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이 세상엔 과학적으로는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가령 이렇게 건장한 청년이 사실은 도깨비라던가
저렇게 멀쩡하게 생겼어도 냉혈한의 퇴마사라던가
그리고 저처럼 이렇게 잘생겼지만, 알고 보면 신기가 가득 넘친다거나
고객님처럼 갑자기 영안이 트여서 영들이 보인다거나 뭐 기타 등등 너무 많습니다~"
눈물 콧물 쏙 빼고 나서 다시 흥신소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마치 보험 상품 설명하듯
쉴 새 없이 속사포 래퍼처럼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도훈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사실 들어올 적부터 상당히 고가의 가방과 옷들로 치장한 그녀를 보고서
최고의 호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훈은 아주 작정하고 그녀를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뭐 평소에 가위도 안 눌리고 한 번도 영혼을 본 적도 없는데
사고 이후 갑자기 영안이 트였다는 거죠?"
"네..이거 어떻게 다시 안 보이게 할 수 있어요?"
"그으럼요~ 저희는 무한 고객 감동 고객 만족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꽃미남 흥신소니까 걱정일랑 마십시요~"
그녀에게 한껏 고객용 미소를 짓는 도훈을 멀찍이서 아니꼽게 지켜보던 재민은
아까 전 복도에서 울며불며 자기 뒤의 귀신을 가리키던 그녀가 생각나 눈썹을 찡긋거렸고
그걸 보던 현빈은 입을 삐~쭉 내밀며 재민의 옆에 털썩 앉았다.
"또 뭔 생각하시나 퇴마사~?"
"야 곰도깨비 저리로 꺼져, 옆에 있는 거 싫으니까“
재민의 무심한 말에 현빈은 소파에서 방방 뛰며 말했다.
"아오!! 나 귀신 아니라고 나 도깨비라고 너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 처먹을래?
귀신하고 도깨비랑은 다르다고!"
"귀신이나 도깨비나...“
억울한 듯 소리치는 현빈을 관심 없다는 듯이 흘겨보던 재민은 잠시 턱을 괴고서
다시 제대로 된 호갱이의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아까 전 일을 생각하는데 엄청난 의문이 새록새록 머릿속에 피어오른다.
"이도훈도 놓친 걸 그렇게 단번에 정확히 볼 리가 없는데
정말 이도훈... 미스였나?"
골똘하게 생각하는 재민의 옆에서 입을 삐쭉 내밀고 앉아있던 현빈은
갑자기 화색이 바뀌며 손을 모으고선 방방 뛰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현빈의 모습에 '이 새끼 또..' 라고 생각하며 재민은 혀를 끌끌 찼다.
"왔다 왔다. 사장님 왔다"
현빈의 모습을 보던 재민은 진짜 궁금한 듯 현빈에게 물었다.
"넌 곰돌이냐 개냐 도깨비냐? 도대체 알 수가 없네.."
재민의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흥신소의 무거운 철문이 '끼이익-' 하며
스산한 소리와 함께 열리고 문이 활짝 열리자 꽤나 지쳐 보이는 남자 두 명이 흥신소 안으로 들어오다가
도훈 앞에 앉은 늦은 오후엔 어울리지 않은 선글라스를 쓴 하지만 귀티가 나 보이는 그녀를 물끄러미 본다.
"사장님 사장님!"
그리고 두 남자의 등장에 현빈은 마치 없던 꼬리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개..아니 강아지 모드를 장착하고선 눈이 매섭게 생긴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현빈의 앞에 서있는 남자를 보고선 한국판 뱀파이어 영화를 만든다면 저 남자가 적격이겠다고 생각했다.
"어어- 현빈 잠깐 멈춰"
그의 말에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서 마치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들썩거리는 현빈을 보고
이게 뭔 개와 주인을 보는듯한 상황인가 싶은 그녀였다.
그래도 저런 상황을 보니 저 도깨비가 도훈의 말대로 엄청나게 무서운 녀석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매서운 눈매의 남자가 턱 끝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도훈에게 물었다.
"누구야?“
그의 물음에 철문만큼 큰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남자가 말했다.
"딱 보니 고객이네"
그 말과 함께 그는 약간 지친 표정으로 도훈이 앉아있는 소파 옆에 털썩 앉아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그녀는 이 사무실 사람들은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게 취미인가 싶어 좀 뻘쭘해지려는데
그 남자는 고갤 돌려 현빈을 바라보며 외친다.
