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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Author: 경옥
로원은 이 순간, 그 두 사람이 정말로 은전을 받았는지 여부를 두고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심서준이 직접 사람을 이 자리에 불러들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확실한 증거를 쥐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말꼬리를 잡아 부인하는 건, 오히려 불길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뿐이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수하들을 잘 알고 있었다. 잡혀 들어온 자들 사이에서 기름을 짜내는 일은 예삿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윗사람에게 성의를 보이는 것도 관례처럼 굳어 있었다. 로원 역시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한쪽 눈을 감아왔다. 정말로 깊이 캐묻기 시작하면 불똥은 결국 자신에게도 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서준이 이런 하급 인원들까지 들여다보고 있을 줄은…

소기 두 명의 비위까지 꿰고 있다는 사실에 로원은 심서준이라는 인물에 대한 두려움이 한 겹 더 깊어지는 걸 느꼈다. 평소 아무리 조심스럽게 처신해왔다 해도 만에 하나 꼬투리가 잡히기라도 한다면 어떡한단 말인가?

이번 일만 해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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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050화

    그 물건들은 고준안이 보낸 것이 아니었다. 계연수의 숙부가 고준안의 손을 빌려 보내온 것이었다.휘안현의 소박한 향토 음식과 아이들이 가지고 놀 만한 자잘한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계연수의 아버지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다는 낡은 장난감도 몇 개 섞여 있었다. 숙모가 손수 지은 아기 옷도 두 벌 들어 있었는데, 계연수는 촘촘하고 반듯한 바느질 자국만 보아도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물건과 함께 숙부의 편지도 도착했다. 계연수가 그 집에 머물 틈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사람을 시켜 틈틈이 쓸고 닦게 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예전 모습 그대로라는 내용이었다.편지에는 휘안현에서 벼슬살이하는 고준안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청렴하고 올곧게 정사를 돌보는 훌륭한 관리라는 말이었다.여러 소식이 두서없이 이어졌지만 계연수는 고준안에 관한 대목을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숙모가 보내온 물건들을 하나씩 바라보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녀는 곧 사람을 시켜 답례로 경성의 물건들을 골라 보내게 했다.특별히 귀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면 충분했다.그 밖에 전해 들은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고하운에 관한 일이었다.영국공부에 변고가 닥친 뒤, 고하운의 처지는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본래 백씨 가문의 가풍은 그다지 반듯하지 못했다. 서로를 속이고 견제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으며, 잘나가는 사람에게는 앞다투어 붙고 기세가 꺾인 사람은 거리낌 없이 짓밟았다. 고하운이 그동안 믿고 의지한 것은 계연수라는 든든한 배경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배경이 자신을 받쳐 주지 않으니, 백씨 가문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더구나 고하운은 계연수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러자 백씨 가문 사람들은 이번 사태의 책임마저 자연스럽게 고하운에게 떠넘겼다. 계연수의 도움 하나 얻어 내지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긴 것이다.백씨 가문 사람들은 제 딸인 백씨에게조차 매정했다.

  • 주문춘귀   제1049화

    심서준이 물었다.“조호의 진술서에는 수결까지 받아 두었느냐?”주예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그 노참장은?”“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좀처럼 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손자가 주원길의 휘하에서 장부를 맡아 온 막료입니다.”심서준은 검지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일정하게 울리던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낮게 번졌다.“사람을 몇 데리고 가서 그 손자를 잡아 오거라. 조부가 그가 장부를 조작한 사실을 모두 자백했다고 전하고.”주예는 즉시 명을 받들어 사람을 보내러 나갔다.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위 하나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서신을 전하러 간 소기가 밤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심서준은 그 말만으로도 상황을 알아차렸다. 이미 풀숲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 셈이니, 주원길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이곳은 주원길의 터전이었다. 반면 심서준이 거느린 병력은 고작 오백 명뿐이었다.주원길은 평부진에 자리를 잡은 뒤 고향 마을 사람들을 거의 모두 불러들였고, 주씨 일족까지 데려와 곳곳에 뿌리내리게 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흐르는 동안 평부진은 어느덧 물샐틈없는 철옹성이 되어 있었다.심서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굳게 다문 입술 아래로 생각이 깊어졌다. 이윽고 손을 가볍게 내저어 호위를 물렸다.서신을 보내지 못하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해 오는 길에 따로 대비해 두었다.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계연수가 그의 서신을 받지 못하면 틀림없이 걱정할 터였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매끄러운 천 위를 스치던 길고 곧은 손가락이 어느 순간 멈추더니, 한참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계연수는 어느덧 보름 가까이 심서준의 서신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늦어질 때만 해도 애써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이 조용히 몸집을 불렸다.그날도 분

