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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금지된 이름의 파문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6-18 11:21:15

현은 그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단순한 명령자의 시선이 아니었다.

오랜 우정과 굳건한 믿음이 깔려 있으나,

그 밑바닥에는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균열이 보였다.

“마마의 밤이니만큼… 혹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변을 더 살펴보아라.”

명분 있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왜 네가 여기에 있었느냐’는  질문보다도 더 깊은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도진은 눈을 내렸다.

“…예, 저하.”

그는 마지막으로 이수를 향해 아주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동안 방 안의 공기는 다시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은 쉽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수는 그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촛불이 세자빈의 얼굴을 반쯤 밝히고, 현의 얼굴은 그 절반쯤을 어둠이 덮고 있었다.

“마마.”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지만, 말의 한 끝은 어딘가 단단히 잠겨 있는 듯했다.

“오늘… 낯선 것이 많았을 터이다.”

이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낯설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어떤 것이 가장 마음을 흔들었는지 말로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은 조금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으나

그 조심 속에 감춰진 소유하려는 마음이 이수에게는 아주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두려움이 있다면… 전하시오. 마마를 지키는 것은 제 몫이니.”

그 말은 본래라면 위로가 될 말이었다.

그러나 이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흔들렸다.

마치 누군가가 조용히 문 뒤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는 듯한 불안.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염려해주어 고맙소.”

그 말 너머로 둘 사이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말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만들고 있었다.

현의 눈빛은 잠시 이수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 표정에는 ‘알고 싶다’는 욕망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수는 깨달았다.

이 밤, 이 조용한 순간부터 세 사람의 운명은

아무도 모르게 다른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을.

촛불이 길게 흔들렸다.

방 안의 공기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균열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도진이 처소의 문을 나서는 순간, 밤공기가 한꺼번에 폐부 깊숙이 밀려들었다.

언뜻 차갑다고 느껴졌지만,  그 차가움 속 어딘가에 낯선 온기가 섞여 있었다.

마치 방금 전, 촛불 아래에서 마주했던 이수의 시선이 아직도 어딘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듯한 기분.

그는 한동안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문을 닫고 나온 뒤에도 누군가의 시선이  등 뒤에 닿아 있는 듯했고,

그 시선이 이수에게 닿기 전에 스스로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묘한 긴장감이 그의 몸을 감쌌다.

‘이상하군.’

도진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세자의 호위무사로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기척을 감지해 왔다.

칼을 드는 사람의 손끝,

음모를 품고 접근하는 자의 숨결,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의 떨림

그 모든 것을 몸으로 알아차리는 사람.

그런 그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그 어떤 적의 기척도 아니었다.

그저…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울림.

그 울림은 처소의 문 안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수…

도진은 그 이름을 마음속에서 불러보았다.

그 이름이 입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더 깊이 눌러 담았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순간, 방 안의 공기조차 잠시 멈춘 듯했다.

‘도진.’

그렇게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세자빈이 감히 한 무사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모든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도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알고 있었다.

그 짧은 호명 한 번에 자신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깨어난 것을.

그는 걸음을 옮겼다.

고요한 복도를 지나, 어둠이 드리운 회랑의 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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