 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친구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그런 게 어딨냐 임마! 나 먼저 간다”“야! 어디 가는데?”멀어지는 지훈의 뒤로 친구들이 소리쳤다. 지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방끈을 고쳐 매며 대답했다.“여동생 보러”그 말에 친구들은 일제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모았다.“지독한 시스터 콤플렉스 같으니라고”멀어지는 친구들의 야유를 배경음 삼아 지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문을 나섰다.***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지훈의 집 대문이 열렸다. 아까보다 한층 밝아진 표정의 지훈이 긴 다리로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고 외쳤다.“지민아! 오빠 왔다!”그 소리에 맞춰 작은 방 안에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다다다’ 소리를 내며 달려 나왔다.아이는 지훈의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훈의 입가에도 그제야 숨길 수 없는 환한 미소가 걸렸다.그는 무릎을 굽혀 앉아 여동생의 눈을 다정하게 맞췄다.“지민이 오빠 기다렸어?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아이는 대답 대신 여전히 함박웃음을 지으며 지훈에게 익숙한 듯 고사리 같은 한 손을 내밀었다.지훈은 오른손에 끼고 있던 얇은 가죽 장갑을 부드럽게 벗어 던졌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순간, 지훈의 머릿속으로 오늘 하루 지민이가 보고 겪은 일들이 파노라마처
“....곰도랑 이도훈이 아마 왔었지....”대리석으로 차갑게 이어진 복도를 걷던 지훈은 '302호'라고 적힌 문 앞에 멈춰 섰다.무거운 정적만이 감도는 문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도어록 위에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올렸다.손바닥이 매끄러운 기계 표면에 닿는 순간 지훈의 신경계가 곤두섰다.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사이코메트리. 사물에 깃든 기억의 잔상을 읽어내는 그의 능력이 회색빛 노이즈를 뚫고 과거의 목소리들을 길어 올리기 시작했다.[ 헤헤 삐삐~ 나 아까 활약 봤어? 대박이지? ][ 아 네네- 알겠습니다! 아주 대박이었어요 ][ 오, 비밀번호 0428! 나는 봤다! ][ 저기요- 도깨비 씨? 지금 사생활 침해하신 거 아세요? ][ 뭐야~ 우리 사이에 사생활 침해라니~ ]현빈의 철없는 웃음소리와 소하의 짜증 섞인 대꾸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조금 더 깊은 기억의 층위를 파고들었다. 뒤이어 도훈의 낮은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야 곰도 너 병신이냐? 전에 강소하 사주 풀 때 생일이 5월 30일이라고 했잖아. 옆에 있었으면서 그새 까먹었냐? ][ 그럴 수도 있지! 병신은 뭐냐, 이 무당 새끼야! ][ 능력도 없는 곰도 주제에 뭐? ][ 야- 너 잘못하면 내 방망이에 세상 하직할 수 있거든? ][ 하직? 너 비구름에 쓸려서 태평양에서 생 마감하고 싶냐? ]웅웅거리는 소음 사이로 소하의 지친 외침이 쐐기를 박듯 들려왔다.[ 아오! 좀 그만해요, 그만해! 0428... 부모님 기일이에요! 기일! ]“기일........”지훈은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0428. 5월 28일. 소하의 부모님이 동시에 돌아가신 날.“강소하 부모님이 그녀가 17살 때 돌아가셨다고 했나........ 4월 28일.......”심장 언저리가 기분 나쁘게 요동쳤다. 아닐 것이다.설마 무슨 관련이 있겠느냐며 고개를 휘휘 저었지만 축축하게 배어 나오는 식은땀은 멈추지 않았다.지훈
검찰청 취조실의 공기는 질식할 듯 무거웠다.5평 남짓한 좁은 사각형의 공간, 재민은 팔목을 조여오는 은색 수갑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의자에 몸을 깊이 기댔다.정면의 특수 거울 속에는 며칠 사이 유령처럼 수척해진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이번에도 네가 하는 건 그저 묵비권 행사인가?”어지럽게 머릿속을 휘젓던 목하와의 기억에 재민의 눈가가 잠시 젖어 드는가 싶더니, 이내 담당 검사 태준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끌어내렸다.재민은 두 뺨 위로 흐르려던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타들어 가는 목구멍 안으로 슬픔을 꾹꾹 눌러내었다.“....죽이지 않았어요...”“하...... 이번에는 부인인가?”태준이 서류 뭉치를 거칠게 넘기며 비웃었다.“여길 봐... 처음 신고한 건 자네의 새어머니 이혜영이야. 그녀의 진술에 의하면 비서 엄준민과 함께 안회장의 방에 들어갔을 때이미 안회장은 숨이 끊어진 뒤였고 너는 피 묻은 손으로 그 방안에 서 있었다더군. 정황이 이렇게 확실한데 언제까지 오리발을 내밀 셈이지?”태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재민의 가슴을 후볐다. 재민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태준을 똑바로 응시했다.“새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세요.”“뭐?”“형... 아니... 검사님.... 새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신다면, 5년 전 목하가 죽던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취조실 안에는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타탁, 타탁’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재민은 불안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연신 매만졌다. 창밖은 이미 매서운 한겨울이건만 재민의 손바닥에서는 축축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그때 무거운 철문이 ‘달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남편을 잃은 미망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히 온화하고 단아한 표정의 계모 이혜영이 들어와 재민의 맞은편에 앉았다.“도대체 우리 아버지께 무슨 짓을 한 거야?”재민의 분노가 섞인 목소리에도 그녀는 눈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