  • 주문춘귀   제1048화

    심서준이 이씨촌으로 향했다는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원길의 귀에 들어갔다.주원길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세게 움켜쥐었다. 잔 속의 찻물이 출렁였고, 가라앉은 두 눈에는 음산한 빛이 어렸다.곁에 있던 진 참장이 목소리를 낮췄다.“아무래도 끝까지 조사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게다가 진 참장까지 붙잡아 가두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주원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뒷짐을 지고 방 안을 서성였다.심서준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태후의 친정인 영청후부조차 심서준에게 속속들이 파헤쳐져 가산을 몰수당하고 유배까지 갔다.심서준이 조사를 계속한다면 자신이 감춰 온 죄도 결국 낱낱이 드러날 터였다. 그동안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자신뿐 아니라 삼족까지 멸문당할 가능성이 있었다.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주원길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끝내 분수를 모르고 이곳을 뒤엎으려 한다면, 경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면 그만이다.”왕 참장이 다가와 물었다.“어디에서 손을 쓰실 생각입니까?”주원길이 눈을 가늘게 떴다.“평부진 안에서는 안 된다. 조사는 마음껏 하게 내버려 두거라.”입가에 음산한 냉소가 번졌다.“다만 살아서 경성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주원길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강 총독과 임 지부에게 서신을 보내거라. 심복 몇 명은 지금부터 성 밖으로 보내 길목마다 매복시켜 두고. 심서준이 이곳에 머무를 기간은 기껏해야 두 달이다. 미리 사람을 숨겨 두는 편이 안전해.”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리고 지금부터 평부진 밖으로 나가는 서신은 모조리 가로채라.”왕 참장이 확신하지 못한 얼굴로 되물었다.“모든 서신을 말씀이십니까?”“휘하의 장수와 군사들이 집으로 보내는 편지도 많은데, 그것까지 전부 막아야 합니까?”주원길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심서준은 교활하고 지략이 뛰어난 자다. 그자가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단 하루도

  • 주문춘귀   제1047화

    심서준은 눈앞의 술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짙은 술빛 위로 등불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그는 몇 순간 말없이 바라보다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입안으로 부드럽고 깊은 향이 퍼졌다.“과연 좋은 술이군.”짧고 간결한 평가였다.노참장은 심서준의 기세를 조심스럽게 살폈다.지금까지 경성에서 내려온 관리들을 여럿 만나 보았지만, 눈앞의 사람은 그들과 확연히 달랐다. 차분히 앉아 있을 뿐인데도 함부로 속내를 내보일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노참장은 준비해 온 말을 속으로 몇 차례 되뇐 뒤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심 대인, 소인은 평부진에서 삼십삼 년을 보냈습니다. 말단 병사로 시작해 참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보았고,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도 여럿 겪었습니다.”그가 잠시 망설였다.“드리고 싶은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만, 감히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심서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무슨 말인지 해 보시오.”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에는 본래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 노참장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심 대인, 평부는 경성이 아닙니다. 경성의 관아에서는 대인의 말씀을 거역할 사람이 없겠지요. 헌데 이곳 평부에서는 성지 하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노참장은 심서준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소인이 감히 권하건대 적당히 조사하신 뒤에는 손을 거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어차피 장부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그대로 경성에 돌아가 조사 결과를 복명하시면 조정의 체면도, 이곳의 체면도 모두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심서준이 한쪽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렸다.“누구의 명을 받고 왔소?”노참장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소, 소인이 스스로 찾아온 것입니다.”심서준은 의자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노참장을 바라보았다. 얇은 입술 끝에 싸늘한 냉소가 걸렸다.“그렇다면 지금 자네가 본관에게 일을 처리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오?”그 한마디에 노참장의 이마와 등에서 식은땀이

