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벽 안쪽에서 시작됐다고?”
윤태오의 대답은 짧았다.
“사진 들고 있어요. 내가 부를 때까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말고.”
“또 명령질이네.”
“그럼 부탁으로 바꿔드릴까요.”
“꺼져.”
강서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20분 뒤 메시지가 왔다.
[내일 21시. 호텔 레브 1204호 맞은편 라운지.]
주소와 함께 촬영 위치까지 찍혀 있었다.
서하는 지도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번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 어디서 찍을지, 어느 방향으로 렌즈를 둘지까지 윤태오가 정해놨다.
[내가 당신 직원이야?]
[아니.]
곧 답이 하나 더 왔다.
[그래서 더 보고 싶고.]
서하는 화면을 한 번 보고 그대로 잠갔다.
서하는 바로 전날 확보한 1807호 사진도 태블릿에 띄워 두었다. 침대 밑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였던 그림자와 레브 호텔의 복도 구조를 비교하니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객실 벽 한쪽이 지나치게 두꺼웠다. 일반 배관 공간이라고 보기엔 폭이 컸고, 비상계단 도면과도 맞지 않았다. 누군가 통로를 감추려 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구조였다.
재경에게 사진을 보내려다가 손을 멈췄다. 태오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말라고 한 말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아직 출처도, 구조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를 흩뿌리는 건 서하 방식이 아니었다. 대신 원본을 별도 저장장치에 복제하고 시간값까지 기록했다.
“보여주고 싶은 건 정면이고, 숨기고 싶은 건 옆이겠지.”
그래서 보조 카메라를 챙겼다.
다음 날 20시 47분.
호텔 레브 12층 라운지는 루멘보다 훨씬 좁았다. 유리 파티션 너머로 1204호 복도가 비스듬히 보였고, 태오가 지정한 자리는 하필 기둥과 화분 사이였다.
움직이면 바로 들킬 자리.
“이 새끼 진짜 일부러 이러네.”
서하는 카메라를 꺼냈다. 대신 가방 안쪽에서 손바닥만 한 보조 카메라 하나를 더 꺼냈다.
태오가 정해준 각도는 정면.
서하가 고른 각도는 반대편 비상통로였다.
보조 카메라는 장식장 틈에 넣고 객실 복도 끝까지 잡았다. 태오가 자신에게 보여주려는 장면과 보여주지 않으려는 장면을 동시에 찍을 생각이었다.
21시 03분.
윤태오가 나타났다.
오늘은 정장 대신 검은 셔츠와 재킷 차림이었다. 옆에는 낯선 남자가 붙어 있었다. 40대쯤, 회색 코트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
둘은 1204호 앞에 섰다.
태오가 카드키를 대기 직전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서하가 있는 쪽.
서하는 카메라 뒤에서 중얼거렸다.
“그래, 봐라. 눈 빠지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오늘은 줌 안 당겨요?]
서하는 욕부터 삼켰다.
[업무 중이야.]
[어제는 셔츠 안쪽도 업무라며.]
[오늘은 벗어도 안 찍어.]
답장은 3초 만에 왔다.
[그건 확인해봐야 알지.]
“개또라이.”
입으로 욕하면서도 셔터는 놓치지 않았다.
태오와 남자가 객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태오가 손을 문틀에 한 번 올렸다. 이상한 동작이었다. 방 번호를 확인할 필요도 없는데 손가락이 문틀 오른쪽 위를 짚고 내려왔다.
서하는 그 지점을 확대했다.
작은 검은 점.
카메라였다.
호텔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태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찾았네.]
서하는 바로 답했다.
[저거 당신 거야?]
[아니.]
[그럼 왜 알고 있어.]
이번엔 답이 없었다.
21시 16분.
1204호 문이 열렸다. 회색 코트 남자만 나왔고 태오는 남았다. 남자는 복도 끝까지 걸어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서하는 렌즈를 내렸다.
저쪽에서도 이쪽이 보일 수 있었다.
움직이면 들킨다.
