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우리 둘이 역할을 나눠서 움직이자. 너는 여준이를 맡고, 나는 네 이모를 맡을게.”“반드시 임시유가 자기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부씨 집안에서 완전히 쫓아내야 해.”새나의 눈빛에 순간 사악한 기색이 스쳤다.지금 새나는 시유를 뼛속 깊이 증오하고 있었다....시유는 집에서 꼬박 사흘을 기다렸다.그리고 사흘 뒤, 마침내 여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여준은 시유에게 TS레스토랑에서 만나 앞으로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이야기하자고 했다.시유는 곧장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2층 룸의 문을 열자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여준뿐만 아니라 유란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시유는 잠시 멈칫했다가 금세 표정이 굳었다.“일 얘기하자고 한 거 아니었어? 그런데 왜 부유란 대표님까지 데리고 온 거야?”여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란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시유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눈빛에는 이전과 달리 진심 어린 호의가 담겨 있었다.“내가 여준이랑 같이 가겠다고 한 거야. 엄마랑 여준이는 올케가 임신했을 때부터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어.”“우리 사과, 받아 줄 수 있겠니?”유란의 목소리에는 그동안 시유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존중과 진심이 담겨 있었다.갑작스러운 태도에 시유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입꼬리에는 비웃음이 걸렸고 본능적으로 여준을 바라봤다.“왜?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써 보려는 거야? 이런 건 나한테 안 통해.”“내가 최근에 부유란 대표님한테 빛나 사진 몇 장 보냈다고 해서 내가 부유란 대표님이랑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거야?”“그래서 부유란 대표님을 데려와서 내 마음을 돌리려고? 난 당신 가족 누구와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야. 그러니까 이런 수작은 그만 부려.”시유는 유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단 몇 마디로 두 사람의 속내를 꿰뚫어 봤다.말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여준은 그런 시유의 냉정함과 단호한 태도에 머리가 지끈거렸
한편, 다른 병실에서는 새나와 진지원이 마주 앉아 있었다.두 사람 모두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엄마, 이제 어떡해요?”“임시유가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강해진 거예요? 우리가 사람을 시켜 불을 지른 증거를 이렇게 빨리 확보할 줄은 몰랐어요.”“지금 이모도 화가 났고, 오빠까지 우리한테 등을 돌렸잖아요.”새나는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내쉬었다.“이번에는 어떻게든 판을 뒤집어 보려고 했는데... 결국 얻은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돈까지 엄청나게 물어줘야 하잖아요.”진지원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새나를 흘겨봤다.“이제 와서 무슨 방법이 있겠어. 이미 일이 터졌잖아. 돈을 물어주지 않으면 시유가 우리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할 거야.”“다 너 때문이야. 네가 처음부터 여준이와 조금만 거리를 뒀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새나는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엄마, 왜 또 전부 제 탓으로 돌려요? 처음부터 일이 이렇게 된 건 다 임시유 때문이잖아요.”그러다 새나는 미간을 좁혔다.“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해요. 임시유가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까지 강해진 거죠?”“엄마, 아무래도 시유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아요. 반드시 그게 누군지 알아내야 해요.”진지원은 미간을 꾹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늘 임시유 옆에 붙어 다니던 젊은 남자 있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변항이었나? 그 사람, 보통 실력은 아닌 것 같더라.”“지금 임시유나 임애교의 능력만으로는 그런 사람을 곁에 둘 수 없어. 새나야, 우리도 더 이상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해.”새나는 답답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아빠는 우리를 도와주지도 않을 거고, 이런 일을 아빠한테 알리는 건 더더욱 안 돼요.”“알았다가는 우리 둘 다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 수 있는데요?”진지원은 몇 초 동안 말없이 생각했다.그러다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한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나