  • 주문춘귀   제1046화

    주원길이 이토록 방대한 장부를 미리 조작해 놓을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라면, 병력을 점검할 때를 대비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평부진 성안에서 사람을 긁어모아 병사로 위장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러나 허위 병력을 올려 군량과 급료를 착복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람 하나를 만들어 내 그 몫을 받아 가는 것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핵심은 군적부에 이미 사라진 사람의 이름을 계속 남겨 두는 것이었다.그 사람은 전사한 군사일 수도 있고, 도망자나 병으로 죽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었다.하지만 어떤 경우든 주원길이 그 허위 정원을 유지하려면 장부상으로는 그 사람에게 계속 녹봉과 군량미, 포목과 솜을 지급해야 했다.그렇게 빼돌린 물품과 은자는 결국 어떤 명목으로든 장부에서 처리해야 했다. 운반이나 보관 중 생긴 손실로 없애거나, 실제로 지급한 것처럼 기록을 남겨야 했다.전사한 군사라면 전사 기록과 유가족에게 지급한 위로금 내역, 가족이 이를 수령했다는 증빙이 있어야 했다.병으로 죽었다면 병사 보고서와 의관의 진단 기록, 관을 지급받은 증서가 남아 있어야 했다.도망친 군사라면 탈영 보고서와 체포 공문, 병부에서 해당 병력을 정원에서 삭제한 절차가 필요했다.주원길은 이런 문서까지 모두 위조했을 것이다.하지만 백 명분의 문서를 조작하는 것과 만 명분의 문서를 조작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손을 거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감추어야 할 흔적도 늘어나고, 그만큼 빈틈이 생길 가능성도 커졌다.심서준의 손에는 조정에서 발급한 감합이 있었다. 평부진 총병부를 비롯하여 그 아래에 속한 모든 관아가 주고받은 공문을 열람할 권한을 증명하는 문서였다.군령과 군정보고, 정문, 차첩, 수본, 패표와 관첩까지 모든 문서는 서리와 경력, 첨사와 참의 등 여러 관리의 손을 거쳐야 했다.그중 단 한 장이라도 고치려면 반드시 관련된 다른 문서에도 손을 대야 했다.이는 거대한 거미줄과도 같았다.한쪽의

  • 주문춘귀   제1045화

    주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대인께서는…”심서준은 고개를 숙인 채 피곤한 미간을 손끝으로 문질렀다.“우선 장부를 뜯었다가 다시 묶은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거라.”그제야 주예는 심서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장부의 내용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머금은 종이와 장정을 묶은 실까지 거짓말을 하지는 못한다.이 장부들 가운데 상당수가 최근에 다시 제본된 것이라면, 원래 장부를 뜯어 내용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컸다.주예는 즉시 사람들을 이끌고 장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이경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밤이 깊었지만 심서준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희미한 등불 아래 탁자 앞에 앉아 군량, 마초 장부와 병력 정원을 하나씩 대조했다.평부진의 규정에 따르면 병사 한 명에게 매달 지급되는 군량은 쌀 석 되었다.장부에 기록된 일 인당 월 지급량은 두 되 아홉 홉에서 석 되 한 홉 사이를 오갔다. 그러나 전체 평균을 내면 정확히 석 되었다.이번에도 숫자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졌다.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심서준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문득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마침 그때 주예가 다가와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장정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장부들은 진짜인 듯합니다.”심서준은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지친 듯 두 눈을 감았다.“장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다.”주예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심서준은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변경의 군량과 군사의 급료에는 호부에서 내려보낸 은자와 지방 창고의 저장량, 은자로 환산해 지급하는 절색과 현물로 지급하는 본색, 각지로 운반하는 과정까지 얽혀 있다. 해마다 조정에서 내려보낸 은자가 얼마인지, 실제로 현지에 도착한 양이 얼마인지, 창고에서 손실된 물량은 얼마나 되는지, 절색과 본색은 어떤 비율로 환산되었는지까지 따져야 하지. 그 과정은 셀 수 없이 많고 복잡하다. 어느 한 단계도 매번 완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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