태오가 굳이 이 자리를 골라준 이유가 이제야 이해됐다. 숨어 있기엔 최악이고, 누군가 자신을 확인하기엔 최고의 자리였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움직이지 마.]
서하는 이를 악물었다.
[당신 나 미끼로 썼어?]
[아직은 아니고.]
[아직은?]
[지금 움직이면 진짜 미끼 돼.]
“씨발.”
회색 코트 남자가 서하 쪽으로 3걸음 움직였다.
그때 객실 안에서 태오가 나왔다.
그는 남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엘리베이터 쪽으로 함께 걸었다. 남자는 결국 서하 쪽을 더 보지 않았다.
서하는 숨겨둔 보조 카메라가 떠올랐다.
태오는 정면 카메라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서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두 사람이 사라진 뒤 라운지를 빠져나와 화장실 칸에 들어간 서하는 보조 카메라 영상을 휴대전화로 불러왔다.
21시 02분.
태오가 복도에 들어온다.
21시 03분.
그는 1204호 앞을 지나친다.
서하는 영상을 멈췄다.
“뭐야.”
정면 카메라에는 분명 그가 1204호로 들어갔다.
그런데 반대편 영상에서 태오는 객실 문을 열지 않았다.
문 옆 벽에 손을 댔다.
그리고 벽이 열렸다.
호텔 복도에서 문이라고 생각할 만한 흔적조차 없는 곳이었다.
태오는 회색 코트 남자를 먼저 그 안으로 들여보냈다.
들어가기 직전,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보조 카메라 방향이었다.
서하의 손끝이 멎었다.
영상 속 태오가 카메라를 정확히 바라봤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것도 찍고 있었네.”
그 직후 화면 오른쪽에서 벽 하나가 더 밀려났다.
숨겨진 문 안쪽으로 또 다른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강해진 씨를 3일 전에 봤어요.”여자의 말이 끝난 뒤에도 강서하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어디서요.”“SERIN LAB 건물 뒤편.”“혼자였어요?”“차에 타는 것까지만 봤어요. 얼굴은 확실해요.”사진만으로는 부족했다.6년 동안 너무 많은 가짜를 봤다.서하는 사진을 복제해 보관한 뒤 여자에게 더 묻지 않았다.대신 문재경에게 연락했다.“1812호 송출 다시 살릴 수 있어?”“왜.”“우리가 미끼가 될 거야.”“또?”“이번에는 저쪽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시작해.”재경이 욕을 삼켰다.“뭘 흘리려고.”“윤태오가 MIRROR 원본을 나한테 넘긴다는 소문.”맞은편에 있던 태오가 말했다.“그리고 우리가 다시 호텔에 들어간다?”“응.”“밀회처럼?”“그래야 물겠지.”태오가 잠깐 서하를 봤다.“어디까지 연기할 건데.”“카메라가 붙을 만큼.”“그게 어디까지냐고.”서하는 가방을 닫았다.“현장에서 내가 정해.”“당신 혼자?”“싫어?”“아니. 중간에 나한테도 물어봐.”그 말에 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날 밤 11시 20분.둘은 다시 루멘 호텔에 들어갔다.이번 객실은 1815호.박유진이 과거 비인가 카메라 점검 기록이 있던 방으로 골라줬다.문이 닫히자 재경의 음성이 이어폰으로 들어왔다.―신호 아직 없음.서하는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 태오에게 다가갔다.“재킷 벗어.”“명령입니까.”“연기.”“둘이 차이가 점점 없어지는데.”“입 닥치고.”태오가 재킷을 벗었다.서하는 일부러 그의 셔츠 깃을 정리했다. 카메라가 있다면 둘이 가까워졌다는 장면부터 물어야 했다.―신호 하나 잡힘.재경 목소리가 들렸다.서하는 태오 귀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오른쪽 천장.”“봤어.”“보지 마.”“당신만 보고 있잖아.”“그 말도 연기지?”“그건 아닌데.”서하가 그의 가슴을 손끝으로 밀었다.침대 가장자리까지.태오가 앉자 서하는 바로 앞에 섰다.“지금부터 좀 더 붙을 거야.”“괜찮아.”“허리 잡아.”태오