“우리 집은 예전부터 조용히 살고, 집안의 화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왔어. 시유가 우리 집에 시집왔으니 이제는 부씨 집안을 먼저 생각해야 해. 그 점은 네가 시유에게 잘 이야기해.”부인걸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갔다.처음부터 끝까지 병실에 머문 시간은 고작 10분도 되지 않았다.남편으로서 병문안할 도리는 다했다는 듯했다.부인걸이 병실을 나간 것을 확인한 진명화는 화를 참지 못하고 침대 옆 탁자에 놓여 있던 찻잔을 바닥에 세게 내던졌다.쨍그랑!“네 아빠 좀 봐. 1년 내내 집에도 잘 안 들어오더니, 한번 들어왔다 하면 나한테 잔소리만 한가득이야!”“내가 그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온갖 집안일이며 인간관계까지 다 챙겼어.”“너희 네 명을 키운 것도 나야. 내가 부씨 집안에 뭐 하나 잘못한 게 있어?”“그런데 이제 와서 시유 하나 때문에 나를 무슨 잘못만 한 사람처럼 몰아붙여?”진명화는 본능적으로 또 모든 책임을 시유에게 돌렸다. 시유를 향한 불만이 이미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유란은 결국 미간을 찌푸렸다.“엄마, 아빠가 다른 걸 가지고 뭐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시유가 아이를 낳은 일에서 엄마가 너무 자기 생각만 했다고 한 거예요.”진명화는 화가 치밀어 유란의 얼굴이라도 할퀴고 싶은 심정이었다.“너, 너...”그러다 결국 손을 내저었다.“됐어. 너도 나가. 여기서 더 이상 나 화나게 하지 말고. 이제 보니까 너나, 네 아빠나, 여준이나 다 똑같아!”“너희끼리 한편 먹고 나만 따돌리잖아. 너희가 진짜 부씨 집안 사람이고, 나는 남이야!”유란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했다.‘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시어머니 노릇만큼은 유난히 모질고 고집스러우시네.’이런 성격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불가능했기에 유란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몸조리 잘하고 푹 쉬라는 말만 남긴 뒤 병실을 나왔다.그날 밤 진명화는 혼자 병실에 누워 있었다. 마음은 답답하고 허전했다.시간이 갈수록 외롭고 쓸쓸한 기분만
진명화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몸을 떨었다.고개를 돌리자 병실 문 앞에 부인걸이 서 있었다.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부인걸은 키가 180cm에 달했고, 평소에도 꾸준히 운동해 탄탄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외모와 체격 모두 또래 중 단연 돋보였다.여준은 부인걸을 많이 닮았다.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으면 누가 봐도 부자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분위기까지 비슷했다.몇 년 전부터 부인걸은 부씨 집안의 주요 사업을 여준에게 맡기고 대부분의 시간을 G시에서 보냈다.그곳에서 회사의 일부 사업과 부동산 등을 관리하며 사실상 반은퇴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하지만 부씨 집안에서 부인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했다.아직 집안 재산의 상당 부분을 직접 쥐고 있었고, 모든 것을 여준에게 넘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진명화는 그런 남편을 늘 어려워했다.존경하는 마음도 컸지만, 두려운 마음 역시 컸다.부인걸은 무엇이든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사소한 일에도 기준이 까다로웠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진명화는 남편만 보면 본능적으로 숨이 막힐 만큼 큰 압박감을 느끼곤 했다.“당신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요?”진명화는 고개를 숙인 채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부인걸은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채 천천히 침대 앞으로 다가왔다.최근 H시에서 벌어진 일은 그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며칠 전 돌아온 뒤로 집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대략적으로 전해 들었다.여자들끼리 벌인 사소한 다툼이라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대략적인 사정은 알 수 있었다.최근 H시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시유의 행동이 지나쳤던 것도 사실이었다.감정적으로 행동했고, 지나치게 극단적이어서 결국 모두를 곤란하게 만들었다.하지만 진명화와 여준 역시 빛나가 태어난 뒤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분명 잘못한 부분이 있었다.가족이라면 지켜야 할 도리와 배려를 너무 쉽게
결국 빛나는 자신의 친손녀였다.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피는 속일 수 없는 법이었다.진명화는 여전히 화가 난 상태였기에, 유란이 내민 핸드폰을 보자마자 무심코 밀어내려 했다.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그 순간 영상 속 빛나가 환하게 웃었다.빛나의 천진한 미소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힘이 있었다.진명화의 시선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핸드폰을 밀어내려던 손도 천천히 내려갔다.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화면만 바라봤다. 그렇게 시간이 1분 넘게 흘렀다.그리고 그것은 빛나가 태어난 뒤, 할머니인 진명화가 처음으로 제대로 손녀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이었다.아이는 보기만 해도 복이 느껴지는 듯한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누구라도 한 번 보면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진명화의 마음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던 차가움도 영상 속 빛나를 보면서 조금씩 녹아내렸다.“이 영상은 어디서 난 거야? 너 혹시 그 천한 애를...”진명화는 무심코 말을 내뱉다가 순간 멈췄고 급히 말을 바꿨다.“아기를 보러 간 거야?”유란의 말이 맞았다. 결국 빛나는 자신의 친손녀였다.유란은 핸드폰을 거두며 말했다.“시유가 우리 가족을 얼마나 원망하는데, 저한테 직접 보여 줬을 리가 없잖아요. 제가 방법을 찾아서 구한 영상이에요.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제가 엄마한테 묻고 싶은 건 하나예요. 엄마는 정말 이번에 이모랑 새나가 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았어요?”“엄마는 그동안 두 사람한테 그렇게 잘해 줬잖아요. 그런데 돌아온 게 이런 배신인데도?”진명화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분노에 찬 눈빛이 그대로 드러났다.“화가 나지. 당연히 화가 나. 설마 내 동생이 뒤에서 계속 나를 경계하고, 계산하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나는 정말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다 해 줬는데... 새나는 말할 것도 없어. 내가 너희 세 자매에게 해 준 것보다 그 아이에게 더 잘해 줬는데...”“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니까 결국 자기 엄마 편을 들잖아. 걔가 나를 생각하