"야 곰도 커피 좀 타와라“
그 말에 그를 노려보며 현빈이 발끈한다.
"우씨 박지훈 너 나한테 곰도라고 하지 말랬지! 그리고 왜 나한테 시켜 넌 손이 없어 발이 없어!“
현빈의 말에 여전히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젓는 지훈
"넌 하는 게 잡일이잖아 나 피곤하니까 빨리 커피 타와"
"저게 진짜 도깨비는 뭐 하는 일 없는지 알아? 나두 한다고!"
현빈의 말에 살짝 피식 웃는 지훈이 말한다.
"이정혁 오는 것만 아는 주제에.....“
"어찌 보면 넌 저 퇴마보다 더 못된 인간이야, 알어?"
현빈의 옆에 앉아 둘의 투닥거림을 보던 재민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서 왜 내 얘기가 나오냐? 난 끌어들이지 마라 너랑 엮이는 거 싫으니까"
"그만"
투닥투닥 세 남자의 신경전에
몹시 지쳐 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우두머리인 듯 보이는
남자가 희고 고운 손을 들어 올리자 그제야 세 남자는 입을 다물었지만,
현빈은 분했는지 이를 드러내며 둘을 번갈아 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들의 맞은편 도훈과 함께 책상 의자에 앉아서 셋을 지켜보던 그녀도 으르렁대는 현빈을 보자
살짝 겁을 먹고선 '아까 착하다고 생각했던 거 취소 취소'라 생각하는데
쇼파에 앉아있던 지훈이 일어서서 도훈과 그녀 쪽으로 다가와 긴 팔을 쭈욱 뻗어
그녀의 앞에 놓인 그녀의 검은색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뭐에요?"
그런 지훈의 행동에 이 사람이 내 앞에서 절도라도 하나 싶어
화들짝 놀란 그녀가 지훈에게 소리치자 지훈은 그녀에게 닥치라는 것인지
검지를 자기 입에 가져가 '쉿' 이라며 말하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참고로 이쪽은 사이코메트리, 물건이나 사람의 과거를 읽을 수 있죠"
중간에 껴든 도훈의 말에 소하는 '허' 하며 어이없는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소하가 생각한것보다 더 무서운곳 같았다.
아주 오래전, 옥제가 인간들의 삶을 굽어살피고 대지의 기운을 조율하러 잠시 이승에 내려왔던 때가 있었다.잠행 중이던 옥제는 한 인간 여자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둘 사이에서 달빛을 닮은 아리따운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천계에 여식이 없어 늘 적적해하던 옥제는 지상에서 얻은 핏줄을 지극히 기쁘게 여겼다. 그는 아이에게 귀하디귀한 옥을 닮으라는 뜻으로 ‘옥(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맑고 고결한 심성과 함께 지상의 모든 동식물의 찢긴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을 내어주고선 다시 천계의 제자리로 돌아갔다.허나 비극은 인간들의 추악한 탐욕에서 시작되었다. 옥이가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다운 열여덟이 되던 해, 그녀가 가진 신비로운 영력을 시기하고 두려워한 몇몇 인간들이 옥이와 그녀의 친모가 살던 외딴집에 한밤중 불을 질렀다. 인간들의 질투와 광기로 가득 찬 화마는 순식간에 모녀를 집어삼켰고 결국 옥이와 옥이의 어미는 참혹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지상의 불길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던 옥제는 옥의 친모는 고통 없는 천국으로 인도해 주었고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이어받아 영험한 선녀가 된 옥이를 항상 제 곁에 두었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온 세상 만물들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게 하였다.그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언제부터인가 천계의 깊은 어둠 속에서 불길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옥선녀가 가진, 아주 맑고 고운 무언가까지 송두리째 치유하고 재생시킬 수 있는 ‘영혼의 핵심 능력’을 강