강해진의 마스터키.그걸로 접속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강서하는 서버 로그를 3개로 복제해 따로 보관한 뒤 노트북을 닫았다.“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네.”윤태오가 맞은편에서 말했다.“계정이 움직이는 거지 사람이 움직인다는 증거는 아니야.”“알아.”“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얼굴은 아닌데.”서하가 쏘아봤다.“내 얼굴 분석하지 말라니까.”“미안.”순순히 물러나는 게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이상했다.그때 NOCK 현관 벨이 울렸다.문재경은 아직 사무실에 돌아오지 않았다.서하가 인터폰을 확인하다가 멈췄다.“왜.”태오가 화면을 보려 하자 서하가 손으로 가렸다.“아는 여자.”“누군데.”“당신이랑 처음 1807 들어갔던 여자.”태오의 얼굴이 달라졌다.서하는 문을 열었다.여자는 6화에서 봤던 모습보다 수척했다. 검은 보안 밴드는 없었고 모자도 쓰지 않았다.“들어오세요.”여자는 태오를 발견하자 발을 멈췄다.“윤 대표님도 계시네요.”“왜 왔습니까.”“강 대표님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서하가 의자를 내줬다.“그때는 당신이 윤태오 믿지 말라고 했죠.”“네.”“지금도 그래요?”여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휴대전화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화면에는 오래된 영상이 떠 있었다.호텔 객실.침대 맞은편 벽.그리고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여자.서하가 화면을 멈췄다.“본인이에요?”“네.”“몰래 찍힌 거고?”“3년 전부터.”여자가 두 손을 맞잡았다.“처음에는 전 남자친구가 찍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른 장소 영상까지 나왔어요. 호텔, 회사 휴게실, 아파트 주차장.”“MIRROR.”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이름을 알게 된 건 윤 대표님 덕분이에요.”서하가 태오를 봤다.“당신이?”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여자가 먼저 말했다.“저 사람 없었으면 전 아직도 협박당하고 있었을 거예요.”“어떻게 구했는데요.”“돈 내지 말라고 했어요.”서하의 눈썹이 움직였다.“협
KANG HAE JIN.개발자 이름을 확인한 순간 강서하는 노트북을 닫고 싶었다.그런데 손은 반대로 움직였다.“재경아. HJ-Restore 개발 이력 전부 찾아.”문재경이 원격 화면을 열었다.“이미 뒤지고 있어. 이거 단순 복원툴 아니야.”“뭐가 더 있는데.”“후기 버전에 합성 탐지 모듈이 붙었어.”서하가 화면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HJ-Restore v2.4]손상 프레임 복원.[v3.1]영상 간 얼굴 일치도 분석.[v3.6]합성 프레임 탐지.[v3.8]원본 추정값과 생성값 분리 표시.윤태오가 말했다.