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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Author: 숲속의사슴
진명화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몸을 떨었다.

고개를 돌리자 병실 문 앞에 부인걸이 서 있었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부인걸은 키가 180cm에 달했고, 평소에도 꾸준히 운동해 탄탄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외모와 체격 모두 또래 중 단연 돋보였다.

여준은 부인걸을 많이 닮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으면 누가 봐도 부자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분위기까지 비슷했다.

몇 년 전부터 부인걸은 부씨 집안의 주요 사업을 여준에게 맡기고 대부분의 시간을 G시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회사의 일부 사업과 부동산 등을 관리하며 사실상 반은퇴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부씨 집안에서 부인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아직 집안 재산의 상당 부분을 직접 쥐고 있었고, 모든 것을 여준에게 넘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명화는 그런 남편을 늘 어려워했다.

존경하는 마음도 컸지만, 두려운 마음 역시 컸다.

부인걸은 무엇이든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사소한 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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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준은 의자에 축 늘어져 앉아 손가락으로 미간을 세게 눌렀다.속에서 밀려오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을 때였다.노크 소리와 함께 유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또각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에는 평소처럼 단호한 기세가 묻어 있었다.“여준아, 어제 찬훈이 서명받으려고 가져온 서류들 어디 있어? 내가 다시 한번 확인해 볼게.”여준은 맨 위에 놓인 서류 한 부만 빼고 나머지를 건넸다.유란은 여준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너 왜 그래? 괜찮아?”여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듯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괜찮아. 누나, 나 시유랑 이혼하기로 했어.”“빛나 양육권도 시유한테 넘길 거야. 시유가 요구한 것도 다 주려고.”여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그래도 5년이나 나랑 살았는데 제대로 된 결혼식 하나 못 해 줬잖아. 내가 시유한테 미안한 게 많아.”유란은 잠시 굳었다가 단호하게 말했다.“시유한테 보상해 주는 건 좋아. 무리한 요구만 아니면 나도 찬성이야. 그런데 빛나까지 포기하면 어떡해?”“여준아, 네 첫아이잖아. 엄마 아빠처럼 아들만 귀하다고 생각하지 마. 요즘 세상에 아들이든 딸이든 다 똑같이 소중한 자식이야.”여준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깊은 눈에는 오랜 불면과 마음고생으로 인한 피로가 짙게 배어 있었다.“누나, 시유는 빛나를 정말 사랑해. 절대 나한테 안 줄 거야.”“이렇게 오래 끌고 오니까 나도 너무 지쳤어. 이제는 그냥 다 끝내고 싶어.”여준이 고개를 숙였다.“나가 줘. 혼자 있고 싶어.”유란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을 다물었다.동생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결국 두 사람의 문제였다.아무리 가족이라도 끼어들 수 없는 일이었다.유란은 서류를 들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그리고 서류를 하나씩 꺼내 꼼꼼히 확인하기 시작했다....점심을 먹은 뒤 시유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모습을 본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45화

    오랫동안 팽팽하게 이어지던 줄다리기가 마침내 끝난 것 같았다.서로 지칠 대로 지친 순간, 상대가 갑자기 잡고 있던 줄을 놓아 버렸다.그런데 시유가 느낀 건 후련함이 아니었다.오히려 온몸의 힘이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듯한 허탈함이 밀려왔다.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마음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 버렸다.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던 시유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그래.]태양파크 거실에는 여준이 혼자 앉아 있었다.앞에 놓인 와인병은 이미 비어 있었고, 잔에는 아직 술이 반쯤 남아 있었다.창문을 활짝 열어 둔 탓에 늦가을 찬바람이 거실 안으로 거세게 밀려들었다.온몸이 서늘했지만 가슴속 답답함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여준은 핸드폰 자판에 몇 번이나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손에 너무 힘을 준 탓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고 나서야 겨우 두 줄의 메시지를 보냈다.시유가 후련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아니면 화를 내며 몇 마디 쏟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돌아온 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짧은 한마디뿐이었다.[그래.]마음이 완전히 떠나고 나면 이렇게 되는 걸까?싸우는 것조차 의미가 없었다.남은 건 적막뿐이었다.여준은 그 한마디를 뚫어져라 바라봤다.눈이 따끔거렸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그는 소파에 굳은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이혼 합의서가 바람에 날려 바닥으로 떨어졌다.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텅 빈 거실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차갑게 나열된 조항들이 두 사람이 함께한 지난 5년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여준은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결국 허리를 숙여 서류를 주웠다.사실 합의서 내용은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았다.앞부분에 적힌 재산 분할 조항 몇 줄만 훑어봤을 뿐인데도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여준은 서명란에 멍하니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서명을 마친 합의서는 서류봉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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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43화