여준은 유란의 말을 듣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그동안 모든 갈등은 혼자 감당해 왔다.혼자 판단하고, 혼자 해결하려 애쓰다 보니 여준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회사의 복잡한 해외 사업을 처리하는 것보다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들었다.그제야 여준은 뼈저리게 깨달았다.‘가정이 무너지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버틸 수 없다.’집안이 흔들리고, 모든 일이 엉망이 되는 상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무엇보다 여준은 지금 와서야 시유에게 했던 자신의 무관심과 외면을 후회하고 있었다.그렇게 이해심 많고 배려 깊었던 아내를 지금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으로 만든 건 결국 자신이었다.“누나가 그렇게 생각해 줘서 정말 다행이야.”“만약 누나가 나서서 우리 사이의 갈등을 풀어주고, 시유가 이혼 생각을 접고 빛나를 데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 준다면...”“앞으로 회사 일은 누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게.”여준은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유란의 손을 잡았다.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유란은 차분하게 그를 바라봤다.“엄마가 새나와 확실하게 선을 긋고, 너도 새나와 거리를 둔다면... 시유가 다시 너와 함께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결국 너희 둘 사이에는 아이도 있잖아. 정말 이혼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판단해야 해.”“어떻게든 시유와 빛나에게 네가 저지른 잘못을 만회하고, 새나와는 멀어져야 해.”유란은 차갑게 말을 이었다.“내가 보기에는 우리 집안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건 시유 성격 때문이 아니야. 문제는 너와 엄마가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거야.”“무슨 일이 생기든 항상 새나 편에 서 있었잖아.”유란은 그렇게 말한 뒤 몸을 돌려 진명화의 병실로 향했다.그 자리에 남은 여준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마치 누군가 머릿속을 세게 내리친 것 같았다. 머리가 웅웅 울렸다.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선명해졌다.비슷한 말을 이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
연회장 안.시유의 시선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여준에게 박혀 있었다. 여준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술잔을 들고, 새나를 데리고 테이블마다 돌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제 친구 영우가 해외 현장에 장기 파견을 나가 있어서, 돌아오려면 1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영우 대신 인사도 드리고, 술도 대신 받겠습니다.”“새나는 아직 몸조리 중이라 술도, 찬 음료도 조심해야 합니다. 새나 몫으로 주시는 잔은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시유는 입안으로 넘어간 오렌지 주스가 유난히 차갑고 쓰게 느껴졌다. 가슴 안쪽
“여보, 우리 아기 오늘 태어난 지 한 달 됐잖아. 나랑 아기 데리러 올 수 있어?”임시유는 속싸개에 싸인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수화기 너머에서 부여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감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갑자기 일정이 생겼어. 기사한테 당신이랑 아기 태우고 집까지 오라고 할게.]출산할 때도, 산후조리 기간 내내 여준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시유와 아기의 곁에 없었다.이제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어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인데
여준은 난장판이 된 거실을 바라보다가, 힘이 빠진 사람처럼 소파에 주저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지만, 답답하게 막힌 가슴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이모님, 제가 아내한테 그렇게 못했습니까? 시유가 이렇게까지 화낼 일입니까?”유민자는 바닥에 흩어진 파편을 쓸어 담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이 사모님께 못하신 건 아니에요. 두 분 결혼하고 5년 동안 큰소리 한 번 오가는 걸 못 봤으니까요.”“다만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마음이 많이 흔들릴 수 있어요. 산후 우울감도 올 수 있고요. 이럴 때일수록
마리는 시유가 더 상처받을까 봐, 여준이 메시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시유가 퇴원하는 날까지도 여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퇴원 후, 시유와 마리는 젖먹이 빛나와 장순영을 데리고 시유가 반년 전 ‘태양파크’ 아파트단지에 사 둔 집으로 들어갔다.마리의 집은 바로 맞은편이었다. 서로 마주 보는 앞집에 살자는 건 대학 시절부터 두 사람이 농담처럼, 하지만 진심으로 꿈꿔 왔던 일이었다.그래서 반년 전 마리의 맞은편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시유는 망설임 없이 그 집을 계약했다.집에는 기본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