“그러면 강해진은 가짜 영상을 만드는 모델을 만든 게 아니라.”“가짜를 찾는 모델을 만든 거네.”재경이 맞장구쳤다.“원래 목적은 거의 확실히 그쪽이야. 깨진 영상을 복원하면서 새로 생성한 픽셀이 원본처럼 취급되면 증거 가치가 박살 나니까.”서하는 50화 딥페이크 영상을 다시 띄웠다.누군가는 그 기능을 반대로 사용했다.가짜를 찾기 위한 알고리즘을 뜯어내서, 탐지하기 어려운 가짜를 만드는 데 써먹었다.“언니 코드 훔쳐간 거야?”재경이 대답을 미뤘다.“그럴 수도 있고.”“다른 가능성은.”“직접 넘겼을 수도 있어.”서하의 손이 키보드에서 떨어졌다.태오가 재경을 봤다.“확정 아닌 말은 조심하죠.”“나도 확정이라고 안 했습니다.”“둘 다 그만.”서하는 소스 주석을 열었다.오래된 개발 메모가 수십 개 남아 있었다.[복원은 사실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추정 프레임은 반드시 원본과 분리할 것.][탐지값 90% 이상이어도 사람이 최종 판단.]언니다운 문장이었다.화면을 고치되 화면을 믿지 않는 사람.그런데 조금 아래에는 다른 메모가 있었다.[특정 얼굴은 탐지 대상에서 제외 가능.]서하가 멈췄다.“이게 뭐야.”재경이 코드를 확인했다.“화이트리스트 비슷한 거야.”“특정 사람 얼굴은 합성돼도 경고 안 뜨게?”“기능상으론 가능해.”서하의 속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왜 이런 걸 만들었어.”“테
[강서하 × 윤태오, 어젯밤 원본.]공개까지 58분.강서하는 화면을 캡처해 문재경에게 링크를 보냈다.“올라오기 전에 서버 흔적 잡아.”재경이 바로 답했다.“예약 파일이면 캐시 남을 수 있어. 근데 제목 꼬라지 보니까 일부러 네가 보게 만든 것 같은데.”“알아.”현관 밖에 있던 윤태오가 말했다.“내려가 있을게.”“왜.”“영상 뜨면 당신 혼자 보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서하가 문을 더 열었다.“도망가려고?”“선택권 주는 중.”“들어와.”태오는 잠깐 그녀를 봤다.“확실해?”“영상에 당신도 나온다며. 같이 봐.”그제야 안으로 들어왔다.둘은 노트북 2대를 펼쳤다.52분.41분.23분.조회수는 계속 올라갔다. 아직 영상도 없는데 댓글부터 붙었다.[몰카업자답네.][호텔 다음엔 집이냐.][둘이 짜고 친 거 아니냐.]서하는 전부 저장했다.태오가 물었다.“안 봐도 돼.”“봐야 가짜인지 깨지.”“가짜인 건 이미 알잖아.”“어디가 가짜인지 증명해야지.”정각.페이지가 새로고침됐다.영상이 떴다.첫 장면은 진짜였다.전날 밤 서하의 집 복도 CCTV. 둘이 함께 현관으로 들어가는 장면.그다음부터는 없었던 일이었다.침실과 닮은 공간.서하와 태오를 닮은 두 사람이 가까이 붙어 있었고, 얼굴은 소름 끼칠 만큼 자연스러웠다. 조명 방향도, 체형도, 전날 입었던 옷까지 같았다.서하는 영상의 소리를 껐다.그래도 손끝이 굳었다.“씨발.”태오가 멈췄다.“그만 봐.”“놔.”서하가 다시 재생했다.노골적인 장면은 교묘하게 프레임 밖으로 밀어놓고 얼굴과 대화만 또렷했다.그게 더 악질이었다.진짜라고 믿게 만들기 충분했다.영상 속 서하가 말했다.―오늘 찍은 건 다 지워.영상 속 태오가 대답했다.―돈은 받았잖아.서하가 바로 멈췄다.“내 목소리까지.”재경에게서 전화가 왔다.“봤어?”“응.”“합성이야. 확실해.”“근거.”“입 주변 프레임 4군데 튀고 호흡 잡음 반복돼. 음성도 예전 샘플 섞었어.”“얼굴