화연사에서 내려와 서울로 향하는 내내, 정혁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았다.흥신소에 도착하자마자 강소하, 그 여자를 마주하고 숨겨진 모든 진실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물어볼 작정이었다.그녀가 천계의 비밀이나 전생의 업보를 알고 있든 알지 못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일단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슴을 짓누르는 이 지독한 의구심의 답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그렇게 흥신소 골목 어귀에 도착한 정혁이 조급한 걸음으로 어두운 콘크리트 바닥을 재촉하던 바로 그때였다.“오랜만이구나- 혁아.”가로등 불빛이 위태롭게 깜빡이는 좁고 외진 골목길. 빛 한 자락 닿지 않는 음산한 골목의 끄트머리에서 정혁의 이름을 부르는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정혁은 본능적인 거부감에 뚝하고 걸음을 멈추었다.“.....누구야 당신.... 넌 도대체 누구인데 내 이름을 아는 거지?”“역시 인간의 탈을 쓰면서 전생의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린 게로구나.”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남자를 바라보는 정혁의 안색이 거칠게 굳어졌다.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정체 모를 기분 나쁜 불쾌감과 공포가 온몸의 신경을 타고 전류처럼 거세게 흘러내렸다.밤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골목이었음에도, 정혁은 제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솔직히 아주 놀라웠다. 옥선녀의 영혼을 자취도 없이 감추었다 했더니 감히 인간의 몸을 빌려 두 개로 쪼개놓았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으니까.우리를 속이려 그런 잔꾀를 부린 것이냐?”상대의 말에 위기감을 느낀 정혁은 당장이라도 자신의 거대한 능력을 쓰기 위해 양손을 들어 올렸다.숨을 죽이고 눈을 감으며 영력을 집중시켰지만 이상하리만큼 몸을 지배한 그 무거운 한기는 가시지 않았다.능력이 발현되지 않는 기이한 감각.정혁이 경악하며 눈을 뜨자 유유자적하게 거리를 좁히며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태어나 단 한 번도 자신의 영력이 통하지 않는 존재를 마주한 적이 없었기에 정혁은 당황스러웠지
열다섯이 되던 해, 정혁의 아비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신기루처럼 갑자기 사라졌다.한순간에 세상에 어미와 단둘이 남겨진 정혁은 매 순간이 가시밭길 같았다.정혁은 자신과 아비의 피에 흐르는 기이한 능력을 두려워하면서도 오직 어머니와 서로를 의지하며 각별한 사이로 살아왔다.그의 어미는 그런 아들의 손을 꼭 쥘 때마다 늘 입버릇처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읊조리곤 했다.“정혁아, 네가 가진 영험한 능력을 어디서 함부로 쓰거나 들켜서는 안 된다.언젠가는 네 그 거대한 힘을 곧이곧대로 온전히 세상을 위해 쓸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거야.그때까지는 숨 죽이고 기다려야 한단다.”하지만 가혹한 운명은 소년에게 기다림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아비가 집을 나간 지 고작 1년 만에, 정혁의 어머니마저 불의의 사고로 차갑게 숨을 거두었다.오롯이 이 거대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정혁은 결국 차가운 고아원으로 보내졌다.그곳에서 정혁은 난생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믿게 된 친구에게 자신의 기이한 영력을 털어놓았다.그러나 돌아온 것은 괴물이라는 비난과 온갖 처참한 수모뿐이었다.고아원의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정혁을 미치광이 취급하며 배척했고 소년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지옥 같은 청소년기를 버텨내야 했다.그로부터 몇 해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스무 살 성인이 된 정혁이 생전 어미가 자주 찾던 깊은 산 속의 절을 찾은 날이었다.어머니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절로 향하던 정혁의 앞에 한 스님이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결국 여기까지 찾아왔군.... 괜찮을 게다....”“네? 저를 아십니까?