    시유는 여준을 차갑게 한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곧 영우를 데리고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여준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가슴속에서는 분노와 미련이 뒤엉켜 들끓었다.‘대체 왜?’분명 자신이 시유의 남편인데 오히려 남처럼 문밖에 서 있었다.그런데 영우는 아무렇지 않게 시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속은 끓었지만 임애교 앞에서는 애써 감정을 눌렀다.여준은 순순히 그녀를 따라갔다.“장모님.”눈을 내리깔며 습관처럼 불렀다.임애교의 눈에는 온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깊은 혐오만 남아 있었다.집 안으로 들이지도 않았다.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계단 위에 서서 곧 전 사위가 될 여준을 내려다봤다.“그렇게 부르지 마. 듣기 역겨우니까.”여준의 몸이 굳었다.믿기지 않는다는 듯 임애교를 올려다봤다.“전 정말 시유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빛나도 잃고 싶지 않고요...”“잃고 싶지 않다고?”임애교가 기가 막힌다는 듯 비웃었다.“자네가 말하는 잃고 싶지 않다는 게 시유를 몇 번이고 무너질 때까지 몰아붙이고, 삶을 뒤흔들어 편할 날도 없게 만드는 거야?”“지금 자네가 이렇게 망가진 꼴로 다니면 누가 동정이라도 해 줄 것 같아?”임애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웠다.“5년 전에 내가 이 결혼을 반대한 건 너희 부씨 집안 사람들이 하나같이 냉정하고 이기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자네 역시 타고난 듯 오만하고 냉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지난 5년 동안 시유가 자네 집안에서 온갖 무시를 당하는 걸 내가 다 봤어.”“난 시유가 자네 엄마한테 시달려 점점 수척해지는 것도 봤고, 자네가 일로 죽도록 몰아붙이면서 그걸 훈련이라고 포장하는 것도 봤지.”임애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때 자네가 말하는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디 있었어?”“자네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내가 돌려서 얼마나 많이 말했어. 시유한테 좀 잘하라고. 그런데 단 한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42화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 둘게.”“시유는 내 아내고, 빛나는 내 딸이야. 놀이 성도 내가 사 줘.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여준이 비웃었다.“누구 부탁을 받았다는 건 다 핑계겠지.”“강영우, 이제야 네가 왜 그렇게 서둘러 새나랑 이혼했는지 알 것 같네.”“결국 시유랑 떳떳하게 만나려고 그런 거잖아. 아니라고 할 수 있어?”영우는 여준의 핸드폰 화면을 흘끗 바라봤다.영상을 보낸 사람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너무도 익숙했고, 보기만 해도 눈에 거슬리는 얼굴이었다.그동안 억눌러 왔던 분노와 억울함, 리오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이혼하기까지 겪은 상처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게다가 여준이 저토록 당당한 얼굴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영우는 더 말 섞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오랫동안 억눌러 온 분노를 실어 여준에게 주먹을 날렸다.퍽!주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여준도 몇 대를 정통으로 맞자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두 사람은 시유가 보는 앞에서 그대로 뒤엉켜 주먹을 주고받았다.누구 하나 힘을 빼지 않았다.영우의 셔츠는 잡아 뜯겨 엉망이 됐고, 드러난 피부에는 금세 퍼런 멍이 번졌다.여준 역시 평소의 말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얼굴은 피와 땀으로 엉망이 돼 처참한 몰골이었다.시유는 눈앞의 광경에 멍하니 굳었다.몇 초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었다.“둘 다 그만해!”배송 기사도 놀라 함께 두 사람을 말리려 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계속 서로에게 달려들었다.마치 성난 짐승처럼 주먹을 주고받으며 오랫동안 쌓아 온 감정을 모조리 쏟아냈다.그동안 굳건하다고 믿었던 두 사람의 우정도 주먹이 오갈 때마다 산산이 부서졌다.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임애교까지 급히 뛰어나왔다.그녀가 온 힘을 다해 두 사람을 떼어 놓으며 소리쳤다.“그만해! 둘 다 당장 멈춰!”그제야 두 사람은 주먹질을 멈췄다.각자 피가 흐르는 입가를 누른 채 잔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41화