메모리카드 1개가 사라져 있었다.강서하는 곧바로 현관부터 확인했다.도어락 파손 없음.창문 잠금 정상.베란다도 이상 없음.그런데 현관 센서 로그에 낯선 기록 하나가 남아 있었다.04시 17분.문은 열리지 않았는데 도어락 관리 모드가 14초 동안 활성화돼 있었다.“마스터키.”윤태오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서하는 바로 건물 관리실에 전화했다.20분 뒤 CCTV 원본을 받았다.새벽 4시 16분.관리업체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공구가방 하나.마스크.모자.서하는 영상을 멈췄다.“정기점검 일정 있었어요?”관리소장이 고개를 저었다.“없었습니다.”“이 사람 직원 맞아요?”“외주업체 쪽인데… 잠깐만요.”명단을 뒤지던 관리소장의 얼굴이 굳었다.“지난달까지만 일했던 사람입니다. 김형준.”“퇴사했는데 마스터 권한은?”“반납 처리됐어야 하는데.”서하가 웃지도 못했다.“됐어야 한다는 말 제일 싫은데.”김형준의 출입카드는 이미 폐기된 번호였다.그런데 새벽 기록상 정상 인증으로 찍혀 있었다.문재경에게 출입 로그를 넘기자 10분도 안 돼 답이 왔다.[복제카드 쓴 흔적.][원본 권한값 그대로 베꼈어.]서하는 김형준 계좌와 최근 행적을 합법적으로 확인 가능한 범위부터 추적했다.결국 하나가 걸렸다.건물 관리업체가 외주비를 지급하던 계좌에 2주 전 별도 입금 800만 원.송금자는 차명법인.그리고 그 법인의 실질 관리처가 한 번 더 꺾인 뒤 연결된 곳.MIRROR 관련 업체였다.태오가 말했다.“매수된 거네.”“내 집 들어오는데 800이면 생각보다 싸게 팔렸네.”“그 말 하지 마.”“왜.”“당신 집 주소랑 생활 동선이 돈으로 거래됐다는 얘기잖아.”서하는 그를 봤다.“갑자기 보호자 모드 하지 마.”“내 집으로 가.”“싫어.”“서하야.”“싫다고.”태오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서하는 카메라 가방을 다시 열었다.“여기서 나가면 저쪽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야. 겁먹고 생활 바꾸고, 숨어버리는 거.”
영상 속 강해진은 카메라 위치를 알고 있었다.그 사실이 가장 끔찍했다.강서하는 재생을 멈춘 채 노트북을 닫았다.“오늘은 더 못 보겠다.”윤태오도 다시 열라고 하지 않았다.“집에 데려다줄게.”“혼자 갈 수 있어.”“알아.”“그럼 왜.”“나도 더 보기 싫어서.”서하는 잠깐 그를 봤다.피해 영상 안에 자기 언니가 있었다. 언니가 가해자인지, 구하려던 사람인지조차 아직 모른다.그런데 지금 옆에 있는 남자는 그 영상 속 피해자였다.“우리 집 가.”태오가 움직임을 멈췄다.“확실해?”“그 질문 오늘 몇 번 하게.”“필요하면 계속.”“가자고.”이번에는 그가 더 묻지 않았다.서하의 집에 도착한 건 새벽 4시 가까이였다.현관문이 닫히자 서하는 가장 먼저 카메라 가방을 침실 옆에 내려놨다.태오가 그걸 봤다.“오늘은 안 찍어?”“안 찍어.”“왜.”“감정 섞였으니까.”“당신 규칙?”“응.”서하는 카메라 전원을 완전히 껐다.“오늘은 기록 안 남길 거야.”태오가 재킷을 벗다가 멈췄다.“그럼 난 왜 여기 있어.”“몰라서 왔겠어?”“그걸 당신 입으로 듣고 싶은데.”“진짜 피곤하게 산다.”“중요하니까.”서하는 한 걸음 다가갔다.“당신이랑 있고 싶어서.”“사건 때문에?”“아니.”“강해진 영상 봐서 흔들린 거 아니고?”“아니.”“내가 피해자라서 불쌍해서도?”“그 말 한 번만 더 하면 쫓아낸다.”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뭐가.”“이유.”서하는 그의 셔츠를 잡았다가 멈췄다.“잡아도 돼?”이번엔 태오가 웃지 않았다.“응.”손가락이 셔츠에 닿았다.“키스해도?”“응.”“내가 먼저?”“그건 더 좋고.”“말 많아.”서하가 먼저 입을 맞췄다.이번에는 호텔에서처럼 카메라를 의식할 필요도, 누군가 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태오의 손이 허리에 닿았다가 그대로 멈췄다.“더 가까이 와도 돼?”서하가 대답 대신 그의 셔츠를 당겼다.“이 정도면 대답 됐어?”“확실하네.”다시 입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