그날은 참으로 정신이 없던 날이었다.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진 소하는 불과 3일 전에 상급 악령인 무당귀에게 살점을 뜯겨 목숨이 위태로웠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세 좋게 일어났다.그녀는 마치 늘 마음 한편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결핍을 품고 살아가는 흥신소 직원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구원자 같았다.무당귀 사건에서 도깨비인 현빈을 구해낸 것에 이어 이번에는 서해와 동해의 신령들이 얽힌 거대한 싸움 속에서 반인간 반이무기인 도훈까지 사지에서 완벽하게 건져내었다.“으으으으- 추워 죽겠네 진짜....”모든 소동이 마무리되고, 도훈이 자신의 아비인 서해용왕과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정혁은 슬그머니 시선을 옮겼다.그의 눈길이 닿은 곳에는 도훈을 구하느라 차가운 바닷물에 통째로 빠져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는 소하가 있었다. 정혁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앞에 섰다.“.....괜찮아?”“네? 아, 뭐. 큼큼. 보시다시피 멀쩡해요.”소하가 머쓱한 듯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헛기침을 했다. 정혁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투박하게 걸쳐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몸이면서 그러다 감기 걸리겠네”“에이, 사장님 걱정 마세요! 저 20살 이후로 감기라곤 구경도 해본 적이 없는 여자예요.보기와 다르게 무쇠 체력이라구욧!”소하가 장난스레 주먹을 쥐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정혁은 그녀의 밝은 모습에 안도하면서
처음부터 모든 게 이상했다.흥신소의 수장인 정혁이 그 정체불명의 여자, 강소하를 처음 마주했을 그 순간부터 말이다.그녀가 처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날, 타인의 기억과 감정을 모조리 읽어내던 지훈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유독 그녀에게만은 단 한 자락도 통하지 않았던것그리고 평소 영적인 감각이 예리하던 도훈조차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 듯 그녀의 눈빛이 결코 범상치 않으니 무조건 우리 사무실에 곁에 두고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도훈의 그 집요한 고집이 꽤 석연치 않았지만, 내심 정혁 자신도 소하를 멀리 보내고 싶지 않다는 묘한 이끌림이 생겨 결국 그녀를 이곳에 머무르게 했다.“강소하라고 했나... 그 여자 이름이? 보통내기가 아닌 건 확실하네.”원귀가 된 무당귀를 눈앞에서 놓치고 허탈해하던 도훈을 위로해준뒤, 정혁과 사자는 잠시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정혁의 안색은 영 찜찜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결국 참지 못하고 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무당귀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외딴 마을까지 내려간 이유가 힘이 약해진 터주신을 잡아먹으려던 거였지?”“응. 도깨비인 현빈이에게 이기기 위해 제 몸집을 흉측하게 불리는 중이었으니까.뭐- 너도 알다시피 아무리 힘이 빠지고 약해진 터주신이라 해도 일반 영혼들보다는 백 배는 더 강력하잖아.아- 맞다. 근데 무당귀가 왜 굳이 그 터주신을 눈앞에 두고 그 여자를 공격한 거야?”터주신의 영력이 일반 영혼들보다 몇 배는 강력하고 격이 높다는 사실은 정혁 또한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헌데 왜였을까. 식탐에 굶주린 무당귀는 그 강력한 터주신을 옆으로 팽개쳐두고 오직 소하라는 인간 여자만을 악착같이 먹어 치우려 들었다.정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사자의 마지막 물음에 방금 전 현장에서 목격했던 기이한 현상을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무당귀가 소하를 덮치던 순간 소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 형언할 수 없는 서늘하고도 고결한 영기.일단은 이 불길하고 찜찜한 의구심을 파헤치기보다 그녀를 안전
갑작스러운 백호의 등장에 담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일그러졌다.제아무리 영험한 능력을 갖추고 수많은 귀물을 부리는 담이라 할지라도 이 깊은 산의 절대적인 주인인 백호를 그의 영역에서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그때였다. 거대한 신수의 형상을 하고 있던 백호가 담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짓는 듯하더니 커다란 앞발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스산한 겨울바람과 함께 눈을 멀게 할 만큼 진한 백색의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그리고 찰나의 순간 담의 공격을 받아 땅바닥에 험하게 널브러져 있던 도훈과 그 앞에서 처연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소하가 백호와 함께 연기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담의 검은 단검이 허공을 가른 자리에 남은 것은 차가운 정적뿐이었다.소하의 눈에는 그 모든 상황이 찰나에 일어난 환상 같았다. 그저 두려움에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이었다.하지만 정신을 차린 순간, 소하의 몸은 달빛이 부서져 내리던 서늘한 겨울 숲속이 아니었다.머리를 들어 올리자 달빛 대신 은은한 한지 불빛이 비치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정갈하게 다듬어진 기왓장과 서까래가 촘촘히 쌓여 있는 낯선 기와집 안이었다.현실 세계가 아닌 것 같은 고요하고도 영험한 분위기. 온 사방에서 기분 좋은 흙냄새와 마른나무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소하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눈만 그저 껌뻑껌뻑 지켜보았다.어느새 거대한 백호의 모습에서 아까 전 바위 위에서 익살스럽게 눈웃음을 짓던 앳된 소년의 몸으로 돌아온 백호가 눈앞에 서 있었다."어...... 여긴 어디.........."소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소년의 모습을 한 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저벅저벅 나무마루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백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던 소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휘휘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마당 한쪽 구석,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도훈의 모습이 보였다. 소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도훈에게 다가가려 발을 내딛던 바로 그 찰나, 소하의 머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