    여준은 하던 말을 마저 내뱉지 않았다.시유가 홱 몸을 돌렸다.두 눈은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여준을 바라보는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당장이라도 그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였다.여준은 그대로 굳었다.하려던 변명은 가슴에 막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시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여준을 노려봤다.극심한 분노에 목소리까지 떨렸다.“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여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시유가 그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았다.“지금 빛나가 당신 딸이 맞는지 의심하는 거야?”시유가 헛웃음을 쳤다.“부여준, 당신은 소새나가 그런 더러운 짓을 했으니까 나도 똑같은 여자라는 거야?”눈가가 뜨거워졌지만 시유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이미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상처가 다시 찢겨 피가 나는 기분이었다.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 당장이라도 칼을 들어 여준의 가슴에 꽂고 싶을 정도였다.사람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말이었다.이건 한 여자의 인격을 짓밟는 최악의 모욕이었다.대체 자신에게 얼마나 무심했고, 자신을 얼마나 모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난... 그런 뜻이 아니야.”여준의 목소리가 메말라 있었다.“당신은 나한테 너무 차가운데 영우한테는 너무... 그러니까 나도 자꾸 의심이 들잖아. 두 사람이 혹시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던 건 아닌지.”시유는 칼날 같은 눈으로 여준을 노려봤다.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억눌렀다.“당신이 최소한 남자라면 이런 부끄러운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지!”그때 영우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영우는 시유를 자신의 뒤로 물리더니 그대로 주먹을 날려 여준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퍽!“강영우!”여준은 정통으로 주먹을 맞고 두 걸음이나 비틀거리며 물러났다.입가에서는 바로 피가 배어 나왔다.옆에 있던 배송 기사가 놀라 황급히 부축하고 나서야 겨우 중심을 잡았다.영우가 여준을 똑바로 바라봤다.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웠다.“집에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5화

    “환자분은 출산 후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입니다. 이전에 대량 출혈로 응급 처치까지 받으셨고요.”“이런 상태에서는 저혈당으로 쓰러지기 쉽습니다. 영양 보충 꼭 잘 하셔야 하고,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일도 피하셔야 합니다.”검사가 끝난 뒤에도 시유는 병실 침대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의사는 병실 안에서 마리에게 시유의 상태를 차분히 설명했다.장순영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사모님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하셨어요. 첫 보름은 젖몸살이 너무 심해서 음식도 마음대로 못 드셨고, 그 다음엔 아기가 소화를 잘 못 시켜서 밤마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4화

    유민자가 허둥지둥 방에서 뛰쳐나오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지진이에요? 지금 지진 난 거예요?”장순영은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안고 있다가, 요란한 소리에 놀라 맨발로 가방부터 움켜쥐고 현관 쪽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심지어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었다.유민자와 장순영이 거실로 뛰어들었을 때,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늘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시유가 미친 사람처럼, 한때 그토록 아끼던 장식품들을 하나씩 바닥에 내던지고 있었다.유민자는 다급히 시유에게 달려가 말렸다.“사모님, 그만하세요! 제발 그만하세요! 무슨 일이든 차분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화

    시유는 액셀을 깊게 밟아, 두 사람의 신혼집이 있는 단독주택 단지 ‘그림빌’로 차를 몰았다.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이 집에서 오래 일한 가사도우미 유민자와 시유가 따로 고용한 시터 장순영이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시유의 새하얗게 질린 낯을 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모님, 어디 편찮으세요?”시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괜찮아요. 배가 좀 고파서요. 따뜻하게 닭칼국수 한 그릇만 해 주세요.”장순영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든 시유의 복잡하게 뒤엉킨 마음은, 보드랍고 발그레한 아기 얼굴을 보자 겨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화

    연회장 안.시유의 시선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여준에게 박혀 있었다. 여준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술잔을 들고, 새나를 데리고 테이블마다 돌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제 친구 영우가 해외 현장에 장기 파견을 나가 있어서, 돌아오려면 1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영우 대신 인사도 드리고, 술도 대신 받겠습니다.”“새나는 아직 몸조리 중이라 술도, 찬 음료도 조심해야 합니다. 새나 몫으로 주시는 잔은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시유는 입안으로 넘어간 오렌지 주스가 유난히 차갑고 쓰게 느껴졌다. 가슴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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